글 = 선우현정
초등학교 저학년인 남자아이가 부모님과 함께 내원했습니다. 아이가 대기실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고, 앉은 상태에서도 손과 발을 자주 꼼지락거렸습니다. 어딘가 불안해 보였고, 한편으로는 부산스러운 인상을 주기도 했습니다.
▲ (사진=픽사베이)
부모님은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아'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교사로부터 거의 매일 전화가 왔다더군요. '교실을 돌아다닌다', '너무 큰 목소리로 말한다', '딴짓을 한다' 등 주로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들이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도 2학기에 접어들면서 수업 시간에 제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게 됐고, 수업을 방해하는 엉뚱한 질문이나 장난스러운 말들은 어느 정도 개선되는 듯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로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은 일로 친구들과 빈번하게 다툼이 일어났고, 수업 시간에도 교사가 조금만 지적하면 불쑥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던 거죠. 한 번은 수업 시간 내내 가위로 색종이를 자르고 있어서 교사가 가위를 가방에 넣으라고 했더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바닥에 가위를 내팽개쳐서 교사도 친구들도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자칫 누군가의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아이의 변화는 학교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도 툭하면 짜증을 내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원래도 예민하고 까칠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감정 기복이 더 크고, 발을 구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해 점점 통제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고 부모님은 말했습니다.
아이의 이런 모습에 어머니는 하나하나 아이를 저지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상태였고, 아버지는 옆에서 보며 참고 있다가 종국에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체벌을 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아이가 아버지를 무서워해서 아버지가 화를 내면 금방 순응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아버지가 없는 시간에는 통제가 되지 않아 '전쟁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심리 평가가 시작되자 아이는 검사 도구에 많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뭐 할 건데요?", "그건 뭐예요?" 하고 끊임없이 질문했고, 앉은 자리에서도 엉덩이를 들썩이며 책상 위로 올라가듯 기대어 앉는 등 산만해 보였지요. 막상 제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검사실을 둘러보느라 아주 바빠 보였습니다. 검사 초반에는 기분이 좋은 상태였지만 지루한 과제가 지속되자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라는 지시에 연필로 대충 끄적인 다음 종이를 내밀었고,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답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아, 몰라요. 모른다고요!"라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검사를 시작한 지 40분 정도 지났을 무렵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혼자 퇴실해 버리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부모님이 염려하는 주된 문제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이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부주의하고 충동적인 면이었습니다. 검사 과정에서도 주어진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정보를 계속해서 누락하고, 사소한 실수도 빈번하게 보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지 못했고, 반대로 하고 싶은 말은 수다스럽게 늘어놓느라 대화도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지루한 활동이 반복되고 높은 수준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상황이 되자 끝내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이탈하기도 했죠. 그뿐만 아니라 손발을 움직거리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행동, 평소에도 조용히 앉아있지 못하고 돌아다니거나 다른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태도도 특징적이었습니다.
아이는 전형적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증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불쑥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는 문제가 커 보였겠지만 이러한 감정 조절의 어려움은 '충동성'이 두드러지는 ADHD 아이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 (사진=픽사베이)
ADHD는 인지 및 행동 영역에서의 억제나 통제에 취약한 면이 있어서 사소한 자극에도 주의가 쉽게 분산되고, 행동이나 감정적인 면에서도 기복이 크고 불안정한 양상이 특징적으로 관찰됩니다. 그러니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감정적으로 자극되고 표현도 과도한 면이 있는 것이죠.
이럴 경우 억제 및 통제의 어려움 자체도 일상생활에서 많은 부적응을 낳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한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과 갈등은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아이의 자아상 형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처음에는 부주의하고 산만한 행동과 함께 약간 감정적인 양상만 보이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서적 문제가 짙어지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ADHD 아이들은 "하지 마라", "또 그러네.", "네가 문제야."와 같이 부정적인 평가에 빈번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누구나 그러하듯 이렇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억울하고 화가 나는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거칠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지만 이면에는 본인 스스로도 '나는 문제가 많은 아이야', '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아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울적하고 불안한 마음을 느끼기 쉽습니다. 이는 감정 조절을 더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그 결과 사회적인 낙인은 더 확고해지는 등 악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 (사진=픽사베이)
이 같은 악순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른 시기에 치료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증상을 발견했을 때 빠른 시일 내에 소아정신과에 방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필요하다면 약물치료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봐야 합니다. ADHD는 뇌의 기능성, 구조적 문제로부터 비롯되는 장애이기 때문에 환경적 개입보다는 약물치료가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니 전문의가 약물치료를 권고할 경우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신속하게 치료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고 환경적인 개입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ADHD 아이들도 심리적 문제를 흔하게 보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지지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친구들과의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회기술 훈련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함께 ADHD 자녀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돕고 그를 바탕으로 하는 건강한 의사소통 방법을 알려주는 부모교육도 자녀 양육에 도움이 됩니다.
글 = 선우현정(임상심리전문가/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고 있는 임상심리사입니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주력하고 있고 이와 관련한 소통을 환영합니다.
노유래 기자/thekid@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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