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다낭에서 퀴논으로.
기차에 올랐다.

Anantara The Vietage Danang-Quy Nhon
●럭셔리 완행열차, 더 비엣티지
기차 여행, 그것도 베트남에서…. 썩 내키지 않았다. 베트남은 길다. 남북으로 1.750km쯤. KTX 따위도 없다. 반드시 어디든 오래 걸릴 뿐더러, 애초에 기차라는 교통수단의 본질이 ‘대량 적재’ 아닌가. 화물이든 사람이든 우선 많이 싣고 보는 것이 기차의 목적이다. 효용성과 가성비를 어떻게 따져 봐도, 베트남에서 도시를 이동할 때는 자동차가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베트남 다낭에 도착해 기차역으로 굳이 향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베트남의 기차였기 때문이다. 기차는 교통수단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여행이다.

베트남 종단철도는 1936년, 프랑스의 식민지 개척 과정에서 구축되었다. 노선의 길이가 남북 방향으로 2,600km에 달한다. 베트남 종단철도는 전쟁과 내부 분란의 시기를 거치며 각기 분리되었던 적도 있다. 1975년, 베트남이 다시 통일되었고 정부의 주도하에 철도 재정비에 나섰다. 종단철도 곳곳에 150여 곳의 기차역을 세웠고, 수십 개의 터널과 수백 개의 다리를 복원했다. 그렇게 재탄생한 종단철도를 누비는 열차가 지금의 ‘통일 특급 열차’다. 마침 저기, 그 열차가 다낭역에 들어선다.

‘통일 특급 열차’는 보통 11량(칸)이다. 그런데 다낭-퀴논 노선은 2량이 추가로 붙어 13량으로 운영된다. ‘아난타라(Anantara)’호텔이 2020년 선보인 럭셔리 열차, ‘더 비엣티지(The Vietage)’의 운영 구간이기 때문이다. 아난타라는 다낭-퀴논 노선의 더 비엣티지를 위해 베트남 교통부의 허가를 받는 등 무려 4년의 시간을 이곳에 투자했다고 한다. 다낭에서 퀴논까지, 철로의 길이는 대략 323km. 우리나라 용산에서 출발한 KTX가 광주송정역을 지날 때가 대략 320km쯤 구간이다. KTX로 2시간 거리를, 베트남의 열차는 6시간 동안 달린다. 베트남은 실제로 세계에서도 느린 열차로 유명하다. 평균 시속이 53km 정도 되는데, 하노이(북부)에서 출발해 호치민(남부)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32시간이 걸린다. 비 내리는 호남선보다 느린 완행열차다.
고백한다. 다낭역에서 더 비엣티지에 오르기 전까지 후회했다. 감히 베트남에서 럭셔리를 기대한 스스로를 책망키도 했다. 더 비엣티지의 외관은 영락없는 누리호다. 열차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서까지, 제발 이 열차만은 아니길 빌었다.

더 비엣티지는 기존 통일 특급 열차 2량의 내부 공간‘만’ 리모델링 했다. 외부는 기존 통일 특급 열차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손대지 않았다. 빨강, 하양, 파랑 페인트가 덕지덕지 발려 있다. 더 비엣티지 내부로 들어서니 안경에 김이 서린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베트남의 더위를 희미하게 지워 가던 와중, 턱시도를 말끔히 차려입은 승무원이 샴페인 한 잔을 내게 건넸다. 마음이 놓인다.
열차 내에는 과장 조금 더 보태서 승객보다 직원이 더 많았다. 복도 양옆으로는 2인이 앉을 수 있는 6개의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을 ‘룸’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라탄 소재의 개방감이, ‘칸막이’라고 부르기에는 공간의 독립성이 너무 완벽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더 비엣티지는 오로지 12명 이하의 여행자만 탑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수의 공간, 희소한 경험. 가끔 여행에서 느끼는 우월감은 일상에 좋은 땔감이 된다. 그래서 여행자가 럭셔리를 찾는 것이고.

기차 객실에서 나와 4걸음 정도 걸으면 바(Bar)다. 더 비엣티지에서는 칵테일, 현지 수제 맥주, 와인 및 스낵을 무한으로 제공한다. 화장실을 갈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가 그랬다. 속된 말로 마시면 나오는 게 사람이라고. 아주 오래전 모종의 기억으로 나는 그 누구보다 화장실에 민감한 여행자가 됐다. 더 비엣티지는 베트남의 기차이기도 한데, 결국은 아난타라의 호텔이다. 마음껏 마시고 마음껏 배출….

그나저나 베트남 완행열차의 속도감은 가히 놀라웠다. 어느 구간에서는 오토바이를 타던 여학생과 3분가량 동일 선상을 달리기도 했다. 기차는 분명 움직이고 있었고, 우린 서로 뻘쭘할 따름이었다. 베트남 논에는 유난히 묘지가 많았고, 민둥산마다 만들다만 전봇대가 빼곡히 박혀 있었다. 차라리 스치면 모를 것들이 느려서 자꾸 눈에 밟히는 시간이다. 밥이나 먹자. 식사 메뉴는 탑승하기 전, 3코스로 사전 주문을 받는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보리 리소토부터 퀴논 해산물 샐러드, 와규 목살찜 등 메뉴가 다양하다. 달랏의 딸기, 패션프루트 타르트, 베트남의 동나이 초콜릿을 곁들인 프렌치 스타일의 크렘 브륄레 등 베트남의 식재료로 만든 디저트도 제공한다. 맛도 맛인데 융숭한 대접이 어깨를 괜히 으쓱이게 만든다.
핸드폰을 꺼냈다. 누가 보진 않을까 빠르게 손을 올려 셀카 한 장을 찍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못 볼 꼴. 그래도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더 비엣티지는 소중한 이와 다음을 약속할 만한 경험이다. 괜히 턱을 괴고 창밖을 바라본다. 저기 바다가 나왔고, 어느 민둥산 꼭대기에는 전봇대 대신 참파 왕국의 성채 하나가 보인다. 우리 열차 ‘더 비엣티지’의 종착역, 퀴논이다.
The Vietage
다낭-퀴논 1일 왕복 1회 운행
편도 350~400USD(한화 약 45만원)
●Anantara Quy Nhon Villas
천국의 천국, 아난타라 퀴논 빌라
퀴논은 다낭과 나트랑 사이에 위치한 베트남 중부 휴양도시다. 퀴논, 뀌논, 꾸이년, 꾸이논…, 한글 표기 지명이 가지각색이라 검색도 어렵다. 그래서 퀴논에는 베트남 휴양지 중 가장 희소한 스폿이 존재한다. ‘한국인 여행객이 붐비지 않는 모래사장과 바다’. 퀴논에는 굵직한 역사도 있다. 베트남 중부지역은 참파 왕국이 지배했다. 퀴논은 11세기 무렵, 참파 왕국의 수도였다. 대략 400여 년 동안 왕의 도시로 번영했지만, 베트남 근대 왕조의 격전이 이곳에서 발생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주둔 등 다양한 전쟁사로 점차 도시가 얼룩졌다. 현재 퀴논의 참파 유적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참파 유적을 만나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퀴논이다. 끝내 참파의 심장이었기 때문이다.

열차는 퀴논역에 멈춰 섰다. ‘더 비엣티지’를 탑승한 여행자라면 아마 높은 확률로 ‘아난타라 퀴논 빌라’를 선택했을 것이다. 정장 셔츠에 츄리닝 바지를 입은 이는 드물기 때문이다. 더 비엣티지 아난타라 퀴논 빌라는 같은 계열의 리조트이기 때문에 여행자는 짐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리 준비되어 있던 픽업 차량에 올라타 15분이면 ‘아난타라 퀴논 빌라’에 도착한다. 빌라에 들어서면 기차에 실려 있던 짐이 빌라 안에 정리되어 있다. 참고로 별도의 체크인도 필요없다. 더 비엣티지 탑승과 동시에 체크인이 원격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퀴논에서 여행자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야트막한 산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과 모래사장 너머 들려오는 파도 소리뿐이다.

아난타라 퀴논 빌라는 퀴논이 위치한 빈딘(Binh Dinh)성의 토착적 요소와 베트남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모래, 바다, 하늘에서 컬러감을 영감 받아, 지역 고유의 파란색 화강암과 흰색 대리석으로 마감했다. 총 26개의 빌라가 있는데 1 베드룸, 2 베드룸, 오션 빌라, 힐사이드 빌라 등 다양한 타입으로 구성했다. 인피니티 풀사이드 앞쪽으로는 아난타라 호텔의 시그니처 레스토랑 ‘씨.파이어.솔트(Sea.Fire.Salt)’가 위치한다.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찻잔과 도자기 그릇은 모두 베트남 빈딘성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아난타라 퀴논 빌라의 하이라이트는 스파다. 호텔 부지에 버금가는 스파 공간을 산비탈에 따로 마련했다. 시그니처 트리트먼트로는 몸과 마음의 조화를 위한 ‘차크라 크리스털 밸런싱’, 이국적인 코코넛 목욕 후 힐링 콤비네이션 마사지를 제공하는 ‘저니 오브 베트남’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스로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이다. 스스로 바다에 나가지 않으면 파도를 거스를 어떤 이도 없는 곳이고. 아난타라 퀴논 빌라는 쉬고자 하면 쉴 수 있는 곳이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The Vietage, Anantara Quy Nhon Vil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