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서는 커피보다 와인을 더 많이 마셨다. ‘모닝 커피’를 ‘모닝 와인’으로 대체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사실 시애틀과 와인, 둘의 연관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유추하기도 어렵다. 시애틀은 월평균 강수일이 10일 이상으로 비가 잦은 곳인데, 포도는 뜨겁고 건조한 지역에서 잘 자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애틀이 속한 워싱턴주는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다.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열쇠는 캐스캐이드(Cascade) 산맥에 있다. 평균 해발고도 2,000m의 거대한 산맥이 시애틀과 워싱턴주의 최대 와인산지 컬럼비아 밸리(Colombia Valley) 사이에서 습한 바람과 비구름을 막아 주고 있어서다. 뜨겁고 건조한 기후에서 생산된 워싱턴주의 수많은 와인들은 가까운 도시 시애틀로 자연스럽게 모인다.

와인이 있는 곳엔 맛있는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와인의 축복을 받은 시애틀은 매년 3월이면 이를 뽐내듯 축제를 연다. 테이스트 워싱턴(Taste Washington)이다. 1998년부터 매년 진행된 시애틀의 대표 미식 축제다.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새로운 테마로 새로운 음식과 와인이 펼쳐진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그랜드 테이스팅(Grand Tasting)’.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열리며 워싱턴주의 200여 개 와이너리와 75개 레스토랑이 참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세상의 모든 와인이 궁금한 이들에겐 천국이다.



그랜드 테이스팅에서는 와인 잔 하나를 들고 축제장 곳곳을 누비며 맘껏 먹고 마시며 즐기면 그만이다. 입장료에 모든 와인과 음식 테이스팅이 포함됐다. 참고로 축제장에서는 종종 “오 마이 갓!”이라는 감탄사가 들린다. 줄 서서 먹는 유명 맛집부터 길거리 음식, 스타 셰프를 알아본 현지인들의 리액션이다. 또 간혹 어떤 와인 메이커는 와인을 따라주며 건너편 부스의 음식을 추천하기도 하는데, 그 말을 따르면 눈이 번쩍 뜨이는 페어링을 경험하게 될 테니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시애틀은 확실히 잠을 이룰 수 없는 도시가 맞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시애틀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