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즐거운 산책이었다.
근사한 정원처럼 꾸며진 이곳에서는.

●파리지앵들이 눈을 반짝이며 찾는 핫플
거대하고 복잡한 도시 파리에는 갖가지 시대와 양식을 넘나드는 쇼핑 스폿이 많다. 중앙부의 백화점, 명품 매장, 체인 스토어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동쪽의 아기자기한 부티크 숍과 골동품 가게들도 파리지앵에게는 익숙하다. 오히려 파리 서쪽의 ‘파리-지베르니 디자이너 아웃렛(McArthurGlen Paris-Giverny Designer Outlet)’이 반짝이는 루키로 꼽히고 있다. 게다가 오픈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는데도 여전히 ‘뉴 오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수백년 된 건물들이 가득한 파리에서 1년 남짓 된 곳은 신선한 핫플레이스인 것이다.

어떤 곳인지 궁금한 마음에 파리로 날아가서 직접 방문해 보니, 첫인상부터 여느 아웃렛들과는 사뭇 달랐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대형몰들과는 다르게 로컬들이 사뿐사뿐 걸어 다니는 느긋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메인 건물의 벽면이 온통 초록빛 식물들로 뒤덮인 것도 남달랐다.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수직 정원의 창시자인 패트릭 블랑(Patrick Blanc)의 손길로 탄생된 초록의 외벽들 덕분에 할인 매장이 아니라 예쁜 안뜰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곳곳마다 개성 넘치는 조각 예술품도 보였고, 지베르니 지역 장인들의 공예품을 전시 판매하는 아뜰리에까지 있었다. 이토록 근사하게 꾸며 놓았으니 파리지앵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거부할 수 없는 속삭임
아웃렛 쇼핑의 관건은 수많은 매장이 퍼져 있는 넓은 장소에서 최적의 동선으로 최대의 혜택을 얻는 것!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시간과 체력을 허투루 쓰는 것은 금물이다. 여행의 고수들은 지도부터 살펴서 구조를 파악한 뒤, 자신의 쇼핑 목적에 알맞은 루트를 정한다. 함께 간 일행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식 맵을 들여다봤다.

길쭉하게 타원형으로 뻗은 길을 따라 좌우로 명품 매장들이 이어지고, 그 뒤로 갖가지 숍들이 열과 행을 맞추어 펼쳐졌다. 우측은 돌체앤가바나, 비비안웨스트우드 같은 명품과 여성 의류가 주를 이뤘다. 좌측은 휴고 보스, 토즈, 언더아머 등의 유니섹스 패션, 슈즈, 스포츠 브랜드의 차지였다. 오케이, 지도 파악 완료!

하나의 지도를 들여다봤지만, 이동할 방향은 저마다 달랐다. ‘누구나 흠모하는 명품부터 공략하기’, ‘컨템퍼러리 브랜드들을 훑으며 1년치 옷을 미리 쟁여 놓기’, ‘주방 용품과 생활 용품에 집중하기’…. 모두 각자의 취향과 목표에 따라 쏜살같이 흩어졌다. 내 경우는 ‘로컬 브랜드를 사는 것이 최고의 이득’이 원칙이었다. 현지에서 구매하면 가격이 낮은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품목들까지 접할 수 있으니까! 눈길이 자연스레 프랑스 브랜드들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특히 시크한 디자인의 산드로, 우아한 드레스와 재킷이 많은 마쥬, 좋은 소재와 세련된 스타일이 특징인 쟈딕앤볼테르 등의 하이엔드 컨템퍼러리 브랜드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했다.

매장에 걸려 있는 옷들의 가격표를 봤을 때는 눈이 번쩍 뜨였다. 현지의 정가보다 30~50% 싼 단가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거기에 더해질 약 10~12%의 택스 리펀에 두뇌도 반짝였다. ‘사는 것이 이득이야. 잘 계산해 보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버는 셈이잖아. 사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야’라고 쇼핑의 신이 귓가에 속삭였다. 재빠르게 옷들을 입어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선택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난 뒤에는 여러 개의 쇼핑백이 손에 들려 있었다. 일행들과 다시 만났을 때는 모두가 엄청난 양의 쇼핑백을 손에 쥐고 있었다. 서로 얼마나 멋진 것을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에 샀는지 열띤 이야기가 시작됐다.


●쇼핑은 어른들의 놀이
동행들과 신나게 쇼핑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프랑스 전통 마카롱 전문점인 라뒤레, 인기 높은 미국 햄버거 브랜드 파이브가이즈, 수제 추로스 푸드 트럭 추로스타임을 비롯한 푸드 스폿들은 프랑스의 전통과 세계적인 트렌드를 모두 고려해서 선별된 듯했다. 그중에서도 1903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카페 겸 레스토랑 ‘안젤리나(Angelina)’의 지점이 입점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초콜릿을 녹여 낸 따뜻한 음료인 쇼콜라 쇼와 국수 모양으로 짠 밤 퓌레가 올라간 디저트인 몽블랑이 맛있기로 정평 난 곳이다. 파리에서 한 번쯤은 가 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데, 본점은 늘 줄이 길어서 자리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웃렛 안에서 그 맛을 즐길 수 있으니 대단한 일 아닌가. 유럽식 식사에 이어서 맛본 감미로운 디저트들은 역시나 훌륭했고, 쇼핑에 쏟았던 에너지를 달콤하게 충전해 주었다. 모두가 오래도록 그곳에 앉아서 달짝지근한 오후의 행복을 누렸다. 오렌지빛 햇살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번 쇼핑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즐거운 산책이자 놀이였다는 것을.

Shopping News
1. 올해 6월13일에 폴로 랄프 로렌 매장이 신규 오픈했다. 본격적인 여름 컬렉션을 대대적으로 선보이고 있어서 의류, 가방, 모자, 액세서리 등의 패션 용품을 광범위하게 접할 수 있다.
2. 공식적으로 일요일은 휴무일이지만, 성수기인 6월16일부터 9월29일까지는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 영업시간은 기간과 요일에 따라 다르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자.
3. 새 상품이 골고루 넉넉하게 구비되는 시기는 대체로 목요일과 금요일이다. 휴무일인 일요일이 지나고 새로운 주간의 초반에 발주가 시작되면 보통 목요일과 금요일 즈음에 상품이 채워진다.
4. 파리 시내에서 아웃렛까지 운영되는 무료 셔틀의 탑승 지점이 올해 5월부터 변경됐다. 포르트 마이요 뇌이 버스 정류장(Arret de bus Porte Maillot-Neuilly)에서 탑승할 수 있으며, 운행 시간과 배차 간격이 홈페이지에 자세히 정리돼 있다.
Shopping Tips
1. 쇼핑을 시작하기 전에 인포메이션 센터 역할을 하는 게스트 서비스에 들를 것. 전체 지도, 추가 세일 정보, 택스 리펀 방법 등을 문의하거나, QR 코드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0% 추가 할인이 되는 패션 패스포트는 반드시 받아서 챙기도록 하자. 할인이 적용되는 브랜드와 품목이 정해져 있으며, 사용 가능 여부는 각각의 숍에서 확인하면 된다.
2. 한국의 신용카드사, 통신사, 소셜 커머스, 여행 플랫폼 등의 제휴 할인도 놓치지 말자. 할인 시기와 방식이 업체마다 다르니 미리 카드사와 통신사 등의 홈페이지를 확인하여 챙겨 두도록 하자.
3. 아웃렛 내부에 택스 리펀 오피스가 있어서 편리하다. 국가마다 환급 혜택에 적용되는 최소 구매 금액이 다른데, 프랑스는 하나의 숍에서 100.1유로 이상 구매해야 환급된다. 아웃렛은 하나의 매장이므로 여러 숍에서 구매한 것을 합하여 100.1유로를 채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쇼핑 중에 숍에서 택스 리펀 서류를 받아 두었다가, 마지막에 택스 리펀 오피스에 여권과 신용 카드를 함께 제시하면 처리를 도와 준다. 안내받은 내용에 따라 출국 전 공항의 택스 리펀 데스크에서 최종 절차를 마치면 된다.
4. 유럽의 아웃렛들은 대체로 화려하고 눈길을 끄는 디자인의 제품을 진열해 둔다. 너무 요란하거나 노출이 많아서 고민되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해당 제품의 심플한 모양이나 무난한 형태가 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 창고에 있는 해당 아이템을 가져다 준다.
5. 아웃렛의 다양한 편의 시설 중에서 어린이 놀이터인 플레이 그라운드는 모네의 작품 <수련>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다. 다양한 곡선을 그리는 형태의 놀이 시설이 거대한 설치미술 같은 느낌을 준다. 시간이 된다면 가 보자.
●인상파의 거장 모네가 살았던 곳
지베르니 지역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인상파 화가 모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모네는 그의 작품 ‘인상, 일출’을 통해 ‘인상주의’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창시자였고, 인상파 시기가 지나간 후에도 ‘빛은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원칙을 고수한 최후의 인상파 화가였다. 그는 삶의 후반부를 지베르니에서 보내며, 섬세한 손길로 집을 꾸미고 정원을 가꿨다.


당시의 모습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모네의 집과 정원(The house and gardens of Claude Monet)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가 보지 않을 수 없는 그 명소는 아웃렛에서 불과 약 19km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당장 출발!

모네의 집에는 그가 사용하던 화구, 책상과 의자, 식탁과 식기들, 침대와 조명까지 보존돼 있었다.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는데, 곳곳마다 모네 작품의 사본들도 걸려 있어서 더욱 감동했다. 커다란 연못이 있는 드넓은 정원은 유명한 연작 ‘수련’의 배경이어서 구석구석 눈여겨봤다. 초록으로 가득한 숲과 잔디, 핑크와 보라색의 꽃들, 연못에 띄워진 연잎과 연꽃, 우아한 곡선을 그리는 다리와 울타리는 캔버스 속 모습 그대로였다. 여름에 절정을 이루는 짙은 녹음과 만발한 꽃들이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던 풍경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빛과 색채를 한껏 누렸던 이번 여행은 마음에 반듯하게 새겨졌다. 마치 캔버스에 담긴 그림처럼.



Travel Tips
1. 모네 작품의 원본은 오르세 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원본을 보고 싶다면 모네의 작품을 포함한 19세기 회화를 전시하는 오르세 미술관을 여정에 포함시켜 보자.
2. 모네의 집과 정원 인근에는 지베르니 인상파 미술관(Museum of Impressionism Giverny)도 있다. 800m 거리에 있어서 걸어갈 수 있으니 함께 들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3. 파리 시내는 기사를 작성하고 있는 6월 기준, 2024 파리 올림픽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니 이 시기의 모습을 눈에 담아 두자. 오르세 미술관에 갈 여행자라면 주변 명소인 튈르리 정원, 퐁데자르와 퐁네프를 거쳐서 루브르 박물관과 오페라 가르니에까지 천천히 걸어 다니며 둘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 나보영 사진 나보영,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웃렛 제공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웃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