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는 오사카, 교토와 함께 간사이(관서) 지방의 핵심 도시다. 여행지로도 매력적인 지역이다. 서양식 주택과 차이나타운 덕분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고, 고베규(소고기)와 사케, 온천 등 먹고, 즐길 것도 다채롭다. 오사카에서 가까운 것도 장점. 하루 이틀 머물면서 고베의 모든 것을 탐하는 게 최선이지만, 시간이 제한된 여행자를 위해 6시간으로 압축했다.


걸어서 고베 속으로
오사카에서 고베까지는 열차로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간사이 여행 일정을 3박4일로 생각하고 있다면 6~7시간은 고베에 할당해도 괜찮은 이유다. 여행의 시작점은 고베산노미야역이다. 고베는 1868년부터 항구를 개항해 서양과 교류가 활발했다. 건축을 비롯해 여러 분야에서 이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역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빨간 벽돌의 빌딩도 왠지 모르게 일본보다 다른 문화의 분위기가 난다. 게다가 역 근처는 상업적으로 잘 발달해 그 자체로 여행지가 되데, 특히 식당과 술집, 카페가 즐비하다.

역 근처 맛집들이 매력적인 이유는 야외 좌석과 소리 두 가지다. 식사하거나 술, 커피를 마실 때 배경음악처럼 기차 소리가 깔리니 왠지 모르게 더 낭만적이다. 또 역을 기점으로 기타노이진칸, 이쿠다 신사, 난킨마치(차이나타운) 등을 걸어서도 갈 수 있다. 물론 체력을 아끼려면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도 괜찮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고베의 속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서양과 일본이 공존하는 곳
고베에는 100년 넘는 목조 건물들이 많은데, 외관도 제법 이국적이다. 이를 활용한 공간들을 만나려면 언덕을 오르거나 고베관광버스(CITY LOOP & Port Loop)에 올라타면 된다.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는 스타벅스의 차지다. 1907년에 건축된 목조 2층 건물 주택인데, 버틴 게 용할 정도다.

1995년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피해를 받아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건물 소유권을 넘겨받은 고베시가 잘 해체하고, 보관해 생명을 연장했다. 이후 2001년 건물 운영권을 따낸 민간 사업자가 지금의 자리에 재건했고, 2009년 스타벅스가 됐다. 여행자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민관의 노력이 없었으면 멋진 쉼터 하나를 잃을 뻔했으니 말이다.


또 1915년에 지어진 드레웰 저택(The Former Drewell House)도 고베시가 구입해 1978년부터 대중에 공개했다. 기타노이진칸에는 이러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박물관과 식당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스타벅스와 저택에 가기 전에도 미국과 유럽 분위기의 가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치 파리에 온 것처럼 테라스 좌석에서 우아하게 식사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고, 모던한 가구를 파는 매장도 있다.

다음은 일본 차례. 일본 분위기를 느끼려면 신사가 제격이다. 고베를 대표하는 곳은 이쿠타 신사다. 고베(神戸)라는 이름은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칸베(神戸) 가문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칸베 가문이 이쿠타 신사의 신을 지켜왔다고. 이런 근본 있는 세계관은 괜히 솔깃하게 된다. 고베 중심에서 18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곳이고, 신사 뒤편에는 작은 연못과 고목이 있다. 게다가 곳곳에 벤치가 설치돼 있어 신사를 보면서 쉴 수도 있다.

월드 클래스 현수교와 일몰
많은 여행자가 고베산노미야, 모토마치역, 고베역을 중심으로 여행하고 고베를 떠난다. 마이코역 한 곳만 더 추가할 수 있도록 욕심을 내자. 분명 후회하지 않을 테니. 역에서 나오면 세토내해와 오사카만을 잇는 아카시 해협이 펼쳐진다. 몇 발자국만 걸으면 이윽고 세계에서 2번째로 긴 현수교, 아카시 해협 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두 개의 바다를 가로지르고, 고베와 아와지시를 이어주는 다리는 한 번에 담아내기도 힘들 정도로 웅장하다. 온전한 모습을 보려면 아주르 마이코(Azur Maiko) 해수욕장까지 걸어가야 한다. 바다를 곁에 두니 외롭진 않다.

또 고베의 색다른 모습이라 이것마저 여행이다. 참고로 가장 긴 현수교는 튀르키예의 1915 차나칼레교(2,023m)다. 1위랑 32m밖에 차이가 나질 않으니 시각적으로는 거의 비슷할 것 같다.

해변을 맞게 찾아오면 ‘BE KOBE’ 조형물이 보인다. 여행자를 반기는 이정표이자 인증샷 포인트다. 아주르 마이코는 아카시 대교와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최적의 지점으로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특히, 아카시 해협 대교 자체가 애니메이션 영화(스즈메의 문단속 등)와 드라마에서도 흔히 나오는 곳이라 웨딩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다.

맞은 편에 아와지섬이 있고, 바다와 모래, 대교가 어우러져 사진 찍을 맛이 난다. 우정 사진을 찍는 젊은 사람도 이따금 보이는데, 뉴진스의 버블검이 떠오를 정도로 감성적인 모습이다. 이러한 여유로움이 만족스럽다면 하루 정도 머물다 가도 괜찮겠다. 바다와 아카시 대교를 동시에 볼 수 있는 호텔(세트레 고베 마이코)도 있으니 말이다. 부산한 고베와 오사카 중심지에서 벗어나 색다른 일본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