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최고의 명당에 새 호텔이 들어섰다.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

神道 神社
신토, 신사
세상의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일본 사람들은 어렴풋하게나마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이 막연한 믿음의 뿌리는 ‘신토(Shinto, 神道)’에 있다. 신토는 애니미즘에 입각한 일본의 독자적인 토속 종교다. 애니미즘이란 생사와 관계없이 세상의 모든 요소에 생명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는 원시 신앙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과 같은 애니메이션이 원초적인 신토의 믿음을 시각화한 작품이다. 신토의 신(神)을 ‘카미(かみ)’라고 하는데, 일본 전역에 머무는 카미의 수는 자그마치 800만에 이른다. 카미는 자연과 조상, 더 나아가 사랑, 적금, 공부와 같이 지극히 일상적인 영역에 각기 스며들어 있다.

신토가 기독교나 불교처럼 공통의 교리로 정비된 신학은 아니다. 삶의 가치, 사유의 방식, 행동의 양식 등 일상에 맞닿은, 결국 일본 사람들의 세계관이 ‘신토’라 봐도 무방하겠다. 전통적인 문화 관습에 가까운, 순수한 사회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내 신토 신자의 수를 정확히 집계할 수 없다. 신토를 명확히 어떤 종교라고 정의할 수 없을 뿐더러, 신자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어렴풋이 신토를 의식하며, 수많은 신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전역에는 크고 작은 신사(神社, 신토의 종교시설)가 어림잡아 10만 개 이상 자리한다. 일본의 편의점 수를 대략 5~6만 개로 추정하는데, 개수만 따졌을 때 신사가 배로 많다. 그래서 일본 어디서나 ‘도리이(とりい)’와 ‘시메나와(しめ)’를 만날 수 있다. 도리이는 신사의 입구에 세우는 기둥 문인데 신사 내부(신성한 공간)와 외부(일상 세계)의 경계를 표하는 목적을 지닌다. 시메나와는 부정한 것을 막아 주는 역할, 그러니까 일종의 금줄이다. 보통 신사의 입구에 걸려 있고 짚을 왼쪽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에 ‘시데(紙垂)’를 매단다. 시데는 결계를 상징하고 실을 뜻하는 ‘사()’자 모양의 종이 장식이다.

정순한 공간을 삶과 밀접히 두고 모시며 부정적인 것을 차단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신토’이고, 그 마음의 안식처가 신사다. 그들의 순수한 믿음이 비빌 언덕인 것이다. 호텔 소개에 앞서 이토록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은, ‘반얀트리 히기사야마 교토’가 들어선 곳이 신토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東山 霊山
히가시야마, 료젠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
일본 최초의 반얀트리가 교토 히가시야마구에 새로이 들어섰다. 거대한 석조 도리이 아래, 녹음이 무성한 산자락과 도심 사이. 그 경계에 둥지를 틀었다.

교토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신사의 수는 400여 개에 달한다. 교토의 신사 대부분은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져 있는 언덕, ‘히가시야마구’에 몰려 있다. ‘히가시’는 동쪽(東)을, ‘야마’는 산(山)을 뜻하는데 이 지역을 두고 ‘료젠(山, 영적인 산)’이라 일컫는다. 신토에선 죽은 자의 영혼이 산으로 가서 정화된 후, 조상신이 되어 마을로 내려와 사람들을 보살펴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본의 산은 등산의 대상이기 이전에, 오랫동안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교토 히가시야마구, 특히 료젠 지역에는 일본 근대화에 관련된 이들이 묻힌 국립묘지가 조성돼 있고, 산자락을 따라 군데군데 크고 작은 공동묘지 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토의 시선에서 반얀트리가 위치한 료젠(영산)의 경계는 신이 드나드는 길목이라 여겨져, 일본 내 최고의 명당 중 명당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호텔의 북쪽으로는 ‘오타니조묘(大谷祖廟)’도 자리한다. 오타니조묘는 일본 불교 종파의 하나인 ‘정토진종’을 창시한 승려, ‘신란(親鸞)’을 모시는 묘다. 이 주변 역시 이름 모를 묘가 빼곡하게 자리하는데, 신란의 근처에 묻히는 것만으로도 극락왕생할 수 있다는 신도들의 믿음 때문이다. 청수사, 산넨자카, 니넨자카, 고다이지 등 교토를 대표하는 수많은 신사와 역사 유적들이 유독 히가시야마구에 몰려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좋은 곳엔 좋은 믿음이 모인다. 그 믿음의 중심에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가 있다.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가 완벽하게 새로운 호텔은 아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었던 ‘교토 료젠 호텔’을 리모델링 했기 때문이다. 외관 디자인은 구마 켄고가 참여했다. 구마 겐코는 콘크리트보다는 나무, 종이, 섬유 등 약한 소재를 사용하여 건축이 지역의 이야기에 동화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것을 보존하고자 하는 요소에 대해서는 따뜻한 관심을 기울였고, 바꾸고자 하는 것은 과감하게 들어냈다.

구마 겐코가 보존한 것은 대체로 이 공간을 과거부터 지켜 온 것들이다. 이를테면 호텔의 정문을 둘러싼 돌담과 호텔 뒤편에 있는 대나무숲. 호텔부지 내 자생하던 이끼를 돌담에 배양해 생명을 부여했고, 휑하게 방치되었던 뒷산 대나무 군락지에도 빽빽이 대나무를 채워 숲을 복원했다. 꺼져 가는 자연에 새 숨을 부여했다는 점에서, 이 또한 은은히 신토의 믿음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반얀트리를 통해 여행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지역의 이야기는 새로운 건축물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호텔 입구로 들어서는 천장에는 원목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격자 형태의 나무 구조물이 자리한다. 자연과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그의 철학을 담은 서까래다. 호텔 2층에 자리하는 료젠 레스토랑 앞쪽으로는 ‘노(能)’의 무대를 새롭게 선보였다.

노(能)는 ‘노가쿠(能)’라고 하는 일본 전통 가면극 무대인데, 주로 초현실 세계를 주제로 다루며 신을 달래기 위한 의식을 겸한다. 무려 650년 전부터 이어온 가면극이고, 2008년에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노 무대를 크게 구분하면 ‘혼부타이(本舞台)’라고 하는 본 무대와 ‘가가미노마(鏡の間)’라고 하는 거울방으로 나뉜다. 거울방은 연기자들이 대기하는 공간인데, 주연을 맡은 연기자는 본 무대로 향하기 전 거울 앞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거울의 방에서 본 무대로 향하는 통로 겸 다리를 ‘하시가카리(橋掛り)’라고 한다. 이 다리를 ‘현실 세계와 영계를 이어주는 길목’으로 여긴다. 료젠(영산)과 도심의 경계에 걸쳐 있는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의 지리적 특징을 노라는 무대를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추후 이 무대에서는 전통 노가쿠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 공연과 음악 이벤트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행객뿐만 아니라 영산에 머무는 수많은 카미들을 위한 축제의 장이다. 신토에서 카미와 인간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다. 인간은 카미를 숭경함으로써 신의 영위를 높여 주고, 그 대가로 카미는 인간을 지켜 주며 이루고자 하는 것을 복으로 선물한다.

객실은 하시모토 유키오가 설계했으며 총 52개로 구성했다. 모든 객실은 <풍자화전(風姿花)>의 유명 구절인 ‘비밀스러움 속의 꽃’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풍자화전은 지금의 노를 완성 시킨 장본인인 ‘제아미(世阿)’가 저술한 최초의 ‘노 이론서’다. 은은하지만 아름답고 신비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본의 미의식인 ‘유겐(幽玄)’과 일맥상통한다. 유겐은 표현하지 않아도, 혹은 말하지 않아도 감상의 여정에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미적 이념을 뜻한다. 사랑처럼 간지러운 것이 유겐이다.

모든 객실의 바닥은 은은한 골풀 냄새가 매력적인 다다미로 구성했다. 객실 내 걸음마다 보드라운 감촉이 뭉근히 포근하다. 각 욕실에는 편백나무 욕조가 마련되어 있고, 일부 객실에서는 히가시야마 천연 온천도 즐길 수도 있다. 물에 젖어 가는 편백 나무의 향기가 다정하다. 참고로 반얀트리 교토는 히가시야마 지역의 글로벌 브랜드 호텔 중 천연 온천을 보유한 유일한 곳이다. 이외에도 일본 전통 소재를 사용한 금박장식 등 일본다운 아름다움을 은은하게 방에 녹였다. 객실 타입은 크기에 따라 세레니티, 그랜드 세레니티, 웰빙 세레니티 등으로 나뉘고 방에서 천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온센 리트리트, 그랜드 온센 리트리트 등 선택지가 다양하다. 반얀트리 스파는 교토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독자적인 트리트먼트 서비스를 제공하며, 2층에 위치한 료젠 레스토랑 & 바에서는 신선한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일본식 가이세키 요리를 선보인다.

반얀트리 히가시야마의 공기는 관광객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보통의 교토와는 차원이 다르다. 북적이는 인파를 뒤로하고 교토의 동쪽 언덕을 오르면 거대한 석조 도리이를 마주하게 된다. 그 문 뒤에 또 다른 교토가 있다, 진중하며 영적이고 고요한. 한 해가 멀다 하고 신상 브랜드 호텔이 쏟아져 나오는 이 도시에서 반얀트리 히가시야마 교토의 등장을 ‘특별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건, 교토에서 가장 영적인 땅 위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Banyan Tree Higashiyama Ky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