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은 편해졌으나 조금씩 옛 모습을 잃어 가는 섬. 까마득한 그 옛날, 공룡이 걸어 다니던 흔적만은 선명히 남아 있는 섬. 사도를 다녀왔다.

백조호를 타고 섬으로 가던 시절
오래전, 여수항에서 낭도, 사도를 오가던 작은 여객선은 조타실과 객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선장과 승객들은 이웃인 양 정겨웠고 그것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덩달아 따뜻했다.
여객선의 이름은 백조호. 365일, 하루 두 차례 여수 앞바다를 누볐다. 그 때문에 섬 주민들은 아침에 시내로 나가 병원이나 은행에 들렀다가 큰 마트에 들러 장을 본 후, 오후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들은 구명함에 넣어 두었던 담요를 나란히 덮고 누워 이웃 섬의 안부를 묻고 또 소식을 전했다. 당시 백조호의 조타키를 잡았던 이해욱 선장 또한, 자상한 사람이었다. 초면의 여행자들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섬 이야기를 나눠 줬다. 돌이켜 보면 단순히 섬에 관한 정보가 아닌, 애정에서 우러나는 바람으로 기억된다.
한번은 사도를 여행하고 오던 내게 그가 말했다. “섬에 다리가 놓이면 세 가지가 달라지는데 그것이 뭔 줄 아십니까? 첫째, 도둑이 나타나고 둘째, 쓰레기가 생겨나며 셋째, 인심을 잃게 됩니다. 처음에는 땅값도 오르고 명절 때 자식들 오가기도 편해지니까 모두 쌍수를 들고 환영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섬 주민들 자신도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해요. 사도에는 모래가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름이 사도(沙島)잖아요. 그런데, 이젠 예전 같지 않아요. 방파제가 만들어진 후에 조류의 방향이 바뀌어 그렇습니다. 파도가 바다로 모래를 쓸고 가는 구조가 되었죠. 그래서 자연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7개의 작은 섬이 하나로
2020년 고흥과 여수 사이에 4개의 다리가 놓이면서 섬으로 가는 교통편에 일대 변혁이 있었다. 백조호가 주민을 실어 날랐던 조발도, 둔병도, 적금도 그리고 낭도까지도 차량으로 오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도는 여전히 바다를 건너가야 하는 섬이지만, 여행길은 사뭇 달라졌다. 여수항이 아닌 낭도를 이용하는 쉽고 간편한 방법이 생겨난 것이다. 두 섬 간의 거리는 500m에 불과하다. 낭도 산타바해안 언덕에서 바라보면 사도의 전역이 또렷이 내려다보일 정도로 가깝다.
사도는 해수면과 거의 일치할 정도로 납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면적 0.89km2의 작은 섬에 20여 가구가 민박과 밭농사, 수산물 채취 등의 생업으로 살아간다. 이 섬에는 산도 없다. 단 하나의 마을이 끝나는 부근에 작은 구릉이 하나 있을 뿐이다.
사도는 본섬을 중심으로 중도, 증도, 장사도, 추도 등을 포함해 총 7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섬은 일 년에 네다섯 번, 바닷길을 드러내고 하나로 연결된다. 특히 매년 정월 대보름과 음력 2월 영등사리 때에는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져 장관을 이룬다.

중생대 백악기의 흔적들
선착장에 내리면 놀랍게도 2개의 실물 티라노사우루스 조형물이 여행객을 반긴다. 첫 방문이라면 이게 뭔가 싶지만, 놀랍게도 사도는 공룡 발자국 화석이 남아 있는 섬이다. 게다가 해안지형 대부분이 7,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중성 화산암류와 퇴적암이 차지하고 있어 학술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사도 본섬은 둘레가 2km에 지나지 않지만 이어진 부속 섬들을 포함하면 그 길이는 6km로 늘어난다. 본섬과 간뎃섬이라 불리는 중도 사이는 다리로, 중도와 증도는 양면해수욕장의 모래톱으로 상시 이어져 있다. 빠르게 이어졌던 발걸음은 시루섬 증도에 들어서는 순간, 때때로 멈춰 서게 된다. 이곳에는 정성껏 들여다봐야 비로소 손뼉을 치게 되는 특이한 바위들이 숨어 있다. 거북선 제작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거북바위와 사람 옆 모습 형상의 얼굴 바위가 그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용암이 굳으면서 만들어진 길이 30m의 용미암은 그 암맥이 제주도 용두암까지 이어진단다. 물론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한편, 추도는 본섬과 750m 떨어져 있다. 전기 여객선이 기항하지 않기 때문에 탐방하려면 낚싯배나 낭도에서 운행 중인 유람선을 이용해야 한다. 추도에는 세계 최대 길이를 자랑하는 84m의 공룡 보행렬을 포함하여 오히려 사도보다도 두 배 이상 많은 1,700여 점의 공룡 발자국 화석이 분포돼 있다. 그리고 100년 이상이 되었다는 옛 돌담과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해안 퇴적층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머무는 자만이 누리는 풍경
일반적으로 사도는 아침에 들어와 오후 배로 나가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섬이다. 하지만, 어떤 섬이든 드러내지 않은 반쪽의 감성을 숨겨 놓고 있기 마련이다. 머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절묘한 풍경은 ‘사이’에도 존재한다. 낮과 밤, 사람과 자연, 설렘과 적막….

양면해변은 섬을 찾을 때마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던 캠핑 스폿이다. 이곳에 텐트를 칠 때는 물이 들어왔던 자국부터 잘 살펴야 한다. 밀물이 되면 사빈의 가운데 부분부터 잠기기 시작하고 삭, 망으로 다가갈수록 해수면이 높아져서 자칫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해변이 많이 변했다. 자갈도 많아지고 모래양도 많이 줄었다. 이해욱 선장의 예견이 현실이 되어 감을 실감한다. 2027년 상반기에는 낭도와 사도 사이에 인도교가 설치된다고 한다. 관광 명소를 만들어 보겠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야심 찬 계획이지만, 그에 따라 얼마나 많은 자연 손실이 생겨날지 사뭇 걱정이다. 여행은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데 말이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