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다버그는 호주 퀸즐랜드주 남동부에 자리한 도시로,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가 시작되는 최남단 관문이다. 이 거대한 산호초 지대는 번다버그에서 출발해 북쪽 케언즈까지 약 2,300km에 걸쳐 이어지며, 2,900여 개의 산호초와 600여 개의 섬, 300여 개의 산호 암초가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다. 그 규모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우주에서도 보이는 지구상의 유일한 천연 구조물로 알려져 있다. 이따금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백사장에서는 시즌마다 새끼 거북이의 부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번다버그의 매력은 자연의 장엄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천에 널린 사탕수수로 만드는 럼과 음료수도 빼놓을 수 없다. 호주의 국민 음료로 꼽히는 ‘번다버그 진저비어’와 달달한 풍미가 매력적인 ‘번다버그 럼’의 고향이 바로 이곳이다.
Tilt Train
브리즈번에서 번다버그까지, 틸트 트레인
번다버그는 브리즈번에서 약 380km 정도 떨어져 있다. 땅이 워낙 큰 호주에서 이 정도 거리는 옆 동네로 친단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는 약 3~4시간가량이 소요되는데, 아무래도 가장 편안한 방법은 역시 ‘틸트 트레인(Tilt Train)’을 선택하는 것이다.
틸트 트레인은 퀸즐랜드 철도청에서 운영하는 열차다. 브리즈번의 ‘로마 스트리트역(Roma Street Station)을 출발한 열차는 선샤인 코스트를 따라 북쪽으로 약 4시간 30분가량을 달린다. 최고 시속 160km로 달리는 틸트 트레인은 호주에서 가장 빠른 여객열차 중 하나로, 궤도 곡선 구간에서도 차체가 기울어지는 ‘틸트(Tilt)’ 기술 덕분에 흔들림이 적다.
Tinaberries
싱그러운 딸기, 티나베리스
번다버그의 외곽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초록빛 농장 사이로 유난히 핑크색 간판 하나가 눈에 띈다. 티나베리스는 직접 딸기를 수확하고, 그 딸기로 현장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체험형 가족 농장이다.
딸기 시즌은 매년 6월부터 10월 첫째 주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에는 방문객이 직접 딸기를 수확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된다. 물론 하이라이트는 즉석에서 만든 홈메이드 딸기 아이스크림. 맛은 기성품에 비해 달지 않고, 상큼한 딸기향 본연의 맛이 혀끝을 차갑게 감싼다.
Macadamias Australia
원조의 맛, 마카다미아 오스트레일리아
우리가 사랑하는 견과류, 마카다미아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0만년 전부터 호주 땅에서 뿌리내려 왔다. 이것을 산업화한 지는 대략 50년 정도. 현재 마카다미아 과수원 대부분은 호주의 동쪽에 몰려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생산 지역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퀸즐랜드의 ‘번다버그’다.
번다버그는 연평균 강수량이 약 1,000mm로 비교적 건조하지만, 늦봄부터 초가을(11~3월)에 집중적으로 비가 내린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선선한, 기온 차가 뚜렷한 이 지역의 기후는 마카다미아 재배에 이상적이다. 실제로 호주 전체 생산량의 약 57%가 이곳에서 나온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바로 ‘마카다미아 오스트레일리아’다. 1958년부터 가족끼리 땅을 경작하며 다양한 작물을 재배했고, 2004년부터 마카다미아를 심어 주력으로 내세웠다. 현재는 번다버그를 대표하는 로컬 브랜드로 자리 잡아, 견과에 다양한 맛을 입힌 제품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맛은 ‘레몬 머틀 마카다미아’. 은은한 시트러스 향과 고소한 마카다미아의 조합이, 번다버그의 햇살과 공기를 그대로 담은 듯하다.
Monsoon Aquatics Coral Farm
바다 위 산호, 몬순 아쿠아틱스 코랄 팜
바다에 몸을 적시지 않고도 산호를 만날 수 있는 곳. 세계 최대의 산호초 군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의 생태계를 육지에 옮겨 놓은 ‘몬순 아쿠아틱스 코랄 팜’은 번다버그 외곽 해안에 자리한 산호 농장이다. 이곳은 단순한 체험 공간이 아니라, 호주 전역의 산호와 해양 생물을 연구하고 번식시키는 전문 양식장이자 연구소다. 호주 해안 곳곳에서 채취한 7만여 마리의 산호와 200여 종의 해양 생물이 이곳에서 자라고 있다.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는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 탓에 1995년 이후 산호초 면적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특히 산호의 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데, 몬순 아쿠아틱스 코랄 팜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산호 번식과 산란, 정착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야생에서는 산호 산란이 보통 1년에 1~2회에 불과하지만, 이곳의 일부 산호는 1년에 4회 이상 산란한다고 한다.
방문객을 위한 팜 투어도 운영된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산호 먹이 주기 체험과 함께 다양한 해양 생물의 생태를 배울 수 있다. 농장 내부의 산호는 블루라이트에 비춰 다채로운 네온빛을 발한다. 제공되는 노란색 필터를 통해 바라보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산호의 진짜 색을 마주하게 된다.
Splitters Farm
동물을 위한 집, 스플리터스 팜
번다버그의 목가적인 풍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팜스테이가 정답이다. 번다버그의 ‘스플리터스 팜’은 단순한 체험장을 넘어, 돌봄과 공존의 의미를 동시에 품은 농장이다.
주인 애슐리(Ashley)와 칼리 클라크(Carly Clark)는 번다버그 외곽의 160에이커 규모 매립지를 사들여 울타리를 세우고, 땅을 가꿨다. 그리곤 이곳을 가뭄 피해나 방치에서 구조된 동물들의 보금자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사료비와 수의사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2019년 말 농장 투어를 열었고, 2020년부터는 텐트와 캠핑장 등 다양한 숙박 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말을 비롯해 양, 염소, 소, 돼지, 알파카, 닭, 공작새, 심지어 낙타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의 동물들과 가까이서 교감할 수 있다.
동물 먹이 주기, 농장 일 배우기, 자연 산책 등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해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상처 입은 동물들을 보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 아이에게는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 어른에게는 느리게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다.
Bundaberg Barrel
번다버그 진저비어, 번다버그 배럴
번다버그를 여행하며 피할 수 없는 한 잔이 있다. 이름부터 지역을 품은 음료, 바로 ‘번다버그 진저비어(Bundaberg Ginger Beer)’다. 올해 국내 론칭 10주년을 맞은 이 음료는 호주에서도 도시 이름보다 더 널리 알려진 국민 탄산음료다. 이름에 ‘비어(Beer)’가 붙어 술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알코올이 전혀 없는 생강맛 탄산음료다. 이 때문에 진저에일과 혼동되기도 하지만, 두 음료는 태생부터 다르다.
진저에일이 생강 향을 첨가한 음료에 탄산수를 더한 것이라면, 번다버그 진저비어는 생강과 사탕수수를 양조해 만든다. 퀸즐랜드 번다버그에서 재배된 신선한 생강을 건조해 그대로 갈고, 여기에 사탕수수와 물을 섞는다. 이후 이스트를 넣어 3일 이상 자연 발효시키면, 양조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깊은 풍미와 미세한 탄산이 완성된다. 발효가 끝난 뒤에는 미량의 알코올을 완전히 제거하고, 다시 숙성 과정을 거친다. 모든 과정 중 인공색소나 인공향미를 전혀 사용하지 않기에, 호주에서는 임산부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건강 음료로 통하기도 한다.
1960년대 가족경영 브루어리로 출발한 번다버그는 이제 호주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번다버그 동부에 위치한 ‘번다버그 배럴(Bundaberg Barrel)’은 그 역사와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거의 모든 종류의 음료를 시음해 볼 수 있고, 양조 과정을 시각화한 전시를 통해 한 병의 진저비어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번다버그를 찾은 여행자라면 이곳에서 자신만의 라벨을 붙인 기념적인 한 병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도시의 이름을 잔에 담는 가장 ‘번다버그’ 다운 여행 방법이다.
Bundaberg Rum Distillery
한 모금의 매력, 번다버그 럼 증류소
번다버그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 바로 ‘번다버그 럼’이다. 그 역사의 시작은 18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탕 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사탕수수 정제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겨나는 시럽 ‘당밀(Molasses)’은 처리하기도, 운반하기도 어려운 골칫거리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주민 7명이 뜻을 모아 세운 것이 바로 오늘날 번다버그 럼 증류소의 시초다.
130년이 지난 지금, 번다버그 럼은 단순한 주류 브랜드를 넘어 지역의 상징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공장이 전소되는 위기에도 지역 사회의 자발적 모금으로 단 2년 만에 복구를 마쳤다는 일화는, 이곳이 ‘술 공장’을 넘어선 지역 공동체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현재 번다버그 럼 증류소는 단순히 생산 시설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역의 헤리티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명소로 변모했다.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해 사탕수수가 당밀로, 당밀이 럼으로 바뀌는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 증류 탱크의 열기, 숙성 창고에 가득한 오크 배럴의 향기, 그리고 시음장에서 맛보는 묵직한 럼의 여운까지. 단 한 모금의 럼으로, 번다버그가 깊이 녹아든다.
*이번 퀸즐랜드 원정대는 <트래비> 창간 20주년을 맞이해 진행된 이벤트의 결과물입니다. 10인의 퀸즐랜드 원정대가 <트래비>와 함께 캐논 카메라로 담은 퀸즐랜드를 소개합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호주 퀸즐랜드주 관광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