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한 발 앞선 기술을 스마트폰에 담는 것이 베가의 경쟁력입니다”
삼성, 애플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지만, 올해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팬택의 고위 관계자가 던진 한마디다. 글로벌 기업들의 거센 공세에 ‘생존’이 최대 이슈가 된 우리나라 시장이지만, 팬택은 모든 역량을 한데 모아 5년간의 워크아웃 기간을 헤쳐 나왔던 것처럼 향후 1~2년 힘든 시장을 극복한다는 전략이다.
피처폰 시절부터 스카이(SKY) 브랜드를 사용했던 팬택은 스마트폰 출시 후 베가(VEGA)라는 이름을 새롭게 채용했다. 그러나 한 회사가 두 브랜드를 모두 운영하기란 쉽지 않은 법. 오는 14일, 팬택은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하나로 결집시키기 위해 ‘베가’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홈페이지 주소도 기존 아이스카이(isky)에서 아이베가(ivega)로 바꾼다.
그는 “약 17년간 이어오던 스카이 브랜드지만, 스마트폰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베가를 핵심 브랜드로 키우기로 결정지었다”며 “그러나 이 같은 결정이 스카이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것은 아니며, 기존 도메인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사적 차원에서 ‘집중’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베가’ 브랜드 집중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 스카이 슬라이드폰 출시 당시의 광고 이미지
사실 스카이 브랜드의 역사는 지난 1995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텔레콤은 자사 브랜드의 휴대폰 출시를 위해 SK텔레텍(이하 SKTT)을 설립하고 스카이 브랜드 단말기를 생산하기 시작한다. 첫 제품은 1998년에 나온 IM-700. 타 제조사와 다른 스카이 만의 화이트 컬러와 최초의 ‘슬라이드 폰’을 출시하는 등 스카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마니아 층을 형성시켰다. 당시 스카이는 제품 수가 많지 않았고, SK텔레콤을 통해서만 제품 출시가 가능했었다. 덕분에 단말기 희소 가치가 높았고, SKTT는 ‘고가’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It's different’ 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런데 SKTT의 ‘유통망’은 SK텔레콤으로 한정된 것이 발목을 잡았다.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이 시장 지배적 사업자라는 점을 들어, 스카이 제품의 타 이통사 출시를 막았다. 비록 SKTT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회사를 통해서만 단말기를 팔았지만, 2003년 한국능률협회 주최 소비자디자인 선호도 이동통신 단말기 부문에서 1위에 선정되는 등 브랜드 가치가 상당했다. 그러던 스카이는 2005년 일대 사건을 맞는다. 바로 박병엽 팬택 대표이사(현 부회장)가 SKTT 인수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팬택 시대를 맞은 스카이는 이후 KT와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고객들에게도 본격 판매가 되며 대중적 브랜드로 거듭났다.
스카이의 유통망 다양화 후 브랜드에 대한 고객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는 “특화된 고객층을 위한 제품이라는 이미지가 퇴색됐다”는 이들이 있는 반면, “SKT가 아니라도 스카이를 이용할 수 있게 돼 환영한다”는 반응이 그것이다. 스카이 출범 초기, 고가의 단말기로 탄탄한 마니아 층을 형성시켰던 것을 감안하면 기존 고객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컸지만, 타 이통사 고객들은 크게 환영했다.
그런데 팬택은 2006년, 세계 휴대폰 시장이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로 재편된 후 경영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급기야 2007년 12월, 자발적 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키로 해 상장이 폐지됐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당시 팬택은 큐리텔과 스카이로 양분된 브랜드를 스카이 하나로 통합하고 생존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SKTT 시절부터 스카이와 함께 한 팬택 관계자는 “출시하는 제품이 모두 히트폰 자리를 차지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제품 개발에 임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워크아웃 후 팬택은 현재까지 20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고, 국내 스마트폰 2위 업체가 되는 등 경영 지표가 크게 향상됐다.
그런데 요즘 국내 시장 상황이 급변했다. 삼성과 애플이 박빙을 이루는 가운데, 팬택, LG를 비롯 글로벌 제조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생존 전략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팬택 한 관계자는 “메이저급 업체들이 경쟁하는 틈바구니에서 경쟁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팬택은 갤럭시나 애플보다 한 발 앞선 기술을 제품에 녹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10위권 업체라고 해서 제품마저 그 정도 수준에 머문다면 회사의 성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팬택의 고민은 신제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참고로 팬택은 최근 DDR2 램 및 퀄컴 1.5GHz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업계 최초로 적용한 스마트폰을 출시, 타 제조사들을 앞서는 등 성과를 냈다.
또한 그는 “베가는 팬택이 가진 모든 기술력을 총 동원한 제품”이라며 “회사의 역량을 집중시킨 만큼 휴대폰 시장에서 '베가=한발 앞서가는 제품'의 대명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팬택이 베가 브랜드로 힘을 결집 시킴에 따라, 오는 14일부터 스카이 브랜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전망이다.
이진 기자 miffy@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