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사운드는 돌비의 디지털 서라운드나 소니가 개발한 SDDS, 그리고 미국의 DTS를 사용해 믹싱된다. 현재로서는 돌비 래버러토리스가 세 회사의 영화관용 사운드 기술 중 가장 앞선 사운드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DTS는 지난 2009년 영화관용 사운드 부문을 영국의 데이터샛(DATASAT) 엔터테인먼트에 매각하며 영화관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과연 영화관 사운드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보자.
유성영화의 등장-토키 영화 시대
영화관의 음향 기술은 그 역사가 채 100년이 되지 않는다. 무성영화 시절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이 이뤄진 시기는 1921년으로, 축음기와 유사한 원리로 디스크에 사운드를 녹음해 필름과 동시에 상영하는 형태로 유성영화화 됐다. 이 당시 사운드를 포토키네마(Photokinema)라 불렀으며, 대표적으로 <드림 스트리트(Dream Street)>란 작품이 유성 영화로 만들어졌다.
포토키네마 이후에는 사운드 트랙을 사용한 최초의 음향기법 무비톤(Movietone)이 등장했다. 무비톤은 필름에 직접 사운드를 녹음하는 방식이며, 주로 장편영화나 뉴스영화에 사용됐다. 무비톤 사운드를 사용한 대표적인 영화로는 <영광의 대가(What Price Glory?)>가 꼽힌다.
▲ 본격적으로 유성영화 시대의 시작을 알린 영화 <재즈싱어>(사진출처-http://www.screeningthepast.com)
무비톤을 지나 축음기에 사운드를 녹음한 마지막 디스크식 발성영화 기술, 비타폰(Vitaphone)이 등장했다. 최초의 유성영화로 유명한 <재즈싱어(The Jazz Singer)>가 비타폰 방식으로 녹음됐고 <재즈싱어>의 대중적 성공에 의해 무성영화의 시대가 끝나고 본격적인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됐다.
모노 사운드 시대
토키 시대 이후 194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영화가 모노(Mono, 단 한 개의 음원만 수록된 방식)로 사운드를 녹음했다. 음질은 전화소리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었고, 여러 영화 스튜디오들이 더 좋은 사운드 기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나 대부분 오래 가지 못했다.
1940년대에는 클래식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디즈니의 <판타지아(1940년)>란 작품이 사운드의 발전을 이끌었다. 디즈니는 자사의 유명 캐릭터들과 클래식 음악을 조합한 뮤지컬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를 위해 판타사운드(Fantasound)라는 사운드 기술을 개발했지만 너무 높은 설치비용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여러 영화관에 보급시키지는 못했다. 판타사운드는 결국 미국 내 14개의 영화관에서만 사용됐다.
1950년대에는 영화관 화면비가 1.37:1에서 1.85:1 비율을 갖는 비스타비전(Vistavision)과 2.35:1 비율을 갖는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로 와이드해졌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관 화면 비율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가 정한 1.37:1이 표준으로 사용됐다. 그러나 TV의 등장으로 인해 관람객이 급격히 감소하게 되자 미국 영화업계는 가정용 TV 규격이 된 4:3(1.33:1) 비율보다 넓은 화면으로 영화관만의 영상을 보여줄 수 있는 화면비율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 압도적인 스케일과 2.35:1의 와이드스크린,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석권한 대작 <벤허>
특히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는 <성의(The Robe)>, <벤허(Ben-hur)>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에 사용됐는데, 그 넓은 화면에 걸맞게 마그네틱 테이프에 사운드를 녹음하는 방식을 통해 4채널 사운드를 구현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에 음역대에 저주파 진동을 추가해 보다 실감 나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센서라운드(Sensurround) 기술도 등장했으나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스테레오 사운드 시대
1970년대는 스테레오 사운드의 전성시대였다. 특히 1977년에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스타워즈>는 필름 트랙의 공간이 부족해 4채널로 음성 신호를 인코딩한 후, 2채널로 변환해 필름에 녹음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4채널로 디코딩해 스테레오 사운드를 재생하는 돌비 스테레오 기술이 현장감을 대폭 끌어올렸다. 이후 돌비는 돌비 잡음제거 기술을 70mm 마그네틱 사운드 트랙에 적용해 최초의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는 ‘돌비 스테레오 70mm’를 개발했다. 돌비 스테레오 70mm가 적용된 대표작은 1979년작 <지옥의 묵시록>이다.
1983년에는 루카스 필름에 의해 개발된 THX 인증제도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THX는 새로운 사운드 기술은 아니지만 <스타워즈> 시리즈를 감독한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 시리즈를 최상의 영상과 사운드를 갖춘 영화관에서 개봉하기 위해 만든 인증제도다. 이 THX 인증제도는 1983년에 개봉한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 처음 적용됐으며, THX 인증을 받은 상영관은 감독이 의도한 영상과 사운드를 100% 구현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돼 <스타워즈>를 상영하는 영화관들마다 앞다퉈 THX 인증을 받으려 했다.
▲ 루카스 필름이 <스타워즈>의 화질과 음질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상영관에 부여한 퀄리티 인증 마크 'THX' 로고(사진출처-THX 홈페이지)
THX 인증은 영화관에서 주어진 규격에 따라 음향기기와 영사기를 설치한 뒤, THX 본사에 로열티를 지불하면 본사의 전문가가 영화관을 방문, 재생되는 화질과 음향효과가 THX 기준에 도달했을 경우 THX 인증서를 부여한다. THX는 <스타워즈>보다 앞서 개봉된 조지 루카스 감독의 SF 영화
멀티채널 사운드 시대
1990년대에 들어서는 독립된 디지털 5채널과 저음만을 재생하는 0.1채널이 더해진, 5.1채널 디지털 서라운드 시대가 시작됐다. 흔히 홈씨어터에서 말하는 5.1채널은 전방 중앙의 프런트 스피커, 전방 좌우에서 주요 사운드를 재생하는 레프트/라이트 스피커, 그리고 후방 좌우에서 서라운드 효과를 증가시켜 주는 서라운드 레프트, 서라운드 라이트 스피커와 서브우퍼로 구성된다. 영화관도 기본적으로 같은 5.1채널로 설치되지만 각각의 채널 당 스피커 수가 더 많을 뿐이다. 최초의 돌비 디지털 5.1채널 영화는 1991년에 개봉한 <배트맨2>다.
▲ 돌비 디지털의 초창기 로고.
1993년에는 그동안 독보적이었던 돌비의 라이벌 DTS가 등장했다. 본래 DTS는 ‘Digital Theater Systems’의 약자로, 영화관용 서라운드 사운드로 개발됐다. 돌비 디지털이 영화 필름에 사운드 트랙을 녹음해 재생하던 것과 달리, DTS는 별도의 CD에 디지털 서라운드 사운드를 담아 동시에 재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 당시 국내 영화는 영진위의 검열을 거치면서 일부 장면이 삭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이 때 영상과 사운드의 싱크가 어긋난 채 상영되는 해프닝도 종종 있었다.
▲ 4개의 오디오 포맷 정보가 삽입된 35mm 필름의 확대 이미지. 왼쪽부터 SDDS, 돌비 디지털, 아날로그 옵티컬 음향, DTS 음성의 타임 코드가 새겨져 있다.
별도의 CD에 사운드만을 수록한 탓에 DTS 사운드의 용량이 돌비 디지털보다 컸고, 그로 인해 저음의 밀도감과 다이내믹 레인지 등에서 한 수 위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1993년 자신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처음으로 DTS로 믹싱해 개봉했었다.
DTS의 등장과 함께 소니도 1993년에 전면 5채널과 측면 서라운드 2채널, 그리고 저음 1채널을 통해 8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를 구현하는 SDDS(Sony Dynamic Digital Sound) 기술을 공개했다. 하지만 8채널을 모두 사용한 영화는 실제로 그리 많지 않았다는 후문. 대표적인 SDDS 믹싱 영화로는 소니픽처스의 흥행작 <라스트 액션 히어로>이다.
▲ 돌비 디지털의 라이벌로 부상했던 DTS의 초기 로고
돌비 래버로토리스와 DTS가 영화관 사운드의 라이벌로 대결을 벌이면서 홈씨어터 시장 역시 그 둘의 2라운드 전쟁터가 됐다. 다만 돌비 디지털은 DVD-비디오 규격의 공식 사운드 포맷이 돼 모든 DVD 영화에 기본 채택됐고, DTS는 옵션으로 정해져 DTS 사운드가 수록된 DVD와 그렇지 않은 DVD로 나눠졌다. 이후 돌비 디지털 EX와 DTS-ES 등 6.1채널, 그리고 돌비 트루 HD와 DTS-HD 마스터 오디오 등 7.1 채널 고음질 서라운드 사운드 포맷으로 발전해왔고, DTS는 2009년 DTS 디지털 시네마를 데이터샛에 매각하며 영화관 사운드 사업에서 철수했다.
▲ DTS 디지털 시네마 사업부를 인수한 데이터샛(사진출처-데이터샛 홈페이지)
돌비 래버로토리스는 2010년 영화관 후면에 2개의 서라운드 채널을 추가한 돌비 서라운드 7.1을 선보였다. 돌비 서라운드 7.1로 믹싱돼 개봉된 영화로는 <토이스토리 3>가 대표적이다.
높이와 입체감이 추가된 오늘날의 서라운드 사운드
아직 SDDS와 데이터샛의 사운드로 믹싱된 영화들이 많지만 그보다 더 수준 높은 사운드로 믹싱된 새로운 기술들이 점차 영화관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돌비 래버러토리스는 머리 위쪽에 스피커를 두고 전후좌우상하의 입체감 있는 사운드를 제공하는 새로운 서라운드 기술이다. <반지의 제왕>의 프리퀼 격인 삼부작 영화 <호빗>과 최근 개봉한 <그래비티> 등이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믹싱돼 머리 위로 지나가는 소리의 궤적을 정확히 그려줘 현장감을 한층 배가시켜 줬다.
돌비 애트모스 기술이 상용화된 지 1년가량 지난 현재 애트모스 사운드로 믹싱된 영화가 85편을 넘어섰고 애트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전용 상영관 수도 전 세계에 400곳이 넘는다. 우리나라에도 코엑스 메가박스 M2관을 비롯한 최고급 영화관 9곳이 돌비 애트모스 음향을 지원하고 있어 최고의 시청환경에서 영화를 감상하기 원하는 마니아들의 발길이 애트모스 상영관으로 모여들고 있다.
▲ 놀라운 사운드 효과로 화제가 됐던 영화 <그래비티>는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로 믹싱됐다.(사진출처-돌비 홈페이지)
돌비 애트모스 외에 또 다른 라이벌 바코(Barco)의 사운드도 주목할 만하다. 벨기에의 디지털 시네마 기업 바코(Barco)는 기존 5.1채널 위에 2개의 층(Layer)을 두는 방식으로 소리의 높이를 3단계로 늘렸다. 5.1채널 위로 하이트 층(Height Layer)이, 그리고 그 위에는 오버헤드 층(Overhead Layer)이 한층 자연스러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이러한 사운드의 업그레이드가 돌비 애트모스보다 저렴해 새로운 3D 사운드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코의 새 사운드 기술은 오로(Auro) 11.1이며, 오로 11.1로 믹싱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레드 테일스(2012년)>이 있다.
▲ 바코 오로 11.1 사운드의 구현 원리
▲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에 하이트/오버헤드 서라운드를 추가하 바코 오로 11.1채널 사운드(사진출처-바코)
영화관에서 사운드가 차지하는 비중 갈수록 커져
영화관의 스크린이 커지고 더 빠른 프레임 변환과 더 선명한 해상도 같은 화질 변화들과 달리, 아직까지 사람들은 사운드의 변화에 둔감한 편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운드도 해마다 그 성능이 업그레이드되고 있으며, 사운드가 주는 재미와 감동의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최신 서라운드 사운드가 도입될 때마다 영화관람료의 인상이 걱정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현실감 있고 놀랄 만큼 정교한 사운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기대되기도 할 것이다.
이상훈 기자 hifidelity@i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