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잇 김준혁] 미국차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커다란 차체에 대배기량 엔진을 갖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이 점이 미국차의 가장 큰 특징으로 여겨지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대배기량 엔진으로는 날로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쉽지 않게 됐고, 고연비를 요구하는 시장의 반응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이렇게 까다로워지는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미국 자동차 업체들이 엔진 배기량을 줄여나가는 엔진 다운사이징을 적극 실천하고 있다. 그 중 포드는 ‘에코부스트’라는 이름의 직분사 터보 기술을 통해 미국 자동차 업체 중 엔진 다운사이징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해오고 있다.
▲ 포드가 자랑하는 에코부스트 기술이 적용된 포드 토러스
덕분에 포드는 과거와 비교해 기존 엔진에서 최소 2개 이상의 실린더와 1000cc 이상의 배기량을 줄일 수 있게 됐고, 예전 미국차에서는 상상할 수 없던 소배기량 엔진을 다양한 차량에 장착할 수 있게 됐다. 포드를 대표하는 대형 세단 ‘토러스’는 바로 이 에코부스트 기술이 절정에 다다른 모델이다.
토러스에는 현재 총 3가지 엔진이 탑재되고 있다. 그 중 에코부스트 기술이 들어간 엔진은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과 V6 3.5리터 엔진 두 가지이며, 나머지 하나는 자연흡기 방식의 V6 3.5리터 엔진으로 구성된다. 이 중 직렬 4기통 에코부스트 엔진이 탑재된 토러스는 기존 자연흡기 방식의 V6 3.5리터 엔진 못지않은 출력을 발휘하면서도 보다 높은 연비를 보여줘 엔진 다운사이징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엔진 다운사이징의 대표주자인 포드 ‘토러스 2.0 에코부스트’ 리미티드 버전을 시승해봤다.
▲ 사진으로만 봐서는 토러스가 얼마만큼 큰 지 쉽게 알 수 없을 정도로 비례감이 훌륭하다.
토러스의 외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크다는 것이다. 차체 비율이 잘 잡혀 있어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크다는 사실을 쉽게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토러스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길이만 5155mm에 달해 5160mm의 현대 에쿠스와 엇비슷한 크기를 보여주며, 폭은 에쿠스보다 35mm 넓은 1935mm에 달한다. 높이 또한 만만치 않은 1545mm의 수치를 보여준다. 이렇듯 토러스는 크기만을 놓고 봤을 때 전형적인 대형 럭셔리 세단의 모습을 자랑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디자인에서는 대형 세단이 아닌 날렵한 스포츠 세단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을 중심으로 당당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토러스의 전면 디자인
우선 전면에서는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토러스의 커다란 차체와 만나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전면부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라디에이터 그릴은 헤드램프, 범퍼의 공기흡입구 등과 유기적인 선으로 연결돼 뛰어난 비례감을 선사하는데, 덕분에 토러스의 큰 차체가 생각보다 커 보이지 않은 착시 효과를 가져다 준다. 헤드램프는 날렵한 디자인으로 상당히 작게 디자인됐다. LED 기술이나 화려한 디자인이 적용된 것은 아니지만 이 점이 오히려 토러스만의 스포티함을 배가시켜주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거대한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에 크롬이 적용되지 않은 점은 반가운 일이다.
토러스의 전면부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은 과거 미국차의 상징과도 같았던 과도한 크롬 장식이 자제됐다는 점이다. 이전 같으면 라디에이터 그릴 대부분이 번쩍이는 크롬으로 도배가 됐겠지만,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모델답게 토러스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바디 컬러로 통일된 3개의 가로바가 적용됐을 뿐이다.
▲ 측면 디자인 역시 뛰어난 비례를 갖고 있지만, 차체가 큰 만큼 19인치 휠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측면은 전면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비율이 적용돼 차체가 커 보이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 일단 전륜구동 방식을 채용하고 있음에도 프론트 오버행이 길지 않아 역동성이 돋보이며, 큰 차체를 바탕으로 한 넉넉한 휠베이스, 좁은 그린하우스가 조합돼 마치 포드의 중형 세단 퓨전과 같은 날렵함마저 느낄 수도 있다. 여기에 굵직한 캐릭터 라인과 프론트 펜더 뒤에 위치한 조그마한 에어벤트도 토러스의 스포티함을 더해준다. 휠은 시승차의 경우 19인치 프리미엄 페인티드 휠이 적용됐는데, 차체 크기가 워낙 크다 보니 휠의 크기가 두드러지지 않고 있다.
▲ 후면의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 테일램프의 디테일한 디자인과 범퍼 덕분에 만회되고 있다.
토러스의 후면 디자인 역시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인 비례감이 돋보인다. 직사각형 형태의 테일램프는 디테일에 신경을 써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후면 디자인을 조금이나마 화려하게 만들어준다. 그밖에 두툼한 리어 범퍼는 무광 플라스틱 언더 커버와 듀얼 머플러로 처리해 스포티함을 배가시키고 있다.
▲ 트렁크 공간만큼은 그 어떤 세단에도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토러스
큰 차체 크기와 전륜구동 방식을 사용하는 토러스는 남다른 트렁크 공간을 자랑하고 있다. 트렁크 공간만 570리터에 달하고 있으며, 트렁크 게이트도 매우 크게 열러 커다란 짐도 쉽게 적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마이포드 싱크를 중심으로 펼쳐진 토러스의 실내 디자인
▲ 마이포드 싱크는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한글을 지원하진 않는다.
토러스의 실내는 포드가 자랑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마이포드 싱크 시스템을 바탕으로 디자인이 펼쳐지고 있다. 센터페시아 상단에 위치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에는 내비게이션, 공조장치, 차량 설정, 엔터테인먼트, 휴대폰 연결 등의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싱크 시스템은 정보 제공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구성을 보여주지만, 한글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고 있다. 디스플레이 아래로는 선명한 SONY 로고가 새겨진 오디오 전용 버튼과 공조장치 이 준비된다. 센터페시아의 모든 버튼은 최근 미국 자동차들의 특징이기도 한 정전식 터치 방식이 적용돼 있다.
▲ 정전식 터치 방식의 센터페시아 버튼은 확실한 조작감을 자랑한다.
▲ 계기판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우측 디스플레이의 정보제공량은 부족하다.
계기판은 센터페시아의 첨단 디지털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계기판 중앙의 속도계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타입이지만 좌우의 다기능 디스플레이는 화려한 그래픽으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참고로 계기판 좌측의 디스플레이는 속도계와 연비, 차량 설정 등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우측 디스플레이는 오디오나 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 정보를 보여준다. 다만, 엔터테인먼트 디스플레이의 경우 넓은 면적이 무색할 정도로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한정돼 있어 의아함을 남긴다.
▲ 스티어링 휠의 버트를 이용해 마이포드 싱크를 조작할 수 있다.
마이포드 싱크가 적용된 센터페시아와 디지털 계기판은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그밖에 대시보드 디자인은 다소 무난한 편이다.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는 T자형 대시보드는 넓은 전방 시야를 제공하지만, 다소 저렴해 보이는 우드패널과 플라스틱 소재로 인해 고급스러움을 느끼기는 힘들다.
▲ 앞, 뒷좌석 모두 공간적인 부족함을 느끼기 힘들다.
대신 공간과 편의장비 면에서는 아쉬움을 느낄 수 없다. 특히 2867mm에 달하는 긴 휠베이스와 높은 차고 덕분에 토러스의 실내는 광활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는 앞, 뒷좌석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여기에 앞좌석에는 열선 기능뿐만 아니라 통풍 기능도 제공돼 만족감이 높다. 운전석의 경우에는 마사지 기능도 포함돼 있어 장시간 운전 시 피로도를 줄일 수도 있다. 대신 뒷좌석에는 별다른 편의 기능이 적용되지 않고 넓은 공간만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에서 토러스가 쇼퍼드리븐이 아닌 오너드리븐을 지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2.0 에코부스트 엔진이 적용된 엔진룸은 공간이 텅텅 비어있다.
토러스에는 앞서 언급했듯이 포드의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이 가장 잘 반영된 2.0리터 에코부스트 엔진이 적용돼 있다. 5m가 넘는 차체와 1890kg의 무게를 갖고 있는 자동차에 2.0리터 엔진을 적용한다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 덕분에 큰 차체에 큰 엔진만을 적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고, 어느새 직렬 4기통 2.0리터 엔진이 V6 3.5리터 엔진을 대체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토러스 2.0에코부스트의 엔진은 243마력의 최고출력과 373.kg.m의 최대토크를 갖고 있어 토러스의 또 다른 엔진인 V6 3.5리터 엔진의 292마력, 35.1kg.m의 토크와 큰 차이가 없는 수치를 보여준다. 특히 2.0 에코부스트 엔진은 직분사 터보 기술의 도움으로 최고 마력과 토크가 발생하는 시점이 V6 자연흡기 엔진보다 낮게 설정돼 있어 실제 주행에서 보다 손쉽게 토러스의 운동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
▲ 토러스 2.0 에코부스트의 초반 가속력은 엔진 배기량의 한계가 느껴지는 편이다.
그렇다면 토러스 2.0 에코부스트의 실제 주행 감각은 어떨까. 일단 초반 가속에서는 직분사 터보 기술이 적용된 것과는 무관하게 배기량의 한계가 다소 느껴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에코부스트 엔진의 최대토크가 발생하는 시점이 최신 터보 엔진처럼 공회전 직후가 아닌 3000rpm 전후로 설정돼 있어, 엔진이 3000rpm까지 회전하기 전까지는 생각만큼 펀치력 있는 가속력을 느끼기 힘들다.
▲ 가속이 시작된 뒤로는 직분사 터보 엔진의 진가를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3000rpm을 지나 최고 마력이 발생하는 5500rpm까지 다다르게 되면 비로소 에코부스트 엔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별다른 엔진 사운드 없이 조용하고 매끄럽게 회전하는 엔진은 부드러운 변속감각을 자랑하는 6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꾸준하게 동력을 전달하는데, 그 과정에서 엔진의 힘이 부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다. 대신 대배기량 엔진만큼의 폭발력도 느낄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차체를 160km/h의 속도까지는 큰 무리없이 올려놓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 달릴수록 자동차와 노면이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토러스의 고속 안전성은 뛰어나다.
이 때의 주행감각은 묵직함 그 자체다. 고속으로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과 하나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고속안정성이 뛰어나고, 노면의 작은 충격 따위는 서스펜션이 알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차체와 운전자에게 불안함이 좀처럼 전해지지 않는다.
▲ 승차감 중심의 타이어와 부드러운 서스펜션 덕분에 토러스는 뛰어난 승차감을 제공한다.
고속 주행에서 노면의 충격을 적절히 걸러내는 토러스의 서스펜션은 저속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과거 미국차처럼 출렁이는 느낌은 아니고, 단단함 속에서 적당한 부드러움을 제공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부드러움의 비율은 6 정도이고, 단단함의 비율은 4 정도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런 설정 덕분에 토러스를 장시간 운전해도 피곤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고, 이 부분만큼은 독일산 대형 세단과 견줘도 손색없는 토러스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 큰 차체와 높은 무게중심,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인해 코너링 퍼포먼스가 뛰어난 편은 아니다.
대신 코너링 성능에서는 다소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세단으로는 다소 높은 무게 중심, 크고 무거운 차체, 비교적 부드러운 서스펜션으로 인해 스포티한 디자인에 어울리는 운동 성능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전륜구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좌우 바퀴의 토크량을 배분해주는 토크 벡터링 기능이 적용되기는 했지만, 토러스의 물리적 한계를 바꿔놓기는 쉽지 않다.
▲ 기어 레버에 위치한 버튼식 수동변속 방식은 적극적인 운전에 부적합하다.
대신 토크 벡터링의 적용은 토러스와 같은 전륜구동 자동차의 최대 단점인 언더스티어 현상을 줄여줘 코너 주행 중 불안함을 느낄 수 없도록 해준다. 사실 주행안전장치를 임의로 해제할 수 없어 토러스의 실제 스티어 반응이 어떤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각이 심한 코너에 진입한 후 빠져 나오는 순간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원하는 라인을 그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토크 벡터링이 토러스의 퍼포먼스를 조금이나마 향상시켜준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 보다 스포티한 세팅이 더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토러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션이 조금 더 단단하게 조율되고 스티어링 시스템의 반응속도가 조금 더 빨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는 토러스가 스포티한 주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차체 강성이 높고, 2.0 에코부스트 엔진의 반응속도가 충분히 빠르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아마도 고성능 버전인 SHO에 적용된 다양한 스포츠 패키지가 추가된다면 이런 부족함이 어느 정도 만회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 361km를 달린 토러스의 평균연비는 공인연비보다 낮게 측정됐다.
토러스와 같이 큰 자동차에 상대적으로 작은 2.0리터 엔진이 적용된 가장 큰 이유는 연비를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실제로 토러스 2.0 에코부스트의 복합연비는 10.4km/l이며,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71g/km에 불과해 큰 차체를 생각했을 때는 매우 합리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나 V6 3.5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탑재한 토러스의 연비가 9.2km/l인 것과 비교했을 때 2.0에코부스트 엔진을 장착한 토러스의 경제성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 토러스에는 자동주차, 차선이탈 경보 장치, 전동식 페달 조절 장치,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의 편의장비가 탑재돼 있다.
제원표 상에서 준수한 연비를 보여준 토러스는 361km를 주행한 뒤 얻은 실제 연비에서 공인연비보다 낮은 9.1km/l의 평균 연비를 보여줬다. 시승을 위해 급가속을 많이 하고 시내 주행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을 고려했을 때 9.1km/l의 평균연비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고속도로 주행에서는 리터당 15km 이상의 연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2.0리터 엔진으로 큰 차체를 움직여야 하는 만큼 시내 주행에서는 평균연비가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다.
▲ 뛰어난 가격대비 가치와 앞선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을 체험할 수 있다는 부분이 토러스의 가장 큰 매력이다.
도로 환경에 따라 토러스의 연비는 큰 변화폭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러스 2.0에코부스트의 경쟁력은 충분해 보인다. 특히 토러스 2.0에코부스트가 갖고 있는 4500만 원의 가격표는 토러스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부분이다. 4000만 원대 수입차에서 토러스만한 크기와 실내공간, 편의사양을 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세계에서 가장 앞서있는 엔진 다운사이징 기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는 자부심 또한 토러스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독특한 매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