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장장 5회에 걸친 컵라면 시식회가 성황리에 끝났다. 참가인원 100여 명이 먹어 치운 컵라면만 해도 약 150개에 육박했다. 사람들은 컵라면을 참~ 좋아한다는 결론과 함께 짜장, 매운 라면, 초딩 입맛, 짬뽕을 넘어 최종적으로 다다른 의문점은 컵 크기별 맛의 차이였다. 정말 큰 컵과 작은 컵은 맛이 다른가? 다르다면 왜 다른가? 무슨 해인사 큰스님의 선문답도 아니고 이게 무슨 호기심이란 말인가!
다나와의 한 동료 직원 말 한마디로 시작된 취재는 급기야 농심과 삼양, 그리고 오뚜기 홍보관련 부서에 연락을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 화두를 먼저 던진 그 사람, 친한 직장 동료지만... 참! 일을 몰고 다닌다.
결국, 사돈에 팔촌, 대학교, 고등학교, 유치원을 넘어 아는 지인을 총동원해 접근한 농심, 삼양 홍보관련 부서와 서면 인터뷰에 성공했다. (정작 고객센터로 문의해볼 생각은 못했다.) 오뚜기측의 답변은 받지 못해 내내 서운했지만, 5차 시식회때 오뚜기 진라면이 맛 차이가 거의 없다고 판정되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식품사에 직접 연락해 답변을 얻는 게 처음이라 무척 설렜던 취재였다. 농심과 삼양으로부터 받은 답변을 정리해 공개한다. 먼저 농심과 삼양에 보낸 질문은 모두 3가지였다.
1. 큰 컵과 작은 컵의 국물 맛이 다르다는데 제조 공정이 다른 건 아닌지?
2. 면에 대한 차이가 육안으로도 확인 되었는데 어떤 차이가 있는지?
3. 이런 큰 컵, 작은 컵의 맛 차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출생의 비밀 : 큰 컵과 작은 컵은 부모가 다른 형제인가?

무슨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제목이 좀 선정적이다. 큰 컵과 작은 컵의 공정과 생산 시설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삼양은 “큰 컵과 작은 컵의 면과 스프 공정상 차이는 없다. 단지 납형시키는 Bucket 크기는 다르다.”라고 답했다. 뭔가 공학적 용어 같지만, 천천히 사전을 들춰가며 해석해 보자. 이 Bucket이란 말 그대로 양동이, 큰 컵과 볼(Bowl) 타입용, 작은 컵용이라는 의미다. 공정은 같아도 담는 용기의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스프의 공정 역시 차이가 없다고 전했다.
※ 여기서 공정은 제품이 생산되는 Process 즉, 과정을 의미한다.

면, 스프 공정의 차이가 없다니, 그럼 맛을 가려낸 20명의 용자들은 요리왕 비룡, 대장금을 뛰어넘는 초절대 미각의 소유자들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음 줄에서 의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바로 용기별 맛이 다른 점은 용기에 따른 면과 스프의 ‘배합률’이 모두 달라서 그렇다는 말이다. 역시 컵라면에 들어가는 재료의 배합이 달랐다. 다시 한 번 정리해보자. 큰 컵과 작은 컵의 면, 스프는 재료의 배합률이 다르다. 하지만! 생산되는 공정은 같다!

여기에 농심은 더 흥미로운 정보를 공개했다. 라면 종류에 따라 출하 시기가 달라지는데 그동안 소비자의 반응, 니즈와 시장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품 설계를 살짝 변경한단다. 후속 출시된 제품은 초기 제품의 맛에 가장 가깝도록 설계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맛으로 개발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나와에서 시도한 것과 같이 다양한 시식 테스트를 거쳐 소비자 입맛의 변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음에 그런 시식 테스트가 있으면 불러주길 바란다. 진심이다.
눈으로도 밝혀진 면발 차이의 진실

두 번째 질문은 면의 굵기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육안으로도 분명히 밝혀진 이 점도 꽤 궁금했던 사항이었다. 이에 삼양은 보통 작은 컵은 3~4분, 큰 컵은 4분 복원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따른 면 배합과 굵기가 달라진다고 했다. 또한, 면에 들어가는 첨가물에 따라 색상도 달라지기 때문에 육안으로도 쉽게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농심도 몇 가지 조리 환경 차이를 감안해 면발의 폭, 두께를 다르게 설계하는데 작은 컵은 더 가늘게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온도라도 용기에 들어가는 물의 양이 작은 컵은 더 적기 때문에 그 적은 양으로 빨리 면을 익힐 수 있도록 가늘게 설계된다고 했다.

그 미미한 물의 차이가 맛의 차이를 내다니 정말 신기하다. 앞으로 컵라면에 따르는 물의 양은 꼭 안내 선을 맞춰야겠다는 다짐이 저절로 되는 순간이다.
또다른 변수, 용기

마지막으로 큰 컵과 작은 컵의 맛 차이는 용기로 인해 발생한다고 했다. 특히 농심은 용기 크기에 따라 입구 크기도 달라지기 때문에 입구에서 이루어지는 열손실의 차이로 인해 국물의 깊은 맛이 달라진다고 밝혔다. 그리고 용기의 재질이 종이냐 폴리스틸렌이냐에 따라 보온성이 다르기 때문에 영향이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삼양도 용기에 따른 원료배합, 그리고 건더기 스프의 구성도 달라지기 때문에 맛의 차이가 난다했다. 그리고 면 굵기의 차이로 인해 유탕시 기름 함량도 달라지기 때문에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고 밝혔다. 정말 신기한 컵라면의 세계다.

어찌 보면 굉장히 어리석은 질문이었지만, 그 동안 궁금해했던 사항을 말끔히 정리해주는 답변이었다. 원료 배합의 미세한 차이, 소비자 입맛의 변화, 그리고 용기의 크기, 재질이 큰 컵과 작은 컵의 맛 차이를 내는 주요 원인이었다.
앞으로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거나 컵라면 물을 부을 때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이제 궁금한 것도 다 해결됐으니. 친절한 답변을 준 농심과 삼양에 감사의 말을 전하며 컵라면이나 하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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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와 커뮤니티팀 정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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