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세월 앞에 장사는 없다. 요즘 인기인 1988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카세트테이프. 불과 십 수년 전 만해도 대중음악을 주름잡는 미디어였으나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흘러간 가요, 그리고 일부 가수의 노래가 카세트테이프로 새 음반을 내기도 하지만 이미 대중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태다. 카세트테이프 전에는 LP라 불렀던 레코드판이 우리의 음악을 책임졌으며, 이후에는 CD가 음반 자리를 이어 받았고, MP3라는 디지털 파일로 음원 시장이 바뀌면서 음악을 듣는 행태또한 180도 뒤집어졌다. LP부터 MP3,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우리의 음원 시장은 어떻게 흘러왔는지 살펴본다.
특유의 잡음 소리가 이제는 추억이 된 LP
70~80년대 음악다방 또는 음악감상실의 주음원이었고, 가정에서도 음악을 듣기 위해 구입했던 LP는 에디슨이 살았던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음악을 듣기 위해 개발한 것이 아닌,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장치로 고안되었다. 판에 새겨진 골의 강약에 따라 바늘이 움직이면서 나타나는 진동이 전기적 신호로 변환되어 소리가 가는 기본적인 원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우리가 요즘 알고 있는 LP판이라 부르는 시커먼 플라스틱 원반(?)은 1948년 컬럼비아 레코드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음반 산업 전체의표준으로 자리잡았다. LP는 Long Play Record의 약자로 장시간 쓸 수 있는 음반을 가리키며, 한 면에 22분 분량의 기록이 가능하다. 뒤집어서 또 쓸 수 있으므로 한 장으로 44분 재생이 가능한 것. 크기는 지름이 30cm나 되어 휴대성과는 거리가 멀다.
▲ 옛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LP (이미지 = 위키피디아)
LP는 전형적인 아날로그 방식이며, 미세하게 파인 골에 먼지라도 있으면 특유의 잡음이 섞여 나와 열심히 먼지를 닦아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깨끗한 디지털 음악에 익숙해진 탓인지 가끔은 LP 시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던 잡음 소리가 그리워 여전히 많은 수의 마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미디어이다. LP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LP플레이어가 필요한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턴테이블 또는 전축이 그것이다. LP의 몰락으로 턴테이블을 새로 구입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일부 IT제조업체를 통해 LP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를선보여 다시금 옛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스카이디지탈 'ariapan BAND 턴테이블'은 아날로그인 LP를 디지털 기술로 재생이 가능한 제품이다. 생김새는 과거 턴테이블과 비슷하나 여기에 고감도 FM라디오와 CD플레이어, USB MP3 재생 기능까지 넣었다. 디스플레이도 달아 현재 재생 모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5W 출력 스피커를 자체 내장해 별도의 앰프나 스피커를 연결할 필요가 없어 공간활용이 우수하고 편리하다. 같은 회사에서 나온 'aria pan USB 턴테이블'은 콤팩트한 크기로 휴대가 가능한 제품이다. AA 배터리로도 동작이가능하며, LP의 음원을 MP3로 변환하는 기능도 있어 이제는 절판이 된 희귀 음원을 MP3로 저장해 보관할 수 있다.
본격적인 포터블 오디오 시대를 연 카세트테이프
1960년대 처음 모습을 보인 카세트테이프는 당시 성능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음악을 듣기 위한 용도보다는 녹취를 위한 수단으로 기업에서 주로 사용했다. LP는 음을 기록한 골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되어 있어 관리 및 보관이 쉽지 않고, 표면에 작은 흠집이라도 나면 제대로 재생이 되지 않는 단점이 있으나, 카세트테이프는 자기에 의해 소리를 기록하고, 플라스틱 재질로 테이프를 보호하기 때문에 한결 쓰기가 쉽다. 그러나 자석 옆에 두면 기록된 정보가 훼손되고, 잦은 재생으로 테이프가 늘어나 원음이 손상되는문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재생만 가능한 LP나 CD와는 달리 사용자가 직접 녹음이 가능해 일반인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꾸준히 사용됐다.
▲ TDK사에서 출시된 카세트 테이프 (이미지 = 위키피디아)
손바닥보다 작은 카세트테이프의 장점을 살려 소니는 워크맨이라는 초소형 플레이어를 개발했으며, 이후 국내 업체에 의해 ‘마이마이’, ‘아하’ 등의 포터블 카세트 플레이어가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포터블 오디오 시대를 열게 됐다. 워크맨과 이어폰의 조합은 집에서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음악을 집밖으로 끌고 나오게 되면서 음악을 듣는 행태를 180도 바꿔놓게 되었고, 이후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카세트 테이프가 어학 학습용으로도 많이 활용되면서 빨리감기, 되감기 및 재생속도 조절이 가능한‘찍찍이’로 알려진 제품도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디지털 음원인 CD, 그리고 MP3에 밀리며 워크맨을 만들어낸 소니는 2010년 단종시켰으며,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었던 SKM(선경매그네틱)도 2012년에 폐업했다. 지금은 구형 카 오디오에 의해 간혹 활용되고 있는 상태이다.
▲ 1979년에 출시된 소니 워크맨 TPS-L2 (이미지 = 위키피디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CD
대부분의 음원이 MP3로 바뀐 지금 그래도 여전히 살아남은 CD(Compact Disc)는 1970년대에 등장했다. 광 디스크의 일종으로, LP, 카세트테이프가 아날로그로 저장되는 것과는 달리 CD는 디지털로 정보를 저장한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알루미늄 박막에 레이저로 홈을 파 정보를 저장하고, 이를 레이저로 다시 읽어 소리를 만들어낸다. 12cm로 작고, 속에 있는 알루미늄 박막이 직접 손상되지 않는 한 원음이 손상되는 일은 드물어 사용 및 보관이 쉽다. 원래는 74분의 오디오를 담을 수 있으나 이후 80분, 90분 짜리도 디스크도나왔으며, 주로 싱글 음반으로 사용된 지름 8cm짜리 미니CD도 등장했다. 형태는 같지만 기록되는 형식에 따라 오디오CD 뿐만 아니라 PC에서 사용되는 CD-ROM, 비디오CD 등 여러 가지가 있다.
▲ 현재로 음원 시장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는 CD
디지털 오디오의 혁명 ‘MP3’
현재 음원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MP3는 MPEG-1의 오디오 규격으로 개발된 손실압축 포맷이다. 인간의 귀로는 알아채기 힘든 부분을 압축하여 원래 PCM 음성의 1/10까지 크기를 줄일 수 있다. 개인용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고, 1995년 .mp3 확장자가 정의되면서 초창기 MP3는 주로 PC에서 사용됐다. CD로부터 음원을 추출해 MP3로 압축하여 PC에서 음악을 듣는 용도로 활용했다. 당시 MP3 파일을 듣기 위해 윈앰프를 주로 사용했으며, 냅스터와 같은 P2P의 출현으로 MP3 파일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으며,기존의 음반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놨다. 2001년도 당시 냅스터 폐쇄 판결이 나기까지 약 3년간 음반시장에 수백억 달러 손실을 끼치기도 했다.
한편 1998년 MP3는 우리나라 업체에 의해 PC 밖을 벗어나게 됐다. 새한정보시스템은 세계 최초로 양산된 MP3플레이어인 MPman F10을 공개하며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1996년 공개된 바 있는 Audio Highway사의 Listen Up player가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로 이름을 올렸지만 결국 양산되지 못하고 25개만 만들어졌다.
▲ 세계 최초로 양산된 MP3 플레이어인 MPman F10
이후 MP3플레이어는 꾸준해 발전해나갔다. 초기에는 용량도 16MB 정도에 불과해 기기 하나에 10곡도 채 담지 못했지만 플래시메모리 가격의 하락으로 용량은 빠르게 올라갔으며, MP3 파일 뿐만 아니라 WAV, OGG, WMA 등 다양한 포맷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양산한 국가답게 삼성전자를 비롯해 코원(당시 거원시스템), 아이리버(당시 레인콤) 등 국내 업체가 세계 시장을 이끌어갔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MP3플레이어는 점차 사라졌다. 지금은 MP3 재생에 최적화된초소형 플레이어, 이어폰 일체형 플레이어, 고해상도 음원 재생을 위한 고급형 제품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 MP3플레이어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코원(당시 거원시스템)의 CW200(좌측)과 아이리버(당시 레인콤) iFP100
스트리밍의 등장… 더 이상 음악은 소장, 저장이 아닌 ‘소모’
가수 이승환씨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음악이 과거에는 ‘소장’하는 개념에서 ‘저장’하는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지금은 ‘소모’되기 시작했다라고 말한 것. MP3 시대까지 이어졌던 음반 또는 곡 단위의 구매 시장은 정체기인 반면 구동형 스트리밍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PC나 스마트폰에 원하는 MP3 파일을 저장해 듣는 기존 방식과는 달리 스트리밍은 일정 기간 가입하고, 그 기간 내에 원하는 곡을 자유롭게 인터넷 라인을 통해 실시간 듣는 방식을 말한다. PC는초고속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고, 스마트폰 또한 늘 LTE와 WiFi 환경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이제 더 이상 음악을 저장하는 것이 아닌 스트리밍으로 소모하게 된 것이다. 실시간으로 음악을 들으며 SNS로 다른 사람과 공유가 가능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팬과 아티스트 사이를 직접 연결하며, 여기에 광고를 덧붙여 소비자 부담을 던 서비스까지 등장하는 등 스트리밍은 지금도 꾸준하게 발전을 거듭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나와 테크니컬라이터 이준문
(c)가격비교를 넘어 가치쇼핑으로, 다나와(www.dana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