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람이나 기계나 한 가지만 잘하면 되는 시대는 끝났다. 주특기를 지녀야 하는 것은 기본, 여기에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까지 갖춰야 한다.
최근 가전 시장의 화두도 이와 무관치 않다. 두 마리 토끼 다 놓칠 수 없는 욕심쟁이 소비자들을 위해 기업들은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을 합친 통합가전을 앞다퉈 출시하고 있다. 제품 범위는 생각보다 넓은데,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모든 가전이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은 가성비가 높다는 점이다. 두 가지 제품을 따로 구매할 때보다 확실히 저렴하고 효율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을 개척해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중에서 특히 ‘복합오븐’은 핫 아이템이다. 빌트인 주방가구 시장의 성장과 꼭 필요한 물건만 집에 두고 간결한 삶을 사는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며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이번 기사에서는 통합 가전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그 종류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특히 복합오븐의 판매량 증가 원인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며 통합 가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자 했다.
■패밀리 통합 가전 전성시대, 그 이유는?
최근 유통업계는 경기불황으로 닫힌 소비자 지갑을 열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계청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계 평균소비성향이 1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분기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72.4%, 올해는 이보다 0.3%p 하락한 72.1%로 나타났다. 간단히 말해 소비, 저축 등을 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 100만 원이 있다면, 72만 1,000원만 쓰고 나머지는 적금, 예금 등에 할당했다는 뜻이다. 10년 전 80%대를 꾸준히 유지한 것과 비교하면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니다.
소비 패턴에 생긴 가장 큰 변화는 합리적인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점이다. 하나의 제품으로 다양한 가전 기능을 누릴 수 있는 ‘통합가전’이 떠오르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기능을 합쳤다고 반쪽짜리 성능일 거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최근 등장한 제품들은 100%와 100%가 합쳐져 200%의 효과를 내는 완성도를 갖췄다.
높은 성능, 다양한 기능이라는 장점뿐만 아니라 경제적이라는 강점까지 있다. 아무래도 두 개 이상의 제품을 따로따로 구매하는 것보다 저렴하므로 초기 구매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소비 전력과 같은 유지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이 부분은 뒤쪽에서 제품 예시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어디 이뿐인가? 최근 유통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1인 가구와 신혼부부의 경우 원룸이나 소형아파트 등 비교적 아담한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이들 소비자는 내부 인테리어와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데에 관심이 높다.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가전을 압축하려는 것이다. 통합 가전을 구매할 경우 업그레이드된 기능과 더불어 공간 활용도를 높일 수 있다.
■통합 가전 종류
▶냉장고
가전의 융 ·복합을 선도한 원조 격 제품으로는 냉장고와 정수기를 하나로 묶은 LG 디오스 정수기 냉장고를 꼽을 수 있다. 2013년 9월 출시된 이 제품은 출시된 이후 매달 2,000여 대의 월 판매량을 유지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은 바 있다. 정수기 비사용자 가운데 과반 이상이 정수기 구매 의사가 있다는 시장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등장하게 된 제품인데, 필수 가전인 냉장고에 정수기를 담아 일거양득의 효과를 노렸다.
냉장고 중앙에 정수기를 배치하고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면 전문 관리사가 와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만 원 후반대로 일반 정수기를 따로 빌릴 때보다 14%가량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전기료도 19%가량 낮추는 효과가 있다. 얼음 정수기(18kWh)의 소비전력과 디오스 최저 소비전력 냉장고(29.9kWh) 소비전력을 합친 것보다 낮은 소비전력 (38.6kWh)을 나타낸 점이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2013년은 냉장고를 중심으로 한 통합 가전의 열풍이 불었던 해였다. 승승장구하는 LG전자의 디오스 정수가 냉장고에 삼성전자는 지펠 스파클링 냉장고로 맞불을 놓았다. 냉장고와 탄산수 제조기를 결합한 제품으로 냉장고 내부에 '소다스트림'의 탄산가스 실린더를 설치해 한 번의 터치만으로 손쉽게 탄산수를 마실 수 있다.
필터·탄산 교체 시기가 되면 서비스센터로 전화해 방문 서비스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탄산의 농도는 연한 맛(3g/L), 중간 맛(5g/L), 강한 맛 (7g/L) 등 3단계로 설정할 수 있고 얼음 모양은 각얼음, 조각얼음 중에 고를 수 있다. 이 제품 역시 두 가지 제품을 하나로 합쳐 번잡한 주방의 공간 활용도를 끌어올렸다.
그런가 하면 LG전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다음 해인 2014년에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결합한 ‘프리스타일 냉장고’를 선보였다. 또 1인 가구를 겨냥한 ‘프리스타일 미니 냉장고’를 연달아 내놓으며 통합 가전 트랜드를 이끌었다.
삼성전자 또한 2016년 냉장고에 대형 태블릿을 담은 ‘패밀리 허브 냉장고’를 공개했는데, 이 제품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물인터넷(loT)으로 무장한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식재료 관리 설정을 보다 간편하게 하는 풀 HD 터치스크린에 마이크, 스피커, 카메라까지 내장해 음악과 영상 감상은 물론 외부 쇼핑을 나와 냉장고 안에 어떤 식재료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탁기
LG전자의 ‘트롬 트윈워시’는 상단에 드럼세탁기, 하단에 통돌이 세탁기를 결합한 제품이다. 두 제품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자 하는 소비자의 니즈가 강하게 반영됐다. 자동차 서스펜션 기술을 적용해 세탁 과정에서 생기는 진동을 최소화했고, DD 모터의 크기를 40% 줄인 슬림 DD 모터를 통해 제품 내부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두 대를 동시에 사용하거나 따로 사용하는 게 모두 가능하며 세탁물의 옷감이나 양에 따라 알맞은 설정을 할 수가 있다. 드럼 세탁기와 통돌이 세탁기를 각각 설치할 때보다 비용과 공간효율 측면에서 훨씬 합리적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깬 삼성전자의 ‘애드워시’도 눈여겨 볼만하다. 통돌이 세탁기의 경우 뚜껑을 열고 빠뜨린 세탁물을 넣는 게 가능했지만, 드럼세탁기의 경우 구조상 그게 어려웠다. 애드워시는 드럼세탁기 문에 ‘애드윈도우’라는 창문을 달아 추가로 세탁물을 넣을 수 있다. 소비자가 너무나 필요로 했던 기능을 간결한 아이디어로 구현한 셈이다.
또한, 기존 드럼세탁기 세제 투입구로는 사용이 불편했던 캡슐형, 시트형 세제, 섬유 유연제 등을빠르고 간편하게 투입할 수 있다. 각기 다른 세탁기의 장점을 합쳐놓은 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기타
일렉트로룩스의 대표상품이자 스테디셀러라 할 수 있는 ‘에르고라피도’는 평소에는 스틱 청소기로 사용하다가 필요에 따라 핸디 청소기로 분리해 쓸 수 있는 투인원(2in1) 무선청소기다. 본체의 중앙 버튼을 누르면 핸디 청소기를 따로 쓸 수 있는데, 좁은 틈새나 침대, 소파, 자동차 내부 등을 편리하게 청소할 수 있다. 무선제품이라 청소 시 줄이 거치적거리지 않고 간편하다는 점도 이 제품의 강점이다.
이제 피부관리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외모가 주요 경쟁력으로 자리 잡으며 피부에 신경 쓰는 남성이 늘고 있다. 깨끗한 면도와 꼼꼼한 세안은 말끔한 인상을 풍기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친다. 필립스의 전기면도기 ‘영킷’은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제품이다. 면도기 헤드와 페이셜 클렌징 브러쉬 헤드가 제품에 포함돼 상황에 따라 원하는 것으로 바꿔 끼울 수 있다. 면도기 헤드는 습식 면도가 가능하며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정밀하게 면도를 돕는다. 페이셜 클렌징 브러쉬는 1만 7,000개의 초미세모로 구성돼 모공 사이사이에 껴있는 노폐물을 깨끗하게 처리한다.
▶복합오븐
업계에서는 냉장고, 세탁기, 이·미용 제품 등에 불었던 융·복합 열풍의 바통을 이을 제품으로 복합오븐을 지목하고 있다.
복합오븐은 오븐과 전자레인지의 기능을 합친 제품이라 이해하면 쉽다. 국내에는 LG전자, 동양매직, 삼성전자의 3파전 양상을 띤다. 광파, 스팀 등의 세부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음식을 데우는 것은 기본, 수많은 자동요리 메뉴를 갖춰 버튼만 누르면 고난도의 요리도 간편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출시 초반에 지적됐던 불안정한 기능도 끊임없는 개발로 안정화되며 소비자의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다.
간편한 걸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맞고, 식재료의 수분은 유지하면서 지방, 염분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기업들도 단순히 제품 기능을 홍보하는 게 아니라, 쿠킹클래스를 진행해 일상생활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마케팅에 힘이 쏟고 있다. 한 예로 LG전자는 과거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예비부부 및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연말 쿠킹클래스를 진행한 바 있고, 삼성전자 역시 홈플러스 문화센터와 협력해 쿠킹클래스를 열었다.
광파 오븐의 경우 열선이 안에 내장돼 있어 조리시간이 짧지만, 청소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스팀 오븐은 수분 유지가 쉬워 촉촉한 찜요리에 강점을 갖는다. 단 조리시간이 광파오븐에 비해 긴 편이다.
■2%로 부족한 빌트인을 채운 '복합오븐'의 등장
복합오븐이 등장한 건 2000년대 중반 즈음이었다. 시장 초기만 해도 성능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생소한 제품군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점차 판매 점유율을 넓히더니 2013년에는 전자레인지 제품군에서 48% 점유율을 기록할 만큼이 시장이 커졌다.
이러한 성장은 빌트인 가전 시장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빌트인은 주방가전을 붙박이 형태로 설치하는 것으로 돌출된 부분 없이 기기가 내부에 들어있어 깔끔한 공간 연출이 가능하다. 사전에 미리 설계한 뒤 설치하기 때문에 기기들이 서로 통일감을 이루며 잘 어우러진다. 일반 가구를 배치하는 것보다 수납효율이 약 30% 높아 공간이 비교적 협소한 원룸, 오피스텔, 소형아파드 등에 유용하다. 물론 최근에는 주상복합아파트에서도 빌트인 가구가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빌트인 시공 과정에서 가스 쿡탑을 전기레인지로 바꾸는 이들이 많은데, 매끈한 검정 표면이 멋스럽고 화구, 손잡이 등이 돌출돼 있지 않아 보다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기레인지는 불꽃을 직접 사용하지 않아 라돈 가스,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등의 유해 물질을 배출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어린아이들이 위험 상황에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만일 가스레인지 일체형 오븐을 사용하다가 상단을 전기레인지로 바꿀 생각이라면 더는 하단의 오븐은 사용할 수 없다. 가스 쿡탑부와 오븐부는 가스가 들어오는 파이프가 같이 연결돼 있는 데, 교체를 위해 쿡탑부를 걷어내려면 별수 없이 파이프를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스 누출이 발생해 화재나 기타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다.
이런 경우에는 가스 오븐을 빼낸 뒤 아래쪽을 수납장으로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안정상의 문제로 오븐을 별도로 구매해 바깥에 빼둬야 하는데, 자리를 조금이라도 덜 차지하도록 오븐과 전자레인지를 합친 ‘복합오븐’을 찾는 것이다. 빌트인 가구 시공 및 전기레인지 교체가 늘어날수록 복합오븐이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깔리는 셈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국인들의 식습관 변화를 들 수 있다. 밥과 밑반찬이면 만사 오케이였던 과거와 달리 국내 쌀 소비량은 하루가 멀다 하고 떨어지고 있다. 농협중앙회 충남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5년 128.1kg에서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과 식문화가 변하며 다양한 먹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밥솥만으로 만족했다면 이제는 쿠키, 케이크, 그라탱, 커틀릿 등의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고, 그것이 복합오븐에 대한 수요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기획, 편집 / 다나와 홍석표(hongdev@danawa.com)
글, 사진 / 테크니컬라이터 황민교(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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