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로 지갑을 받았다. C 브랜드 제품이라 나름 고가다. 그런데 지인에게 미안하지만 ‘차라리 국밥 100그릇을 사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제의 90%를 간편결제서비스로 하다 보니 지갑을 안 쓴지 오래됐다. 오히려 필자에게 지갑은 어릴 때부터 분실이 잦아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였기에…
▲ 현금이 많으면 지갑을 잃어버려도 찾을 수 있다? (출처: 픽사베이)
그런데 지난해, 미국과 스위스에서 분실한 지갑을 찾고 싶으면 현금을 많이 넣고 다니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지갑에 현금이 가득 들어 있으면 되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스크롤을 내려보면 알 수 있다.
5위
분실 지갑을 되찾는 법! 돈을 많이 넣어두라는 연구 결과
만약 당신이 카메라도, 사람도 없는 곳에서 현금 오천만 원이 든 지갑을 습득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연히 내가 가져야지~’ 생각이 들기도 하겠지만 실제로 거금이 든 지갑을 주우면 정직해진다고 한다.
▲ 실제 실험에 사용된 지갑과 소품들 (출처: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5/6448/70)
2019년, 미국 미시건대와 스위스 취리히대 공동연구팀은 40개국 355개 도시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17,303개의 지갑을 이용해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내용은 이렇다. 0원부터 100달러(한화 12만 1,550원)까지 다양한 금액의 지폐와 열쇠, 명함 등이 들어 있는 지갑을 준비한 뒤 가까이 있는 프런트나 계산대 직원에게 ‘지갑을 주웠다’고 말하며 건네주는 것이다.
▲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 요약본 (출처: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65/6448/70)
실제 실험 결과 빈 지갑은 46%, 13달러가 들어 있는 지갑은 61%, 100달러가 들어 있는 지갑은 72%의 사람들이 ‘습득 신고’를 했다(참고로 100달러 실험은 미국, 영국, 폴란드에서만 진행). 전체적으로 빈 지갑보다 돈이 들어 있을 경우 신고율이 높았다.
▲ 빈 지갑은 찾기 어렵다 (출처: 픽사베이)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돈이 많이 들어 있는 지갑을 돌려주지 않으면 왠지 훔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실험에서 분실된 지갑을 신고한 사람들에게는 현금 보상이 주어졌다. 정직하면 복이 온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4위
‘길에 떨어진 지갑은 함부로 줍지 말아라’, 지갑과 범죄
2011년, 주부 A는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서 지갑을 주었다. 현금 10만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이었다. 지갑을 갖고 자리를 뜨려던 A 씨 앞에 40대 남성이 나타나 ‘아이 엄마가 절도를 한다’며 남편과 경찰에게 신고하겠다고 협박했다.
▲ 길에 떨어진 지갑,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출처: 픽사베이)
그 지갑은 남성이 일부로 떨어트려 놓은 함정이었다. 길에서 주운 지갑을 갖고 가면 점유이탈물 횡령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노린 범죄였던 것. 이 같은 방법으로 남성은 충주와 평택 일대 부녀자들에게 13차례에 걸쳐 1,700만 원의 돈을 갈취했다.
▲ 지갑 범죄 때문에 길에 떨어진 지갑을 봐도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고... (출처: 픽사베이)
2015년에는 한 남성이 복도에 떨어진 지갑을 주워 경비실에 맡겼다가 돈을 물어주게 된 사연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랐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지갑을 찾은 주인이 ‘지갑 속에 급여로 받은 현금 130만 원이 사라졌다’며 남성을 절도범으로 신고한 것이다. 결국 사건은 형사소송으로 넘어가게 됐고 남성은 선의로 한 일이 억울함으로 돌아왔다고 호소했다.
▲ 선의를 악용하지 말자 (출처: www.flickr.com @Ryan Loos)
이처럼 길에서 지갑을 주웠다가 곤욕을 치른 사례가 알려지자 한때 사람들 사이에서는 ‘길거리에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모른 척하라’, ‘지갑 습득 시 반드시 주변 CCTV나 카메라로 지갑 속에 들어 있는 현금 등을 증거로 촬영한 뒤 찾아줘라’는 나름의 팁(?)이 소개되기도 했다. 물론 길에 떨어진 모든 지갑이 의도적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다.
▲ 되찾은 지갑 덕분에 사건이 해결된 일도 있다 (출처: 픽사베이)
한편 미제로 빠질 뻔한 살인사건이 지갑으로 인해 해결되기도 했다. 2007년, 경기도 안산시 ㅇ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신체로부터 채취한 범인의 단서를 통해 그의 DNA와 혈액형이 O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그 외에 별다른 단서가 없어서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 다행히 범인은 체포됐다 (출처: 픽사베이)
그런데 사건 발생 열흘 후 우체국에서 피해자의 지갑이 습득됐다는 연락이 왔다. 당시 생활정보지 배달원으로 근무하던 B 씨가 지갑을 습득해 우체통에 넣었는데, 그 장소가 사건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근처에 범인이 살고 있을 것이라 확신, 인근에 사는 20~50세 남성들 중 혈액형이 O형인 남성들의 구강상피를 채취해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한 20대 남성의 DNA가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DNA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고 결국 자백을 받는 데 성공했다.
3위
1922년에도 존재했던 지갑 선행
지난해 9월, 김해국제공항에서 한 남성이 1억5,000여 만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을 습득했다. 신분증도 없고 오로지 1억4,998만 원의 수표와 현금 270만 원밖에 들어 있지 않은 지갑이었다.
▲ 지갑에 들어있던 수표와 현금 (출처: 부산경찰청)
남성은 이 지갑을 공항경찰대 사무실에 맡겼고, 경찰들은 수표 발행 은행과 번호를 추적해 어렵게 지갑의 주인을 찾아줬다. 2015년 부산에서는 자그마치 10억 290만 원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준 사례도 있었다.
▲ 740만 원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준 5살 쌍둥이 자매 (출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제공)
고액의 돈이 든 지갑을 주인에게 찾아준 미담은 우리나라에선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다. 특히 속세에 물들 만큼 물든 성인이 탐욕을 이기고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나라 착한 어른이들은 주운 지갑을 잘 돌려준다.
물론 주운 지갑을 함부로 습득해 돈을 사용하면 점유 이탈물 횡령죄 혹은 절도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돌려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 지갑과 관련된 미담 기록들을 살펴보면 꼭 법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1973년으로 돌아가 보자.
▲ 1922년의 한국 빨래터 (출처: http://digitallibrary.usc.edu/cdm/ref/collection/p15799coll48/id/718)
1922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들어선 지 4년 차로 만주에서는 독립단이 일본군 수비대와 전투를 벌였고,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 발표됐고, 경북 경주 대덕산에서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베리아 호랑이가 포획된 때였다. 추적의 핵심 수단인 CCTV가 1942년 독일에서 최초 등장했으니 그보다 20년 전인 대한민국에서 지갑을 횡령해도 이를 추적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을 리 만무했다.
▲ 미담이 실린 당시 기사 (출처: 동아일보 1922년 4월 26일 3면 / 동아일보 1922년 5월 16일 3면)
그런데 1922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한 남성이 지갑을 습득해 주인을 찾아주려 한 기사가 ‘지갑 습득’ 관련 최초의 기록으로 검색되었다(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기준). 정진태라는 이름의 사내는 당시 동아부인상회 입구를 지나가던 중 50원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웠고 즉시 경찰서에 갖다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 달에는 대전의 한 양품점 직원이 470원이 들어 있는 지갑을 주워 주인을 찾아준 사례가 소개됐다. 당시 공립학교 1개월 수업료가 1원을 넘지 않았다 하니 얼마나 50원과 470원이 얼마나 큰 가치의 돈인지를 알 수 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참으로 착한 민족이다.
2위
돈만 보관하는 줄 알았더니, 제법이네? 스마트 지갑
그간 필자에게 지갑이란 화폐를 보관만 해주는 가족 공예품이라는 개념이 강했다. 즉 첨단기술과는 다른 세계의 아이템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맞추어 어느새 지갑도 진화해 있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 던힐의 생체인식 지갑
2010년, 던힐이 지갑 하나를 선보였는데 자그마치 생체측정과 블루투스 기능이 접목된 첨단 기술의 지갑이었다. 소재도 가죽이 아닌 탄소섬유를 사용해 가죽보다 견고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한편 더욱더 가볍다. 또한 지갑 표면에는 생체측정 지문 개폐 장치가 되어 있어 지문의 주인이 아니면 절대로 지갑을 열 수 없다.
▲ 던힐 생체인식 지갑 리뷰 영상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연결해두면 지갑이 주인과 멀리 떨어질 때 알람을 울려 경고를 보낸다. 당시 판매 가격은 825달러로 2018년 moneyinc.com에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지갑 1위에 뽑히기도 했다.
▲ 주인의 소비습관을 고쳐주는 Living Wallet
2013년에는 소비습관을 줄일 수 있도록 지갑을 열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도망가는 Living Wallet이 등장했다. 별도의 회계 앱을 설치한 뒤 블루투스 연동을 통해 작동하는 이 지갑은 주인의 소비습관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데, 돈이 없는 상황에서 지갑을 열면 ‘안 돼! 도와줘’ 등의 사운드를 내보내며, 테이블에 올려두면 바퀴를 굴려 도망친다.
▲ Living Wallet 리뷰 영상
그래도 무리해 지갑을 열려고 하면 휴대폰에 등록된 가족(혹은 지인)의 번호로 현재 재정 현황을 문자로 보내 강력한 경고를 날린다. 반면 재정 상태가 좋을 때는 쇼핑몰의 인기 상품을 추천해주기도 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시판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 스마트폰 충전, 위치추적, 사진촬영, 인터넷까지 가능한 Volterman 스마트지갑
이번에는 지금도 구매 가능한 스마트 지갑이다. 위치 추적은 물론 카메라, 인터넷, 스마트폰 충전까지 지원하는 넘사벽 퍼포먼스를 자랑한다. Volterman 사에서 제작한 이 지갑은 보조배터리가 내장돼 있어서 무선 충전/유선 충전 모두 가능하며, GPS를 통해 분실해도 실시간 위치 추적을 할 수 있다.
▲ Volterman 스마트지갑 리뷰 영상
블루투스 연동 기능을 통해 지갑과 스마트폰이 일정 거리 이상 벌어지면 알람을 울린다. 지갑은 물론 역으로 스마트폰 분실 시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이 지갑에는 카메라가 부착돼 있는데, 스마트폰과 거리가 멀어지면 분실이라 판단, 이후 지갑을 습득해 열면 카메라가 자동으로 사진을 찍어서 주인의 스마트폰으로 전송해준다.
▲ 여행 시 유용하다
만약 지갑을 분실하고, 누군가 지갑을 주워 사진까지 확인했는데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즉시 경찰서에 신고하자. 이 외에 핫스팟 기능을 지원해 별도의 요금을 지불하면 어디서든 인터넷이 가능하다. 가격은 172달러(한화 약 17만 2,885원).
1위
60대 이상에게 지갑은? 지갑, 20~40대에게는 패션! 세대별 단상
휴대폰이 대중화된 이후 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본연의 역할보다는 패션, 액세서리의 역할이 높아졌다. 가까운 미래에는 지갑이 그 수순을 밟게 될 듯하다. 20~40대를 중심으로 간편결제서비스가 고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간편결제 서비스란 신용카드 등의 정보를 모바일 기기에 저장해두고, 결제 시 비밀번호나 지문 인식 등을 통해 금액을 지불하는 전자결제 서비스를 말한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네이버페이 등이 이에 속한다.
▲ 2018년 국내 간편결제 시장은 자그마치 80조1,453억이었다 (출처: 픽사베이)
자, 잠깐 지루한 설명충으로 변신하겠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2018년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편결제(29.6%), 휴대폰 소액결제(28.3%), 간편송금(23.5%), 앱카드(15.3%) 순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기준 일 평균 거래금액은 1,260억 원으로 2017년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으며 이용 건수도 2배 증가, 시장 규모는 80조1,453억으로 2016년 대비 7배 이상 성장했다. 이 정도로 간편결제서비스 시장이 커졌다.
▲ 스마트폰 하나면 결제, 적립, 교통카드까지 다 되는데 지갑을 굳이? (출처: 픽사베이)
지불수단인 앱카드 외에도 각종 멤버십 카드와 쿠폰도 앱으로 관리되고 있으니 굳이 예전처럼 지갑에 이 카드, 저 카드 번잡하게 넣어 다닐 필요도 없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러한 간편결제서비스 사용 비율은 20~40대에 집중돼 있다. 20~40대는 34% 이상이 간편결제서비스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것과 달리 50대는 15.7%, 60대는 4.1%, 70대는 1.7%라 답했다.
▲ 20년 후 지갑의 위치는 어떻게 될까? (출처: 픽사베이)
실물 카드와 현금 사용률이 높은 50대 이상의 어른들에게 지갑은 여전히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 중인 지갑일 것이다. 그러나 간편결제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 20~40대가 지천명을 넘길 때부터 지갑은 시계처럼 완벽한 패션 아이템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글, 사진 / 다나와 오미정 (sagajimomo@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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