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D 라이젠 프로세서에 대한 관심이 계속 늘고 있다. AMD 프로세서의 장점은 일단 소켓 호환성에 있다. 기본적으로 라이젠 1세대부터 AM4 규격을 채택했고, 이후 3세대까지 AM4 규격을 이어가고 있다. 같은 소켓에서 호환이 안 되는 문제도 없었다. 1세대 라이젠 프로세서와 함께 출시한 메인보드들도 바이오스 업데이트만 잘 진행했다면 3세대까지 큰 무리 없이 사용 가능하다. 그런데...
AMD에는 '무'와 관련된 슬픈 전설이 하나 있다 : 무뽑기 포비아
▲ 요즘 AMD 시스템에 관심을 갖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AMD에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하나 있다
엄친아 같은 AMD 프로세서의 고질병. 바로 ‘무 뽑기 포비아’다. 무 뽑기 공포증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컴퓨터 부품에 난데 없이 '무 뽑기'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기 막힌 비유다.
무 뽑기란 CPU 쿨러와 CPU가 서멀 페이스트로 붙어있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해프닝인데, 쉽게 말해서 "CPU 쿨러가 움직일 때, 쿨러에 딱 붙어있던 CPU가 함께 움직이다가 소켓에서 뽑혀버리는 현상"이다. 아주 시원-스럽게 뽑히기 때문에 마치 밭에서 무를 뽑는 것과 같다고 해서 무 뽑기 현상이라고 부른다.
무 뽑기 현상이 생겨도 아무 문제 없이 깔끔하게 뽑히면(?) 해프닝으로 끝나지만, 운이 없으면 CPU가 그자리에서 사망할 수도 있는 치명적인 제품 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당연히 사용자 과실에 의한 손상이므로 A/S조차 안 되기 때문에 사용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 PC 업계의 화타로 불리는 유튜브 채널 ITSystem 의 무뽑기 CPU 수리영상, 보통의 경우 저정도 손상은 어지간한 수리 업체에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수리 접수도 안 받는다.
무 뽑기는 CPU쿨러-서멀그리스-CPU-메인보드 소켓의 총체적인 문제다
무뽑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CPU쿨러-CPU-메인보드 소켓을 결합하는 구조에 있다. 먼저 CPU 위에 열전도를 원활히 시키기 위해 서멀 페이스트(그리스)를 도포한 다음, 위에 쿨러를 얹으면 프로세서와 쿨러 사이에 장력이 발생한다. 서멀 페이스트가 마치 두 부품을 붙여주는 본드 비슷한 역할을 한달까? 서멀 페이스트가 차갑게 식으면 본드처럼 강력하게 붙어 있다 보니 쿨러 제거 과정에서 프로세서가 쑥 하고 뽑혀버린다.
인텔은 요즘 CPU에서 핀을 다 없애버렸고, 거기에 더해서 CPU가 뽑히지 않도록 눌러주는 금속 커버까지 메인보드 제조사에 요구하기 때문에 인텔 CPU는 무뽑기가 발생하지 않는데, AMD는 CPU에 핀도 있고, CPU를 눌러주는 커버도 없기 때문에 무뽑기가 여전히 발생하는 것.
그래서 AMD CPU는 제거 과정에서 사용자가 실수하면 대참사로 이어진다. 프로세서의 핀이 휘거나 부러지는 일이 대표적. 휘면 그나마 면도날 등으로 다시 펴서 쓸 수 있지만 부러지면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전문 업체에 의뢰해 붙이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프로세서를 포기해야 한다.
무 뽑기의 대표 유형 두 가지
무뽑기 유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CPU 쿨러를 장착 해제하다가 쿨러에 붙어있던 CPU가 쑥 뽑혀 나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완제품 상태에서 본체를 옮기다가 외부 충격에 의해 쿨러와 프로세서가 뽑히는 것이다.
① CPU 쿨러 제거하던 중에 무 뽑기 당하는 경우
이건 AMD 프로세서 사용자들과 PC 커뮤니티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현상이다. 솔직히 말하면 잘 대처하지 않으면 피할 수 없다. 오래 전부터 AMD 프로세서를 애용(?)해 왔다면 어느 정도 인지하고 피하기 위한 시도를 하겠지만, 처음 AMD를 접하는 초심자들은 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부분 당황하게 된다. 문제는 당황하는 과정에서 프로세서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
▲ 필자도 혹시나 해서 CPU 쿨러를 제거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쿨러만 제거하려고 했는데 시원-하게 무를 뽑아버렸다. 핀 손상 없이 깔끔하게 뽑아서 문제는 없었지만, 만약 뽑는 도중에 CPU가 떨어진다면? 즉시 CPU 사망이다
위 사진을 보자. 필자가 CPU의 목숨을 걸고 촬영한 무뽑기 현장이다. 시원-하게 뽑아버렸다. 서멀 페이스트가 CPU와 쿨러 사이에서 마치 접착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고, 덕분에 쿨러에 찰싹 붙어 있던 CPU가 쿨러 제거 과정에서 쿨러와 함께 뽑혀 나왔다. 무 뽑기 현상은 어떤 쿨러를 사용해도 동일하게 발생한다. CPU-서멀페이스트-CPU쿨러 사이에서 발생하는 장력이 프로세서를 고정하는 소켓보다 더 강하면 뽑힌다.
중요한 것은, 저렇게 깔끔하게 붙어서 뽑히면 그나마 다행인데, 힘을 주어 뽑다가 탈출각을 잘못 계산하거나, 손이 떨려서(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뽑는 도중에 각이 틀어지거나, 혹은 잘 뽑았는데(??) 들어올리는 도중에 CPU가 아래로 뛰어내리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니 AMD CPU 쿨러를 제거할 때는 절대 안정된 상태에서 침착하게 천천히 야간 수색을 하는 느낌으로 제거하자. CPU의 손상은 경제적, 업무적, 유흥적 손실로 이어진다.
② 완제품 본체가 이동 중에 / 또는 외부 충격을 받으면 뽑힐 수 있다
2번 유형은 일반 유저들에게는 약간 생소하지만, 부품 업계나 조립 업체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유형이다.
▲ 쿨러를 약하게 고정하면 이동 중 충격에 의해 좌우로 들썩거리기 때문에 오토 무뽑기가 시전될 수 있다
쿨러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메인보드와 쿨러 사이에 유격이 생긴다. 유격이 있는 상태에서 택배로 본체를 배송하거나, 혹은 집에서 사용하던 중에 발, 청소기 등에 걷어차이면 그 충격에 쿨러가 좌우로 들썩거린다. 이 과정에서 CPU까지 같이 뽑혀버리는 경우가 있다.
스프링 나사와 클립형 쿨러도 이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스프링 나사, 클립으로 고정하는 경우 나사로 완전히 박는 방식에 비해 약간씩 '띠용 띠용' 하는 탄성이 생길 수 있는데, 이 상태에서 충격을 받으면 쿨러가 '띠용 띠용' 하면서 탄성을 받아 움직이고, 쿨러에 붙어있던 CPU도 이때 뽑힐 수 있다.
무 뽑기 2번 유형은 CPU가 완전히 쑤욱하고 뽑히는 건 아니다. 쿨러가 좌우로 들썩거리는 움직임에 CPU가 함께 움직이다가 뽑히기 때문에 조금만 뽑힌다. 그래서 겉으로는 티가 거의 안 날 수 있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잘 되던 본체가 발에 툭 차인 뒤에 갑자기 부팅이 안 된다면 무뽑기 2번을 의심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CPU쿨러와 CPU를 분해한 뒤 다시 재장착하면 부팅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CPU가 약간 뽑힌 뒤에도 계속 충격을 받으면 CPU 핀이 메인보드 소켓과 부비부비 하기 때문에 CPU가 파손될 수 있다. 택배로 본체를 보내면 이런 문제가 쉽게 발생한다. PC 조립 업체에 AMD CPU + 사제 쿨러로 조립을 요청하면 조립 배송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무뽑기 2번 유형 때문이다. 완본체 배송 도중에 CPU 무 뽑기로 손해를 본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무 뽑기, 너무 무섭다...예방하는 방법이 있을까?
안 당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AMD CPU와 메인보드의 결합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무 뽑기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현재로써는 우리의 행동에 변화를 줘서 최악의 상황을 막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①번 유형의 예방법
쿨러를 분해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무뽑기 현상은 우리가 조금만 침착해지면 쉽게 막아낼 수 있다. 방법은 이렇다. 일단 쿨러를 분리하기 전에 PC를 한 번 켠다. 평소 즐기던 게임 혹은 고부하 작업을 살짝 실행한다. CPU가 열 받으면 쿨러와 CPU 사이에 도포되어 있는 서멀 페이스트가 부드러워진다. 서멀이 차가운 상태에서는 굳거나 혹은 점성이 높아서 무 뽑기에 큰 역할을 하는데, 열 받아서 부드러워지면 CPU를 뽑을 정도의 장력이 안 생겨서 무 뽑기를 예방할 수 있다.
▲ 쿨러 제거할 때도 위에서 살짝 힘주어 누른 후, 쿨러를 좌우로 틀어가며 분리해야 그나마 안전하다
그리고 쿨러를 제거할 때, 그냥 위로 당기듯 뽑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쿨러를 분리할 때, 쿨러를 살짝 누르면서 좌우로 비틀어준다. 정확히 쿨러를 위에서 눌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프로세서의 손상을 억제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쿨러 분리 전, 가급적 메인보드 하단 지지대는 제거해 두는 것이 좋다
포인트는 비틀면서 뽑으면 안 된다는 점. 우선 쿨러를 비틀어가면서 서멀이 뻑뻑한지 아닌지를 판단한 다음, 움직임이 부드럽다면 위로 천천히 뽑아낸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신중하게 진행하자. 아,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만약 기본 제공되는 쿨러나 나사 조립형이라면 가급적 하단의 지지대를 분리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나사가 지지대에 간섭을 받을 수 있다.
②번 유형의 예방법
방심하지 말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쿨러를 조립하자. 클립형 제품이라면 고정이 잘 이뤄졌는지 확인해 보고, 조립 후에도 본체를 흔들거나 충격을 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사형이라면 저항이 제법 단단하게 발생할 정도로 잘 조이자. 특히 스프링 방식의 나사는 살짝 조이면 쿨러가 쉽게 흔들리므로 주의하자. 다만, 제품에 따라 나사가 길게 만들어진 경우 너무 강하게 조이면 프로세서와 메인보드 소켓이 손상될 수도 있으니 정도를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또 다른 방법은 처음부터 무뽑기를 방지하는 쿨러를 선택하면 된다. 현재 시판 중인 쿨러 중에는 ‘AMD 무 뽑기 방지 키트'를 제공하는 제품들이 있다. 스프링 나사나 클립으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나사로 쿨러를 고정하는데, 메인보드와 쿨러 사이에 무 뽑기 방지 가이드를 덧대어서 빈 공간을 없애는 것이 포인트다. 이런 방식은 나사만 잘 조였다면 쿨러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 충격에 의해 쿨러가 분리되는 문제는 답이 없다. 그냥 정석대로 잘 조립하는 수 밖에...
무 뽑기 막아주는 쿨러는 이런 형태다
무 뽑기 2번 유형을 막아주는 쿨러의 예를 들면 에어로쿨 사일론(AEROCOOL Cylon) 4F를 들 수 있다. 무 뽑기 현상을 막아주는 가이드를 제공한다고 광고하는 제품이다. 이 제품으로 조립하면 적어도 앞서 언급한 2번 유형은 막을 수 있다.
▲ 별 것 아니게 보이는 흰색 플라스틱 가이드가 무뽑기 방지킷의 핵심이다
타워형 공랭 쿨러로 네모 반듯한 아머로 감싼 외형과 RGB LED가 있어서 이미 시장에서 반응이 나쁘지 않은 쿨러다. 아무튼 성능도 성능이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앞서 언급한 무 뽑기 증상 해소다. 에어로쿨 유통사인 얼티메이크 PC에 따르면, 제품에 무 뽑기 방지 키트를 제공한 이후, 조립 업체의 완본체 배송 과정에서 CPU 손상이 전혀 없었다고(0건) 한다.
AMD 관계자가 최근 자체적으로 주요 CPU 쿨러의 무 뽑기 (2번 유형)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이 제품은 방어에 성공했다고. 단, 누누히 강조하지만 1번 유형의 무 뽑기(쿨러 제거하다가 뽑히는 경우)는 이런 쿨러도 방어할 수 없다. 그건 AMD 본사와 메인보드 제조사가 뭔가 안전장치를 마련해 줄 때까지는 우리가 조심하는 수 밖에 없겠다.
기획 편집 송기윤 iamsong@danawa.com
글 사진 강형석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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