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프라이어, 수증기 토스터, 멀티쿠커, 와플메이커 등 주방 가전의 트렌드는 계속 변화하고 있다. 요즘엔 어떤 재료든지 고급 레스토랑과 같이 부드러운 식감을 내준다는 수비드 머신이 대세라고 한다. TV 예능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수비드 머신이 그야말로 핫 템! 하지만 이제 막 유행을 탄지라 국내 제품이 적고 대부분 해외 제품이라는 게 단점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밥상 차리기 달인이 되어버린 박장금 씨(30세, 나름 트렌디세터)도 수비드 머신에 빠지고 말았다. 집에서 어떻게 구워도 그 맛이 나지 않던 스테이크가 솜사탕처럼 녹아내린다는 유튜버의 증언이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를 본 그녀의 친구 김똥손 씨(30세, 한강라면 전문가)는 “그까이꺼 밥통으로 대충 만들면 되지 않아? 꼭 요리 못하는 애들이 장비 탓하더라”라며 박장금을 비웃었다.
자존심이 많이 상한 박장금은 김똥손에게 “말이 쉽지 네가 만들어봐” 하며 그녀에게 요리 대결을신청했는데…
우선 수비드가 뭔지부터 알아보자. 수비드란?
▲ 저온의 물이 순환하면서 음식을 골고루 익혀준다(출처: 이류시)
김똥손은 살짝 불안해졌다. 큰소리는 쳤다만 사실 수비드가 뭔지 1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녀가 찾아본 바로는 수비드란 프랑스어로 Sous(~아래에) vide(진공)이란 뜻이다. 여기에서 진공이 중요한 이유는 비닐 속에 모든 공기를 빼줌으로써 식재료 전면적에 열이 닿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온으로 오랜 시간 조리하여 고온 조리보다 수분이 빠지지 않아 육즙이 살아있고 촉촉함을 그대로 유지한다. 특히 육류의 경우 육질의 수축이 적어 부드러운 질감을 낼 수 있으며, 채소 또한 파근파근한 식감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영양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도 재료가 낮은 온도에서 고유의 수분을 유지한 상태로 익기 때문에 고온 조리보다 영양소의 손실이 적다. 최적의 온도와 조리 시간만 알고 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 누구나 같은 결과를 낼 수 있는 점에서 요린이들도 충분히 도전해 볼만하다.
하지만 수비드는 적절히 낮은 온도를 장시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문적인 조리 도구가 필요하다. 괜히 큰소리쳤던 김똥손은 급 후회하며 밥통으로 수비드 하는 방법을 서치하기 시작했다.
수비드 통닭 조리 시작!
그들의 요리 배틀 종목은 수비드 통닭이다. 수비드로 오랜 시간 조리를 하더라도 닭의 크기가 너무 클 경우 안쪽까지 안 익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작은 영계 닭을 사용하였다. 닭은 쌀뜨물에 담가 잡내를 없애고, 풍미를 위해 마리네이드를 해주었다. 다양한 야채를 함께 넣어도 좋고 향신료나 소금 후추만 뿌려도 무방하다. 밑간만 하기엔 아쉬워 다진 마늘을 넣어 알싸함을 더해주었다.
Tip. 닭 잡내 없애는 방법
- 닭 날개 부분의 끝부분 1~2cm와 꽁지 부분을 제거해준다.
- 우유, 맥주, 쌀뜨물 등에 2-30분 담가준다.
박장금은 진공 머신이 포함된 제품이 탐났지만 통장 사정을 고려하여 수비드 단일 제품을 구매하였다. 꼭 진공 머신이 없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밀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진공펌프 지퍼백 등 다양한 지퍼백이 잘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빨대로 비닐팩 속 공기를 빨아들이는, 다소 원시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공기 빨아들이다가 닭 비린내에 토할 뻔했다는 건 안 비밀.
참고로 지퍼백을 사용할 경우엔 66℃ 이상의 온도 상승을 대비해 BPA-FREE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맛도 맛이지만 오래 살고 싶다면 환경호르몬으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야 하기 때문. 이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으니 미리 쟁여 두도록 하자.
☆선☆수☆입☆장☆
>> 김똥손네 보온 밥솥 등.장.
제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온 온도 설정 기능이 있는 밥통이 있다. 보온 온도 설정 기능이 탑재된 제품은 보온 온도를 55°C~60°C를 맞추어 주면 수비드 머신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찬물에 고기를 넣고 보온을 누르면 가열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따뜻한 물을 넣어주거나 ‘보온 재 가열’ 버튼을 눌러 초반에 온도를 올려주어야 한다.
>> 박장금네 수비드 머신 등.장.
요리는 장비 빨이지! 수비드처럼 섬세한 조리는 수비드 머신으로 퀄리티가 완성되는 법. 수비드 머신의 경우 단순히 뜨거운 물에 고기를 담가 두는 게 아닌 물을 순환하는 방식을 통해 컨테이너 안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핸디형의 경우 60L 수조까지 커버 가능하며 8L의 물을 꾸준하게 순환시킨다. (제품마다 스펙이 다를 수 있음) 박장금이 사용한 제품에는 wifi를 통해 어플과 연결하는 기능이 있다. 다양한 레시피의 적정 온도와 시간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실시간으로 기계와 휴대폰을 페어링 하여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유튜브나 검색의 경우 조리법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수치를 제시해 주는 것이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지금은 조리 중 ♪
>> 김똥손네 보온 밥솥은 지 멋대로 온도 조절 중...?
6시간이 걸리는 통닭 수비드. 밥통만 믿고 보온을 시작했으나 혹여 자는 사이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할까 봐 신경 쓰여 잠 못 이루는 김똥손. 결국 한 시간마다 알람을 맞추어서 온도를 확인하고 있다.
처음엔 65°C가 나오길래 만족스러웠지만, 한 시간 뒤에는 점점 올라가더니 76°C를 찍어버리는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뚜껑을 열어서 식혀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일단 놔두기로 한다. 수비드 머신을 켜놓고 잠든 박장금을 보며 장비가 최고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오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 박장금은 수비드 머신만 믿고 꿀잠 예약
냄비에 물을 받고 수비드 머신 설치한 뒤 준비한 재료만 넣으니 벌써 끝나버린 박장금. 게다가 이 수비드 머신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과 페어링 되어 진행 과정을 누워서 확인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와이파이 기능 지원은 제품마다 차이가 있음)… 오랜 시간 조리해야 하는 수비드지만 물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주방까지 달려갈 필요가 없었다.
과연 그 결과는?
조리가 끝나고 드디어 닭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만 보았을 때 큰 차이가 없었는데 봉투에서 꺼내어보니 빠져나온 육즙의 양이 달랐다. 수비드 기계보다 밥통 조리 닭에서 흘러나온 육즙이 더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제품 모두 6시간을 조리했지만 육질의 색감이 선홍 빛을 돌아 덜 익은 건가 싶었는데 맛을 보니 완벽하게 익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겉모습이 비슷하니 더욱 자신만만해진 김똥손은 “내 말이 맞지 않아? 비싼 돈 주고 수비드 머신 살 필요 있어? 밥통만 있으면 다 해결되지?”라며 얄밉게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수비드는 먹어봐야 정확히 알 수 있다며 김똥손을 뒤로한 채 신중하게 닭을 분해하기 시작하는 박장금. 다리 살의 경우 밥통에서 만들어진 통닭도 꽤나 부드럽게 찢어짐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닭 가슴살에서 결 따라 찢어지는 질감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려 김똥손에게 티는 안 냈지만 승리를 예감했다.
냉정한 시식단의 평가
박장금과 김똥손 모두 긴장하는 가운데 냉정하게 평가해 줄 퇴근하고 돌아온 박장금의 호적 메이트를 테이블에 앉혔다. 두 닭을 식탁 위에 놓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부탁하였다. 호적메이트는 닭의 빨간 부분을 보며 덜 익은 걸 주는 게 아니냐며 미심쩍어 했다. 이것은 ‘핑킹 현상’으로 닭고기의 근육 세포 내에 존재하는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이 다 익었음에도 불구하고 덜 익은 것처럼 붉은빛 현상을 띄는 것이라고 박장금은 자신 있게 설명하였다.
그녀의 신중한 평가에 따르면 두 닭 모두 향신료와 소금, 다진 마늘을 듬뿍 묻혔기 때문에 잡내는 따로 없었고 진한 마늘의 향이 무척 강하다고 했다. 낮은 온도로 조리하여 냄새가 날 줄 알았는데 닭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덧붙여 두 닭 모두 장시간 은근하게 조리되었기 때문에 마리네이드 한 재료가 속까지 깊숙이 들어가 간이 쏙 베였다고 한다.
식감은 밥솥 통닭의 경우 닭다리 살이 쫄깃하다고 느껴졌지만 이미 조리 시 육즙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닭 가슴살은 퍽퍽함이 가시지 않았다. 쫄깃함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밥솥 통닭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장시간 수비드로 조리했다는 걸 감안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로는 아쉽다고 전했다.
수비드 통닭의 경우 육즙은 지켰고 기름기는 쫙 빠져 건강과 맛을 동시에 지켰다고 극찬하였다. 닭 가슴살 식감의 차이는 바로 육즙. 수비드 머신의 통닭은 꽉 찬 육즙으로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고 한다.
종합적으로 닭 가슴살 이외에 극명한 차이는 없었지만 결국 맛뿐만 아니라 조리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에 호적메이트는 박장금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비드 조리가 될지 안될지 불안에 떨 필요 없이 수비드 머신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위와 같은 결과에 밤새 밥통 옆을 지킨 정성이 와르르 무너져 마음이 쓰린 김똥손. 졌지만 잘 싸웠다 생각하며 닭 다리를 든 채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그리하여 결론,
수비드 조리에는 어떤 조리도구가 좋은가
새로운 제품을 사지 않더라고 비슷한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또는 조리 빈도가 많지 않다면 가정에 있는 가전을 활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수비드같이 정확한 환경 속에서 조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그에 맞게 기능이 설계된 머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특정 제품의 경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하여 재료 특성에 맞는 온도와 조리시간을 조정하고 스마트하게 컨트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밥통 수비드의 경우 장시간 요리를 해야 하는 특성이 있어 본래 역할의 부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감안해야 한다.
수비드 머신을 구매의 고민하고 있다면 활용도에 따라 진공포장기, 컨테이너 등이 포함된 올 인원 상품, 와이파이 기능을 탑재한 수비드 머신, 저렴한 수비드 머신 등 다양한 옵션이 있으니 꼼꼼하게 비교 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