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이어 2021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낭보가 들려왔다.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미나리'에 순자로 열연한 윤여정이 수상한 것이다. 작년 '기생충'도 수상하지 못 했던 배우 부문의 수상이라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2019년 기준 대한민국 영화 시장은 약 16억 달러로 4위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북미와 중국 시장은 비교할 수 없는 자본과 역사를 자랑하기 때문에 당장 어깨를 나란히 할 순 없다. 하지만 세계 3위 수준의 일본 영화 시장과는 약 8억 달러 정도의 규모 차이밖에 나지 않기 때문에 대한민국 영화 시장이 더 높은 순위의 시장 규모로 올라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 (사진: Oscars.org)
영화시장이 발전하려면 물론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자본의 쓰임이 무의미하게 영화가 저질로 만들어지거나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끌지 못 하면 그 영화시장의 거품은 금방 꺼질 것이다.
대한민국 영화시장은 자본보다는 완성도와 예술성으로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훔쳐왔다. 세계 영화 시장에 당당히 나서 대한민국 영화계의 본질적인 힘을 보여준 영화들을 다시 감상해보며 '기생충'에 이은 '미나리'의 쾌거에 계속해서 취해보자.
씨받이
세계 3대 영화제는 칸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 그리고 베니스 국제 영화제다. 1932년 시작돼 3대 영화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그리고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영화제라 평가받는다. 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1987년 배우 강수연이 '씨받이'로 아시아 배우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씨받이'는 조선시대 양반 가문에서 왕왕 들였던 씨받이 여인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로지 아이만을 원하는 양반 가문, 아이를 낳아야 하지만 아이를 낳고도 아이의 곁에 머물 수 없는 씨받이 여인의 운명,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과 한을 임권택 감독은 효과적으로 필름 안에 담았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신한필름)
씨받이. 2021년 현재 우리나라 정서상으로도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다. 그런데 어떻게 1987년의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단들은 영화 국가의 전통과 당시 시대상을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그 일환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작품 동기도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의미를 더해주는 강수연의 연기에도 찬사를 보냈다.
'씨받이'는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영화의 첫 시발점이 됐으며, '씨받이' 이후로 강수연은 대한민국 영화계를 얼굴이 됐으며 이성민, 경수진, 김하늘에게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영감을 준 선배 뮤즈로도 존재했다.
살인의 추억
2003년은 한국영화계에 있어 다시없을 황금기라 불린다. 대한민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천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한 '실미도', 한국형 공포영화의 정석이라 불리는 '장화, 홍련', 외계인을 상대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한국영화의 표현력을 확장시킨 '지구를 지켜라!', 코믹과 역사와 전쟁을 적절히 섞어 한국전쟁영화의 한 획을 그은 '황산벌' 등 2003년의 한국영화 목록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2003년의 한국영화계에 정점을 찍은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다.
'살인의 추억'은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1980년대 후반부 시대극이자 형사물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심리 그리고 육탄 추격전에서 관객들은 200% 인물들에 몰입하게 되고 그 안에서 달리 펼쳐지는 여러 사건들에 비극을 같이 느낀다. 형사물과 시대극을 적절히 녹여 결국 한국형 스릴러를 전달하는 봉준호 감독의 연출에 2003년 영화계는 감탄을 금치 못 했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싸이더스, CJ 엔터테인먼트)
'살인의 추억'이 세계 영화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살인의 추억’이 세계적인 영화가 된 이유는, 세계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영화인들이 항상 꼽는 명화기 때문이다. 특히, '킬 빌', '펄프 픽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등으로 유명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자신만의 최고 영화 20개 중에 '살인의 추억'을 포함시켰다. 미국 영화 전문 매체 시네마스코프도 세계 2000년대 최고 영화 중 9위로 선정했다. 시네마홀릭, 플레이리스트, 테이스트 오브 시네마, 인디와이어는 21세기 최고 범죄영화 1위로 선정했다.
좋은 영화는 시대와 문화를 넘나 든다고 했던가? 1986년 화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한국영화를 세계 영화인들이 극찬하다니. 예술엔 경계가 없는 것이 맞다.
올드보이
2003년의 한국영화계, 그 찬란했던 한 해를 빛냈던 영화가 하나 더 있다. 부정할 수 없는 박찬욱 감독의 제1의 작품, '올드보이'다. 비록 개봉 당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현재 대한민국 영화사에 '올드보이'가 가지는 존재감은 앞서 짚어본 '살인의 추억'에 버금가면 버금갔지 그 보다 못 하진 않을 것이다.
'올드보이'의 큰 서사는 비교적 이해하기 쉽다. 15년 간 갇혔던 오대수가 풀려나 복수의 대상을 찾아 복수하려 하지만 오히려 오대수가 이우진의 복수 대상이었다는 것. 이 큰 틀의 서사 안에서 현재와 과거의 적절한 영상 배치, 오대수·이우진·미도 세 인물을 단번에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 모든 관계의 파멸을 예고하는 반전까지. 올드보이는 '영화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영화 근본적 질문을 명확히 영화로 답해주는 듯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에그필름, 쇼이스트, CJ 엔터테인먼트)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 영화제에 '올드보이'는 처음엔 비경쟁 작품으로 초청받았다. 하지만 이후 경쟁 작품으로 옮겨갔고 그 안에서 결국 심사위원 대상이라는 쾌거를 이룩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BBC, IMDb 등의 여러 주요 외신에서도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TOP 100에 선정하는 등 수상으로도 평가로도 '올드보이'는 대한민국 영화계의 당당한 대표작이 됐다.
약 10년 뒤, 올드보이는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는 등 세계적 위용을 '올드보이'는 여전히 떨치고 있다. 외국에서 대한민국 영화 시장을 떠올릴 때 박찬욱을 떠올린다. 그리고 '올드보이'를 떠올린다. 이는 당연한 순서가 됐다.
밀양
이창동 감독이 연출하고 출연 배우에는 전도연과 송강호. 과연 이 영화가 실패할 수 있을까? 혹은 이름값만 높은 '투머치' 영화가 되는 건 아닐까? 역시나 기대만큼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흥행의 면에서가 아닌 작품성의 면에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두 가지에 놀란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이름값 치고는 그리 역할이 크지 않은데? 송강호가 거의 조연급 비중인데? 그리고 전도연의 연기력에. 전도연은 아들을 유괴로 잃고 그 범인을 마주하면서 범인의 뻔뻔한 태도에 결국 이성과 혼을 상실해가는 이신애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그야말로 전도연이 아니라면 그 어느 배우도 감당하지 못 할 연기였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파인 하우스 필름, 시네마 서비스)
전도연의 미친 연기력에 세계도 역시 감명받았던 것일까? 제60회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은 당당히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 '칸의 여왕'이 됐다. 그리고 2014년 칸 영화제는 전도연을 심사위원으로 위촉도 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칸의 여왕'이라 불려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반드시 '밀양'은 봐야 한다. '밀양'은 본다면 반응은 달라질 것이다. '과연 얼마나 연기를 잘 했길래 전도연이 '칸의 여왕'이라는 거야?'라는 의구심은 반드시 ''칸의 여왕' 될만하네'라는 인정의 감정으로. 세계로 나아갈 말했던 전도연과 '밀양'이었다.
기생충
'설국열차'와 '옥자'로 봉준호 감독은 외국 자본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차기작을 국내로 선회에 국내 자본과 국내 배우들이 중심이 되는 '한국영화'를 연출하려 했다. 당시에 그 작품의 이름이 알려졌다. '기생충'.
'기생충'은 그리 상업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영화다. 대중들을 홀리기 위해 인위적인 로맨스가 신파도 없었다. 오히려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상징적 미장센들이 영화에 가득했다. 하지만 그 연출들이 과하게 넘치지 않았고 영화에 알맞게 그리고 인물들의 상황에 딱 들어맞게 위치해서 관객들도 쉽게 느끼고 전달받을 수 있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바른손이앤에이, CJ 엔터테인먼트)
'기생충'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세계는 '기생충'을 주목했고 200여 개가 넘는 상을 '기생충'에 몰아주었다. 특히 '기생충'은 제77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혹시 아카데미까지 정복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솔솔 피어올랐다. 하지만 2020년 초반 당시에는 '1917'이라는 세계 전쟁영화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 등장했던 터라 한국영화 '기생충'의 수상은 다소 열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달랐다. '기생충'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 각본상, 감독상 그리고 대망의 작품상까지 수상해 그야말로 세계를 정복한 '기생충'이 됐다. 꿈만 같았다. 합성인 줄 알았다. 아카데미 시상식 마지막 수상 무대에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등 우리나라 대표 영화인들이 당당히 서있다니.
아직도 제인 폰다의 시상 멘트가 선명하게 들린다. "The Oscar Goes to 'Parasite'!" 그리고 아직도 이동진 평론가의 괴성 역시 선명하게 들린다.(이동진 평론가의 괴성은 굳이 기술하진 않겠다.)
미나리
'기생충'이 가져다준 낭보에 취했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그 바통을 이어받아 세계 영화계에 대한민국 영화의 힘을 이어 떨친 작품이 탄생했다. '기생충' 그 다음은 '미나리'였다.
낯선 미국 땅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삶을 살아가야 하는 한인 가족의 이야기. 그 안에서 한국정 정서를 여럿 삽입해 영화로 의미 있게 담아냈다. 특히나 윤여정 배우가 선보인 '할머니 연기'는 우리도 언젠가 손녀·손자 때 느껴왔던 할머니의 정을 느끼게 해 줬다. 그 한국적 정은 역시 문화권을 막론하고 퍼져갔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판시네마, A24, 플랜B)
제36회 선댄스 영화제를 시작으로 ‘미나리’는 각종 국제 영화제의 수상을 휩쓸어갔다. 2021년 4월 현재까지도 '미나리'의 수상은 이젠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결국 '미나리'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고 윤여정 배우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 '기생충'에 이은 한국영화 아카데미 시상식 낭보를 올해도 이어주었다.
역시 꿈만 같았다. 한 해를 빛낸 세계 영화인들이 윤여정 배우의 수상소감을 집중하고 있었다. 단순히 윤여정 배우만을 찬양하진 않을 것이다. 윤여정 배우가 그리고 '미나리'에서 열연한 배우들이 태어난 대한민국 영화 시장은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지 연계적으로 사고할 것이다. 이것이 그동안 세계 영화계로 진격해나간 한국영화들이 가지는 공통적 의의다.
명실상부 영화 강국, 대한민국
어느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은 명실상부 영화 강국이다. 할리우드처럼 최첨단 영화 기술로 당연하게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훔치지 않는다. 중국 영화계처럼 범접할 수 없는 자본으로 탈인간적 규모의 영화를 만들어내 놀라움을 자아내진 않는다. 대한민국 영화계의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니다.
감독의 감각에서 비롯된 연출력, 배우 고유의 능력에서 발휘되는 연기력,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써 내려가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등 대한민국 영화계는 돈과 기술 범주 밖의 경쟁력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살아남고 있는 것이다. 부디 대한민국 영화계만이 선보일 수 있는 매력이 흥건한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 세계 영화의 중심을 대한민국으로 옮겨올 수 있는 미래가 다가오기를 희망해본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조재형 기자/ulsu@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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