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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한국영화 그리고 민주화운동

2021.05.14. 15: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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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중순이다. 5월은 정치적인 달이다. 민주화운동이 있었고 2명의 대통령이 서거했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화운동이 어땠는지, 2명의 대통령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사회 전반에서 다룬다. 이러한 사회적 기류에 한국영화계도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를 5월에 맞춰 개봉하거나 각종 채널도 민주화운동 소재 영화과 서거한 2명의 대통령 소재 영화 혹은 드라마를 다수 재방영한다. 

시대극은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부문을 막론하고 극예술의 단골 장르였다. 특히, 현재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고 비교적 가까운 역사, 민주화운동이란 소재를 최근 들어 예술계가 표현의 시도를 잇고 있다.

반드시 역사를 교과서로만 배울 필요는 없다. 원활한 정사(正史) 이해를 위해 해당 시기 시대극을 접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 중 하나다. 영화가 온전히 역사 전체를 담을 순 없다. 하지만 차마 교과서가 담지 못 하는 예술적 감동으로 역사 인지의 중요성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먼저 광복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민주화운동에 어떤 큰 물결들이 있었는지 다시 알아보자. 그리고 어떤 영화들이 민주화운동을 효과적으로 담았는지 감상해보자. 가장 정치적이면서 민주화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번 5월에.

민주화운동에 있어 네 번의 큰 물결

4.19 혁명

광복 이후, 휴전선 아래로 남한 단독정부가 들어섰지만 열망과는 별개로 민주주의가 온전히 작동할 리 없었다. 형식적으로라도 민주주의는 가동되는가 싶었지만 이승만은 장기집권을 노렸다. 이러한 이승만의 야심에 대구를 중심으로 학생들은 시위로 항거로 맞섰다. 

▲ (영상: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결국 이승만 정권은 3.15 부정선거를 저지르게 되고 이승만 정권에 대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번져갔다. 특히, 故김주열 열사의 사망으로 4.19 혁명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피의 화요일'이라 불릴 만큼 정부는 군을 동원해 시위를 무력 진압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결국 이승만은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은 몰락했다. 4.19 혁명은 시민의 힘으로 지도자를 교체하는 데 성공한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혁명'이다. 

부마항쟁

시민의 힘으로 부당한 지도자를 교체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것만으로 민주주의 만개를 바랄 순 없었다. 곧이어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독재시대가 시작됐다. 민주주의 파괴, '10월 유신'으로 독재 연장 시도 등으로 다시 한 번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저항정신은 끓어올랐다.

▲ 곽영화 화가의 '부마항쟁도'
▲ 곽영화 화가의 '부마항쟁도'

이번엔 부산과 마산이 주도했다. 부산과 마산에서는 '유신철폐', '독재타도', '언론자유' 등의 구호가 연일 이어졌으며 역시나 박정희 정부는 계엄군을 동원해 무력진압에 나섰다. 규모로 보나 강도로 보나 부마항쟁은 4.19 혁명 이후 최대 항거였으며, 이 사태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박정희 정부는 내분이 일었으며 결국 10.26 사태까지 이르러 박정희 시대는 종말을 맞았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봄이 오는 줄 알았지만, 전두환 주도 신군부 세력이 정부를 점령해 다시 한 번 독재시대, 군부정권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당시 시민들은 2번의 독재정권을 상대해봤었다. 신군부가 정부를 점령하자마자 1980년 몸을 내던져 저항했다. 특히나 주목할 점은 앞선 민주화운동의 시작은 주로 학생, 지식인 등이었다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이었다는 점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실패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이다. 하지만 현재 시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민주화운동이다.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는 당시 계엄군의 학살 행위, 그 날의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 한 언론, 그 날의 진실을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된 시민들의 반성까지 계속해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돌아보게끔 했다. 이렇게 5.18 광주 민주화운동은 민주화운동 자체의 상징이 됐으며 7년 뒤, 6월 민주 항쟁의 큰 원동력이 됐다.

6월 민주항쟁

1980년 중반 당시 경찰의 위세는 검찰도 한 수 접을 만큼 대단했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고 했던가? 경찰은 무리한 반공수사로 故박종철 열사를 고문치사로 사망케 했다. 그런데도 경찰의 은폐 시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 등으로 전국의 시민들을 다시 분노케 했다. 이에 더해 전두환은 권력 연장을 위한 4.13 호헌조치로 국민들의 민주화 완성을 위한 열망에 불을 붙이고야 말았다.

▲ (사진: 네이버 영화, CJ엔터테인먼트, 우정필름, 영화사 연두)
▲ (사진: 네이버 영화, CJ엔터테인먼트, 우정필름, 영화사 연두)

항쟁의 규모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전국적이었다. 경찰력으로도 대응할 수 없을 만큼 시민들의 항쟁은 거셌고 강했다. 우리는 현재 6월 민주 항쟁이 얻어낸 성과 위에 살고 있다. 이유는 1987년 6월 당시 민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민주화운동이 의미를 낳는 수준에 그쳤다면 6월 민주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수립'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낳았다. 현재 우리가 정치인을 선거로 견제할 수 있게 된 역사가 비로소 6월 민주 항쟁으로 시작됐음을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

꽃잎

1990년대는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을 때다. 어느 누구도 감히 예술적으로 민주화운동을 다뤄볼 생각 조차를 하지 못 했다. 그 본격적인 시작을 희대의 영화감독 장선우가 시도했다. 직접적으로 전면에 드러내진 않았지만 5.18 민주화운동으로 영화의 시작점으로 배치해 민주화운동도 영화의 소재가 충분히 될 수 있음을 알렸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대우시네마)
▲ (사진: 네이버 영화, 대우시네마)

'꽃잎'은 누가 뭐래도 당시 17살 소녀의 몸으로, 지금은 연기와 음악 두 영역을 넘나드는 대체불가의 예술인 이정현의 영화다. 극 중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엄마가 죽어가는 걸 직접 목격한 주인공 소녀는 영화 내내 평가적인 의미에서의 '미친 연기'가 아닌 정말 정신이 나가버린 '미친 모습'이었다. 그 미쳐버린 이유가 영화 중간중간 드러나는데 그 장면들엔 5.18 민주화운동의 참상이 담겨있었다. 그 날의 학살이 얼마나 심했길래, 그 학살은 한 인간의 삶을 이렇게 망쳐버릴 수 있구나라는 것을 장선우 감독은 대중들에게 영화 '꽃잎'으로 전달했다. 그렇게 민주화운동은 서서히 영화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박하사탕

'박하사탕'은 한국영화에 있어 중요한 여러 의미들을 낳았다. 이창동 감독의 부정할 수 없는 대표작이다. 설경구란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설경구 배우의 출세작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는 '박하사탕'이라는 영화를 상징할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허무주의를 느끼게 하는 명대사다. 이렇게 중요한 작품으로 남게 된 '박하사탕' 역시 민주화운동 영화로 분류된다. 왜일까?

▲ (사진: 네이버 영화, CGV 아트하우스, 이스트필름)
▲ (사진: 네이버 영화, CGV 아트하우스, 이스트필름)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인공 김영호는 처음부터 삶의 의미를 잃어간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과거의 기억이 하나 둘 씩 영화에 삽입되는데, 그 회상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종착지에 군복을 입은 김영호가 보인다. 김영호는 1980년 5월 18일 군인이었고 그 날 무고한 여고생을 총살했던 것이다. 무기력한 김영호에서 젊은 날의 김영호를 따르다 결국 영화의 종착지가 그 날로 향했다는 것에 관객들은 충격과 놀라움에 휩싸인다. 김영호도 '꽃잎'의 소녀처럼 그 날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 했던 것이다. 김영호와 소녀가 동일하게 느낀 감정에 대중들도 공감했기에 '꽃잎'에 이어 '박하사탕'까지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화려한 휴가

만약 '꽃잎'와 '박하사탕'이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했음에도 영화 완성도가 허술하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 했다면 민주화운동은 여태까지도 쉽게 소재로 선택받지 못 했을 것이다. 앞선 두 작품이 이룬 견고한 바탕 위에 민주화운동을 간접적 소재로만 사용하지 않고 영화 전체를 아우르며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기획시대)
▲ (사진: 네이버 영화, 기획시대)

'화려한 휴가'는 민주화운동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영화에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담았다. 당시 진압에 투입된 국군의 잔인한 학살, 무력으로라도 저항할 수 밖에 없었던 시민군의 행동,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잘못된 보도를 일삼았던 언론, 전쟁을 방불케 했던 그 날의 광주 모습까지 모두 직접적으로 담았다. 아마 비로소 대중들이 '화려한 휴가'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재고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여러 의미 해석보다 먼저 확인해보는 것이 역사를 공부할 때 중요하다. 그러기엔 '화려한 휴가'로 민주화운동을 처음 접하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26년

요즘엔 원작 없는 영화가 원작 자체인 '오리지널 영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다른 장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로 재탄생시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만화가 강풀은 '아파트',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등으로 많이 영화화된 원작을 제공했다. 특히, 강풀의 대표작 '26년'이 영화화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만화계, 영화계 아니 문화계 전체는 '26년'을 주목하고 기다렸다. 왜? '그 사람'을 단죄하는 내용을 담은 '26년'이었기 때문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청어람, 인벤트 디)
▲ (사진: 네이버 영화, 청어람, 인벤트 디)

파격적인 내용이다. 5월의 광주를 피로 물들게 했으며 전직 대통령이었던 '그 사람'을 암살이란 방법으로 단죄하겠다는 큰 틀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26년'의 영화화 과정은 제작 기간 내내 이슈를 몰고 다녔다. 큰 반향을 일으켰던 웹툰 '26년'에 비해 영화 '26년'은 아쉬움이 컸다. 2시간 15분이란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웹툰 '26년'의 매력을 전부 넣기란 애초에 무리였다. 하지만 '26년'이란 작품의 최소한의 기능은 해냈다. 영화 '26년'을 보고 나면, 1980년 5월 18일 희생된 시민군의 자식들은 어떤 삶을 살아갔을지, 혹은 그 날의 군인들은 후에 어떻게 살아갔을지 예술의 힘을 빌어 웹툰이든 영화든 대중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그 때만이 아닌 민주화운동 이후에 주목했던 '26년'이었다.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만큼 높은 확률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잡은 영화들을 연달아 연출하는 감독도 없을 것이다. 장편 영화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를 시작으로 '의형제', '고지전'까지 액션, 첩보, 전쟁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장훈 감독은 자신의 연출력을 여지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런 장훈 감독이 '고지전' 다음으로 주목했던 소재는 민주화운동이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더 램프, 쇼박스)
▲ (사진: 네이버 영화, 더 램프, 쇼박스)

장훈 감독도 '고지전'에 이어 '택시운전사'로 두 번째 시대극을 연출하게 됐다. 주연배우 송강호 역시 '변호인'에 이어 현대사 영화에 주인공이 됐다. 이 둘의 시너지는 곧 1980년 5월의 광주로 돌아가 시대의 눈이 됐다. 송강호가 연기한 김사복은 민주화운동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던 서울 택시 운전사였지만 참된 보도를 위해 광주로 향하는 피터와 함께 민주화운동의 중심으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 그 때부터 관객의 눈은 곧 김사복의 눈이 됐고 '화려한 휴가'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1980년 5월의 광주를 확인하게 된다. '택시운전사'는 ‘화려한 휴가’와는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 의미를 더했다. 참상을 담은가 동시에 그 날의 진실이 어떻게 세상에 드러났는가에 대한 서사. 

1987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들은 주로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주로 주목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민주화운동 역사에 상징으로 자리매김했어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 한 실패의 역사, 비극의 역사다. 영화 '1987'은 민주화운동 역사에 있어 성공의 역사, 성취의 역사인 6월 민주 항쟁에 주목했다.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연출력은 있으나 흥행이 따라주질 않는 비운의 감독이라 평가받던 장준환 감독은 비교적 흥행에 쉬울 완전 창작 영화가 아닌, 1987년 6월의 역사를 담은 시대극을 차기 연출작으로 택하는 모험수를 두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우정필름, CJ ENM)
▲ (사진: 네이버 영화, 우정필름, CJ ENM)

결과는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영화 '1987'은 사실과 창작을 적절히 배합해 또 하나의 상징적인 민주화운동 영화로 거듭났다. 박종철 고문치사 관련자, 경찰 치안본부, 언론사, 검찰 등 대부분의 인물을 실제 인물로 담아 시대극의 정체성을 잘 살렸다. 그렇다고 온전히 실제 인물들로만 영화를 채운 것이 아니다.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이연희는 창작된 인물이며 이연희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세상에 알려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물 이외에도 1987년으로 당장 돌아간 것만 같은 사실적인 시대 묘사도 '1987'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영화 내내 서서히 고조되는 민주항쟁의 열기가 마지막 연희가 결심하고 버스 위로 올라갔을 때 느껴지는 웅장함은 관객 모두가 그 날의 함성을 물씬 느낄 수 있게 했다. 앞선 5편의 영화가 민주화운동 영화로써 각자의 기능을 했었다면, 영화 '1987'은 그 기능들을 한 데 모아 민주화운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총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앞선 여섯 작품 이외에도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에 한계는 없다.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국가다. 소재에도 표현에도 자유는 보장돼야 하며 민주화운동은 언제든지 선택될 수 있는 역사적 소재다.

모든 예술인들은 소재는 비슷하더라도 결과물마저 비슷하게 만드는 걸 싫어한다. 그것은 예술인의 원초적 본능이다. 소재는 같지만 다른 표현법으로 만들어진다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만약 사실과 다르게 대중들의 정서와 심히 어긋나게 결과물이 나온다면 가차 없이 대중들은 외면할 것이다. 그러니 시도 자체를 두려워 말라.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민주화운동을 영화로 만들어달라.


조재형 기자/ulsu@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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