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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 섬 밥상과 막걸리의 추억

2021.06.01. 12:5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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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는 노년을 보내기 좋은 섬이다
초도는 노년을 보내기 좋은 섬이다

초도를 떠나지 못한 건,
순전히 밥상과 막걸리 그리고 바다 때문이라고.
몽돌이 구르는 해변에 누워 달콤한 핑계를 댔다.

●6년 만에 초도행


초도는 여수에서 뱃길로 77km 거리에 있다. 지도를 펼치면 거금도와 남쪽의 거문도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7.7km2의 면적으로 인천 앞바다의 장봉도보다 좀 더 큰 섬이다.


초도에는 세 개의 마을이 있다. 비교적 큰 섬임에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교통수단은 없다. 섬 가운데 솟아 있는 산상봉 둘레로 일주도로가 놓여 있지만 다른 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주민 전용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민박집에서 보낸 차량을 이용하거나 두 발에 의지해야 한다.

산상봉 중턱에서 바라본 초도 바다
산상봉 중턱에서 바라본 초도 바다

한 무리의 차량이 외지에서 돌아온 주민들과 낚시꾼 무리를 태우고 사라진 후, 대동마을 선착장에 홀로 남겨졌다. 그러고 보니 초도행은 6년 만이다. 그때와 다름없이 이번 여행에서도 텐트가 들어 있는 배낭을 짊어졌다. 변하지 않은 섬의 모습에 조금은 안도했지만, 식사조차 섬에 의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보가 미약하니 일단은 조심스럽다. 먹고 자기 위한 최소한의 식량과 캠핑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이럴 때를 대비해서다.


초도에는 해수욕이 가능한 두 곳의 해변이 있다. 그중 하나가 대풍해변이다. 대동마을과 진막마을 중간에 있는 대풍해변에는 모래 대신 작고 둥근 몽돌이 깔려 있다. 해변 위 초지에 텐트를 치고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귀를 토닥이던 몽돌 구르는 소리에 쉽게 잠들고 간간이 깨었다. 앞바다에 하얗게 쏟아져 내린 달빛도, 그 덕분에 보았다.

●돌미역 마르는 마을


예보보다는 날씨가 좋았다. 세 개 마을을 꼼꼼히 살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모든 짐을 텐트 안에 넣어 놓고 길을 나섰다. 가을 수확을 위해 고추를 심던 아주머니들이 전망이 좋다며 산 중턱의 집 한 채를 가리켰다. 노부부가 사는 집은 온통 꽃으로 둘러싸인, 섬 자락과 바다 끝까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집 뒤편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고양이들의 평화를 깨고 나니 슬그머니 미안해졌다. 섬 트레킹에선 걷다 멈추고, 둘러보다 또 걷는다. 그러다 보면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부지기수다.

봄에 심고 가을까지 기다려 수확하는 섬 고추
봄에 심고 가을까지 기다려 수확하는 섬 고추
초도에는 제주 출신의 해녀들이 20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
초도에는 제주 출신의 해녀들이 20명 이상 거주하고 있다

진막마을은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이 진을 쳤던 곳으로, 이름도 그것에서 유래됐다. 마을 입구의 낡은 집 마당에는 돌미역이 널려 있었다. 집주인에 대한 힌트였다. 그녀는 직접 물에 들어가 따온 미역을 잘 건조해서 내다 팔 요량이었나 보다. 초도에는 제주 출신의 해녀가 20여 명 이상 살고 있다. 이 마을에 물질 원정을 왔다가 눌러앉아 살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도의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
초도의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

초도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들고남이 심한 해안선과 깊은 수심의 청정해역 덕분이다. 진막마을에는 지은 지 최소 50년 이상은 되었을 전통 어촌가옥들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마을 사람도 낡은 지붕과 벽체만큼이나 구수하고 인정이 많다. 초도에서 태어나고 자라다가 뭍에 나가 젊은 시절을 보낸 박동수, 한선미씨 부부는 다시 섬에 돌아와 산다. 부족한 의료시설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시 섬을 떠날 생각은 없다. “움직이면 먹을 것이 천지라 초도에서는 돈 쓸 일이 없어요.” 오늘은 새롭게 지은 집에서 이웃들과 함께 축하 파티를 할 예정이라 했다. 한미선씨는 그렇게 다시 ‘섬 아주머니’가 됐다. 그러나 그녀의 커피엔 여전히 향긋한 도시 향이 배어 있었고, 접시에 곁들여진 달달한 케이크와도 잘 어울렸다.

아담하지만 오붓하게 피서를 즐기기에 참 좋은 정강해변
아담하지만 오붓하게 피서를 즐기기에 참 좋은 정강해변

●은혜 갚은 팽나무


6년 전, 정강해변에서 텐트를 쳤던 기억이 있다. 정강해변은 규모는 작지만 곱고 오붓한 백사장에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초도 제일의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특히 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해변까지 이어져서 한여름에도 물 걱정이 없다. 해변은 텅 비었지만,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굳게 닫혀 있을 줄 알았던 화장실 문이 쉽게 열렸다. 방금 청소를 한 것처럼 깨끗했고 휴지도 걸려 있었다. 성수기 여부와 상관없는 주민들의 이 같은 배려는 어떠한 마을 홍보 문구보다 감동적이다. 혼섬 여행이 든든히 채워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이들의 발걸음은 한 사람의 만족스러운 여행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은혜 갚은 팽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은혜 갚은 팽나무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의성마을의 선착장 부근에는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 나무에는 실제로 있었다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팽나무는 오래전 사라호 태풍 때 부러져 고사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당시 마을에서 정치망 사업을 하던 김사장이란 사람이 자신이 데리고 있던 선원들을 시켜 술을 마시기 전, 먼저 한 잔을 따라 나무 밑동에 부어 주도록 했다. 2년쯤 지나자 팽나무가 살아나면서 점차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고, 훗날 김사장이 병이 들어 자리에 눕게 되자 팽나무 목신이 그의 꿈에 나타나서 한약방 한 곳을 알려줬다는 내용이다. 물론 김사장은 그곳에서 약을 지어 먹고 완쾌했다고 한다.

이제는 섬의 역사로 묻혀 버린 거문중학교 초도 분교
이제는 섬의 역사로 묻혀 버린 거문중학교 초도 분교

●1인분 맞습니까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대동마을로 들어섰다. 마을 내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2017년에 각각 문을 닫았다. 진막과 의성마을에 있는 학교도 이미 폐교되어 다른 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니 초도에 학교는 없는 셈이다. 아직도 물이 그득한 우물가를 지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랜 기억 속에는 슈퍼 두 곳이 있었기에 시원한 맥주를 사서 한 모금 크게 들이켜 볼 심산이었다. 그러던 차에 마을 주민이 지나갔다. 그에게 밥 먹을 곳이 있는지 물었더니 선착장 어민회관으로 가라고 일러줬다.

섬마을의 오랜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진막마을
섬마을의 오랜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진막마을

어민회관의 문을 열자 안에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잠시 기다리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웬걸, 앞에 놓인 상차림이 너무 과하다. 국을 포함해 13가지 찬이 원형 쟁반을 채웠고 접시에 담긴 각각의 양도 1인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았다. 겹상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과 마주하기를 기다리던 중 “어서 잡숴요. 시장하셨겠소.” 주인아주머니의 말에 비로소 수저를 들었다.

1인 여행자도 부담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섬 밥상
1인 여행자도 부담 없이 마주할 수 있는 최고의 섬 밥상

어민회관은 초도의 유일한 식당으로 김양자씨가 마을에서 위탁 받아 운영한 지 올해로 5년 차다. 모든 음식에는 섬에서 나고 자란 재료가 쓰이는데 양식을 하지 않는 섬이라 모든 해물은 당연히 자연산이다. 거북손, 홍합, 고동, 볼락, 건새우, 참게, 멸치, 파래 등이 조화를 부린 듯한 최고의 섬 밥상을 영접하는 데 드는 돈은 단돈 만원. 주인아주머니의 말이 이어졌다. “초도에 오시는 분들에게 밥 한 끼라도 제대로 차려 드리고 싶은 마음이죠. 밥은 얼마든지 더 드셔도 됩니다.”

●지금은 막걸리다


“참, 초도에도 막걸리 만드는 집이 있죠? 아직도 하나요?” “마을 위쪽으로 쭉 올라가 봐요. 벽에 막걸리라고 쓰여 있으니 찾기 쉬울 거요.” 주민의 안내에 따라 대동마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니 투박하게 써 놓은 ‘막걸리’ 세 글자가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 한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할머님이 막걸리 만드시죠?” “그려, 몇 병 줄까?” 그때부터 할머니의 막걸리 자랑이 이어졌다. “술은 누룩곡 맛이여. 우리집 막걸리는 누룩이 좋아서 술맛이 끝내준당께. 손죽도 막걸리는 상대가 안 돼. 먹어 본 사람들이 초도 막걸리가 더 맛있다고 하더라고.”

섬 막걸리는 일상의 사고를 정지시킨다. 묘한 이끌림이다
섬 막걸리는 일상의 사고를 정지시킨다. 묘한 이끌림이다

만원을 내고 막걸리 두 병을 샀다. 할머님의 입담에 넘어간 것은 아니다. 할머님들이 만든 막걸리는 무조건 맛있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마실래야 마실 수 없는 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손죽도의 박근례 할머님도, 초도의 변경숙 할머님도 모두 소중한 분들이다. 그래서 맛의 점수는 똑같이 10점 만점에 10점, 무승부다.


그나저나 산상봉을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물 빠진 안목섬에서 해삼과 소라를 잡으려던 달콤한 일정도, 모두 수포가 되었다. 막걸리를 옆에 차고 텐트 옆으로 돌아오니 몽돌이 소리 내 구르며 감성을 자극한다. ‘그래, 섬이야 다시 오면 되고 지금은 막걸리다.’ 암만 생각해도 집에는 가야 할 텐데, 섬이 좋고 바다가 있는데 어쩔 수가 없더라는.

섬 여행에서는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보편적 기술이 필요하다
섬 여행에서는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보편적 기술이 필요하다

여객선
여수여객선터미널 → 나로도연안여객선터미널 → 초도Ⅰ1일 2회 (쾌속선)
녹동여객선터미널 → 초도Ⅰ1일 1회 (차도선)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인스타그램 avoltath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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