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국수라 하면 뜨거운 육수에 익혀서 먹는 따끈한 요리를 떠올리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식(食)에 진심인 민족답게 뜨거운 국수, 시원한 국수, 미지근한 국수 등 다양한 온도의 국수 요리를 떠올린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더욱 시원한 여름 국수가 당기는데. 살얼음 동동 띄운 육수에 소면이나 메밀면 등을 말아먹는 여름 국수는 무더운 여름, 한 젓가락 뜨는 순간 환승 이별한 전남친마저 용서할 듯한 자비로움을 선사한다.
▲여름 국수의 또 다른 이름은 용서
그렇다. 최고기온 30도 더위에서 먹는 여름 국수는 용서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여름휴가를 방에서 보내야 할 우리에겐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는 관대함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여름 국수를 먹어야 한다. 이번에 필자가 준비한 여름 국수에 대한 별난 뉴스들을 감상하며 평화로운 여름휴가를 즐겨보자. 덧붙이자면 과거, 냉면은 여름 음식이 아닌 겨울 음식이었다. 겨울이 얼음을 구하기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 바쁜 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별난뉴스 요약본
5위. 1980년대 사용하던 냉면 가위는 재단용 가위
필자 같은 머글들은 가위 없는 냉면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 냉믈리에들에겐 냉면 가위가 도리 냉면의 정체성을 모독하는 질 낮은 도구로 여겨진다. 면이란 자고로 앞니로 끊고 씹으며 목구멍으로 꿀렁꿀렁 넘기는 과정을 음미해 먹는 음식인데 가위가 이 신성한 면 섭취 정신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
자, 이제 냉믈리에들의 가위 혐오를 반박할 팩트를 알려주겠다. 우리나라 냉면은 크게 함흥냉면과 평양냉면이 있는데 냉믈리에들이 예찬하는 냉면은 평양냉면으로 면이 질기지 않아 전치로도 충분히 끊어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함흥냉면은 감자녹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고무줄 못지않게 질기다. 웬만한 치아로는 끊기 어려우며, 필자처럼 부정교합인 사람은 가위 없이 함흥냉면 먹다 조상님 뵈러 갈 수도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냉면을 가위로 잘라먹는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명확하게 밝혀진 자료는 없으나 1983년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린 <마음의 여유를 주는 식탁>이라는 칼럼을 보면 '고기와 냉면을 먹기 쉽게 자르는 검은 가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를 보면 최소 1980년대 초반부터 냉면을 가위로 잘라먹는 문화가 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 이런 가위로 냉면을 잘랐다.(출처: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87.12.19 경향신문 7면 사회기사)
단 당시 냉면을 잘라먹던 가위는 지금처럼 깔끔한 스테인리스 날이 아닌 천을 자르는 주철 가위가 많았다. 재단용 주철 가위는 녹이 잘 슬어 대장균 발생의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끝이 뾰족해 손님들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1987년 보사부(현 보건복지부)에서는 재단용 주철 가위의 음식점 내 사용을 금하고 스테인리스 소재의 음식점 전용 가위 사용을 의무화하였다.
4위. 콩국수가 굵잖아! 너 해고! 콩국수 갑질
백태를 갈아 콩 국물을 만들고 국수와 오이, 얼음을 넣어 먹는 고소한 콩국수. 이만큼 소탈한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런데 지난 2018년, 이 소탈한 음식이 '갑질'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사건에 휘말렸다.
▲ 당시 언론에 보도된 콩국수 갑질 사건(출처: 네이버 뉴스)
일명 '콩국수 갑질 사건'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한 골프장에서 조리원으로 일하다 해고당한 A 씨의 사연을 통해 알려졌다. A 씨에 따르면 그는 골프장 소유주인 B 회장의 주문에 따라 콩국수를 만들었는데, 그날 중면이 떨어져 그보다 굵은 면으로 콩국수를 조리했다. 그러자 B 회장은 A에게 국수 면발이 굵다고 지적했다. 요리에 대한 오너의 단순 피드백인 줄 알았던 한 번의 지적은 사직으로 이어졌다. 골프장과 식음료 용역 계약을 맺고 있는 C사로부터 사직서 제출을 요구받은 것이다.
▲ 기사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로 실제 사건과는 무관함을 밝힌다.
이 사건이 보도되고 골프장 회장의 갑질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골프장 관계자는 '영업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차원으로 C사에 조치를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콩국수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B 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도 '냄새가 난다'라며 차에서 즉시 하차하도록 지시하는 등 심한 모욕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3위. 고혈압 환자가 메밀을 먹어야 하는 이유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메밀국수라고 부른다. 메밀 함량이 높은 평양냉면이나 겉껍질만 벗겨낸 거친 메밀가루를 사용하는 막국수도 메밀국수에 속한다. 이러한 메밀국수는 공통적으로 당뇨병과 고혈압 예방에 좋다.
▲ 맛없어 보이는 음식이 몸에 좋다.
메밀에는 루틴(Rut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함량도 메밀 100g당 17mg으로 높은 편이다. 루틴은 모세 혈관을 강화해 뇌출혈, 고혈압, 당뇨병, 동맥경화증 등을 예방한다. 실제로 고혈압 환자 60명에게 6주간 메밀 추출물을 일 2회씩 섭취시켰더니 혈압이 평균 20㎜Hg 감소했다(출처: 한국영양학회지). 또한 메밀은 칼륨, 마그네슘, 철분 등이 풍부하고 플라보노이드계 성분을 함유해 항산화 작용에도 좋다. 혈당지수가 낮아서 당뇨 환자가 섭취해도 부담 없고, 수용성 식이섬유 함량이 높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없다.
▲ 메밀 효과를 보려면 메밀면 삶은 물을 함께 마셔줘야 한다.
참고로 메밀국수를 조리해 먹을 때 메밀면 삶은 물은 함께 마셔주는 것이 좋다. 메밀면을 5분 정도 삶으면 루틴의 30%가 국물에 녹아 나오기 때문이다. 먹지 않을 때는 밀봉이 보관해야 메밀에 습기가 흡수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10년 전 필자가 다이어트를 위해 석 달 동안 점심 메뉴로 메밀국수만 먹었는데 살은 빠지지 않지만 변은 무척 잘 봤다. 회사 화장실 변기가 두 번이나 막힐 정도로.
2위. 화채와 냉면을 같이 먹는 냉면? 특이점이 온 냉면들
▲ 본식과 후식이 한 번에 쌉가능한 수박냉면
인천시 동구 화평로에 가면 강렬한 주황색 간판의 냉면집을 볼 수 있다. 이름은 '일미 화평동 냉면'. 겉보기에는 여느 음식점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이곳은 스테인리스 냉면 그릇 대신 수반 반쪽에 냉면과 각종 고명을 얹은 '수박 냉면'을 판매한다. 이 냉면 덕분에 국내 방송에도 수차례 소개되었다. 참고로 수박 냉면은 6~8월에만 판매되며 가격은 15,000원이다.
▲ 육쌈은 질렸다. 이제는 돈쌈이다(출처: 네이버 플레이스 짱이네 돈까스 본점)
고기와 냉면을 싸먹는 육쌈냉면이 지겹다면 충북 청주시에서 판매하는 돈가스 냉면에 도전해보자. 물냉면에 돈가스가 고명처럼 수줍게 올려져 있다. 꽤 실험적인 구성임에도 평가는 좋은 편이다. 가격은 한 그릇에 8,000원.
▲ 낙지가 알아서 냉면을 비벼줘요
충주시에는 낙지와 냉면을 쌈 싸 먹을 수 있는 낙지 냉면이 있다. 낙지 한 마리를 통으로 넣어주는데, 물냉면으로 시키면 낙지가 육수 속에서 싱크로나이즈 스위밍을 즐기듯 다리를 현란하게 움직인다. 마음이 약하면 먹기 어려울 수 있으나 다행히 직원이 가위로 토막토막 잘라주신다. 가격은 한 그릇에 18,000원.
1위. 이 돈이면 국밥이 몇그릇이야?! 2021 평양냉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냉면을 먹으려면 오천 원이면 충분했는데, 지금 오천 원으로는 라면이 최선이다. 실제로 Y배달 앱에서 서울 강동구 상일동을 기준으로 냉면을 검색해본 결과 배달비 제외 냉면 값만 7,000~10,000원 사이였다. 서민 레스토랑의 대명사인 김밥천국조차 물냉면을 먹으려면 최소 육천 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는 감자 전분을 쓰는 함흥냉면 얘기다. 메밀 함량이 높은 평양냉면 가격은 더 비싸다.
▲ 어쩌다 냉면은 금면이 되었나
서울 3대 평양냉면으로 유명한 '을밀대'와 '평래옥', '남포 면옥'은 냉면 가격을 1000원씩 인상했다. 그래서 현재 판매 중인 냉면 한 그릇 가격은 11,000~13,000원이다. 풀무원에서 생산 중인 가공식품 평양물냉면도 가격이 소폭 인상됐다. 한 음식점에서 판매되는 메밀 함량 100% 냉면 가격은 17,000원이다. 문화일보에서 서울 시내 소재 유명 평양냉면 전문 음식점 30곳 냉면 가격을 조사한 결과 냉면의 평균 가격은 1만 1333원 이었다.
▲ 코로나19가 냉면까지…
냉면이 금냉면이 된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해 냉면 재료인 메밀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메밀 주 생산국인 미국, 중국 등에서 메밀 생산량이 감소하자 수입량이 크게 줄어 메밀 가격이 급등했다. 올해 수입 메밀 거래 가격은 도매 기준 1kg당 4020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약 1,000원가량 인상된 수준이다.
▲ 소개팅에서 파스타 대신 냉면 먹는 날이 올지도…
메밀 외에 냉면 육수와 고명에 쓰이는 한우 양지, 계란 가격도 올랐다. 최근 가격은 인상한 메밀 국숫집 관계자들은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냉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다. 참고로 냉면 값은 매년 상승하는 추세로 지난 2018년에도 전년 대비 약 840원가량 상승했다(출처: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사이트). 서민의 여름 별미이던 냉면도 큰맘 먹고 한 번 사 먹는 고급 음식이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기획, 편집 / 다나와 김명신 kms92@danawa.com
글, 사진 / 강은미 news@dana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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