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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나랑 우리랑,강북구 우이동을 거닐다

2021.10.18. 13:10:41
조회 수
 214
 1

도시에서 만난 자연,
도심에서 찾은 역사.
강북구 우이동을 걸었다.

서울시·서울관광재단 마을관광 우수상품
올해 7월에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은 공모를 받아 마을관광 우수상품을 선정했다. 자치구에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개발한 마을관광 상품 중 3개의 상품이 최종 우수상품으로 선정됐다. 종로구 창신동 봉제거리, 성북구 성북동 문화예술길, 강북구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힐링투어가 그 주인공들이다.


강북구 역사문화관광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투어
코스 : 우이동 만남의광장 – 소나무쉼터 – 4.19 전망대 – 근현대사기념관
거리 : 약 4km
소요시간 : 3시간
운영시간 : 10:00~17:00 연중 운영

●도장, 찍으시죠


“우선 혈당부터 체크하고 가시죠.” 싸늘하다. 손끝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따끔. 피 봤다. 나의 혈당 수치를 옆에서 엿보던 문화관광해설사님의 표정이 순간 굳는다. ‘선생님 저 이제 죽나요?’ 내 몸에는 일반인보다 조금 더 달콤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혈당이 높은데…” 나의 외형을 위아래로 훑던 보건소 직원분의 시선이 배에서 멈췄다. “조금 체중관리가 필요하실 거 같아요! 좀 많이 걸으시고 채소류 많이 드셔야 해요.” 오전 10시, 우이동 만남의광장에서 다이어트 최고형을 선고받았다. 충격.

솔밭근린공원, 최소 100년도 넘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솔밭근린공원, 최소 100년도 넘은 소나무들이 가득하다

우이동 만남의광장은 북한산 등산로 입구에 있다. 2017년 우이신설선 경전철 완공과 더불어 북한산 여행자들을 위한 휴게 공간과 공원이 조성되었다. 오늘 걸을 ‘너랑나랑우리랑’ 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특이한 건 아무래도 건강과 밀접한 여정의 시작점이다 보니 강북구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건강 부스가 있다. 당뇨, 고혈압, 혈당 등을 무료로 측정할 수 있고 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식단과 운동 처방까지 해 준다. 갑작스럽게 진단받은 운동 처방은 당황스러웠지만, 시작이 반이겠거니. 도장을 집어 들고 종이에 냅다 찍었다. ‘너랑나랑우리랑’은 스탬프 투어다.

북한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우이동 만남의 광장,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북한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우이동 만남의 광장,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한다

스탬프 용지에 있는 총 4개의 스폿에 도장을 모두 찍으면 주변 제휴업소(음식점, 카페 등) 내 10% 할인 혜택은 물론 완주 후 홈페이지 내 후기 게시물을 작성해 소정의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운동은 역시 보상이 있어야 재미있다. 이제 숲길을 걸을 명분이 생겼다. 목적지는 소나무쉼터, 거리는 약 1km 정도다.

강북구 너랑나랑우리랑 코스의 첫 쉼터, 소나무쉼터.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강북구 너랑나랑우리랑 코스의 첫 쉼터, 소나무쉼터. 심폐소생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걷다 보니 습관이라 생각했던 것이 거슬렸다. 매일같이 하고 있지만 느끼지 못해 모르는 것들이 있다. 출근 후 쉬는 한숨이라든가, 퇴근 10분 전 보고 있는 시계라든가, 원고를 쓰며 덜덜 떠는 다리라든가, 그런 습관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도 이제 습관이 되어 겨우 적응했는데 북한산 둘레길 1구간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졌다. ‘아, 지금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구나. 이 많은 피톤치드가 KF94에 걸러지고 있구나.’ 바닥은 흙이고, 사방은 나무고, 뻥 뚫린 하늘에선 가을바람이 불어왔지만, 희미한 숲 내음에 요즘의 상황을 다시금 실감했다.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지도, 하나씩 채워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너랑나랑우리랑 스탬프 지도, 하나씩 채워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습관이 거슬린다는 것은 환경이 변했다는 것이다. ‘너랑나랑우리랑’ 코스는 도시에 있지만 완벽한 자연이다. 길은 무난했다. 달콤한 피를 가지고, 살이 조금 통통하게 오른 나도 편할 만큼. 20분 정도를 부지런히 걸어 소나무쉼터에 도착했다. 소나무쉼터는 북한산 둘레길 1구간 중간에 위치한 쉼터다. 이름처럼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봄, 가을마다 ‘4분의 기적 심폐소생술’ 교육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 2번째 도장, 쾅.

●4·19


“괜찮으세요?” 동행하던 문화관광해설사님이 물었다. “소나무쉼터까지 왔으면 20% 정도 완주한 겁니다! 힘내서 갑시다.” 난 괜찮았는데 자꾸 다독여 주셨다. 거대한 몸뚱이가 힘들어 보였나 보다. 다시금 속으로 다이어트를 다짐한다. 목적지는 4·19 전망대, 거리는 대략 2km 정도. 혼자 걸어도 충분한 이 길을 굳이 문화관광해설사님과 동행에 나선 이유는 지금부터다. 강북구는 우리의 오늘을 위해 노력한 선조들의 흔적이 특히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3·1 만세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 건국의 초석을 다진 순국선열·애국지사 16위 묘역, 민주화의 성지 4·19 민주묘지 등. 걷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솔밭근린공원 구석구석에는 강북구청에서 마련한 솔밭숲속문고가 마련되어 있다
솔밭근린공원 구석구석에는 강북구청에서 마련한 솔밭숲속문고가 마련되어 있다

소나무쉼터에서 4·19 전망대까지 가는 길목에는 솔밭근린공원이 있다. 솔밭근린공원에는 1,000그루에 달하는 소나무가 울창하게 뻗어 있다. 최소 100년도 넘은 나무들이라 그 모습이 거친 붓에 검은 먹을 잔뜩 칠해 위아래로 휘갈겨 놓은 모습이다. 야생적이다. 실제로 이곳은 사람이 가꾼 공원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숲이라 더 의미가 있다. 1990년대 자칫 아파트 개발지로 선정되어 사라질 뻔했지만 1997년 서울시와 강북구가 땅을 매입하여 2004년 공원으로 개장되었다. 서울 도심의 유일한 소나무 숲, 그것도 자연 그대로의 것.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국가 자산이다.

4·19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의 흔적. 잠시 고개를 숙인다
4·19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대한민국의 흔적. 잠시 고개를 숙인다

솔밭근린공원에서 4·19 전망대까지는 대략 25분 정도 걸어야 한다. 묘지가 가득 보인다. 참 많다. 북한산 아래로 순백의 화강암 기둥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4·19 혁명의 기상을 상징하는 7척 높이의 탑주 7개와 각도를 달리하는 20개의 만장이다. 만장은 4·19혁명 희생자의 영령을 애도하는 마음을 담은 표현이다.

우리 선조들은 광복 이후 6·25를 맞이했고, 어렵지만 삶을 다시 일궈야 했다. 선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자유당 정부는 3·15 부정선거를 저질렀고,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재선거와 정권 교체를 외치기 시작했다. 이에 민주 시민이 운동에 가담하며 전국적으로 퍼지게 되었고, 정부의 무자비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12년간에 걸친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4·19 혁명이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묘지는 지금 우리나라가 국민에 의한 민주주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초석이다.

당시 186명에 이르는 선조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영혼은 4·19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선열들을 위해 고개 숙여 묵념한다. 따뜻하고도 시원한 가을, 저 멀리 보이는 서울 시내는 여전히 바빴고 묘지 위에는 가을구름 그림자가 아주 천천히 흘렀다.

4·19 전망대에는 문화관광해설사가 항상 상주하고 있어 누구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3번째 도장을 찍는다.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근현대사기념관으로 향한다. 거리는 약 1.3km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도시로


4·19 혁명 이야기를 듣곤 선조들의 강한 의지에 동화되어 버렸다. 그래서 결연해졌다. 앞으로 하루를 감사하며 살 것이며 지금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불평불만은 이제 내 인생에서 지우겠다. 그런데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니 가을이 좋아서 그리고 나무가 예뻐서, 하늘이 높아서 천천히 의지가 풀어져 갔다. “아, 좀 전까지 결연한 기분이었는데 또 걷다 보니 마음이 풀어지네요. 선조들이 저를 한심하게 보시겠어요.” 동행하던 문화관광해설사님에게 말을 건넸다. “선조들이 그런 결연함을 바라시겠어요? 그냥 명절날 모이는 대가족처럼, 가끔 생각나면 와서 기억해 주고, 잘 웃고, 잘 먹고, 재밌게 살길 바라시겠죠.” 따뜻하고 든든한 기분이다. “그런데 건강관리는 진짜 하셔야겠어요.” 문화관광해설사님의 날카로운 덧붙임.

너랑나랑우리랑 코스에 찾아온 가을. 서서히 물드는 중이다
너랑나랑우리랑 코스에 찾아온 가을. 서서히 물드는 중이다

근현대사기념관까지는 민가도 지나고, 계곡도 지난다. 숲만 보던 길과는 사뭇 다른 매력이 있다. 점점 도시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중간쯤 등장하는 절, 보광사를 거치면 군데군데 묘역이 보이기 시작한다. 강북구에는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된 이준 열사, 손병희 선생, 이시영 선생, 신익희 선생, 김창숙 선생, 여운형 선생 등 순국선열·애국지사 16위의 묘역이 자리한다. 이러한 묘역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있는 곳은 전국적으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마침 전날 비가 한바탕 쏟아진 덕에 계곡물이 콸콸 흘렀다. 손을 오므려 계곡물을 한껏 퍼담아 쏟아지는 땀을 닦고 나니 가을의 온도가 젖은 목을 감싼다. 해가 잘 드는 곳은 벌써 살짝 단풍이 오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 더웠던 것 같은데, 도시를 벗어나니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구나. 그런데 여기도 서울이다.

근현대사 기념관의 외관, 전시실 내부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근현대사 기념관의 외관, 전시실 내부는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다

마지막 목적지 근현대사기념관에 도착했다. 3·1 독립운동 등 일제강점기의 항일독립운동, 4·19 민주혁명에 이르는 근현대사 역사 유적, 자료, 유물 등이 전시실에 비치되어 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예약 인원만 관람할 수 있다. 이제 끝낼 차례다. 마지막 도장을 찍는다. 4개의 도장이 한 종이에 모두 모였다. 3시간, 짧다면 짧은 여정 동안 소나무의 기운을 한껏 받았더니 나름 괜찮아진 느낌이다. 바지도 조금 헐렁해진 것 같다.

“혈당 한 번만 다시 검사해 볼까요?” 근현대사기념관에도 강북구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건강부스가 있다. 인바디 검사도 가능하다. 싸늘하다. 손끝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다시 피 봤다. 여전히 조금은 달콤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체지방이 많았지만 그래도 시작은 했다. 도시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도시로. 강북구 우이동 ‘너랑나랑우리랑’ 코스 완주 완료.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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