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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 오르기까지···김은희 작가는 무엇을 얻었나

2021.11.03. 1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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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연극 등의 '극 예술'은 여러 역할들이 모여 완성된다. 극 중 인물이 돼 연기를 보이는 배우, 배우들의 연기를 비롯해 미술 및 영상 연출을 담당하는 감독 그리고 '극 예술'의 이야기와 방향성을 밑바탕에서 토대를 만드는 작가까지.

우리나라 예술계에는 소위 '3김 작가'로 불리는 작가들이 있다. 먼저 자극적이긴 하나 확실한 오락성을 담보하는 김순옥 작가, 그리고 어느 영역에 있는 남녀로도 시청자 모두를 설레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김은숙 작가.

▲ (사진: tvN)
▲ (사진: tvN)

마지막으로 집필 여부만으로 이슈가 되고 호평 받은 여러 작품들로 인해 존재 그 자체가 '티켓 파워'가 돼버린 작가가 있다. 그가 바로 김은희다. 김은희 작가의 신작 tvN 15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지리산'이 10월 23일 첫 방송을 시작했다. 

소위 '타율'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김은희 작가는 그동안 집필한 작품들 대부분이 흥행 혹은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만큼 김은희 작가의 '실력'이 탄탄하다는 것을 모두가 인정한다.

과연 김은희 작가는 지난 주요 극본들에서 어떤 점을 녹이고 어떤 점들을 시도해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극 예술'을 만드는 일부분 정도를 넘어, 작가도 고유의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로써 지난 날과는 다른 직업군으로 바꿔놓은 김은희 작가의 경쟁력을 다시 감상해보자.

그 해 여름

최근 김은희 작가 주요 작품들을 감상했다면 조금은 놀랄 수 있다. 김은희 작가의 입봉작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그리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었다. 김은희 작가의 입봉작은 영화였으며 장르도 이야기에서 순수함이 가장 먼저 느껴지는 로맨스였다.

'그 해 여름'이라는 영화는 주연배우 이병헌과 수애에게도 의미가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쓰리, 몬스터'·'달콤한 인생' 등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던 이병헌에게 '그 해 여름'으로 다시 한 번 순수하고도 절절한 멜로가 가능하다는, 연기폭이 넓은 배우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리고 상대배우 수애 역시 데뷔작 '가족'에 이어 '그 해 여름'에서도 극 분위기를 살려내는 연기를 선보여 이후 어엿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KM컬쳐, 쇼박스)
▲ (사진: 네이버 영화, KM컬쳐, 쇼박스)

김은희 작가는 비록 로맨스 영화였음에도 '그 해 여름'에서도 '시간 여행'을 시도했다. 현재와 1969년을 교차하는 영화의 진행은 주인공 윤석영과 서정인의 사랑을 더욱 몰입할 수 있게 작용했다. 그저 그런 로맨스를 김은희 작가는 시도한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로맨스 영화라면 극 안에서 차별성을 두기 상당히 힘들어진다. 그 틀을 김은희 작가는 입봉작부터 거부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후의 김은희 작가 작품에서는 정통 로맨스 장르는 볼 수 없게 된다.

싸인

대부분 김은희 작가의 출세작을 '시그널'로 알 것이다. 하지만 '시그널' 이전에 김은희 작가의 능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먼저 있었다. 김은희 작가의 분명한 첫 출세작은 2011년 SBS에서 방송된 드라마 '싸인'이다.

김은희 작가의 남편은 영화감독 장항준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고 감독은 연출을 맡는다. 부부 분업이 '싸인'에서 이뤄진 것이다. '싸인'의 연출은 장항준이었고 극본은 김은희가 맡았다. 

▲ (사진: SBS, 골든썸, 아폴로픽쳐스)
▲ (사진: SBS, 골든썸, 아폴로픽쳐스)

'싸인'은 소재부터 남달랐다. 중심소재는 법의학이었다. 사건이 있고 수사가 있고 법이 있고 의학이 있었다. 이 네 가지가 20부작 안에 적절히 녹아들어 SBS는 2010년대 대표작으로 내세울만한 드라마를 탄생시킨 것이다. 지금 다시 '싸인'을 본다면 김은희 작가 특유의 사실성, 짜임새가 짙게 느껴진다. 사실상 현재의 김은희 작가 스타일이 정립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엇보다 ‘싸인’에서 판단될 수 있는 사실은, 김은희 작가의 파격적인 소재 선택이다. '싸인' 이전에도 이후에도 법의학을 중심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이 어려운 것을 김은희는 시도하고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지리산이라는 배경의 선택 역시 김은희 작가라서 빠르게 이해된다.

시그널

2015년 말에서 2016년 초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 모든 문화계의 이슈를 독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의 존재감을 완성도만으로 전부 뒤덮은 드라마가 후속으로 바로 등장했었다. 그 드라마가 바로 '시그널'이며, '시그널'의 작가는 김은희였다.

'시그널'은 그야말로 창세기를 열었다. 2016년 초반 당시 어색했던 소재, '타임슬립'을 본격적으로 드라마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탄탄한 이야기를 김은희는 써냈던 것이다. 무전기를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사건을 해결하고 과거의 비밀을 캐내는 이야기 구성은 완성도와 오락을 전부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 (사진: tvN, CJ E&M, 엔스토리)
▲ (사진: tvN, CJ E&M, 엔스토리)

'시그널'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2016년 백상예술대상을 '시그널' 잔치로 만들었다. TV 작품상, TV 여자 최우수연기상으로 김혜수 당연하게 TV 극본상의 김은희까지 모두 '시그널'이 수상했다. tvN 10주년 시상식에서도 '시그널'의 세 명의 주연배우 조진웅, 김혜수, 이제훈에게 각각 상을 수여해 치하했다. '시그널'이 종영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시청자들은 시즌 2를 갈구할 만큼 아직까지도 영향력은 여전하다.

'시그널'이 현재까지도 ‘타임슬립’의 정석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특정 과거, 특정 사건, 특정 배우들을 택해서가 아니다. 그 모든 특정 요소들을 탄탄하게 엮었기 때문이다. '시그널'을 보고 작가 지망생, 시청자, 제작자 모두가 내려야 할 결론은 하나다. '극 예술'은 정말 치밀하고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무한상사 - 위기의 회사원

명실상부 김은희는 '시그널'로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여파로 김은희는 대형 프로젝트를 만나게 되는데, MBC '무한도전'과의 협업이었다. '무한도전'이 10주년 프로젝트로 기획했던 무한상사 블록버스터 제작의 극본을 김은희가 맡게 된 것이다.

'무한도전'은 제작 과정 대부분을 방송으로 내보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김은희 작가를 만나기 전 액션을 배우는 과정, 김은희가 작가와 연출을 맡은 장항준 감독과 무한도전 멤버 간의 캐스팅 면담, 예능 촬영팀이 아닌 영화 촬영 메커니즘으로 만들어지는 현장, 마지막으로 완성된 '무한상사 - 위기의 회사원'까지. 

▲ (사진: MBC, BA엔터테인먼트,
▲ (사진: MBC, BA엔터테인먼트)

최종적 평가는 다소 호불호가 갈렸다. 호평하는 쪽에서는 "예능에서 이 정도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혹평하는 쪽에서는 "장항준 연출에 김은희 극본임에도 완성도가 형편없다"는 의견 등이었다. 

아쉬운 점과 한계는 분명히 보였다. 김은희 극본이라는 기대치가 있었기에 조금 더 치밀하고 세밀한 설정이 보완됐다면 충분히 수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예능 방송의 특성상 2주를 걸쳐 방영됐기에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없어 몰입도가 떨어진 것은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김은희는 그 부담감을 이겨낸 것이다. 2016년 당시 상당한 파급력을 자랑하던 '무한도전'이었기에 '못 하면 망신, 잘 해도 본전'이라는 부담감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결국 김은희는 국민적 부담을 이겨내고 자신의 커리어를 더불어 예능이 발을 디디지 못 한 곳까지 동시에 인도했다. 

킹덤

2010년대가 저물고 2020년대가 다가오면서 뚜렷하게 드러난 미디어 변화는 더 이상 '극 예술'을 극장과 TV로만 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OTT 플랫폼들이 다수 생겨 '극 예술'의 제작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 거시적 흐름을 김은희 작가라고 거부할 수 없었다. 사실 김은희 작가 입장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동안 해오던 대로 극본을 쓰면 되는 것이었다. 김은희 작가의 첫 OTT 작품이 2019년 세계를 'K좀비'의 열풍으로 이끈 ‘킹덤’이었다.

'킹덤'은 2개 시즌의 드라마, '킹덤: 아신전'이라는 1개의 영화로 현재까지는 이루어져 있다. '킹덤 시리즈'의 핵심은 좀비다. 그런데 그 좀비들이 대체 역사로 설정된 조선시대에 출몰한 것이다. 이 파격적 설정을 김은희 작가는 완성도로 세계 시청자들에게 선보였다.

▲ (사진: 넷플릭스, 엔스토리)
▲ (사진: 넷플릭스, 엔스토리)

세계 '극 예술'에서도 좀비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많았다. 하지만 항상 아쉬웠던 요소가 등장하는 좀비가 탄생한 인과를 충실하게 설명해주는 작품들은 없었다. 이 갈증을 김은희 작가는 '킹덤 시리즈'에서 상세히 그리고 흥미롭게 풀어냈다. '킹덤 시리즈' 극 중 등장하는 생사초를 중심으로 설명되는 좀비의 존재는 조선시대의 시대적 상황과 적절히 맞물리게 했다. 그리하여 한국 시청자들은 물론 세계 시청자들도 '킹덤 시리즈'로 한국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킹덤 시리즈'를 보고 외국 시청자들은 양반 옷차림이었던 두루마기와 갓을 검색해볼 지경이었으니.

비로소 김은희 작가는 국내 한정 스타 작가가 아닌 한국을 대표하여 세계에 나서게 된 '국민작가'의 반열을 '킹덤'으로 오르게 됐다. 외국인도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 구성과, 작가라면 한 번 쯤 소재로 삼고 싶을 시대극과 좀비라는 소재의 결합을 이번에도 뛰어난 완성도로 대중에게 응답했다. 다음 '킹덤 시리즈'는 '킹덤: 세자전'이라고 하는데 공개일까지 기다리가 너무 힘들다.

완성형 작가

김은희 작가를 감히 '완성형 작가'라 칭하고 싶다. 최근의 작품들을 보았을 때, 김은희 작가를 범죄 스릴러 드라마에 특화된 작가라고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다소 표면적이다.

김은희 작가는 그동안 여러 장르 작품에 녹여왔고 여러 변화를 시도해 왔다. '시그널'과 '킹덤'에서 무전기와 좀비를 이용해 판타지를 구현했다. 역시 '시그널'의 차수현과 이재한, '킹덤'의 서비와 조범팔의 관계 로맨스를 사용해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싸인'과 '지리산'을 통해서 소재의 파격도 시도했다. '무한도전 - 위기의 회사원'과 '킹덤 시리즈'를 통해서 타 플랫폼으로의 변화도 겪었다. 이렇게 '극 예술'을 결정하는 대부분의 요소에서 김은희 작가는 유연하게 대처해 자신만의 경쟁력을 만들어냈다.

모든 작가 지망생들이 김은희 작가가 내는 작품의 수준을 당장 따를 순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동안 김은희 작가가 보인 발자취를 따르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극본을 탈고할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대중들은 접할 수 있는 '극 예술' 수는 더욱 많아지고 대한민국 문화계가 풍성해지는 선순환의 결과가 도래할 것이다.


조재형 기자/ulsu@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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