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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꽃과 마음을 따라, 익산

2022.05.02. 16:04:21
조회 수
1,053
4
댓글 수
2

익산, 어느 정원을 탐닉했다.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지니
근사한 여행이었다.

아가페 정양원 숲속한평도서관
아가페 정양원 숲속한평도서관

●유럽식 정원
아가페 정양원


아가페 정원은 1970년 故서정수 신부가 노인들을 위해 설립한 ‘아가페 정양원’ 안에 자리한 수목 정원이다. 아가페 정양원은 양로원이다. 어르신들에게 치유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성된 정원은 2021년 3월 민간정원으로 등록되었고, 코로나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올해 4월10일, 다시 무료 개방되었다. 애초에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원이 아닌데도 수목 17종 1,416주가 식재되어 있어서 2~3시간 정도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둘러봐야 한다.

메타세콰이어 산책길
메타세콰이어 산책길

정원 내부는 더 작은 정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상사화 꽃길, 벚꽃 쉼터, 고려 영산홍 터널, 공작 단풍나무길, 향나무 산책길, 대나무-은행나무 산책길, 철쭉 꽃길…. 그렇게 연신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면 이곳의 하이라이트 ‘메타세콰이어 산책길’이 나온다. 곧은 나무 기둥 사이로 찬란한 햇빛이 세어 들어온다. 사람의 손길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영국식 포멀가든(Formal Garden)형식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룬 형식미가 특징이다.

“4월은 유채꽃, 5월이면 데이지와 양귀비, 6월에는 루드베키아가 꽃동산을 이루죠.”

아가페 정양원 박영옥 이사장
아가페 정양원 박영옥 이사장

현재 아가페 정양원을 아흔이 넘은 박영옥 이사장이 이끌고 있으며, 최명옥 원장이 부임하여 연로한 박 이사장을 돕고 있다. 최 원장은 코로나가 누그러진 봄을 맞아 무척 바쁘다. 매일 꽃을 심고 풀을 뽑으며 표지판에 직접 페인트칠을 하며 무슨 글귀를 적을까 고민한다.

아가페 정양원 포멀가든
아가페 정양원 포멀가든

정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걱정이란다. 이곳은 엄연히 양로원이고 정원은 어르신들을 위한 목적이 우선이니, 정원을 즐기는 마음만큼 어르신을 잊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만끽하는 어르신을 본다면 따뜻한 인사 정도 건네는 것이 이곳의 룰이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율촌길 9
운영시간: 매일 09:00~17:00


●종교 성지를 여행지로 찾는 이유
원불교 익산 대성지


익산에는 우리나라 4대 종교 중 하나인 원불교의 대성지(大聖地)가 있다. 대성지는 교단 창립과 관련한 터와 건축물이 모여있는 지역을 말한다.

종교 시설이라 어색한 성스러움으로 압도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산책하듯 편하게 둘러보면 되고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다. 입장료도 없고 왜 왔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원불교 익산성지 대종사 성탑
원불교 익산성지 대종사 성탑

실제로 원불교 익산성지 성탑 주변의 부조를 보면 다른 종교의 성직자와 여러 인종이 모두 평등하게 그려져 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지 않고, 원불교의 상징인 일원상처럼 동그랗게 포용한다는 뜻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성지를 둘러보면서 그저 평온한 마음뿐이었다. 정문으로 발걸음을 들이면 왼쪽으로 커다란 개벽 대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넓고 푸르른 잔디와 봄꽃의 향연. 아름다운 교정으로 유명한 원광대학교 학생들도 도로를 하나 사이에 둔 원불교 익산성지로 넘어와 몰래 데이트를 즐긴다고 한다. 참 좋을 때다.

원불교 익산성지 송대
원불교 익산성지 송대

문화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대종사 성탑과 대각전을 비롯하여 총 10개의 건축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20년대 지어진 목조건물은 전통 한옥에 일본 주택 양식이 접목되어있어 일본의 소도시 여행을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가지치기를 해서 수형을 매끄럽게 다듬어놓은, 마치 예술작품과도 같은 나무들이 건물 앞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사이론 하얀 자갈밭이 깔려있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다. 절로 명상이 된다.

원불교 익산성지 공회당
원불교 익산성지 공회당

원광대학교 전신인 유일학림의 교육공간이었던 공회당(公會堂)은 특히 사진 명소로 꼽힌다. 앞마당의 커다란 벚나무가 꽃망울을 모두 터트리면 봄의 찬연한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원불교 기도실로 쓰였던 송대(松臺)는 3칸짜리 한옥 기와집인데 여기서 바라보는 풍경이 으뜸이다. 마루에 앉아 맑은 풍경 소리를 들으며 햇살바라기를 하다 보면 종교와는 무관한 행복감에 젖어든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344-2


●이토록 사랑스러운 옹기 뷰 정원
고스락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뷰를 품고 있는 정원, 이름하여 옹기 뷰. ‘고스락’은 ‘으뜸, 최고’의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고스락 소나무 정원
고스락 소나무 정원

이곳은 전통장류와 장아찌 등 유기농 발효 식품 농원인데, 여행자에겐 일명 ‘옹기(항아리) 뷰’를 가진 정원과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3만여 평에 이르는 소나무 정원 안엔 발효 중인 전통옹기가 무려 4,000여 개가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에 총 맞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옹기는 한 서린 옛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투박한 느낌의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옹기 뷰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가 나온다. 그래 봤자 높이가 10m도 안 되는 나지막한 언덕일 뿐이지만 풍경은 무시할 수 없다. 오밀조밀 모여있는 옹기 사이로 조용한 산책을 즐기는 연인들이 로맨틱한 느낌을 담뿍 담아낸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홀짝거리며 ‘옹기멍’ 시간을 즐겨도 좋겠다. 고스락에는 청국장 쿠키 만들기, 고추장 피자 만들기 등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해 가족이 방문하기에도 괜찮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익산대로 1424-14
운영시간: 매일 10:00~18:00

익산에서 뭐 먹지?

토렴한 육회비빔밥
시장비빔밥


익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은 ‘황등육회비빔밥’이다. 유명한 가게가 4곳 있다. 그중 황등시장 입구에 간판도 없이 자리한 허름한 식당, ‘시장비빔밥’을 찾았다. 오픈 시간 이전부터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백종원의 3대천왕> 등 TV 프로그램에 단골처럼 등장하며 외부인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황등육회비빔밥의 특징은 밥을 토렴해 양념장에 비벼서 나온다는 점이다. 익산 황등면은 석재로 유명한데, 석공들이 빠르게 음식을 먹고 배를 채울 수 있게, 이런 비빔밥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파채와 함께 무쳐진 육회와 가늘게 채 썬 돼지고기 비계가 섞여 있어 고소한 맛이 깊다. 보기엔 시뻘겋지만, 간이 세지 않고 심심한 편. 황등비빔밥엔 시원한 선짓국이 그림자처럼 따라 나온다.

이 집의 메뉴는 단 3가지. 육회비빔밥과 선지순대국밥, 모듬순대다. 현지인들은 국밥을, 외지인들은 육회비빔밥과 모듬순대를 주로 먹는다. 2시면 문을 닫고 일요일엔 영업하지 않는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 황등7길 25 황등시장
영업시간: 월~토요일 11:30~14:00(일요일 휴무)



살얼음 맥주와 오징어입
엘베강

엘베강은 익산의 대표적인 호프집이다. 김칠선 할머니는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1982년 유동인구가 많은 익산역 앞에 맥줏집을 차렸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딸을 찾았고, 이러한 스토리로 엘베강은 익산 토박이라면 누구나 아는 지역 명소가 됐다.

엘베강 살얼음 맥주
엘베강 살얼음 맥주
오징어입 안주
오징어입 안주

이 집의 살얼음 맥주는 할머니의 레시피라고. 이가 달달 부딪힐 정도로 차가운 맥주에 꼭 곁들여야 하는 안주는 오징어입. 버터에 고소하게 구워낸 짭조름한 오징어입은 맥주와 궁합이 좋다. 엘베강 메뉴판을 보면 요새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듯하다. 200원짜리 김도 있고, 소시지 안주는 2,000원이다. 애주가에게 천국이 따로 없다.

주소: 전북 익산시 중앙로 5
영업시간: 매일 15:00~00:00


멸치육수와 수고로운 토렴
일해옥


해장이 필요한 아침, 쓰라린 속을 부여잡고 온 사람들에게 시원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은 세상이 평온해지는 치료제이다. 20년 넘게 콩나물국밥 단일메뉴만 파는 일해옥은 새벽 5시부터 문을 연다. 조림용 멸치를 24시간 끓여내 육수를 만들고, 콩나물을 삶지 않고 쪄내 바로 찬물에 담가 아삭한 맛을 살린다. 매운맛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 홍고추를 솥뚜껑에 얹어 말려낸다.

일해옥 콩나물국밥과 모주
일해옥 콩나물국밥과 모주

노란색 박바가지로 토렴을 서너 번 반복한다. 무거운 뚝배기를 한 손으로 들고 하루에도 수백 번 이상 토렴을 반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맛을 유지하기 위해 전통의 방식을 고수한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끓인 해장술인 모주 한 잔이 전날 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것이다.

주소: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로 30
영업시간: 매일 05:00~15:00


글·사진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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