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밥 좀 먹자!]글 = 신지현(아이 식습관 개선과 자기계발에 힘쓰는 두 아이의 엄마)
보통 국수 같은 면 요리의 먹방을 떠올리면 으레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후루룩’하는 소리와 함께 빠르게 빨려들어가는 면발의 이미지일 것이다.
밥을 싫어하는 아이들 중에도 의외로 국수 종류는 꽤 잘 먹는 경우가 많다. 나의 딸 역시 그나마 국수 요리는 국물에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이상은 괜찮은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하지만 평소 먹방 채널에서 보던 시원한 면치기나 보통 우리네가 국수 먹는 모습 정도를 기대한다면 아이의 국수 먹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면발을 세어보아요
그래도 밥 먹는 속도는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빨라진 편인데 국수 먹는 템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가는 소면이든 오동통한 우동면이든 그녀는 꼭 면발 한 가닥씩, 혹은 집히는 부서진 면발 조각 한 개씩 입에 가져간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아무리 참을 인을 새기려해도 묵묵히 기다려줄 수 만은 없게 된다. 그렇게 먹으면 면이 불게 된다, 국물이 식는다, 너무 오래 먹게 된다, 아무리 일러줘도 결국은 그 뜨끈했던 국수 한 사발이 차디차게 식었을 때까지도 식사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냉면이 아닌 온면 요리들은 따뜻할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나 역시 그런 뜨끈함을 선사하고 싶을 때 잔치국수 같은 따뜻한 면 요리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국수를 많이 먹고 적게 먹고의 문제도 물론 그러하지만, 뜨끈하게 가장 맛있을 때 차려준 음식을 항상 차갑게 식은 상태에서 먹게 되는 것이 가장 속상하다.
자장면, 스파게티의 굴욕
꼭 국물있는 국수요리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자장면 역시 나의딸 앞에선 그저 한 가닥 한 가닥 세어가며 먹다 끝내 불어터져 체면을 구기는 음식 중 하나이다. 스파게티도 예외일 순 없다.
워낙 천천히 조금씩 먹는 아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소 밥 한 숟갈 양을 생각하면 한 입에 한 가닥씩 먹는 것은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 젓가락질이 서툰 것도 아닌데 아무리 옆에서 알려주고 조금식 개선시키려 해도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희미하니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나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 또한 어린 시절 할머니가 쫓아다니며 밥 먹여 키운 아이였지지만, 그래도 내 기억에도 우리 부모님의 기억속에서도 적어도 면발을 한 가닥씩 집어 먹는 정돈 아니었다. 나 못지 않게 먹는 문제로 어릴 적 시부모님 속을 썩였던 남편 역시 마찬가지.
‘누굴 닮아서일까’까지 굳이 거슬러 되짚어보게 되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그저 이 이유 모를 답답한 현상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자 하는 몸부림일 뿐이다.
타고나길 뱃구레가 작은 아이가 있다고 한다. 새해가 되어 8살이 된 딸을 이때까지 키우며 아마도 우리 아이가 바로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이 점점 현실로 굳어지고 있기에 먹는 양이 또래보다 적은 건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국수를 한 번에 한 가닥씩 먹는 다소 신박한 식사 모습은 여전히 마음을 온전히 비우고 바라봐지지가 않는다. 한 가닥이 두 가닥 되고, 세 가닥 되어 끝내 딸 아이의 속시원한 면치기 먹방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나 할런지. 만약 정말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땐 몇 년동안 막힌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짜릿함을 마음껏 만끽하고 싶다.
김희철 기자/poodle@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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