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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플스 발리의 모든 것

2023.01.09. 11: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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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고 단단하며, 진득하고 깊다.
래플스의 래플스, 그 견고한 휴식에 대하여.

●ABOUT RAFFLES
The Story of Raffles


‘래플스’는 반드시 최고여야만 한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호텔이며, 무엇보다 그 이름이 ‘래플스’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 ‘래플스’는 최고 앞에 붙는 수식이다. 래플스 시티, 래플스 칼리지(Raffles College, 싱가포르 3대 예술학교), 래플스 병원 그리고 래플스 호텔처럼.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아주 오래전 사실상 버려진 섬이나 다름없던 싱가포르에 신기원을 연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Sir Thomas Stamford Bingley Raffles)’. 근대 싱가포르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실 그가 실제로 싱가포르에 머문 기간은 8개월 남짓으로 알려져 있다. 짧은 기간 동안 싱가포르가 지금의 도시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기초를 닦아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싱가포르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래플스 호텔은 그의 이름과 정신을 계승한 브랜드다.

싱가포르 래플스 호텔의 시작은 1887년, 처음엔 단 10개의 객실뿐이었다. 그 후 130년이 넘는 장대한 역사를 싱가포르와 함께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싱가포르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89년과 2017년, 2번에 걸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쳤다. 최근 2020년 또 한 번의 리노베이션을 마쳤다.

참고로 래플스는 싱가포르 슬링이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1915년, 바텐더 응이암 통분(Ngiam Tong Boon)이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실 수 없는 여성 손님을 위해 진과 체리 브랜디, 라임주스를 섞어 내어 줬던 것이 슬링의 시초다.

래플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레슬리 댄커(Leslie Danker)’의 책, <Memories of the Raffles Original>을 추천한다. ‘레슬리 댄커’는 래플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랜 기간을 근무한 직원이다. 그 시작이 무려 1972년. 최근 그는 <A Life Intertwined>라는 회고록을 새롭게 출판했다. 그저 호텔리어로서 자신의 경험을 회고했을 뿐인데 ‘싱가포르 국가 유산 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단다. 래플스 호텔은 싱가포르의 자존심이다. 이와는 별개로 과연 2시간 동안 성인 5명이 싱가포르 슬링을 몇 잔이나 마실 수 있을까? 그의 기억에 따르면 1978년, 131잔을 마신 이들이 있었단다.

어쨌든 난 발리에 왔다. 인도네시아에서 왜 이토록 싱가포르 이야기로 열을 올리느냐면 발리에 래플스 호텔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것도 럭셔리 호텔의 격전지 ‘짐바란 베이(Jimbaran Bay)’에 자리를 잡았다. 전 객실 오션뷰, 5개의 타입, 총 32개의 풀빌라가 전부다. 소수의 고객을 위한 다수의 서비스, 래플스의 럭셔리.

고리타분하지만, 역사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역사적으로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는 싱가포르와도 연관이 깊지만, 사실 인도네시아와 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그가 ‘자바(Java)섬의 부총독’이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자바섬은 현재 인도네시아 경제, 문화 교육의 중심인 섬이다. 래플스는 자바의 노예무역 불법화, 강제경작 제도, 강제노역 동원 폐지를 위해 힘썼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도 해낸다. 자바 중부 족자카르타(Jogjakarta) 인근에 위치한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을 발견해 낸 것이다. 당시 보로부두르 사원은 원주민들의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사원이었다. 래플스는 그 전설이 실존하는 것이라 믿고 지속적인 탐사를 벌인 끝에 1814년 사원을 발견했다.

불교에서 ‘만다라(Mandala)’라는 것이 있다. 그 의미가 정말 복잡한데, 쉽게 요약하자면 ‘우주의 진리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 정도를 일컫는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하나의 거대한 ‘만다라’에 가깝다고 평가받는다. 세계 3대 불교 사원이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다. 래플스의 첫 번째 탐험은 인도네시아의 만다라를 위한 여정이었다. 어쩌면 래플스 호텔이 발리로 건너온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래플스의 두 번째 탐험이 발리에서 시작됐다.

●래플스의 래플스


때는 바야흐로 래플스 발리를 예약한 직후, 정확히는 서울, 더 정확히는 무교동 회사에서 업무로 고통받고 있을 때다. 퇴근 직전 도착한 메일을 한숨 쉬며 열었다. 그녀는 자신을 나의 버틀러(Butler)라고 소개했다. 래플스 발리는 여행을 가기 전부터 버틀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생각해 보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서, 나를 위하겠다는 사람에게서 온 연락. 누군가 나의 여행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래플스의 안정감은 여기로부터 출발한다.

래플스 발리에 도착해서는 모든 순간이 온전한 나였다. 그들은 투숙객을 절대 고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름을 부른다. 내가 머물 동안 래플스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이다. ‘편안하다’라는 감상이 너무나도 따분한 묘사지만, 그래도 편안했다.

단 32개의 빌라는 5개의 타입으로 구분된다. 오션 풀빌라, 파노라믹 풀빌라, 힐탑 풀빌라, 오션 프런트 2베드룸 풀빌라, 래플스 프레지덴셜 빌라. 내부 인테리어는 거의 비슷하다. 뷰와 크기의 차이일 뿐이다. ‘래플스’라는 브랜드가 재밌는 건 바로 이런 점이다. ‘래플스’는 지역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래플스’의 태가 난다. 어딜 가나 똑같아 따분하다는 뜻이 아니다. 어디에서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유지하는 공간이라는 소리다. 래플스의 대체재는 또 다른 호텔이 아니다. 래플스는 래플스만 대체할 수 있다.

이런 매력은 지독히도 래플스만을 고집하는 ‘래플스 러버(Raffles Lover)’ 군단을 양성키도 했다. 그 래플스 러버가 최근 가장 주목하는 곳이 ‘래플스 발리’다. 앞서 언급했듯 래플스 발리는 ‘짐바란 베이’에 자리한다. 바다 앞에 있지만 울창한 정글도 함께 끼고 있다. 숲과 바다를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곳, 짐바란 베이에서 드물다.

오션 풀빌라에서 머물렀다. 래플스 발리의 빌라는 단지 룸(Room)의 개념에 한정해서 묘사할 수 없다. 개인 정원이 가꿔져 있고, 수영장이 있고, 정자가 있다. 적당히 채워져 있고 적당히 비워져도 있다. 빌라 내부 바닥은 상당히 무거운 목재다. 반면 그 위에 놓인 의자는 등나무로 만들었다. 참고로 등나무는 ‘라탄(Rattan)’이다. 고동색 묵직한 목재 바닥과 라탄 소재의 가벼움. 돌로 세운 견고한 입구와 바람 따라 유연한 야자.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가, 시소 같은 공간. 침대 위쪽으로 거대한 바틱 태피스트리(Batik Tapestry)가 있다.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이고 바틱은 무늬가 그려진 부분을 밀랍으로 막아 물이 들지 않게 하는 염색법을 뜻한다. 발리 현지인 예술가가 수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란다.


●The Garden of Raffles
여인초와 래플스 관계에 대한 은밀한 비밀

래플스 발리에서는 종종 특이한 냄새가 났다. 스스로를 의심했지만, 나무 진액에서 나는 냄새란다. 모기가 그 냄새 때문에 자연스레 퇴치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래플스는 냄새와 식물에 깊은 연관성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를 뿜는 꽃이 있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큰 꽃이다. 1818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열대우림에서 처음 발견된 ‘라플레시아’다. 라플레시아의 학명은 ‘Rafflesia Arnoldii’. 이 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다. 라플레시아는 래플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뒤에 붙은 ‘아르놀디’는 당시 같이 있던 식물학자 ‘조지프 아널드’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싱가포르 최초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장 오래된 정원, ‘보타닉가든’의 시작에도 래플스가 있다. 1822년 래플스가 조성한 식물원과 실험용 정원을 1859년 이전해 재개관한 것이 ‘보타닉 가든’이기 때문이다.


래플스 호텔 로고도 식물이다. 이쯤 되면 래플스와 식물은 운명의 고리에 얽혀 있는 게 분명하다. 래플스의 로고는 ‘트래블 팜트리(Travel Palm Tree)’를 형상화한 것이다. 종이에서 펜을 떼지 않고 트래블 팜트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실물 나무를 보면 너무나도 평면적인 생김새 덕분에 이질감이 든다. 이 나무는 항상 남북 방향과 직각을 이뤄 부채꼴로 자란다. 그러니까 나무의 넓은 면은 항상 동쪽과 서쪽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는 방향이란다. 이름에 ‘트래블’이 붙은 이유는 잎 밑부분에 축척된 물이 비상시 식수로 사용되곤 해서란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채파초’라고 부른다.

참고로 부채파초는 ‘여인초’다. 동네 카페에 가면 하나씩 꼭 있는 그 ‘여인초’가 맞다. 여인초의 ‘여인’은 ‘여자’가 아니라 ‘여행객’이라는 뜻이다. 래플스는 알고 보면 재밌는 것 투성이다. 래플스 발리에서는 보타닉 투어를 모든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이건 필수로 즐겨야 한다. 래플스 발리 입구에는 커다란 부채파초 한 그루가 있다. 이건 옮겨 심을 때 강제로 남과 북을 바라보게 심었단다.

●Wellness

Raffles Spa The Sanctuary
꿈의 둥지, 래플스 스파 더 생츄어리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잘 쉬는 거다. 사람은 영원히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대표작 <생각하는 사람>이 괜히 근육질이 아닌 것이다. 전신 근육의 긴장으로 격렬한 마음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다. 어쨌든 쉬는 게 그리도 힘든 일이지만, 그 힘든 일을 우린 해내야만 한다. 사람은 안 쉬면 죽는다.

그래서 2023년 주목해야 할 여행 트렌드가 바로 ‘웰니스(Wellness)’다. 2022년에도 그랬고 2000년에도 그랬다. 아마 3022년에도 그럴 것이다. 웰빙, 행복, 건강은 인간의 꿈이기 때문이다. 꿈이란 헛되게 느껴지지만, 또 나름 현실적이다. 결국 우리가 보고 배우며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상상이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서 웰니스에 대한 결론을 찾았다. 웰니스란 행복한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꿈을 꾸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참하고 있었는데 새가 지저귀고 파도가 친다. 정글에 떨어지는 이슬비는 생각보다 소란스러웠다. ‘래플스 더 생츄어리’에서 방금 눈을 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가, 그러다 또 꿈을 꿨다.

래플스 스파 ‘더 생츄어리’는 정글 중턱에 위치해 있다. 저 멀리로 짐바란 비치도 보인다. 야외에서 받는 스파는 당연히 좋은데, 날씨가 문제다. 여긴 인도네시아 발리. 덥기도 하고 무엇보다 습하다. 이열치열. ‘더 생츄어리’에는 습식 사우나가 있다. 스파를 받기 전 10여 분간 사우나를 즐긴다. 겨울철 만둣집처럼 뿜어 오르는 뽀얀 증기에 안경이 흐려진다. 잠깐의 사우나를 마치고 나오면 인도네시아가 춥다. 정말 춥다.
스파가 시작됐고, 곧장 꿈을 꿨다. 관리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난다 해도 고리타분하게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여긴 래플스다. 시설, 서비스에 대한 설명은 어차피 ‘좋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래플스 말이다.

짐바란 바다가 보이는 정글, 어느 오두막에서 한시간 남짓 마사지를 받았다. 엎드려 누워 파도 소리를 들었고 새소리도 들었다. 이 와중에 발리는 서서히 따뜻해졌고 잠깐 이슬비도 내렸던 거 같다. 잘 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잘 쉬는 걸 기억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행복하게 쉬었는데, 눈을 감고 뜬 기억뿐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그저 운동을 좋아했던 사람인 걸로.


●DINING

Raffles Rumari
미식의 여행, 래플스 루마리

인도네시아 국토는 대한민국 국토 크기의 약 20배다. 인구도 5배나 많다. 섬은 무려 1만7,504개나 있고 종교도 많다. 인도네시아 국민이라면 자국 헌법에 따라 6개(이슬람, 개신교, 가톨릭, 힌두교, 불교, 유교)의 종교 중 1개를 선택해 신분증에 종교를 필수 기재해야 한다. 종교가 워낙 많아 생긴 법이다. 하여튼 인도네시아는 뭐든 크고 넓고 길고 다양하다. 식문화도 마찬가지다. 종교에 따라, 인종에 따라, 각 섬의 환경에 따라, 결국은 지역에 따라 나뉜다. 그래서 이 모든 걸 한곳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래플스 발리에는 2개의 식당과 1개의 바가 있다. 짐바란 해변 바로 앞에 자리한 ‘롤로안 비치 바 & 그릴(Loloan Beach Bar and Grill)’은 점심과 저녁 식사를 제공한다. 오픈형 키친에서 구워 내는 짐바란의 해산물이 매력적이다. 래플스의 헤리티지를 옮긴 ‘더 라이터스 바(The Writers Bar)’는 로비 옆쪽에 위치한다. 여기선 발리 슬링(Bali Sling)을 마셔야 한다. 싱가포르와 발리, 지역만 달라졌을 뿐이다. 결국 래플스 슬링이 ‘슬링’의 기준이다. 보통 소개의 마지막은 주인공으로 끝난다. ‘루마리(Rumari)’.

‘루마리’는 인생에서 손꼽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맛도 맛인데, 식사를 완벽히 여행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감격스러웠다. 인도네시아 전역의 식재료들을 다채롭게 해석해 ‘루마니 디스커버리(Rumari Discovery)’라는 콘셉트로 코스를 선보인다. 그렇다고 모든 게 인도네시아 것이 아니다. 루마리에서는 80/20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 재료의 80%는 인도네시아에서 공급하고 나머지 20%의 재료는 수입한단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의 맛은 중국, 인도,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채로운 문화가 섞여 정형된 맛이다. 그런 측면에서 루마리는 완벽한 시작점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5코스. 7코스, 9코스가 있다. 루마리에서 맛으로 제공하는 여행은 절대 정형화된 패키지가 아니다. 각각 코스마다 규정하는 지역도, 메뉴도 완벽히 다르다. 5코스는 발리로 한정했고, 7코스는 롬복섬까지 여행한다. 9코스는 결국 서파푸아(Papua)까지 지역을 확장했다. 여행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 한 가지. 우리에게 ‘파푸아뉴기니’로 알려진 하나의 섬은 사실 서쪽 ‘서파푸아’, 동쪽 ‘파푸아뉴기니’로 구분된다. 서파푸아는 인도네시아고 섬의 동쪽만 ‘파푸아뉴기니’인 것이다.

식사 내내 재료의 출처에서 한 번, 지역마다 다른 식문화에서 두 번, 셰프의 친절한 가이드에서 세 번 감탄했다. 특별한 이와 방문했거나, 스스로에게 특별한 날이라면 동굴에서 즐기는 로맨틱 디너도 좋다. 루마리의 음식을 자연 동굴에서 즐길 수 있다. 루마리는 래플스의 견고한 럭셔리를 완벽히 음식으로 구현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Raffles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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