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1만원에 1TB SSD를 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실물로 검증됐다면? 냉정하게 생각하면 구입을 섣불리 추천할 수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시궁창에 버리게 되는 것과 같으니까. 그렇지만 기자는 샀다. 왜? 재밌으니까.
대량으로 판매된 1만원짜리 1TB SSD라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초대형 복불복 게임이다. 1만원에 A급 낸드와 유명한 컨트롤러를 사용한 1TB SSD 같은 건 ‘거의’ 있을 수 없다. 1만원짜리 1TB SSD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재생낸드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한한 컨트롤러가 탑재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TLC 낸드다. TLC 낸드가 들어간 SSD를 뽑으면 당첨됐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기자는 당첨이 되긴 했다. 되긴 했는데…
960GB SSD를 주문했더니 480GB SSD가 왔다
1만원짜리 1TB SSD는 알리익스프레스에서 판매됐다. 짧은 시간동안 판매했는데, 무료 배송에 배송 기간도 빠른 편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주문했다. 참고로 기자는 960GB를 주문했다. 1TB는 품절 상태라 선택할 수 없었고, 용량만 놓고 보면 차이가 큰 편은 아니다.
앞서 실사용자들의 후기를 참고하니 컨트롤러가 세 가지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MAXIO, YEESTOR, 실리콘모션이다. 세 컨트롤러의 공통점은 디램리스 컨트롤러라는 것이다. 셋 중에서 실리콘모션 제품군을 뽑으면 실질적으로는 당첨이라 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낸드가 인텔 QLC가 아니라 샌디스크 TLC를 뽑아야 당첨이긴 한데, 실리콘모션 컨트롤러의 경우 TLC 낸드가 많았다.
그리고 제품을 받게 됐다. 커버를 보니 드래곤이 불을 뿜고 있고, Somnambulist(몽유병자)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뒤집어 봤는데, 용량이 480GB로 표기되어 있었다. 스티커를 잘못 붙였나? 1만원짜리 1TB SSD니 실수도 할 수 있지. 너그럽게 생각하며 제품을 분해해 봤다.
▲ 960GB를 주문했는데 480GB로 받았다
컨트롤러는 실리콘모션이다. 낸드는 당장은 정체를 알 수 없다. 일단 당첨은 당첨인데, 낸드가 4개다. 자세히 보니 낸드에 128GB라고 적혀 있었다. 128GB 네 개? 낸드에도 용량이 잘못 써진 건가?
마지막 희망만은 놓고 싶지 않아 메인보드에 연결해 봤다. 신가권. 신가권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고, 용량은 480GB였다. 그래서 졸지에 1만원에 480GB SSD를 갖게 됐다. 이건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 신가권이라 하니 무술 이름 같다.
▲ 사실 이런 뜻을 갖고 있다.
낸드를 확인해 봤다. 샌디스크 TLC다. 이건 다행이다.
이걸 어디다 써야 하나
대체로 중요한 자료를 보관할 생각으로 1만원짜리 1TB SSD를 믿고 사진 않는다. 대용량 스팀 게임 저장용이나 토렌트 등 마음 편하게 쓸 용도다. 아무튼 SSD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960GB가 아니라 480GB SSD가 왔다면? 당장 환불을 해야 한다. 그게 맞긴 맞는데 솔직히 말하면 480GB TLC와 960GB QLC면 조금 생각해 볼 만하다. 잘 만든 QLC SSD라면 고민의 여지야 없겠지만, 이런 저가형 QLC SSD라면 사용하다 속이 쾅쾅 터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디램리스 QLC 제품군을 사용하면서 나래온 더티 테스트를 구동한다면 어떨까? 초반에는 빠르다. 그러다 속도가 크게 하락하게 된다. 하드디스크와 비교할 만한 수준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잘 만든 QLC SSD라면 하락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을 버티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알리 SSD와 같은 경우 순식간에 속도가 추락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 좋은 QLC SSD가 있을까
QLC SSD도 잘 만든 제품이 분명 있다. 마이크론 Crucial P3 Plus M.2 NVMe 대원씨티에스 (이하 P3 PLUS)가 좋은 예다. PCIe 4.0이라 PS5에 사용할 수 있다. 2TB 기준으로 순차 읽기 속도 5,000MB/s, 순차 쓰기 속도 4,200MB/s다. 마이크론 어드밴스 3D 낸드(176단 3D QLC 낸드)를 사용했다. 체감 속도만 놓고 보면 상당히 빠르다.
물론 QLC 기반이라 더티 테스트를 실행하면 SLC 캐싱 구간을 넘어설 때 속도가 하락하긴 한다. 그런데 SLC 캐싱 구간이 꽤 길다. 1TB에서는 대략 30% 조금 안 되는 정도인데, 한 번에 300GB를 복사할 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실사용 시에는 크게 체감되지는 않는다.
QLC SSD는 저렴한 가격에 대용량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QLC SSD를 선택할 때 성능이 중요하다면 P3 PLUS가 현 시점에서는 가장 좋은 선택지다.
1만원 480GB SSD의 성능은 어떨까
다시 1만원 480GB SSD로 돌아와 성능을 확인해 보자.
▲ MAXIO 컨트롤러 탑재 제품군의 경우 펌웨어가 3이 반복된다거나 총 읽기량, 총 쓰기량이 터무니없이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기자의 480GB SSD는 실리콘모션 제품이라 정상적으로 측정된다.
▲ 크리스탈디스크마크 성능도 높게 측정된다.
▲ 디램리스지만 나래온 더티 테스트도 잘 버텨 준다. 평균 속도 50% 미만 구간이 19.2%에 불과하다.
간단히 확인해 본 결과 그럭저럭 쓸 만한 SSD였다. 960GB가 아닌 것은 아쉽긴 하지만, 아무튼 저렴하니 용서할 수 있다. 1만원으로 재미삼아 써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QLC SSD는 가격 차이가 크지 않으니 되도록 고성능 제품군을 사는 것을 권장한다.
▲ Somnambulist(몽유병자)와 용이 무슨 관계인지 한참 생각하다 포기하기로 했다.
김희철 기자/poodle@manz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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