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료를 꼽자면 단연 커피 아닐까? 아침 출근길과 식사 후, 그리고 일에 집중하고 싶을 때나 회의 때 으레 ‘커피 한 잔’을 함께하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다. 지금이야 다양한 종류의 커피들이 유입되며 커피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는 인스턴트 커피를 기반으로 프림과 설탕을 취향에 맞춰 조합해 ‘달달하게’ 마시는 방식이 대세였다.
하지만, 커피믹스가 탄생하며 세상이 달라졌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양해 각자 다른 비율로 커피와 프림, 설탕이 섞인 커피 믹스 중 자신의 입에 맞는 비율의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다양한 선택지 중 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는 커피가 탄생하며 지금까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한국인의 소울로 승화된 이 커피믹스,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 필수음료가 됐을까?
■ 전쟁이 남긴 씨앗, 조지 워싱턴이 넙죽?
▲ 치열한 전쟁통 속에서도 병사들은 커피를 자주 즐겼다고 한다
커피믹스의 시작을 따지려면 언제부터 '밖에서 커피를 마실 생각'을 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이 관점으로 커피에 관한 다양한 기록을 살펴보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미국 남북전쟁에 병사들에 술 대신 커피를 보급했다는 것이다. 전투의 피로를 풀기 위한 기호식품으로써 커피가 제공되었다는 것인데, 초기에는 군납비리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로스팅조차 하지 않은 생두를 그대로 줬다고 한다.
병사들은 총탄과 대포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 이러한 너무나 날것의 생두를 갈고 볶는 불편함이 너무도 컸다고 한다. 게다가 전쟁통에 신선한 우유를 보급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아 결국엔 커피와 연유를 섞어 졸인 형태의 것을 보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다고. 이런 혼합물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라떼와 비슷한 형태의 음료가 제작된 것을 마실 수 있게 됐는데, 이러한 것을 인스턴스 커피와 믹스 커피 개념의 첫 번째 제품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 조지 콘스탄트 루이 워싱턴과 그가 만들어 보급한 커피의 포스터
이후 그리고 일본계 미국인 사토리 가토가 분말 형태의 인스턴트 커피를 1901년 범미국박람회서 선보인 뒤 초대 대통령과 동명이인인 조지 콘스탄트 루이 워싱턴(George Constant Louis Washington)이라는 사람이 기술 특허를 받고 1차 세계대전에 미군에 보급했다. 여기에 13세기경부터 존재했던 가루우유가 1850년대 중반 영국의 그림웨이드가 개발한 건조법을 통해 20세기 초부터 공산품으로 선보이기 시작해 1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보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를 거쳐 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을 통해 우리 눈에도 익은 인스턴트 커피 제품이 바로 네슬레의 ‘네스카페’다.
■ 동서식품이 등장하면 어떨까?
▲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동서식품 프리마 광고
그렇다면 우리가 즐기는 커피믹스라는 것은 어떻게 탄생된 것일까? 여기에는 우유 대신 사용하는 크리머 제품의 탄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지방이 아닌 팜유를 응고시켜 카제인 나트륨, 전분당 등을 첨가해 가격을 낮추고 보존을 쉽게 한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네슬레의 ‘커피메이트’와 동서식품의 ‘프리마’ 등이 있다.
▲ 세계 최초로 개발된 동서식품 맥스월하우스 커피믹스
동서식품은 크래프트 푸즈(현 크래프트 하인즈)와의 파트너 관계를 맺고 우리나라에 ‘맥심’과 ‘맥스웰하우스’ 등을 선보여 왔으며, 현재는 해당 브랜드의 주인이 몇 차례 바뀐 끝 JDE 피츠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한국에서의 사업을 전개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인스턴트 커피와 ‘프리마’, 그리고 설탕을 조합한 맥스웰하우스 브랜드의 커피믹스를 세계 최초로 1976년부터 선보였으며, 이후 1980년에 맥스웰하우스의 고급 브랜드인 ‘맥심’ 브랜드의 라이선스도 얻어 1987년부터 커피믹스 제품이 판매됐다.
▲ 20년 넘게 맥심 모카 골드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영씨
<이미지 출처 : Youtube 커피라는 행복 맥심 채널 갈무리>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맥심 모카골드’는 1989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믹스 제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네슬레가 ‘테이스터스 초이스’로 추격했으나 그리 좋은 수치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 ‘맥심’ 브랜드의 인기가 별로였던 탓에 모두 ‘맥스웰하우스’ 쪽으로 재편,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만 라이선스가 유지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일반 동결건조 커피를 중심으로 선보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맥심’의 이미지가 이 커피믹스 제품 쪽으로 굳어진 상태다. 그리고 이러한 커피믹스를 선보인 동서식품은 한국에서만 맥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어 해외 쪽 직접 전개는 불가능한 상태다.
■ 스벅의 상륙, 커피믹스의 대위기?
▲ 1999년 7월 스타벅스 이대점 오픈 행사 모습
<이미지 출처 :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렇게 ‘맥심 커피믹스’의 천하가 계속될 것이라 여겨졌던 커피 시장은 90년대 후반 스타벅스를 비롯한 에스프레소 중심의 커피점들이 늘어나며 큰 변화의 파도를 맞게 되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그렇게 즐겨먹던 프림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아진 것이다. 덕분에 우유와 두유를 쓰는 에스프레소 계열의 커피점들이 순풍을 타고 세력을 넓혀갔다.
▲ 대놓고 카제인나트륨을 언급한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TV-CF
<출처 : Youtube 조선일보 채널>
여기에 남양유업이 ‘프랜치카페’ 브랜드로 커피믹스 시장에 뛰어들면서 또 한 번의 변화가 시작됐다. 남양유업은 ‘기존 커피믹스의 프림에 들어가는 카제인나트륨은 합성첨가물’이라는 홍보 포인트를 잡으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카제인나트륨은 천연 성분인 카제인을 물에 더 잘 녹게 하기 위해 나트륨을 더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화학적 합성이라 보기 어려운 것이지만 이를 일반인이 잘 알 수 없다는 점을 노려 공격포인트로 잡은 것이다.
과거 MSG 사태와 비슷한 남양유업의 공세는 소비자들에 먹히기 시작했고, 식약처를 통해 시정 명령까지 내려왔음에도 남양유업은 네슬레를 제치고 시장의 약 1/3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남양유업도 과거 다른 업체가 자신들의 분유를 타겟으로 ‘양잿물을 활용한 카제인나트륨이 들어있다’라고 공격했던 상황에서 “아기에게 매우 유익한 성분이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 재판에서 승소하기도 했고, ‘프렌치카페’를 홍보하는 동안에도 요거트나 유제품에는 카제인나트륨 성분을 추가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상향평준화된 커피믹스 시장, 관건은 부드러움?
▲ 비교적 신세대(?) 커피믹스로 여겨지는 동서식품 카누 시리즈
<출처 : Youtube 커피라는 행복 맥심 채널>
그동안 여러 사건도 많았고 소비자들의 입맛도 변하면서 커피믹스 시장은 조금씩 변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커피믹스 제품들은 보다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한 제품들이 출시되었으며, 동서식품의 맥심과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 그리고 네슬레의 수프리모가 3파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 가성비 커피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G7 커피
<이미지 출처 : 마시즘>
또한 프림이나 설탕이 안들어간 커피를 선호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제품군도 출시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베트남의 G7, 브라질의 이과수와 같이 해외의 인스턴트 커피 제품들도 조금씩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며 취향에 맞춰 골라 마시는 상황이 되었다.
▲ 김연아가 출연한 동서식품 맥심 화이트골드 TV-CF
<출처 : Youtube 커피라는 행복 맥심 채널>
이 외에도 누가 홍보모델로 나서는지 역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동서식품은 김연아, 이나영, 공유, 박서준 등 톱스타 라인업을 꾸준히 선보이며 융단 폭격 중이며, 남양유업 역시 김태희와 강동원 등을 통해 맞대응에 나섰다. 결국 맛부터 홍보 모델까지 취향에 따라 고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처럼 수십년에 걸쳐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해온 커피믹스는 스스로의 제품 개선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제는 같은 제품만이 아닌 거리의 에스프레소 기반 카페들까지 경쟁 상대가 된 커피 믹스는 어떻게 생존을 이어갈 것이며, 그런 과정 속 동서식품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가 커피 애호가들이라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 편집 / 다나와 정도일 doil@cowave.kr
글 / MrEGOIST news@cowav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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