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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日 닛산 '사쿠라 EV'가 현대차 7개 전기차보다 더 팔린 이유

2023.10.24. 16: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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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사쿠라 EV 닛산 사쿠라 EV

[오토헤럴드=김흥식 기자] 멀리 달리는 능력이 좋은 전기차의 우선 조건이 아니라는 본보기가 나왔다.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달릴 수 있는 최대 거리가 전기차 상품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200km가 채 되지 않는 경형 전기차 닛산 '사쿠라 EV(SAKURA EV)'가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일본은 주요 선진국 가운데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낮은 국가다. 9월 팔린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이 3%대에 불과하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를 합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누적 판매 대수는 10만 8488대, 점유율은 3.60%를 기록하고 있다.

신차 시장 규모가 3분의 1 수준인 우리나라 전기차 누적 판매 대수는 같은 기간 11만 5007대다. 일본은 순수 전기차만 놓고 보면 6만 8791대를 팔아 비중이 2.2%로 뚝 떨어진다. 9월에는 지난 3월(9631대)에 이어 역대 2위 수준인 9017대를 팔았지만 점유율은 3개월 연속 감소했다.

주목할 것은 일본 내수에서 최근 1년간 전기차 수요 증가를 견인한 모델이 경량급이라는 점이다. 일본 전기차 시장을 끌고 가는 브랜드는 닛산이다. 닛산은 올해 9월 5128대를 기록해 전체 전기차 시장 절반가량을 점유했다. 

도요타(3160대), 미쓰비시(2440대)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치다. 닛산 전기차 라인업 가운데 사쿠라 EV는 독보적이다. 지난달 3801대를 팔아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했다. 현대차가 9월 한달, 7종의 전기차를 모두 합쳐 판 2876대보다 많았다. 

도요타와 미쓰비시 실적에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포함된 것을 감안하면 닛산 그리고 사쿠라 EV가 일본 전기차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셈이다.

닛산 사쿠라 EV는 최대 주행가능 거리가 180km에 불과하다. 그러나 보조금을 받으면 1000만 원대 구매가 가능하다.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한 사쿠라 EV는 20kWh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 충전에 걸리는 시간이 완속 기준 8시간이다. 

차체 길이가 3395mm에 불과하고 출력(47kW), 토크(195Nm), 최고속도(130km/h) 등 성능 제원이 낮은 데도 사쿠라 EV가 일본 전기차 시장을 장악한 비결에 대해 닛산은 "합리적이고 실용적 선택을 우선하는 소비 그리고 고령 인구의 증가와 농촌 지역 공동화"를 이유로 들었다.

일본은 특히 농촌 인구가 빠르게 줄면서 문을 닫는 주유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름을 넣기 위해 수십 km를 가야 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을 정도다. 집에서 편하게 충전이 가능한 농촌 지역에서 전기차를 유독 많이 찾는 이유다. 

도심에서도 출퇴근 거리가 짧은 직장인과 세컨드카로 전기차를 선택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한다. 국내에도 사쿠라 EV와 성격이 비슷한 전기차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크기나 배터리 용량, 주행 거리, 특히 가격에 큰 차이가 있다. 기아 레이 EV는 보조금을 받아도 2000만 원대 초반 구매가 가능하다. 

기아 관계자는 "소규모 개인 사업자, 자녀 등하교, 그리고 세컨드카로 레이 EV를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라며 "우려했던 짧은 주행 거리는 신경 쓸 일이 전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의 전기차 부진은 충전 인프라나 충전 불편보다 경쟁적으로 주행 거리를 늘리기 위해 고용량 배터리를 탑재하면서 가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전기차 시장이 주행 거리보다 가격 부담을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닛산과 미쓰비시가 함께 개발한 사쿠라 EV와 eK 크로스 EV는 모두 경형 전기차다. 도요타도 초소형 전기차 C+Pod을 팔고 있다. 

25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개막하는 '2023 저팬모빌리티쇼'에는 이보다 많은 작고 짧은 경형 전기차가 대거 등장할 예정이다. 우리 시장도 레이 EV 이외에 선택이 가능한 소형, 초소형 전기차가 많아질 필요가 있다. 전기차를 시작한 목적에도 이게 맞다.

다른 얘기지만 일본에서 테슬라 존재감은 크지 않다. 일본 내수에서 수입 순수 전기차 판매는 9월 기준 지난해 2520대에서 올해 3892대로 크게 늘었지만 자동차 관련 기관이 내 놓는 각종 통계에서 테슬라는 '기타'로 분류될 만큼 주목을 받지 못한다.

최대 주행 가능 거리가 500km를 넘는 주행 능력보다 5000만 원대라는 가격 저항에 막혀 테슬라가 가장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곳이 일본이다. 우리나라는 고령 인구의 증가, 지방 소도시의 공동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고 한다. 사쿠라 EV처럼 작고 저렴한 전기차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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