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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여전한 속초의 공간 4

2024.05.07. 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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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것들에 대하여. 한결같은 속초의 공간, 4곳을 소개한다.

●명태회냉면의 탄생지, 함흥냉면옥

속초에는 오랜 맛을 지키고 있는 노포가 많다. 함흥냉면옥은 벌써 70년 넘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함흥냉면옥의 역사는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흥에서 사이클 선수였던 실향민 이섭옹씨가 속초에 정착해서 고향 음식인 전통 함흥냉면을 판매한 것이 시작이다. 초기에는 가자미가 들어간 냉면이었지만, 80년대에 동해안의 특산물 명태를 활용하여 국내 최초로 명태회냉면을 개발했다. 배에서 잡으면 바로 죽는 명태의 맛을 손님에게 선보이기 위한 고민 끝에 급속으로 냉동한 동태를 포를 떠서 냉면에 넣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 현재는 각종 매체에서 찾는 속초의 맛집이 되었다.

자리에 앉자 곧바로 주전자 두 개가 나왔다. 온육수와 냉육수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온육수를 마셨다. 구수하고 그윽한 맛이다. 소의 꼬리뼈와 사골을 오랫동안 삶아 우려낸 깊은 맛이 난다. 식전에 육수 한 모금은 위의 부담을 덜어 준다. 이윽고 함흥냉면이 나왔다. 정갈한 면발 위에 얇게 채 썬 오이, 배와 삶은 계란, 소고기 양지, 그리고 명태회무침이 넉넉하게 올라가 있다.

<함흥냉면옥>의 냉면은 고구마 전분을 사용해서 탱탱한 면발을 자랑한다. 오징어먹물이 들어가 검은색을 띠는 것도 포인트다. 명태회는 씹을수록 새콤달콤한 양념이 배어 나온다. 기호에 맞게 식초, 겨자, 냉육수, 양념장 등을 냉면에 넣으면 맛이 배가 된다. 특히, 설탕을 면 위에 뿌려 먹으면 함흥냉면의 감칠맛이 더욱 살아난다. 단맛, 신맛, 새콤한 맛이 한데 어우러졌다. 냉면을 다 먹고 빈 그릇에 온육수를 부어 남은 재료를 다 비우는 것이 전통 냉면 식사법이다. 현재 동해안에 명태가 줄고 있어 2대 이문규 사장님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가자미냉면에서 명태회냉면이 탄생한 것처럼, 함흥냉면의 새 냉면의 출시에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조선소의 재탄생, 칠성조선소

전화위복은 ‘칠성조선소’를 위한 말이다. 1952년부터 반세기 넘게 배를 수리하던 조선소가 2018년에 복합문화공간과 카페로 새롭게 단장하며 연간 40만명이 방문하는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본래 원산조선소로 불렸던 ‘칠성조선소’는 1952년 이북에서 피난 온 배 목수 최철봉씨가 청초호 일부를 메워 만든, 3대째 이어지는 공간이다. 주로 어선과 운반용 철선을 만들었다.

어업이 성황을 이루었던 80년대에는 칠성조선소를 거친 수많은 배들이 속초 앞바다를 누볐다. 하지만 2000년대를 기점으로 동해안 최고의 어획량을 자랑하던 속초도 어업 규모가 줄어들었고 자연히 어부와 목수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17년 칠성조선소는 조선소 운영을 종료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돌아온 칠성조선소는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다. 배를 만들던 공장 건물은 뮤지엄으로,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공간은 전시관으로, 가족이 살던 집은 기념품 가게로, 제재소가 있던 야외 공터는 조형물 ‘플레이스케입(Playscape)’으로,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은 카페로 변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재탄생했다.

전시 공간으로 돌아온 뮤지엄에서는 조선소 관련 영상, 조선소 철길 이야기, 배 목수 이야기 등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또한, 관객 참여형 전시를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는 ‘걱정교환소’가 운영되고 있다. 본인의 걱정을 적어 핀볼공으로 만든 뒤 핀볼 기계에 넣고 다른 사람이 넣어둔 핀볼공을 열람하는 방식이다. 본인의 걱정은 훌훌 털어 두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읽으며 함께 정서적 공감을 얻고 치유하는 방법이다.

복층식 구조의 카페는 들어서면 넓은 내부가 인상적이다. 커피를 주문할 땐 1층에서 직접 로스팅한 세 가지 원두를 직접 고를 수 있다. 밸런스 있는 고소한 맛의 포트, 적당한 산미의 스타보트, 디카페인 타오, 이렇게 세 가지 원두가 있다. 재밌는 점은 세 가지 원두의 이름이 모두 선박 용어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포트는 선박의 좌현(항구 방향)을 의미하며, 스타보트는 선박의 우현(하늘을 바라보는 방향)을 의미한다. 타오는 조선소에서 바다로 나가는 레일에서 유래되었다.

커피를 주문해 2층 창가 자리에 앉으면 청초호와 속초의 광활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칠성조선소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옛 조선소 터에서 돌탑을 쌓고 조선소 건물을 배경 삼아 인증숏을 남기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주문한 포트 커피에서는 적당히 고소한 커피향과 약간의 단맛이 느껴졌다.


●3대째 이어지는 역사, 동아서점

속초초등학교 건너편에 위치한 ‘동아서점’은 속초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다. ‘오래된’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건물 외관은 깨끗하고 단정하다. 서점 뒤편에 주차장이 있어서 외부에서 방문하기 편하다.

1956년 창업 당시 동아서점의 초창기 이름은 ‘동아문구사’였다. 학용품과 체육용품, 우표를 주로 팔던 작은 문구점이었다. <아리랑>, <명랑>을 비롯한 50년대 잡지도 한 켠에서 판매했다. 10년 뒤인 1966년, 상호를 동아서점으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서점 영업을 시작했다. 2015년에는 서점을 리뉴얼하며 중앙로에서 수복로로 이전했다. 매장의 몸집은 3배가 부풀었고, 3대 사장 김영건씨가 2대 김일수씨로부터 동아서점 운영을 물려받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출판사 운영자인 김영건씨는 동아서점을 트렌디하게 바꾸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밝은 톤의 매장은 카페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책 사이 꽃에도 눈길이 간다. 카운터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도 아늑한 분위기에 한몫 거든다.

중앙에는 서점을 찾은 고객들의 메모가 빼곡하다. 오로지 동아서점에서 책을 사기 위해 속초를 방문하기도 한다고. 사장님이 직접 주문 및 선별한 5만여 권의 책이 서점에 가득하다. 매달 베스트셀러를 별도로 안내하기 때문에 인기 도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서점의 책 구성이나 인테리어 모두 정성을 쏟은 태가 난다. 겉과 속이 모두 탄탄하다.


●70년 넘게 변함없는 맛, 북청전통아바이순대

설악대교와 금강대교 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현재는 육로 이동 가능), 아바이마을은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애절한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다. 갯배선착장 인근에는 1950년대 피난민의 사진과 생활 모습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아바이순대 식당 간판이 즐비하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아바이마을에 모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속초 청호동 모래땅은 개인 사유지가 없어서 누구나 쉽게 정착이 가능했던 것. 두 번째 남쪽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휴전선 가까이 모인 장소가 속초리 5구라는 것.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잡던 명태와 오징어가 많이 잡혀 직업을 구하기 수월했다는 것이다. 70년이 지난 현재, 아바이마을은 속초의 중심이자 이북 음식의 본고장이 되었다. ‘북청전통아바이순대’의 1대 사장 이노사씨의 피난 이야기도 울림이 깊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인 이노사씨는 1952년, 전쟁통에 헤어진 남편과 3년 만에 속초 청호동에서 재회했다. 그 후 이북에서 배운 명태순대, 오징어순대, 아바이순대, 명태식해 등을 아바이마을을 찾는 손님에게 선보이고 있다.

아바이순대를 주문하면 먼저 깻잎무침, 가자미식해, 명란, 깍두기, 백김치, 양파장아찌가 반찬으로 나온다. 그리고 오짓어젓갈이 올라간 참기름 밥과 함께 아바이순대가 등장한다. 담백한 아바이순대는 명태회를 올려 먹거나 깻잎에 싸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는 게 제일 맛있다. 돼지고기와 선지, 찹쌀이 들어가 쫄깃하면서도 고소하다. 풍부한 육향이 입 안 가득 느껴진다. 오징어젓갈, 명란, 명태회무침을 번갈아 가며 맛보는 즐거움도 있다. 달짝지근한 맛들의 향연이다. 함경도의 맛에 가장 가까운 맛이라 자부해도 좋다.


글·사진 김민형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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