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김나영 작가가 런던 사는 콘텐츠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거기서 잘 지내나요?

Interviewee from London
오가을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콘텐츠 프로듀서. 런던을 비롯한 유럽 곳곳을 누비며 패션 매거진 등 다양한 브랜드 협업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오가을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선 패션지 어시스턴트 에디터를 거쳐 신문사 디지털 패션팀에서 기자로 일했어요. 여유 없이 달려온 패션계 생활에 지쳐서 영어 공부도 하고 견문도 넓힐 겸, 2015년 영국 런던에 오게 됐습니다. 처음 올 때만 해도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지려는 거였는데, 벌써 만으로 7년을 채우게 됐네요. 물론 비자가 제한적이라 중간에 한국에 머물렀던 시간도 있었지만요. 현재는 영국에서 ‘어텀 인 런던(Autumn In LDN, AutumnOh.quv.kr)’의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어요. 주 고객은 패션 브랜드인데, 간혹 이벤트 진행이나 유럽 내 촬영과 취재를 돕기도 합니다.
패션으로 이름난 여러 도시 중에서도 특별히 런던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영국 장기 거주를 결정하기 전에 유럽 여행을 3번 정도 했었어요. 그때 런던이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현대적이고 인종이 다양한 편이라 쉽게 섞여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전공과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유명한 패션 4대 도시 중에 런던을 선택하게 됐어요.
런던 어디쯤 살고 있나요? 런던도 동네마다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런던 중심에서 북서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에요. 예전에는 시내 중심 부근에서 지냈었는데, 이 동네를 살펴보다 보니 이웃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느긋하고 여유롭게 보였고, 그런 점이 맘에 들었어요. 쾌적하고 안전한 동네와 새로운 집이 오랜 이민 생활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놀러 온 친구들이 이 동네를 보고는 파주 외국인 마을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웃음). 이 부근엔 새 아파트들이 많이 지어지는 중인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큰 맨션이나 아름다운 가든 센터, 골프장까지 있어서 산책을 하기에도 좋아요. 귀여운 강아지들도 자주 마주칠 수 있고요. 런던에 잠깐만 머문다면 이런 동네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조금 여유 있는 여행이라면 이런 외곽의 빈티지한 멋이 살아 있는 예쁜 영국 집에 살아 보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런더너’로 살아가며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아무래도 일하는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많은 것 같아요. 패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땐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이 필요합니다. 런던은 순수 예술, 패션, 영화, 댄스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젊고 실력 있는 아티스들이 많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며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그리고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게끔, 예술가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는 법이 잘 만들어져 있는 편이고요. 실제 일하는 현장에서도 근로자와 고용자 모두 선을 잘 지키고 서로 배려하는 점이 참 좋아요.
한국에서의 삶과 비교하자면 어때요? 다시 선택해도 런던일까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늘 그리움이 마음 한편에 있죠. 하지만 살다 보니 이곳에서도 많은 장점을 발견하고 있어요. 우선은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많은 고정관념이 상대적으로 없는 편이란 게 숨통이 트여요. 이를테면 특정 나이에 맞춰 취업해야 한다거나 혹은 결혼해야 한다거나, 하다못해 직장에서 머리나 옷을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는 것 등 제약을 거는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리고 이러한 ‘정상성’에 못 미치면 못난 사람이 되는 분위기고요. 반면에 이곳에서는 나의 신념이나 취향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편입니다(다만, 영국 사회에 깊이 들어갈수록 한국 못지않게 엄격한 계급 사회가 존재한다고 느껴요).
또 다른 좋은 점은 런던에만 3,000여 개의 공원이 있다는 거예요. 도시 녹지 비중은 20% 정도로 서울과 비교하자면 오히려 조금 낮은 편이기도 한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녹색 공간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물론, 서울에는 쾌적하고 맛있는 디저트가 즐비한 카페가 많이 있지만, 요즘은 이렇게 자연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는 런던에 와서 몸과 마음이 조금 더 건강해진 것 같아요.
가을님이 런던에서 보내는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기에 촬영 현장을 가지 않는 날에는 대부분 집 안에 머물며 다양한 일을 처리해요. 밤사이에 한국에서 들어온 각종 업무 요청을 오전 시간 내에 처리하고, 시차를 맞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K 직장인’ 기질이 남아 있어서 가끔은 늦은 밤까지 일을 놓을 수가 없지만, 그래도 저녁에는 온전히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인걸요! 그렇다면 여유가 있을 때 찾아가는,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가드닝과 꽃에 관심이 많아서 장미가 피는 계절에는 ‘리젠트 파크(Regent Park)’의 ‘퀸 메리 로즈 가든(Queen Mary's Rose Gardens)’에 가는 걸 좋아해요. ‘햄스테드 히스 파크(Hampstead Heath Park)’에 있는 ‘더 힐 가든 앤 퍼골라(The Hill Garden and Pergola)’도 꽃 피는 계절에 가기 좋은 곳이죠. 아름다운 조경 디자인과 광활한 초록 들판만 봐도 눈의 피로감이 확 줄어드는 느낌이에요. ‘그리니치 공원(Greenwich Park)’ 언덕이나 천문대에서 바라보는 템스강도 추천해요.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최근에는 ‘크롬웰 플레이스(Cromwell Place) 갤러리’에서 문을 연 카페에 자주 가고 있어요. 공간이 넓지는 않은 곳이라 여유롭게 방문하고 싶다면 오픈 시간에 가기를 추천합니다.
런던을 여행할 때 꼭 해봐야 할 3가지를 추천한다면요? 영국식 아침 식사가 제 취향은 아니긴 하지만, 경험은 해 봄 직하죠! ‘노만스 카페(Normans Café)’에서는 좀 더 힙한 버전의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어서 추천해요. 로컬들이 많이 가는 곳이에요. 주말엔 웨이팅이 있을 정도!
그리고 한국의 카페 문화와 견줄 영국의 펍 문화도 체험해 봐야죠(저는 술을 즐기진 않지만 펍에서도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종종 간답니다). 다이닝 메뉴가 괜찮은 펍이 많아요.
4,000여 곳의 펍 중에 한 곳을 고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는 영국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메뉴들을 선보여요. 관광지 주변으로 고른다면 피커딜리 서커스 인근의 ‘더 데본셔(The Devonshire)’를 추천해요. 예약은 필수고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도 놓칠 수 없죠. 역사와 유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대영박물관’이 아주 흥미로울 거예요. 저는 미술관 취향이라서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과 메이페어(Mayfair) 지역에 있는 갤러리에 자주 갑니다. 그리고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 Museum)’은 건물이 특히 멋져서 꼭 가 보라고 하고 싶어요. 매주 금요일에는 밤 10시까지 열려 있어서 좀 더 여유를 갖고 차분히 둘러볼 수 있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팬이라면 ‘뉴포트 스트리트 갤러리(Newport Street Gallery)’를 놓치지 마세요!
트렌디한 현장에서 일하는 가을님이 보기에 요즘 런던에서 가장 떠오르는 곳은 어디인가요?
제가 예전에 방문했을 땐 ‘쇼디치’가 제일 힙한 동네라고 했었어요. 여전히 이스트 런던이 뜨겁습니다. 쇼디치의 과열된 부동산 시장으로 인해 많은 아티스트와 가게가 북동쪽 지역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는 중이에요. 달스턴(Dalston), 해크니(Hackney), 스토크 뉴잉턴(Stoke Newington) 같은 곳이죠. 이쪽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로컬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주말 마켓인 ‘브로드웨이 마켓(Broadway Market)’을 꼭 둘러보길 추천합니다. 추가로, 디자인 가구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클러큰웰(Clerkenwell) 지역에 ‘구비(GUBI)’ 런던 쇼룸이 생겼다는 소식도 살짝 귀띔해 드리고 싶네요. 구비가 탄생한 덴마크를 제외하고 생긴 첫 번째 쇼룸입니다. 이곳 역시 방문 전 예약은 필수예요.
가을님이 전해 준 알찬 정보와 함께 런던으로의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잘 아시다시피 영국 음식이 한국이나 다른 유럽에 비하면 특별한 것은 없는 편이죠. 하지만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맛집이 숨어 있답니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런던을 즐겨 보세요! 런던이 처음이라면, 6월과 8월 사이에 방문해 보세요. 날씨도 좋고(궂은 날씨로 유명한 도시지만요) 런던만의 매력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계절이거든요. 요즘엔 한국어를 구사하는 런더너들도 부쩍 늘어서, 초보 여행자도 비교적 쉽게 여행할 수 있어요. 도시 디자인, 패션, 아트와 가드닝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런던은 일주일 일정으로는 모자라다는 생각이 절로 들 거예요. 이런 저와 취향이 통하는 것 같다면, 더 많은 런던 소식을 만날 수 있는 제 인스타그램에도 놀러 오세요!
*김나영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해외살이 인터뷰 시리즈. 타국에서의 삶을 동경해 왔던 마음 때문인지 수상하게도 해외에 지인이 많은 김나영 작가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해외살이를 묻는다.
글 김나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