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열흘 살이 후 내린 결론. 이 도시, 뭔가 좀 다르다.
STREET ART
멜버른의 피부
여행지에서 골목을 걸어 보라는 식의 뻔하디뻔한 얘기, 나도 정말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 말부터 뱉어야겠다. 멜버른의 모든 것은 골목에 있다. 진부함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정석으로 받아들여야 할 문제다. 큰길에서 좁은 길로 스윽 빠지는 순간, ‘진짜’ 멜버른이 시작된다. 커피숍이며 아케이드며 정말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는데, 그중 늘 산재해 있는 건 바로 거리 예술이다.
거리 예술은 멜버른의 피부다. 식당의 문짝부터 구석의 쓰레기통까지 크고 작은 그래피티(graffiti)들은 도시 구석구석을 덮고 있다. 여기엔 멜버른이란 사회에서 강하게 맥박 치는 폭발적인 자유랄까 하는 게 느껴진다. 만약 멜버른에서 거리 예술이 사라진다면, 이 도시는 가죽이 벗겨진 짐승처럼 생명력을 잃게 될 것 같다. 도시의 ‘영혼’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도 증발된 채로. 그만큼 멜버른과 거리 예술은 이제 한몸처럼 살아가는 중이다.
물론 모든 그래피티의 역사가 그렇듯 멜버른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멜버른의 그래피티는 그래피티의 시초였던 뉴욕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 즈음부터 시작됐다. 초창기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멜버른시에서 방치된 골목길을 문화 및 상업 공간으로 바꾸기 위한, 이른바 ‘골목길 활성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도시 공간에서 그래피티 역할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촉발됐다. 예술인가, 범죄인가. 표현인가, 훼손인가. 낙서는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예술이란 대체 무엇인가.
뜨거운 논쟁을 거친 멜버른은 해답을 모색했다. 1990년대 초, 불법적인 그래피티와 예술로서의 그래피티를 구별하는 정책을 공식화하기로 것. 지금도 멜버른시의 그래피티 관리 정책을 보면 그 구분이 꽤 명확하다. 예를 들어, 건물주의 허가 없이 건물 외벽이나 기반 시설에 그래피티를 하면 불법으로 간주돼 언제든 제거될 수 있다. 사유 재산의 외관 정면과 멜버른시 소유 건물에도 낙서가 불가능하다. 외설적이거나 불쾌한 메시지를 담은 경우도 마찬가지. 누구나 전화 한 통, 클릭 한 번이면 손쉽게 신고할 수 있다.
대신 합법적인 그래피티에 관해서 멜버른은 그 어느 도시보다 우호적이다. 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자금 지원은 물론, 관련 축제와 이벤트도 다양하게 주최한다. 합법적인 예술 활동 공간을 제공하려는 노력도 여전하고, 예술가들에게 공공장소에 대규모 벽화를 의뢰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멜버른을 세계적인 거리 예술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한 건 예술에 대한 열린 시각, 진지한 고민, 정확한 존중과 활달한 격려였을 터. 이러한 노력이 계속되는 한, 이 도시의 영혼도 좀처럼 쉽게 휘발돼 버릴 것 같진 않다. 멜버른의 피부는 이토록 두텁고 강하다.
GRAFFITIED LANEWAYS
가장 이상한 미술관
당연한 얘기지만, 거리 예술가들의 캔버스는 거리다. 영어로는 레인(Lane). 레인에 있는 모든 것들은 전부 캔버스가 될 수 있다. 벽돌, 창문, 표지판, 소화기, 전깃줄, 배수관에 이르기까지. 파이프에서 물이 새듯 거리에서 예술이 새어 나오는 곳이 멜버른이다.
멜버른에는 거리 예술로 유명한 몇 개의 레인이 있다. 호시어 레인(Hosier Lane), AC/DC 레인, 프레스그레이브 플레이스(Presgrave Place) 등이 대표적이다. 대체로 분위기는 와일드하다. 후드 티를 뒤집어 쓴 청년들이 스프레이 통으로 벽을 칠한다. 커다란 쓰레기통 옆엔 노숙자가 자고 있다. 왜인진 모르겠지만 바닥은 늘 축축하다. 그렇다고 위협적인 분위기는 아니고, ‘메이플 스토리’ 게임의 커닝시티가 떠오르는, 뭐랄까, 오락적인 와일드함이다.
작품들은 도발적이고 발칙하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했다 사라진다. 매일 지워지고 다시 그려지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어젠 분명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나뭇잎을 물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다음날 가 보면 나뭇잎 자리에 남성의 성기가 그려져 있다. 하룻밤 새 다른 사람의 작품 위에 누군가 엉뚱한 선을 찍 그어 버리기도 한다. 환희와 비관, 고독과 인내, 희망과 의심, 추락과 비상…. 하나의 벽엔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모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무한한 자유와 무한한 확장에서 우러나는 연대적인 자유로움. 그 역동적인 변화에는 예술력, 말 그대로 행동을 촉진시키는 어떤 ‘힘’이라고 부를 만한 박력이 있었다.
개중엔 감탄이 나오는 그림도, 그리다 만 미완성작도 많았다. 막연한 아름다움보단 초연한 리얼리티가 느껴지는 작품이 수두룩했다(냄새 나는 양말이나 눈이 충혈된 토끼 같은). 도대체 뭘 그린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것도 있더라. 그림만 있는 것도 아니다. 찌그러진 캔, 생선 뼈, 바나나 따위를 벽에 붙여 놓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하기도 하고 납작해진 병뚜껑을 바닥에 줄지어 놓기도 한다. 길 위에 정해진 틀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답도, 공식도, 편견도 없다. 누구나 옳을 수도, 누구나 틀릴 수도 있다. 오직 각자의 해석만이 있을 뿐. 무릇 인간이 태어난 이래 예술이란 그러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머물던 숙소는 마침 호시어 레인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있었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촬영지, 그렇게 무미건조한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생생한 예술 감각 같은 것이 그곳에 있다. 덕분에 나의 아침 루틴은 매일 호시어 레인에 가서 오늘은 어떤 그래피티가 업데이트됐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히 ‘중독’이라고 할 만한 루틴이었다. 무료입장에 매 순간 새 작품이 데뷔하는 24시간 야외 미술관이라니. 단언컨대 그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하면서도 매혹적인 미술관이었다.
TRAM TO MELBOURNE
시곗바늘을 원망하며
네모난 트램 창문 너머,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의 시계탑은 오후 2시를 가리켰다. 문득 드는 생각. 아무리 구제불능의 길치라도 멜버른에서만큼은 별걱정 없이 다닐 수 있겠다. 멜버른의 트램 네트워크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50km에 걸쳐 무려 520대의 트램이 운행 중이고, 멜버른 시내에 있는 트램 정류장 개수만 약 1,700개에 달한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 트램 인프라의 1/4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시내 중심지 대부분은 ‘무료 트램 존’으로 운영된다. 이 구역 안에서는 몇 번이고 무료로 자유롭게 승하차가 가능하다. 길을 잘못 들었대도 다시 훌쩍 트램에 올라타면 그만이다. 배차 간격도 10분 안팎으로 짧은 편. 애쓰지 않아도 멜버른의 주요 명소들을 누빌 수 있다. 교통비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도시가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덜컹거리는 트램 안, 속절없이 흐르는 시곗바늘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THE GARDEN STATE OF AUSTRALIA
멜버른 사람들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사랑이라 답했다. 바꿔 묻는다. 멜버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멜버른은 영국의 경제 분석 기관 EIU가 발표한 ‘살기 좋은 도시’ 1위 자리를 2009년 이래 7번이나 차지한 도시다. 나는 그 공로가 멜버른의 정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사람 중의 하나다. 멜버른에선 정원이 곧 사랑 그 자체기 때문이다.
1977년부터 17년간, 빅토리아주 내의 모든 자동차 번호판엔 이 상징 표어가 삽입됐다. ‘정원의 주, 빅토리아(Victoria, The Garden State)’. 그만큼 정원은 멜버른이 속해 있는 빅토리아주 전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큰 축이다. 이들의 정원 사랑은 정착 초기, ‘이 남자’로부터 시작됐다. 1850년대 당시, 영국에서 파견된 빅토리아주 초대 부지사 찰스 라 트로브(Charles. J. La Trobe)는 멜버른 도심 근처의 광대한 토지를 공원을 위한 보호 구역으로 지정했다.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강한 도시에는 정원이 필요하다’는 철학으로 해당 부지의 토지 매매 등을 금지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그는 식물 표본 수집을 사랑하는 열성적인 식물학자였다고. 오늘날 로열 보타닉 가든(Royal Botanic Gardens), 피츠로이 가든(Fitzroy Gardens), 칼턴 가든(Carlton Gardens) 등 세계적인 수준의 멜버른 정원들이 도심 한복판에 조성될 수 있었던 이유다.
멜버른 사람들은 지금도 자연을 향해 무한한 애정을 보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로 ‘보낸다’. 멜버른시에서 제작한 어반 포레스트 비주얼(Urban Forest Visual)이라는 대화형 지도 사이트에 접속하면 멜버른시 관할 구역에 위치한 7만 그루의 나무에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다. 어떤 나무든 클릭하면 개별 나무의 종류과 수령, 고유한 ID 번호와 메일 주소가 뜬다. 원래는 나뭇가지가 파손됐거나 보호가 필요한 나무를 쉽게 신고할 수 있도록 만든 지도인데, 당초 목적과 달리 나무를 향한 러브레터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올해 2월, 빅토리아주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에도 메일함엔 멜버른의 나무들을 향한 걱정 어린 메시지가 가득했다. 불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따스한(다소 귀여운) 충고와 함께. 멜버른에서 나무는, 정원은, 자연은, 사랑과 동의어다.
그런 이유로, 멜버른에서의 하루는 정원에서 시작되고 정원에서 끝났다. 아침이면 오트 밀크를 넣은 플랫 화이트를 들고 야라 강변 공원(Yarra River Park)을 걸었다. 강가에서 보이는 멜버른 아트 센터는 아침 햇빛을 받을 때가 제일 예쁘다. 한낮엔 트램을 타고 로열 보타닉 가든으로 갔다. ‘가든’이라고 해서 당근이나 토끼풀 같은 게 총총 심어진 아기자기한 정원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로열 보타닉 가든의 면적은 11만 평방미터가 훌쩍 넘는다. 축구장 38개가 모여야 만들어지는 크기다. 8,500종 5만개 이상의 식물들이 숨 쉬는 터전이기도 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맞고 싶을 땐 칼턴 가든으로 향했다. 녹진한 가을 냄새가 분수대의 물방울을 타고 흐르는 곳이다. 날이 어둑해지면 피츠로이 가든의 느릅나무 곁에 누워 초승달을 봤다. 주변은 온통 고층빌딩. 노이즈 캔슬링이라도 되는 듯 정원만 들어오면 도시의 소음은 차단됐다. 들리는 건 오직 새소리뿐이다. 완벽한 탈도시의 순간. 멜버른에선 그게 낭만이고 여행이었다. 멜버른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나도 최선을 다해 사랑을 사랑했다.
‘Melbourne, Every Bit Different’는 빅토리아주관광청의 글로벌 캠페인 슬로건이다. 멜버른 열흘 살이 후, 이 슬로건의 의미를 절절하게 실감했다. 멜버른은 어딘가 좀 다르다. 거리 예술과 트램, 정원이 특히 그랬다. 그런데 사실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축약하기엔 멜버른만의 개성을 만들어 내는 요소는 너무나 방대하다. 블록마다 나타나는 유럽풍 건축물, 런던보다 더 런던 같은 변화무쌍한 날씨, 신선 식품이 넘쳐나는 재래시장, 말도 안 되게 고소한 커피…. 돌아보니 이제야 알겠다. 그 ‘조금’의 차이들이 결국 모든 걸 다르게 만든다는 걸. 멜버른이 멜버른일 수 있게 만들고, 호주가 호주일 수밖에 없게 하는 건 전부 그 차별점들이라는 걸. 관광청의 슬로건 속에 숨겨진 뜻은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Melbourne, Everything Different.’ 멜버른은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르다. 진심으로.
멜버른까지 논스톱으로
한국에서 직항이 없다는 건 멜버른 여행의 유일한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더 반가운 소식.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9월1일까지 인천-멜버른 직항 노선을 주 4회(화·목·토·일요일) 운항한다. 인천에서 아침에 출발해 저녁때쯤 멜버른에 도착, 복편도 저녁 출발 아침 도착 스케줄이라 마지막 날까지 꽉 채워 여행할 수 있어 알차다. 올여름, 멜버른으로 떠나야 할 더없이 좋은 명분이 생겼다.
DAILY LIFE IN MELBOURNE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호주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