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억지로 더할 필요도 없다.
가루이자와의 오늘은 그 자체로 황홀하다.
온몸으로 맞이하는 시간
이카루 카페 & 호시노 온천 톤보노유
가루이자와의 날씨는 부드럽다. 햇볕이 뜨거울 때도, 눈이 펑펑 내릴 때도, 비가 쏟아질 때도 숲이라는 필터가 한 번 걸러 줘서 그렇다. 거친 건 사라지고, 아름답게 정제된다. 상냥한 자연은 인간보다 동물이 더 빨리 눈치챘고, 초대하지 않았는데도 오리와 날다람쥐, 사슴, 너구리, 여우, 곰, 각종 새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덕분에 가루이자와는 예로부터 야생을 탐험하는 무대였다.
지금은 네이처 투어 ‘피키오(picchio)’가 여행자를 안내한다. 이카루 카페는 피키오의 전초기지이자 여행자와 날다람쥐의 쉼터다. 이카루 카페 뒤뜰 나무를 비롯해 곳곳에 구멍 뚫린 날다람쥐 집이 있는데, 운이 좋으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귀염둥이를 만난다. 피키오는 자연을 거닐면서 계절의 아름다움을 찾는 네이처 와칭 투어(Nature Watching Tour), 일본산양과 흑곰 와칭(높은 확률로 관찰 가능), 와일드 라이프 나이트 드라이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짧게는 2시간, 길게는 7~8시간 동안 진행된다. 또 카페 바로 앞 연못은 겨울에 꽁꽁 얼어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가루이자와의 모든 것은 계절에 맞는 옷을 입고 여행자를 기다린다.
초록을 거닌 다음에는 천연 온천수에 들어갈 차례. 호시노 온천(1915년 개관)의 역사와 물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톤보노유(Tombo-no-yu)’로 향한다. 이곳은 원천수로만 채워진 실내탕과 노천탕, 연못과 이어진 냉탕, 사우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맑고, 신선함을 과시하듯 탕 입구에는 온천수를 마실 수 있는 수도꼭지도 설치돼 있다. 목을 축이고 따스한 온천에 몸을 맡긴다. 톤보노유 실내탕의 장점은 높은 층고, 어깨까지 푹 담글 수 있는 적당한 깊이(90cm, 여탕은 85cm), 계절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통창이다.
노천탕에서는 온천 고수들의 몸짓을 곁눈질로 배운다. 돌을 침대 삼아 벌러덩 눕는데, 자세는 다소 부끄럽다. 민망함은 잠시, 온천과 가루이자와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뒷목과 등, 엉덩이는 물에 잠겨 따뜻한데, 앞부분은 상쾌하다. 누워 있으니 고개를 젖히지 않고도 하늘을 마주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뭉게구름, 저녁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목욕 후에는 바로 옆 손민식당(Sonmin-Shokudo)에서 식사하거나 카페 헝그리 스폿(Café Hungry Spot)에서 아이스크림, 지역 맥주 등을 즐기면 된다. 시그니처는 설탕에 조린 하나마메(강낭콩의 일종)가 올라간 소프트콘이다.
서로를 이어 주는 끈
호시노 리조트 BEB5 가루이자와
편하고, 자유롭게 가루이자와를 여행하고 싶다면 숙소는 호시노 리조트 BEB5 가루이자와(Hoshino Resorts BEB5 Karuizawa)가 괜찮겠다. ‘젊은 세대를 위한, 그리고 자유롭고 루즈한 호텔’을 표방하는 곳으로, 사람과 사람, 여행자와 가루이자와를 잇는 끈 같은 호텔이다.
호텔의 콘셉트가 가장 잘 녹아든 공간은 타마리바(TAMARIBA)다. 24시간 개방된 공용 공간으로, ‘모이다’, ‘어떤 곳에 머물다’라는 뜻의 일본어 타마루(溜まる)를 활용해 이름을 지었다.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테이블과 소파가 준비돼 있고, 한편에는 보드게임도 놔뒀다. 긴 커뮤널 테이블이 있는 공간은 일본 기업(기린·후지야 등)과 협업해 색다르게 꾸며진다.
야외 테라스는 아침에는 조식 공간, 저녁에는 모닥불을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장소다. 여름이라면 호시노 리조트 BEB5 가루이자와의 다양한 사와(일본 소주에 탄산수, 과즙 또는 시럽을 넣은 술, 일종의 생과일 소주)도 빠트리지 말자.
객실은 트윈 룸과 야구라(YAGURA) 룸 두 가지 타입이 준비돼 있다. 일본다운 아기자기한 공간 구성이 특징으로, 욕실과 화장실을 분리해 편의성을 높였다. 또 복층 형태의 야구라 룸 1층은 친구, 가족과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소파 구역이다.
부대시설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문제없다. 상점, 식당 & 카페, 온천 등이 있는 호시노 지역(Hoshino Area)과 호텔을 오가는 순환 버스(무료, 오전 9시~정오, 오후 3~11시)를 활용하면 된다, 사실상 호시노 리조트 BEB5 가루이자와의 영역은 호텔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
하루니레 테라스
‘가루이자와의 일상’을 콘셉트로 한 숲의 거리. 16개의 상점이 모인 하루니레 테라스(Harunire Terrace)는 이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 온 100여 그루의 하루니레(느릅나무)를 보존한 채로 조성됐다. 가루이자와의 상냥한 자연 곁에서 장을 보고,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고, 산책하는 공간이다. 시간별로,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식당과 카페도 많아 매일 새로운 음식을 만나게 된다. 따로 시간을 내 멀리 나가지 않아도 가루이자와의 다양한 얼굴을 볼 수 있다.
일단 하루니레 테라스에 발을 들이면 모든 곳에 들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길 것이다. 가게 하나하나 뚜렷한 색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는 베이커리 사와무라(Sawamura)에서 갓 나온 크루아상과 캄파뉴를, 점심으로는 소바 또는 네팔 커리를,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오후에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그걸로 충분하다.
부른 배를 꺼트리기 위해 인테리어 소품, 공예품, 의류점 등의 가게를 둘러보거나 시냇물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데크 길을 거닐면 된다. 저녁에는 와인과 함께 파스타 & 피자, 혹은 프랑스 요리를 음미해 보자. 돌아가는 날에는 일본 과자점 이즈미야(Izumiya)에서 코로코로 쿠루미(호두, 사과, 계피와 꿀을 사용한 달콤한 과자), 쿠루미 당고를 챙기면 좋겠다. 가루이자와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아쉬움을 달래 줄 테니까.
흙, 산, 강의 결실
브레스톤코트 유카와탕
숲 속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클래식 프렌치. 유카와탕(Bleston Court Yukawatan)의 솜씨는 미식 이상의 경지에 이른 만큼 여행의 피날레로 손색없다. 가루이자와의 식재료를 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한데, 비옥한 토양에서 기른 각종 허브와 채소, 땅과 산, 강이 내어주는 동식물(물냉이·여름 채소·버섯·잉어·백송어·비둘기·염소·사슴 등)로 식탁을 차린다. 계절감을 충분히 살린 메뉴 구성도 일본, 그리고 가루이자와답다.
3시간에 걸친 만찬은 한 편의 연극이다. 아뮤즈 부쉬(amuse-bouche)부터 5가지 앙트레, 쁘아송(poisson, 생선), 비앙드(viande, 육류), 프로마쥬(fromage, 치즈), 데세르(dessert)까지 이어지는 식사는 가루이자와의 서사와 자연이 집약돼 있다.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맛을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가루이자와를 깊게 이해하게 된다. 와인 & 논알코올 페어링, 게리동 서비스(고객 테이블에서 조리하는 서비스) 등도 파리 못지않게 훌륭하다.
*이성균 기자의 M-SG
당신의 여행에 감칠맛을 더해 줄 MSG 제작소. 관광지, 호텔, F&B 공간, 액티비티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탐합니다. 여기에 M(밀레니얼)세대, 뱀띠 기자의 취향 한 스푼 더할게요.
글·사진 이성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