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소도시로 떠난 파란색 로드트립.
‘바다 없이는 여행도 없다’라는 각오로 캘리포니아의 해변과 색감을 집요하게 쫓았다.
캘리포니아 소도시 감성
산타크루즈 & 캐피톨라
캐피톨라(Capitola)부터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까지, 해안가를 따라가는 여행은 캘리포니아의 크고 작은 도시의 갖가지 얼굴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1년 내내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날씨는 보너스다. 시작은 산호세공항(San Jose Mineta International Airport)에서 35~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아담한 도시 ‘캐피톨라’다. 어느 정도로 자그마하냐면 거주하는 사람이 1만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을 방문한 건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과 반짝이는 바다, 그 속을 채우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보고 싶어서다. 노랑, 주황, 보라색 등으로 칠해진 베네시안 코트(Venetian Court, 숙소 단지), 소쿠엘강(Soquel Creek)을 따라 늘어선 주택, 해변을 바라보고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 캘리포니아의 떼루아(terroir, 포도 생산에 영향을 주는 토양, 기후 등의 조건)를 확인할 수 있는 와인 상점, 지역 예술가의 공예품점 등 시간을 보낼 만한 콘텐츠는 충분하다.
바로 옆 도시인 산타크루즈(Santa Cruz)는 서퍼를 위한 낙원이다. 적당한 수온과 서핑에 최적화된 파도의 질, 2가지 조건만으로도 서퍼들을 불러 모으기에 충분하다. 서핑 박물관(Surfing Museum) 앞으로 펼쳐진 바다에는 이른 아침부터 솜씨를 뽐내는 이들로 북적인다. 1885년 산타크루즈에 서핑 문화를 전파한 3명의 하와이 왕자들도 뿌듯하게 볼 것만 같다.
해변을 중심으로 상업지구도 발달해 있다. 100주년을 맞이한 ‘산타크루즈 와프(Santa Cruz Wharf)’는 부두에 형성된 상점가로, 식당과 카페, 기념품 가게 등이 모여 있다. 게다가 귀여운 수달과 바다사자(sea lion, 물개와 비슷하나 대체로 몸집이 크고 큰 소리로 움)도 있다. 어디선가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보자.
테마파크 ‘산타크루즈 비치 보드워크(Santa Cruz Beach Boardwalk)’도 빠트리지 말자. 대단히 화려한 건 아니지만, 미국 소도시 감성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가지만 탈 수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100주년을 맞이한 ‘스릴 라이드(Thrill Rides, 롤러코스터)’에 몸을 실을 것이다.
반도의 두 가지 낭만
우드사이드 & 하프문베이
샌프란시스코 아랫부분과 접한 샌프란시스코 페닌슐라(San Francisco Peninsula)는 익숙한 목적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휙 지나치기에는 분명 아쉬운 곳이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라면 더욱 그렇다. 지도를 보면 정복욕을 돋우는 산과 탐방로, 머물고 싶은 공원 등 초록색으로 덮인 부분이 많고, 태평양과 맞닿아 있어 해수욕장도 수두룩하다. 수많은 관광지 중 고풍스러운 저택이 있는 우드사이드(Woodside)와 바다가 반겨 주는 하프문베이(Half Moon Bay)로 향했다.
우드사이드를 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샌프란시스코 페닌슐라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상하는 ‘피롤리(Filoli Historic House & Garden)’가 있어서다. 피롤리는 1917년 캘리포니아 부호 윌리엄 본(William Bourn) 부부의 별장으로 지어진 공간으로, 1975년부터 대중에 공개됐다. 654에이커(약 80만610평) 부지에는 조지 왕조풍의 주택(The House)과 영국 르네상스 양식의 정원(The Garden) 등이 어우러져 있다.
거대한 집(방 56개·침실 10개·화장실 15개 등)은 들어가는 순간 압도된다. 각종 예술품과 가구 등 과거의 호화로움을 간직하고 있으니 말이다. 공간의 위상을 덧붙이자면,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비롯해 굵직한 행사가 종종 열린다. 집과 연결된 정원은 10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싱그럽다. 수많은 정원사가 꽃밭과 수목을 정성 들여 가꾸고 있는데, 자연은 계절에 맞는 옷으로 화답한다.
참, 윌리엄 본은 본인의 가치관을 활용해 별장의 이름을 지었다. 대의를 위해 싸우고(Fight for a just cause), 이웃을 사랑하고(Love your fellow man), 선한 삶을 살라(Live a good life)는 문장에 쓰인 첫 단어의 알파벳들을 조합했다.
반도에 온 만큼 바다도 빠트릴 수 없다. 12km에 달하는 긴 해변을 품은 소도시 하프문베이 차례다. 하나로 이어진 해변을 하프문베이 스테이트 비치, 엘마 비치(Elmar Beach), 베니스 비치, 네이플스 비치(Naples Beach), 레돈도 비치(Redondo Beach) 등으로 구분했는데, 인파가 많은 곳은 따로 있다. 캠핑장과 비치발리볼 코트 등이 있는 프란시스 비치(Francis Beach)다. 물놀이를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모래도 부드러운 편이라 좋은 자리에는 어김없이 텐트가 설치돼 있다. 한편에서는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비치발리볼 승부를 펼치고 있다. 젊음이 느껴지고, 뉴진스의 ‘버블검’을 배경음악으로 깔아 주고 싶다.
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 이곳은 청춘 영화의 배경이 된다. 하프문베이 카약(Half Moon Bay Kayak Co)에서 자전거를 대여할 수 있으니 미리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다. 1시간 정도면 필러 포인트 하버(Pillar Point Harbor)부터 프란시스 비치까지 왕복하기에 충분하다.
Dive into SF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의 땅은 무지하게 넓다. 한국 면적보다 4배 이상 크다. 흔히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SF)를 이웃 동네처럼 말하지만 비행기로는 1시간 30분, 차로는 6시간 30분~7시간을 달려야 한다. 먼 거리만큼 지역 문화와 분위기도 미묘하게 다르다.
샌프란시스코는 뭐랄까, 비즈니스와 레저의 균형이 잘 잡힌 동네 같다. 미서부 금융, 상업의 중심이고, 실리콘 밸리도 있어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고, 부산하게 움직인다. 비즈니스 수요가 워낙 많아 주말보다 평일 숙소비가 비싸다는데, 이건 오히려 여행자에게는 희소식이다. 도시에 대한 현지인들의 자부심도 상당하다. 경험해야 할 것들을 추천해 달라고 하면 인터뷰처럼 진지하게 답한다. 케이블카, 페리빌딩을 비롯해 역사상 가장 유명한 감옥인 알카트라즈, 각종 뮤직 페스티벌, 세일스포스 파크 같은 공원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밀집한 노스비치 등 줄줄이 읊는다. 지도 앱에 일일이 저장하느라 바쁘다.
수많은 목적지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은 금문교(Golden Gate Bridge, 세계 최초의 현수교, 길이 2,737m)다. 단순한 빨간색 다리가 아니다. 이 랜드마크에 닿는 여정 자체가 샌프란시스코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걸어가도 좋지만, 축복받은 기후를 온전히 느끼려면 페달을 밟는 게 아무래도 낫다. 다리가 튼튼하다면 일반 자전거를, 편안함을 추구한다면 전기자전거(2시간 48달러, 1일 88달러, 대여소마다 가격 상이)를 권한다.
시작점은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유명한 하이드 스트리트 피어(Hyde Street Pier)다. 항구 인근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니 가격대를 보고 선택하면 된다. 이곳에서 출발해 아쿠아틱 파크 블리처스(Aquatic Park Bleachers), 팰리스 오브 파인 아트(Palace of Fine Arts), 요다 분수(Yoda Fountain), 골든 게이트 해변(Golden Gate Beach) 등을 거쳐 금문교로 간다. 관광 명소와 현지인의 일상적인 공간들로 구성된 훌륭한 라이딩 코스다. 심지어 태평양도 곁에 뒀다. 자전거 위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돗자리를 깔고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거나, 열심히 달리기도 하고, 햇빛에 온몸을 맡긴 이도 보인다.
충분하게 구경하면서 40분을 달려오니 이윽고 금문교가 보인다. 명작은 그 내용을 알고 봐도, 몇 번을 봐도 감동을 준다고 하지 않나. 여행에서는 랜드마크가 그렇다. 온갖 미디어에서 계속해서 보여 주고, 오기 전부터 수십 번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더라도 실제로 보면 저항할 수 없다. 감격하고, 벅차고, 탄복하기를 반복한다. 마지막 스퍼트로 오르막길을 정복하면 다리에 진입한다. 여기서 보는 SF가 또 다른 명품이다. 장애물 없이 펼쳐지는 바다와 도심을 한눈에 담는다.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가 없는데도 화려한 경치다. 두근거림은 쉽게 가시지 않고, 다리를 바라볼 수 있는 이퀘이터 커피(Equator Coffees)에서 긴 여운을 만끽한다.
덧붙이고 싶은 여행 팁 하나. 캘리포니아 여행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점 도시로 활용하는 법이다. 인천(ICN)-샌프란시스코(SFO) 직항노선은 국적사도 운항하고 있지만, 항공 일정을 보면 유나이티드항공의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오전(11:30~06:15)과 오후(16:50~11:45) 한 편씩 비행기를 띄우는데,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시간이 이른 아침 또는 정오 직전이다. 공항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시간 손실 하나 없이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또 10월 가을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샌프란시스코를 후보로 올리길 권한다. 여행하기 좋은 날씨가 첫 번째, 합리적인 가격이 두 번째 이유다. 항공 노선은 시즌별로 가격이 다른데 유나이티드항공의 10월 인천-샌프란시스코 항공권은 감히 추천할 만한 가성비 티켓이다.
Airlines 유나이티드항공
인천(ICN) → 샌프란시스코(SFO)
UA806 11:30~06:15
UA892 16:50~11:45
샌프란시스코(SFO) → 인천(ICN)
UA805 23:40~04:20(+2)
UA893 10:35~15:00(+1)
에디터의 운수 좋은 날들
무언가 처음 할 때면 긴장하는 편이다. 여행도 다르지 않다. 익숙하지 않은 목적지로 떠날 때면 내적으로 걱정 51, 기대감 49의 비율로 치열하게 싸운다. 운이 좋은 건지 막상 뚜껑을 열면 여행지는 매번 멋진 모습만 보여 준다. 수십, 수백 번의 경험 중에서 예외는 거의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는 어땠을까?
이곳에 대한 이미지는 코로나 전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2020년 전까지는 환상적인 날씨, 실리콘 밸리를 필두로 한 혁신 도시, 미국 여행지 1순위 등이 떠올랐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마약, 노숙자 범죄 등 주의해야 할 것만 늘어났다. 흉흉한 소식도 계속 접하게 됐다. 부정적인 소문 탓에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어깨가 움츠러들었고, 사방을 주시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기 시작하자 여느 여행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한없이 의심하면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여행자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은 도시는 여행자의 마음을 잠금 해제했다, SF의 낭만은 굳건했고, 어딜 가나 인파로 북적였다. 도심 전경이 보이는 대관람차를 비롯해 수많은 식당과 카페, 상점이 밀집한 피어 39(Pier 39), 사워도우(sourdough, 시큼한 맛이 특징)를 맛볼 수 있는 부댕(Boudin Bakery), 역사적인 문화공간 페리 빌딩(Ferry Building), 151년 동안 지역민의 발이 돼 준 케이블카 등 명물은 다 즐겼다.
건물 보는 재미도 빠트릴 수 없다. 특별한 장소가 아닌데도 적갈색과 노르스름한 건물들은 사진을 찍게 했다. 개중에는 새롭게 태어난 곳도 있다. 금문교 국립 유원지(Golden Gate National Recreation Area)에 속한 프레시디오(The Presidio)에는 독특한 호텔이 있다. 1890년대 미국 육군이 군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건설한 몽고메리 스트리트 막사(The Montgomery Street Barracks)의 건물이 숙소가 됐다. 일부 객실에서는 금문교가 보이고, 호텔 앞으로는 샌프란시스코의 자연이 펼쳐진다. 또 오라클 파크(야구장),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 여러 테마로 도심을 어슬렁거렸다.
그저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런 감상적인 분위기를 몰랐다면 계속 위험한 목적지로 치부했을 테니 말이다. 이제는 아니다. 특유의 감각을 잃지 않은 샌프란시스코를 다시 여행할 날을 기다릴 뿐이다.
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캘리포니아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