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곳을 다시 여행한다는 것은 그 여행이 마음 한구석에 완벽히 각인됐다는 의미다.
7년 전 그때처럼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여름을 뒤로하고, 겨울 끝과 봄의 초입에 있는 캐나다 알버타주로 떠났다. 봄옷과 겨울옷으로 묵직하게 채운 24인치 캐리어. 이것이 이번 캐나다 여행을 계획하며 설렌 기대의 무게다. 첫 번째 캐나다 여행의 이유는 자연의 광활함을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마침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것을 기념 삼아 캐나다를 여행했었다. 이번 캐나다는 내 인생의 두 번째 캐나다다. 다시 찾은 캐나다의 첫 공기는 차갑고 명쾌했다. 덜컹거리는 차창 너머로 추억으로만 간직했던 풍경을 마주했다. 평원 너머 머리에 하얀 눈을 뒤집어쓴 설산이 끝없이 이어진다. 왼손에는 핸드폰을, 오른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쉴 새 없이 차장 밖을 찍던 그때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캐나다 로키산맥으로 향했다. 알버타주의 주도 캘거리는 공기가 깨끗하기로 유명한데, 가시거리가 무려 150km에 달한다고 한다. 멀리 있는 산맥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캘거리주에서 1시간을 넘게 밴프 국립공원을 향해 달리다 보니 드디어 산들과 가까워진다. 너른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던 말과 소 뒤로, 삐죽삐죽한 잎을 가진 침엽수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며, ‘드디어 또 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얼마나 그리웠던 모습인지. 마음껏 숨을 들이켜 본다, 7년 전 그때처럼.
고요의 한가운데서
‘미네완카 호수(Lake Minnewanka)’는 밴프 국립공원에서 가장 면적이 큰 호수다. 인공 호수로 한국의 주암댐처럼 물 아래 한 마을이 잠겨 있다. 작은 크루즈에 올라 넓은 호수 곳곳을 탐색했다. 배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이 찰랑이고, 채 다 녹지 못한 얼음들은 슬러시처럼 곳곳에 뭉쳐 있다. 윙윙 시끄럽게 소리를 내던 엔진이 꺼지고, 호수에 대해 설명하던 가이드도 말을 그쳤다. 서로 사진을 찍어 주던 사람들의 행동도 멈추자 왁자지껄했던 배 안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잠시 고요를 느껴 보자는 가이드의 제안 덕분이었다. 그 흔한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자연에 둘러싸여 있으니 나를 전전긍긍하게 만들었던 걱정거리들이 별게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잔잔한 호수와 양옆에 우뚝 솟은 나무, 고요를 따라 차분함을 만끽한다. 엔진이 힘을 내고, 사람들이 다시 움직인다. 가이드도 호수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간다. 모든 것이 10초 전으로 돌아왔지만, 이 짧은 공백의 순간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자연을 여행해야 하는 이유다.
뜬금없는 소리지만 캐나다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공원 산책을 경험해 봐야 한다. 캘거리에는 다양한 공원들이 있는데, 그중 두 공원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노스 글렌모어 파크(North Glenmore Park)’. 글렌모어 저수지를 끼고 조성된 공원인데 오른쪽에 작게 로키산맥이 보인다. ‘프린스 아일랜드 파크(Prince’s Island Park)’도 좋다. 퀘벡 출신의 사업가 ‘피터 앤서니 프린스(Peter Anthony Prince)’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잔디밭에서 광합성을 하며 피크닉을 즐기거나, 자전거로 공원을 탐험하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그 유명한 캐나다 구스(Goose, 거위)들이 공원의 주인인 양 돌아다닌다.
Editor’s Pick
황홀한 식사, 노던 라이트 알파인 키친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닌 사람도, 먹다 보면 진심이 되는 식당이 있다. 입과 눈의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는 ‘노던 라이트 알파인 키친(Northern Lights Alpine Kitchen)’이다. 노던 라이트 알파인 키친은 밴프 곤돌라 전망대에 위치한다. 뷔페식으로 샐러드부터 고기류와 디저트까지 다양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설퍼(Sulphur)산’을 한눈에 담길 원한다면 창가 자리 사수는 필수다. 예약도 가능하니 성수기에는 예약 방문을 추천한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전망대에서 설퍼산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인생 사진도 남겨 보길.
다시 만나 반가워
세상은 빠르게 변해 간다. 그런데 자연은 늘 같은 모습이다.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건, ‘내가 감탄했던 자연들이 변했는가’였다. 대략 7년 하고도 한 달.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변한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를 방문하기 전날 침대에 누워 ‘유키 구라모토’의 ‘레이크 루이스’라는 연주곡을 들었다. 아름다운 선율 속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가 연상됐다. 노래의 감동이 남아 있는 채로 레이크 루이스를 다시 보자마자 감탄이 튀어나왔다. 예전과 비교해 가며 눈에 담는데, 어쩜 그리도 한결같은지. 호수는 웅장한 산에 둘러싸여 여전히 멋진 풍경을 만들어 냈다.
캐나다 로키산맥에 위치한 호수는 이름이 앞에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레인 호수(Morain Lake), 페이토 호수(Peyto Lake), 보우 호수(Bow Lake)처럼 말이다. 그런데 레이크 루이스는 ‘호수(Lake)’가 이름 앞에 붙는다. 이 호수는 19세기 후반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네 번째 딸인 ‘루이스 공주’에서 이름을 따와 그녀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레이크(Lake)를 앞에 붙였다고 한다.
한편 캐나다에는 유명 영화 촬영지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레버넌트>, <브로크백 마운틴>,
동물의 천국
딱 5월부터 캐나다에서는 겨울잠에서 깬 곰이 먹이 활동을 하는 시즌이다. 운이 좋으면 길가에서 서성이는 야생 곰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길가에 정차했다. 곰인가 하고 창밖을 봤더니 흰꼬리사슴이 풀을 뜯고 있다. 털갈이를 하는지 얼룩덜룩한 모습이다.
다른 날, 다시 달리던 차가 멈췄다. 우리 앞에는 이미 여러 대의 차량이 비상깜빡이를 켜며 서 있었다. 창밖을 보니 흑곰 한 마리가 눈앞에서 서성인다. 이렇게 가까이 야생의 곰과 마주하다니.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됐던 순간이다. 어느 날은 흰꼬리사슴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다른 날에는 언덕을 열심히 타는 산양을, 호수에서는 대머리독수리가 늠름하게 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모습을 마주쳤다. 여기는 야생 동물의 천국 캐나다다.
동물 이야기를 이어서 하자면 개인적으로는 동물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갇힌 동물을 바라보는 게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쿠아리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대한 기사를 쓸 때면 키보드 위에서 손이 주춤거렸지만, 이번에는 편안하다. 캘거리 동물원(Calgary Zoo)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동물보호를 위한 동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다른 동물원에 비해 동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다. 멸종위기 동물들도 이곳에서 편안하게 일생을 나고 있다. 캘거리 동물원의 면적은 48만 평방미터에 달하는데, 수천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와일더 구역에는 그리즐리 베어와 수달, 펭귄, 올빼미, 회색늑대 등 다양한 동물들이 함께 지낸다. 작년 12월에는 부모를 잃은 북극곰 형제가 이 구역에 합류했다. 아주 어릴 때 고아가 됐기 때문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해서다. 둘은 함께 방사장 안을 어슬렁거리거나, 전용 풀장에 앉아 사과를 먹고, 공놀이를 하기도 한다. 잘 가꿔진 방사장에서 노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새로운 마주침
공룡을 보기 위해 캘거리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소도시, ‘드럼헬러(Drumheller)’로 떠났다. 한국에서도 본 적 없는 공룡을 낯선 이국에서 처음 마주하자니 설레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알버타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공룡주립공원이 있을 정도로 공룡 화석이 많다. ‘로얄 티렐 박물관(Royal Tyrrell Museum)’에서 다양한 공룡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 알버타주에서 발굴된 화석들을 전시 중이다. 선캄브리아시대부터 가장 최근인 신생대까지 시대별로 구분했다. 하나의 몸체를 이루고 있는 공룡 뼈의 주인은 각각 다르다. 한 공룡이 온전하게 발굴되는 경우는 드물어 여기저기 조각 모음 하듯이 뼈를 맞췄기 때문이다. 알버타주에서 처음 발견된 ‘알베르토사우루스(Albertosaurus)’, 육식 공룡인 티라노사우루스 렉스, <쥬라기공원>에서 봤던 트리케라톱스 등이 위엄을 뽐낸다. 이곳에서 꼭 봐야 할 화석으로는 국내에서 ‘노도사우루스’라고도 불리는 ‘보레알로펠타(Borealopelta)’. 갑옷 모양의 피부가 그대로 보존돼 생전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공룡의 웅장함에 푹 빠져 웬만한 풍경에는 감흥이 없어질 만도 하건만, 캐나다 자연의 위용은 여전히 놀랍다. ‘후두스(Hoodoos)’는 수백만년의 시간 속 바람에 깎여 속살을 드러낸, 사암 기둥들을 말한다. 암석의 층층은 색이 달라 오묘한 장관을 자아내는데, 마치 외계행성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족히 5~6m를 넘기는 사암들 앞에 서니 자연 앞에서 인간은 작은 존재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디선가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린다. 따뜻한 날씨에 녹은 ‘아싸바스카 빙하수’가 강을 유영하다 절벽을 만나 콸콸 쏟아지는 소리다. ‘아싸바스카 폭포(Athabasca Falls)’는 절경이다. 높이는 23m,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데 너른 강이 좁은 틈으로 한꺼번에 떨어져 내린다.
Editor’s Pick
캘거리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웨스트젯
웨스트젯(WestJet)은 지난 5월18일 인천-캘거리 노선에 신규 취항했다. 밴쿠버, 토론토에 이은 세 번째 캐나다 직항 노선이다. 보잉 787-9 드림라이너가 투입되는데, 성인 여성 평균 키인 160cm 기준, 좌석 간격이 상당히 넉넉한 편이다. 월·목·토요일 주 3회 운항하며 인천에서 오후 9시40분에 출발해 캘거리에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10분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캘거리까지 비행시간은 약 10시간 20분 소요된다. 한국어 기내 방송은 물론 한국어 콘텐츠까지 제공한다.
글·사진 김다미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알버타주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