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명화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쇼핑도 예술이 되었다. 그 우아한 쇼핑은 어쩐지 금방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스텝을 멈출 수 없는 왈츠처럼.
●예술과 쇼핑의 상관관계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수많은 궁전과 성당 등 수세기 전의 건축물들이 간직된 곳이다. 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 베토벤, 슈트라우스, 쇼팽 등의 음악가들도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다. 유럽의 근대 예술을 꽃피운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비엔나가 지닌 이 우아한 문화의 향기는 음악, 미술, 건축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행위인 소비에까지 스며든다는 걸 판도르프 아웃렛에서 발견했다.
비엔나 시내에서 불과 49km, 차로 약 40분 만에 도착한 판도르프 아웃렛은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옛 오스트리아의 전통 가옥을 모티브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모여 있어서, 마치 어느 고요한 소도시처럼 보였다.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감싸고 있는 광장에는 조형미가 느껴지는 거대한 관람차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저마다 특색과 명성이 높은 아웃렛을 많이 봤지만, 판도르프 앞에서는 그 다채로운 아웃렛들이 평범해지는 것만 같았다.
●근사한 쇼핑의 성지
판도르프는 ‘동유럽 최대 규모’, ‘유럽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웃렛’, ‘전 세계 방문객 중 한국인 매출 1위를 차지하는 아웃렛’ 등의 수식어를 가진 곳이다. 7,700m2가 넘는 엄청난 면적에 약 160개의 쟁쟁한 매장들이 펼쳐져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브랜드는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돌체 앤 가바나, 베르사체, 버버리, 몽클레르 등의 명품 브랜드들이에요. 최근 들어서는 한국 아이돌의 패션으로 유명해진 칼하트, 아크테릭스 등의 기세도 만만치 않고요. 다이슨을 포함한 가전과 주방제품들도 탄탄하게 갖춰져 있어서 허니무너나 예비 부부들을 꽉 사로잡고 있죠.” 판도르프 아웃렛의 투어리즘 매니저인 클라우디아가 말했다.
판도르프의 이 수많은 브랜드들은 기본적으로 30~70% 할인된 금액이고,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패션 패스포트를 지급받으면 10% 추가 할인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택스리펀까지 헤아려 보면 환상적인 가격이었다. 이렇게 근사한 쇼핑의 성지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이제부터 꼼짝없이 소비의 노예가 될 것이 뻔했다. 최고로 아름답고 강한 쇼핑의 신에게 사로잡힌 셈이니까.
●살수록 이득, 더 바랄 것 없는 순간
다행히 나는 성스러운 쇼핑의 신과 조우하기에 앞서서 현명한 소비를 위한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 온 터였다. 여행이 직업인 사람으로서 드넓은 아웃렛을 계획 없이 다니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 물품들을 제대로 구매할 수 없을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쇼핑 목적에 따른 우선순위부터 공략하기로 했다. 첫 번째 타깃은 오스트리아 명품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였다. 여행지에서는 현지 브랜드가 가장 저렴하고 품목도 다양한 것이 기본이다. 특히 스와로브스키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가격이 저렴한 곳이 판도르프다’, ‘면세점은 물론, 공장보다도 싸게 살 수도 있다’ 같은 소문이 자자했다. 주얼리, 액세서리, 손목시계 등 마음에 드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갈등이 시작됐지만,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두 배 가까이 된다는 걸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한 순간 그 고민은 곧바로 사라졌다. 사지 않으면 오히려 손해구나 싶었다.
뒤이어 클라우디아가 언급한 대로 한국의 아이돌들이 많이 착용해서 인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칼하트에서 시크하게 걸치기 좋은 재킷을 몇 개 고르고, 모던한 디자인과 다채로운 색감의 백이 많은 럭셔리 브랜드 훌라에서 백도 구매했다. 몇 개의 매장을 더 돌아다닌 뒤에 마지막으로 발길이 향한 곳은 프리미엄 핸드메이드 와인 잔으로 유명한 리델이었다. 15년 이상의 수련을 마친 장인이 직접 입으로 불어서 형태를 만들고 수작업으로 완성해 와인 잔을 만들어 온 약 260년 역사의 브랜드다. 와인 종류마다 각각의 매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섬세하게 설계된 잔들이 나를 유혹했다. 잔의 유려한 곡선과 그 아랫부분 손잡이의 색감들은 그야말로 작품이었다.
핸드메이드 시리즈 이외에 머신 제작 잔들도 있어서 선택의 폭도 넓었다. 완벽한 포장 상태로 애지중지 품에 안고 비행기에 올라도 자칫 깨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여러 잔 세트로 사서 몇 개가 깨져도 현지에서 사는 게 남는 것’이라는 말이 나돈다. 그렇게 와인 잔까지 고이 모시듯 품에 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Shopping Tips
1. 판도르프 아웃렛은 비엔나 시내에서 49km, 비엔나 국제공항에서는 33km 떨어져 있어 차로 약 30~40분이면 닿는다. 시내 관광 후 마지막에 쇼핑하고 출국하면 매우 편리하다.
2. 아웃렛의 위치가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3개국의 경계에 있다. 동유럽을 여행할 때 쇼핑 스폿으로 제격이다.
3. 비엔나 시내에서 아웃렛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어 편리하다. 대체로 약 40분 소요되며,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탑승 장소와 운행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도 할 수 있다.
4. 아웃렛 입구의 게스트 인포메이션에서 전체 지도, 추가 세일, 시즌 할인 등의 정보를 얻거나 QR 코드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0% 추가 할인이 되는 패션 패스포트는 꼭 챙길 것. 할인이 적용되는 브랜드와 품목이 정해져 있으며, 사용 가능 여부는 각각의 숍에서 확인하면 된다. 한국어 가이드 맵도 특별히 마련돼 있다.
5. 아웃렛 내부에 택스 리펀 오피스가 있어서 편리하다. 쇼핑 중에 숍에서 택스 리펀 서류를 받아 두었다가 택스 리펀 오피스에 여권과 신용 카드를 함께 제시하면 처리를 도와 준다.
6. 식음료 매장은 2024년 8월 기준으로 20개 매장이 들어서 있다.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모던하고 심플한 아시아 퓨전 음식을 만드는 와가마마(Wagamama),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부터 세계 각국의 음식까지 골고루 갖춘 리아스(Lia’s), 오스트리아 전통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자허 카페(Sacher Café)다. 특히 초콜릿 케이크에 살구 잼을 넣고 진한 초콜릿을 코팅하듯이 반짝거리게 입혀서 만든 오스트리아의 전통 디저트인 자허 토르테(Sacher Torte)는 꼭 맛볼 것.
7.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한 일요일은 휴무이며, 대체로 목요일과 금요일에 새 상품이 많이 입고된다. 휴무일인 일요일이 지나고 새로운 주간의 초반에 발주가 시작되면 목요일과 금요일 즈음 상품이 채워지기 때문.
●자연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
예술의 도시에서는 쇼핑뿐만 아니라 미식도 예술적인 행위가 되는 걸까? 판도르프 아웃렛 인근에는 청량한 노이지들러(Neusiedler)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그 호숫가에 자리한 레스토랑 ‘다스 프리츠(Das Fritz)’는 결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었다. 음식을 맛보는 것이 그저 식사가 아니라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 곳이었다.
시원하게 개방된 통유리창 앞의 테라스에서부터 호수가 뻗어 나가고 있었다. 그 앞으로 이어지는 우드 데크 옆에는 바(bar)와 라운지 체어가 있고 우드 데크를 따라 걸으면 호수의 안쪽까지 닿을 수 있었다. 데크의 끝에서 레스토랑을 바라보며 여러 컷의 사진을 찍었다. 자그마한 사진 속에서는 마치 레스토랑이 물에 떠 있는 듯 보였다.
이곳을 운영하는 프리츠 가족은 ‘신선한 로컬 재료로 수준 높은 요리를 완성한다’는 철학으로 오스트리아 전통 요리를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새우에 컬러풀한 채소와 라임 요거트가 어우러진 샐러드, 석류를 곁들인 아티초크 리소토를 비롯한 요리들은 재료의 조합과 조리법, 담음새까지 유니크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에 핑크와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에 번진 구름은 오로라를 연상케 해 낭만을 더했다.
노이지들러 호수와 맞닿아 있는 제빈켈 국립공원(Seewinkel National Park)도 자연을 아주 특별하게 탐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마부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공원을 둘러보는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필의 말들이 이끄는 마차에 올라 출발하자 숲 내음과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숲길과 습지와 푸른 초원을 다양하게 훑는 맛이 남달랐다. 초원에서는 말과 물소를 비롯한 동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고, 습지와 초원에는 철새들이 보였다. 마지막에 도착한 대초원의 나무 테이블에는 와인이 준비돼 있었다. 함께 여행했던 일행들과 잔을 부딪히며 광활한 자연에서 바람을 느끼며 와인을 마시는 호사에 감동했다. 자연이라는 작품 속에 오롯이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았다.
●도시 자체가 작품인 비엔나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 하루쯤은 역사적인 건축물이 가득하고 대성당의 종소리와 음악 선율이 흐르는 거리를 따라 걸어 보기로 했다. 비엔나의 심장이라 불리는 슈테판 대성당, 경건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유명한 성 베드로 성당, 수세기 전의 건물들에 명품 매장이 들어서 있는 콜마르크트 거리, 합스부르크 왕가가 머물렀던 왕궁 등을 따라 산책하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마지막에는 노면 전차인 트램을 타고 비엔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비엔나 남동쪽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독특한 바로크 건축물로서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프랑스식 정원을 가운데 두고 상궁과 하궁, 두 궁전이 마주 보고 있었는데, 양쪽 모두 갤러리로 쓰이고 있어서 18~20세기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기대됐던 화가는 역시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였다. 너무 유명한 대표작 ‘키스’가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관능적인 곡선, 몽환적인 색감, 반짝이는 금박 장식이 보면 볼수록 신비로웠다. 입체와 원근을 과감히 지우고 평면적으로 구상한 것도 수수께끼처럼 알 듯 말 듯 다가왔다. 마치 풀리지 않는 미궁으로 빠져들 듯이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가 한참을 바라봤다. ‘클림트의 작품은 반드시 실물을 직접 봐야 한다’는 미술 애호가들의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유디트Ⅰ’을 비롯한 나머지 작품들도 하나하나 오랜 시간 찬찬히 감상했다. 갤러리에서 클로징 타임을 알리는 방송이 몇 번이나 나올 때까지 클림트의 작품들 앞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비엔나에 머무는 동안은 하루하루가 일상 속의 예술을 발견하는 날들이었다.
글 나보영 사진 나보영, 곽서희 기자 에디터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맥아더글렌 디자이너 아웃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