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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필 마라도에서 드론을 날린 이유

2024.09.04. 10: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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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도 하늘을 날아다니는 세상, 나라고 못할 게 뭐람.
‘드론 트라우마’를 극복하리란 결심을 세우고 마라도로 향했다.

트라우마, 극복할 결심

드론의 영역이 날로 넓어지는 중이다. 농산물 운반과 농약 방제까지 맡아 내더니, 한 걸음 더 나가 이제 작은 섬의 주민들도 치킨과 햄버거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세상을 열었다. 비양도, 마라도, 가파도 등 제주 부속 섬에도 드론 배송이 상용화된다는 소식이 있었다. 선박이 운항하지 않는 물류 취약 시간대에 음식과 생활필수품 등을 배송하고, 지역 특산물도 역배송한다는 내용이다.

국토 최남단에서 대한민국의 영해를 밝히는 마라도 등대
국토 최남단에서 대한민국의 영해를 밝히는 마라도 등대

내게도 드론이 한 대 있다. 섬 여행시 상공에서 까마득한 장면들을 촬영해 볼 요량으로 산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 안 가 하강 중 나뭇가지에 걸려 고장이 나 버렸다. 사용 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던 탓이다. 이런 걸 두고 트라우마라고 했던가? AS까지 받았지만 좀처럼 꺼내 들고 나서기가 쉽지 않았고 그러다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이 돼 버렸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작은 섬으로의 드론 배송 소식은 희한하리만치 자존심을 톡톡 건드렸다. 치킨도 날아다니는 세상이라는데, 남들 다 하는 건데, 새로 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못 할 게 뭐냔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드론을 들고 마라도를 여행해 보자.

목적지를 마라도로 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섬에 나무가 없으니 그나마 드론이 가지에 걸려 떨어질 일은 없을 거라는 것. 둘째, 마지막으로 마라도를 방문한 것이 2021년 여름인데, 재단장한 등대를 아직 실물로 영접하지 못했다는 것. 셋째, 수없이 마라도를 가 보고도 아직 마라도의 명물인 짜장면을 먹어 보지 못했다는 것 등이다. 조정기와 동체 그리고 배터리 팩을 완충하고 파우치에 넣었다. 늘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까지 패킹하니 가방이 더욱 묵직해졌다.

파도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해식애가 발달한 마라도 북서해안
파도에 의한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해식애가 발달한 마라도 북서해안

할망당 지나 등대까지, 마라도 기행

산이수동 선착장에서 마라도까지는 여객선으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섬 내에서의 공인된 체류 시간은 약 1시간 30분 정도지만, 매표소에 얘기해 나오는 배 시간을 조정했다. 드론도 띄우고 짜장면도 먹으려면 넉넉잡아 두 배의 시간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마라도는 순상화산체다. 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안절벽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돌계단을 밟고 몇 걸음 올라섰을 때 비로소 광활하고 편평한 초지대를 만나게 된다. 마라도는 가파도보다도 작다. 면적이 0.3km²에 불과해서 생각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로 원점 회귀하게 된다. 하지만 지극히 남성적인 섬이다. 바다의 어떤 공격에도 끄떡없이 버텨 낼 것 같은 단단함을 지녔다. 오래전 마라도는 원시림이 빼곡했고 함부로 입도할 수 없는 곳이라 하여 ‘금섬’으로 불렸다. 그러던 150년 전, 제주 목사의 허락을 받은 초기 정착민들이 경작지를 마련하고자 숲을 태워 없앤 후 현재의 모습까지 이어지게 됐다.

할망당의 애기업개 전설은 비양도의 애기 업은 돌과 흡사하다
할망당의 애기업개 전설은 비양도의 애기 업은 돌과 흡사하다

섬에 들어선 관광객들은 할망당, 분교, 성당 그리고 등대 앞에서 차례대로 발걸음을 멈춘다. 할망당은 ‘애기업개당’으로도 불린다. 애기업개는 아기를 돌보는 처녀다. 한 처녀가 물질 후 모슬포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라도에 홀로 남겨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풍랑이 심해지자 해녀들의 안전한 뱃길을 위한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녀에게 미안했던 사람들이 그의 넋을 기린 자리로, 처음 이름은 처녀당이었다.

깨끗하게 단장하고 여전히 입학생을 기다리는 마라도 분교
깨끗하게 단장하고 여전히 입학생을 기다리는 마라도 분교
종교를 떠나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인증숏을 찍게 되는 마라도성당
종교를 떠나 누구나 발걸음을 멈추고 인증숏을 찍게 되는 마라도성당

가파초등학교 마라도 분교는 9년째 휴교 중이지만, 아직 폐교 계획은 없다. 국토 최남단 학교라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기도 하고, 언제든 학생이 입학하면 다시 문을 열 계획이다. 마라도성당은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폿이다. 외관은 문어와 전복 그리고 소라를 형상화한 것으로 섬이 품은 풍요로운 바다를 의미한다. 지붕과 벽체의 색깔 또한 상큼하다. 베이지와 인디언 핑크다. 푸른 하늘과 바다, 초록 잔디와 어우러져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그런데 이토록 예쁜 성당에 사제도 정기 미사도 없다. 그래서 성당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잠시 경건한 마음을 갖는다면 섬 빛에 녹아드는 화사한 창가에 앉아 봐도 좋다.

100년 역사의 마라도등대는 2022년 종합 정비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세워졌다
100년 역사의 마라도등대는 2022년 종합 정비 공사를 마치고 새롭게 세워졌다

본디 마라도등대는 1915년 세워졌다. 처음에는 무인 등대였지만 1955년 유인화되었고 1987년 태양광 발전 장치로 전원을 업그레이드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설이 노후화됨에 따라 2021년 철거된 후, 2022년 새롭게 태어났다. 마라도등대는 국토 최남단이자 국토의 시발점이라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태극 문양을 응용한 횃불 형태로 세워졌다. 높이도 32m에 달한다. 그런데 최초 설계에 있었던 전시 및 관람 시설이 문화재 관련 심의에서 삭제됐고 상부의 전망대마저도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등대박물관이 주관하는 ‘아름다운 등대 스탬프 투어’의 15등대 중 한 곳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우리나라 끝 섬 등대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마라도를 걷다 보면 희귀식물인 문주란꽃도 만날 수 있다
마라도를 걷다 보면 희귀식물인 문주란꽃도 만날 수 있다

드론 한 컷과 톳 짜장의 추억

등대와 선착장 사이, 거칠 것 없는 넓은 잔디밭에서 드론을 날렸다. 방향 조종이 서툴고 동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이 두려워 마음껏 상승시키지는 못했지만, 촬영은 소심한 수준에서 성공적이었다. 한 컷에 담긴 해안과 투명한 바다 그리고 절벽 위에 놓인 등대 사진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드론이 아무 탈 없이 귀환한 것에 만족했다. 드론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는 어떤 멋진 곳에서 날리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 자신감을 고취하기 위한 자기 위로적 발상이지만, 이만하면 트라우마를 떨쳐버리는 건 성공했다 말할 수 있겠다.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기 전, 주민들은 봉천수를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담수화 시설이 들어서기 전, 주민들은 봉천수를 모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던 마라도 명물 톳 짜장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좋았던 마라도 명물 톳 짜장면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식당에 들어가 창가에 앉았다.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이 동시에 달려든다. 천국이 따로 없다. 손님이 많았지만 오래지 않아 주문했던 톳 짜장이 나왔다. 사실 마라도 짜장면에 대해서는 맛보다는 분위기라는 평가가 많다. 그런데 실제로 먹어 보니, 맛도 꽤 훌륭했다. 낮은 기대치와 허기를 감안해도 그랬다. 관매도의 짜장면만큼 톳의 식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부드러운 면발에 짜장 양념도 맛있었다. 톳 짜장의 가격은 8,000원. 문득 마라도의 물가가 궁금해졌다. 편의점에 들어가 보니 삼다수 500m 한 병에 750원이 찍혔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다.

다음번에는 드론으로 마라도 전체를 오롯이 담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가 되면 해물짬뽕과 탕수육을 안주 삼아 소주도 한잔해야지. 혹시라도 등대 전망대가 개방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5 마라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살레덕 절벽의 위용에 감탄하게 된다
마라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살레덕 절벽의 위용에 감탄하게 된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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