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김나영 작가가 브리즈번에 사는 포토그래퍼에게 물었다. 거기서 잘 지내나요?
Interviewee from Brisbane
이한결
브리즈번을 기반으로 호주 곳곳을 누비며 활동 중인 사진가. 사진을 찍는 순간과 의미에 진심인 그의 사진에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시선 속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호주 브리즈번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 중인 이한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홈스쿨링으로 조금 일찍 중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호주로 오게 되었어요. 이런 상황 때문에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었는데, 그때의 외로움이 제 마음을 돌보고 다독이게 하는 힘이 되었던 거 같아요. 이런 작은 힘으로나마 다른 이들의 몸과 마음도 함께 돌보고 싶어 간호사라는 직업을 택하고 아픈 이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교감하는 역할을 해왔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정해진 규칙을 깨고 새로운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된 거예요. 병원 안에선 룰을 깨는 것이 금기시되는 것이지만, 그 바깥에서는 이러한 저의 성향이 다른 이들에게 여러 도움이 될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애정을 담을 수 있었던 사진을 업으로 선택하게 됐죠. 저는 사진을 찍는 과정과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정말 사랑합니다.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을 발견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그걸 두 번이나 해내셨다는 게 한편으론 부럽기도 해요. 호주 안에서도 브리즈번을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도 있나요?
사실 브리즈번으로 오게 된 건 부모님의 결정 덕분이었어요. 여기에 지인이 있었거든요. 같은 언어권이라도 문화적으로 비교적 더 많은 ‘원조’를 지닌 미국에서 호주로 넘어왔던 터라 처음엔 삶 전반적으로 많은 부분이 비교되더라고요.
투박한 발음부터 따분할 정도로 평온한 날씨, 느긋한 사람들의 태도까지. 당시엔 그 어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때는 미처 몰랐죠. 매일 다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감동적인 일상과 내가 노력한 만큼 반드시 찾아오는 평화로움, 그리고 그 잔잔한 일상에 가끔 돌을 던지는 재미가 여기 브리즈번에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게 이곳만의 매력에 빠져 자리 잡은 지도 벌써 15년이 넘게 흘렀네요.
물 흐르듯 흘러와 자연스레 스며든 브리즈번,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어때요?
여기 살면서 아마 10번도 넘게 이사를 했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이사가 다 이곳, ‘에잇 마일 플레인즈(Eight Mile Plains)’라는 동네 5km 반경 안에서 이뤄졌어요. 이렇게 말하니 뭔가 대단하게 있는 동네인가 보다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곳을 맴돌았던 건 실용적인 이유가 커요. 다니던 대학교와 병원이 가까웠고, 시내 중심으로 나가는 버스 노선이 정말 많아 편리했고, 큰 쇼핑몰이나 아시안 마켓이 있는 것 등 정말 단순한 이유였죠. 지금은 또 고속도로를 타기 편한 탓에 스튜디오 없이 장소 섭외를 하며 작업하는 제 생활 패턴과 정말 잘 맞아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네요, 하하.
한국과 비교해 브리즈번에서의 삶이 더 만족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나요?
시드니, 멜버른 그리고 브리즈번을 흔히 호주의 3대 도시라고 하죠. 제가 사는 브리즈번은 다른 두 도시에 비해 아직도 성장하고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선지 이 도시에서는 내가 가진 기술로 남들이 가지 않으려 하거나,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들을 조금만 공들여서 해도 그 노력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더라고요. 나의 노력이 눈에 띄게 드러나 보이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스트리트 포토 콘셉트로 웨딩 화보를 시작한 것 역시 금방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어요. 저는 뻔한 웨딩 사진 대신에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틈에 특별한 날을 맞이한 커플을 주인공으로 두고 그 대비를 담고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그 의도가 통했던 것 같아요. 또, 결혼식 전에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을 보지 않는 것이 이곳 웨딩 문화의 특징인데, 결혼 전 미리 사진을 찍는 프리 웨딩(Pre-Wedding) 방식도 진행하고 있죠. 이 역시 현지 분들의 반응이 무척 좋아요. 한국인에겐 익숙한 문화일 테지만, 여기선 새로운 접근이었던 거죠. 한국, 서울이었다면 이런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고 개척해 나가는 게 쉽지 않았겠죠. 하지만 이곳에선 제가 걸어온, 그리고 걸어가고자 하는 길이 비교적 눈에 잘 보이는 것 같네요. 그리고 자연을 곁에 두고 사는 삶 역시 크게 다른 지점이죠. 자연이 주는 위로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거든요. 브리즈번 계절을 크게 나누자면 내내 화창한 여름과 한국의 늦가을 정도의 겨울이 있어요. 이 두 계절이 만들어 주는 구름의 질감과 공기의 무게,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길거리와 바다의 풍경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게 도와줘요. 일과 후에 미세먼지 걱정 없이 동네 어디에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을 산책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은 이곳 브리즈번에서는 전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한결님이 그곳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는 어떤지 궁금해요.
동화 속 이야기 같지만 저는 아침에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나요. 호주 도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곳에 머물러 보신 분들이라면 무조건 공감하실 거예요. 촬영이 없는 날엔 이른 아침 집 근처 카페로 산책 겸 걸어가 커피와 아침을 사 와서 먹으며 집에서 사진 색감 보정 작업을 해요. 밥은 보통 사 먹는 편인데, 제가 사는 동네엔 나라별로 정말 다양한 음식점이 있어서 매번 다른 음식을 시도해 보곤 합니다. 최근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지역의 대표 음식인 ‘락사(Laksa)’에 푹 빠졌어요. 저는 사실 취미도 사진, 일도 사진이라 카메라를 하루도 잡지 않는 날이 없어요. 쉬는 날엔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제일 좋아하는 렌즈로 사진을 찍어요. 촬영 일이 있는 날엔 보통 멀리 운전해 나갈 일이 많은데, 브리즈번을 벗어나 북쪽으로는 누사(Noosa), 남쪽으로는 호주 최동단인 바이런 베이(Byron Bay) 근처로 이동해 작업하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촬영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차에 기대어 5분쯤은 시간을 내서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집에 들어가요. 정말 믿기 힘든 이야기죠? 하지만 한 번이라도 별이 수놓아진 호주의 밤하늘을 경험해 보았다면 누구라도 저처럼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거예요. ‘이렇게 수많은 별 아래 살고 있었구나’ 하면서, 낮 동안 힘겹게 짊어지고 있던 모든 마음의 짐들이 너무나 사소한 것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에요.
매력적인 브리즈번 안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 3곳을 꼽자면요?
첫 번째로는 ‘존 밀스 힘셀프(John Mills Himself)’라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요. 브리즈번 도심 콘크리트 정글 속, 빈티지한 벽돌 건물 안에 자리한 10평 남짓한 공간이에요. 몇 년 전 공황장애로 사람들이 많은 곳이 버거웠을 때 숨어 들어갔던 공간인데, 그 이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도피처이자 아지트가 됐어요. 조용한 곳이라 하루의 중간에 잠깐 쉼표를 찍기에 좋은 곳이죠. 너무 유명해져서 사람이 많아지는 건 원치 않지만, 그래도 쉼표의 가치를 아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는 ‘테너리프(Teneriffe)’라는 동네예요. 브리즈번 중심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있는 곳인데 제가 촬영 장소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해요. 브리즈번강을 따라 형성된 부촌 지역 중 하나로, 100년이 넘은 섬유 공장을 아파트로 개조한 주거 공간 주변으로 작은 카페와 바가 늘어서 있어요. 그리고 강을 따라 제가 생각하는 브리즈번 최고의 산책길이 있죠. 촬영이 잘 풀리지 않은 날이면 이 산책로를 터덜터덜 걷고 있을 테니 혹시라도 절 알아보신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세요(웃음).
마지막으로 ‘웨스트 엔드(West End)’라는 동네가 있어요. 병원을 그만두고 제대로 사진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시기에, 이 동네를 거닐면서 거리 사진을 마구마구 찍었었는데, 그러면서 매력을 발견하게 됐어요. 제법 힙한 사람들이 모이는 핫플레이스예요. 주로 패션 피플들이 빈티지 쇼핑을 위해 찾곤 하죠. 건물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브리즈번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동네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이룬 곳이라 맛있는 지중해 음식을 먹기에도 좋은 곳이에요.
브리즈번을 여행할 때 꼭 해봐야 하는 3가지는 무엇인가요?
브리즈번에는 대표적인 만남의 광장이 있어요. 바로 퀸 스트리트(Queen Street)에 있는 헝그리 잭(Hungry Jack’s) 앞 광장이에요. 브리즈번 시내 탐방 땐 꼭 이 광장에 앉아서 30분 정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했으면 좋겠어요. 수많은 인종과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광장을 스쳐 가는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세계 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또, 브리즈번을 상징하는 건축물 중 ‘스토리 브리지(Story Bridge)’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가 74m 높이에서 브리즈번 전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는 투어가 있습니다. 브리즈번에서 15년 이상 살아온 제가 이 도시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액티비티 중 하나였어요. 새벽, 낮, 해 질 녘, 보름달 뜬 밤 등 다양한 시간대를 고를 수 있는데, 그중 최고는 도시의 환상적인 일몰을 감상하는 때예요.
마지막으로는 브리즈번강을 누비며 다니는 수상택시, 시티 캣(City Cat)을 타고 사우스 뱅크(South Bank)로 가서 브리즈번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가 있는 퀸즐랜드 대학(University of Queensland)을 방문해 보는 거요! 이 도시가 브리즈번이란 이름의 강을 중심으로 세워진 곳인 만큼, 강을 따라 형성된 생활권과 문화들이 다양해요. 시티 캣을 탄다면 도시를 책 읽듯 훑어보기에 좋고, 퀸즐랜드 대학 캠퍼스 구경도 덤으로 즐길 수 있고요.
사진가 이한결이 추천하는 브리즈번 베스트 사진 스폿은 어딘가요?
뉴팜(New Farm) 공원이란 곳이 있어요. 브리즈번의 높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도시 중심에서는 조금 떨어진 곳이지만, 사진을 좋아하고 여행을 사랑한다면 우버를 이용해서라도 꼭 한 번쯤 가 보시길 추천해요. 브리즈번의, 아니 호주의 공원 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더불어 브리즈번 시민들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에서 평화를 연습하고 누리는지 볼 수 있고요. 공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자세, 태도가 단순할 수 있는 풍경 사진에 화룡점정이 되어 줄 거예요.
비슷한 느낌으로 브리즈번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골드코스트의 명소인 더 스핏(The Spit) 역시 추천하고 싶어요. 바다와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풍경을 즐기며 살아가는지 살필 수 있는 작은 바닷가예요. 제가 가족사진 배경으로 애용하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 특유의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가 사진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어 주죠.
한결님의 이야기에 동화되어 브리즈번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가장 추천하는 브리즈번 여행 시기는 언제예요?
자신 있게 5월 중순부터 9월 중순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한국은 한창 더운 시기이지만 브리즈번 날씨는 천국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낮은 습도가 만들어 주는 구름의 아름다운 패턴과 20도 안팎의 낮 기온,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을 즐기다 보면 ‘브리즈번 병’에 단단히 걸려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곳을 그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후유증을 겪게 될 거예요.
마지막으로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면요?
마음의 평안을 찾는 건 연습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삶과 타국살이에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사는 곳에서 얼마나 그 연습을 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거고요. 분명한 건, 브리즈번은 여러분 마음속의 복잡한 매듭을 느슨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란 거예요. 욕심과 부담감을 내려놓고 평안을 연습할 곳을 찾는다면, 브리즈번은 좋은 선택지가 되어 줄 겁니다.
*김나영 작가의 질문으로 시작된 해외살이 인터뷰 시리즈. 타국에서의 삶을 동경해 왔던 마음 때문인지 수상하게도 해외에 지인이 많은 김나영 작가가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방인의 삶을 선택한 이들의 해외살이를 묻는다.
글 김나영 사진 이한결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