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참가하는 대형 게임사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고, 이번만 무려 33만 5000여 명의 이용자가 몰린 걸 보면 게임스컴을 ‘세계 최고의 게임쇼’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하지만 이런 게임스컴도 처음부터 최고의 게임쇼로 자리 잡은 건 아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어린 시절을 거쳐온 것처럼, 게임스컴도 미숙했던 시기가 있는 법이죠. 그런 게임스컴의 시작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게임스컴은 처음부터 ‘게임스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최지도 독일 쾰른이 아니었고요. ‘게임컨벤션(Game Convention)’이라는 이름으로 2002년 서막을 연 게임스컴은 2008년까지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개최됐습니다. 라이프치히는 12세기부터 이어져 온 무역 박람회가 있는 상업도시라서 국제적인 게임쇼를 개최하는 데 적절한 위치로 여겨졌죠.
그러나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게임컨벤션은 일반 관람객들이 찾아가기 힘든 위치에 있어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유럽 주요 게임사들도 참가하기 힘든 접근성 문제로 인해 예상만큼의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에 2009년, 대도시인 쾰른으로 행사를 이전했고, 이름도 게임스컴으로 변경했습니다.
전 개최지보다 좋은 접근성과 우수한 인프라 덕에 게임스컴은 무럭무럭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가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유럽의 특성상, 독일에서 크게 열리는 게임스컴은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거든요.
이후 시간이 흘러 2020년, 게임스컴을 비롯한 대부분의 게임쇼들의 암흑기가 시작됩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전염병,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모일 수 없었기 때문이죠. 모두가 별다른 방도 없이 온라인으로 행사를 진행해야 했습니다. 게임스컴도 2020년과 2021년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했고요.
이런 상황은 게임스컴 이전 최고의 게임쇼라 불리던 ‘E3’가 쇠퇴하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게임사들 입장에서는 비싼 자원을 들여 온라인 게임쇼에 참가하는 것보다는 자체적인 발표 행사를 개최하는 것이 더 큰 이득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실제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쇼케이스’,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 게임 쇼케이스’ 등 많은 대형 게임사들이 자체적인 발표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E3에 참가하지 않아도 자사의 게임에 관심을 가질만한 인원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었고, 일정 조정도 한결 자유로워졌다는 장점도 있었으니까요.
이에 닌텐도, 소니 등 여러 게임사들의 지속적인 불참으로 2020년과 2022년 줄줄이 개최 취소를 이어가던 E3는 결국 2023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E3는 결국 코로나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막을 내렸는데, 게임스컴은 어떻게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걸까요? 이런 차이는 게임스컴과 E3의 방향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E3는 일반인 참관객보다는 언론과 개발자, 퍼블리셔 등 게임업계 전문가들에 중심을 둔 게임쇼였습니다. 신작 게임 발표와 미디어 브리핑이 주요 포커스였고, 이는 ‘게임 축제’보다는 ‘게임 발표회’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2017년부터 일반인 참관객도 받기 시작했지만, 참가 비용 문제, 부족한 티켓 수량 등 여기저기서 불만이 튀어나왔죠. 참가 티켓이 정가로 무려 30만 원이었으니까요.
반면, 게임스컴은 종합적 게임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새로운 게임과 기술에 대해 논의하는 B2B(기업 대 기업)와, 일반 관람객이 자유롭게 게임을 만나볼 수 있는 B2C(기업 대 소비자)를 ‘동시에’ 품고 있죠. 특히 게임스컴의 B2C존은 E3와 달리 게임 체험 위주로 즐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이런 특징 덕분에 게임스컴은 비즈니스 네트워킹을 위해 찾아온 업계 관계자와 게임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 찾아온 이용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게임 트레일러만 보는 것보다는 직접 체험해 보고 즐길 수 있는 쪽이 이용자의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니까요.
비즈니스 쪽도 말투와 표정, 현장 분위기,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등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오프라인 교류의 필요성을 이곳에서 충족할 수 있었죠.
물론 게임스컴이 E3가 폐지된 후 E3의 소비층을 흡수한 것도 성장의 큰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택지가 줄어든 만큼, 대체제에 이용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 소비층을 완전히 정착시킨 것은 게임스컴의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현재 게임스컴은 매년 새로운 콘텐츠와 프로그램을 도입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번 게임스컴에서는 게임 외에도 전반적인 생태계를 아우르는 애니메이션, 코스프레를 위한 단독 전시장(존, zone)을 마련해주기도 했죠.
게임스컴 디렉터 팀 엔드레스가 앞으로도 트렌드에 발맞춘 전시의 확장과 세계 최고의 게임 축제로 계속 인식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는 만큼 게임스컴이 장기적인 확장세를 이룰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2025년에도 게임스컴이 세계 최고의 게임쇼라고 불릴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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