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슈투트가르트= 김흥식 기자]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다. 석탄과 철강 자원이 풍부한데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한 산업 혁명의 영향을 받아 이를 기반으로 기계 산업과 철도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의 패전국이 된 독일은 직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됐다. 그랬던 독일이 1950년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며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부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동차 산업이 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은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고 특히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등이 포진한 프리미엄 시장은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의 한국 수입차 시장 점유율도 올해 9월 기준 70%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 경제의 주축이 될 수 있었던 건 1886년 칼 벤츠(Karl Benz)가 내연기관을 발명하고 ‘페이턴트 모터바겐’으로 시작한 벤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 센터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독일 자동차 산업의 태동지이자 메르세데스 벤츠가 세계 최고의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2006년 문을 연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이다. 느슨한 추위가 막 찾아오기 시작한 20일(현지 시간), 벤츠 박물관과 인근에 있는 '클래식 센터'를 찾았다.
박물관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브랜드의 탄생 과정, 눈을 떼기 힘든 아름다운 클래식카와 스포츠카, 모터스포츠에서 이룬 업적과 주역들,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모델 등 160여 대의 자동차가 전시돼 있다. 클래식 센터는 길게는 100년 이상된 벤츠의 클래식카를 원래의 것으로 복원하는 현장이다.
마차(馬車)에서 자동차로...138년 벤츠의 역사를 한눈에
타임머신을 타고 박물관 8층에 내리면 가장 먼저 말(馬)을 만난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벤츠 박물관은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했을 때 반드시 둘러봐야 할 명소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평일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박물관은 외관부터가 독특하다. 건물 밖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나선형의 3층 구조로 보이지만 실내는 9층으로 설계됐다.
외벽은 메탈릭 실버로 화려하지 않지만 각별한 의미가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모터스포츠 역사에서 독보적 성적을 거둔 팀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를 상징한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전설적인 경주차들의 색상 대부분이 메탈릭 실버였던 것도 그래서다.
박물관을 찾은 주말 나들이객으로 북적이는 로비를 지나 타임머신(엘리베이터)을 타고 8층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말(馬)을 만난다. 마차에서 자동차 시대로 가는 역사의 전환점을 알리는 상징이다. 이곳을 지나면 칼 벤츠의 4행정 엔진 그리고 이 엔진을 탑재한 '페이턴트 모터바겐'과 다임러의 '모터쿠세'가 전시돼 있다.
칼 벤츠의 4행정 엔진을 탑재한 '페이턴트 모터바겐'.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그리고 벤트 컨베이어를 따라가면 벤츠의 자취를 연대별로 만나 볼 수 있다. 목재, 가스등, 쇠로 만든 바퀴, 투박한 시트 등으로 만든 1800년대 말 초기 자동차부터 자동차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벤츠의 모델들이 각층 마다 전시돼 있다.
벤츠의 창조물은 황홀하고 아름답다. 심플릭스 40PS(1902년), 260D 풀만 리무진(1938년), Typ SS(1930년), 500K 스페셜 로드스터(1936년), 세상에서 가장 비싼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1955년) 등 바라만 봐도 심장이 떨리는 클래식카와 드림카를 모두 만날 수 있다.
역사장 가장 비싼 차로 기록돼 있는 '300 SLR 울렌하우트 쿠페(1955년)'.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탔던 방탄차 230G 파파모빌 ‘SCV7’, 히로히토 일왕이 탔던 ‘770 그랜드 메르세데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500SL' 비틀스 링고 스타의 ‘190E 2.3 AMG’ 등 역사적 의미를 차들도 완벽한 형태로 전시돼 있다.
마지막 전시 존에는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와 함께 은빛 화살처럼 트랙을 질주하는 듯한 수십 대의 레이싱카를 볼 수 있다.
벤츠 박물관은 2006년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1300만 명 이상이 찾았다. 자동차를 주제로 한 박물관을 이렇게 많은 방문객이 찾은 건 단순히 오래됐거나 희귀한 차를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있어서다.
벤츠 박물관에는 브랜드 역사에서 가장 화려했던 모델들이 각층 마다 전시돼 있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벤츠 박물관에는 공장 설계도와 직원 급여 명세 그리고 회계 명세를 기록한 장부, 광고 전단 등 브랜드의 사소한 것들까지 모든 헤리티지를 빠짐없이 담고 있다. 벤츠가 이런 헤리티지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더 보여주는 곳이 한 곳 더 있다. 벤츠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클래식 센터’다.
헤리티지의 진심을 보여 준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 센터
1993년 ‘메르세데스 벤츠 올드 타이머 센터'로 문을 연 '클래식 센터'에서 복원 작업 중인 '300 SLR' 이 차는 지금도 우렁찬 소리를 냈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독일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펠바흐에 위치한 메르세데스 벤츠 클래식 센터는 1993년 ‘메르세데스 벤츠 올드 타이머 센터'로 문을 열었고 1996년 클래식 센터로 이름을 바꿨다.
벤츠의 클래식카를 누가 소유하고 있던 완벽한 상태로 보전하기 위해 문을 연 클래식 센터는 과거를 현재로 되돌린 현장이다. 핸드 크랭크로 시동을 걸어야 했던 1900년대 초기 모델부터 수백억 원대 고가의 클래식카들이 복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원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들, 클래식 센터는 작은 부품 하나까지 원래의 것으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클래식 센터 관계자는 "어떤 소재, 어떤 부품이든 전 세계를 다 뒤져서라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작은 볼트 하나까지 출고 당시와 다르지 않게 다듬고 다듬어서 고객에게 전달한다"라고 했다.
벤츠는 클래식카의 완벽한 유지를 위해 5만 2000여 개에 달하는 부품을 게르메르스하임에 있는 부품 센터에서 보유하고 있다. 대다수는 본래의 품질로 재생산이 불가능한 클래식카 전용 부품이다.
클래식 센터는 고객이 요청한 복원 작업 이외에도 희귀 모델을 직접 구매해 수리하고 판매하고 방문객이 직접 시승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사진=한국자동차기자협회 공동 취재단)
이곳에서도 찾지 못한 부품은 클래식 센터가 직접 수리를 하거나 다시 다시 만들기도 한다. 경매 등을 통해 희귀 클래식카를 직접 구매해 복원하고 판매하는 일도 한다. 클래식 센터 관계자는 "작업을 의뢰하는 고객 대부분은 리스토어를 주문한다"라며 "길게는 3년 이상 걸리는 작업도 있다"라고 했다.
지금까지 보다 더 오랜 시간을 완벽한 상태로 이어가기 위해 벤츠 클래식 센터는 모든 작업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박물관에서 봤던 벤츠의 100년 전 모델이 지금 이 순간까지 빛을 발하고 있는 비결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들이었다.
김흥식 기자/reporter@auto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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