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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 타고 떠나는 진짜배기 ‘재원도’ 여행

2024.10.25. 10: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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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를 여행하고 다리 건너 지도읍 점암선착장으로 나왔을 때, 문득 떠오르는 섬이 있었다. ‘재원도’. 10여 년 전 딱 한 번 가 본 뒤, 추억으로 새겨 놓았던 섬이다. 마음만 먹으면 옛 섬에 대한 그리움을 반가움으로 바꿀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 매표소로 달려가 덜컥 배표를 끊었다.

뱃길까지 추억 소환

재원도는 신안군의 북단 임자도 뒤편에 숨어 있는 섬이다. 2021년 임자도가 연륙 되면서 배를 타야 갈 수 있는 첫 섬이 되었다. 그런 이유로 재원도로 가는 방법은 훨씬 수월해졌다. 임자도 서쪽 목섬까지 차량으로 이동한 후, 10분만 배를 타면 끝이다. 그런데도 점암선착장에서는 여전히 1시간이 걸린다. 물론 섬사람들을 위한 배려라지만, 그 덕에 기억을 소환할 좋은 기회를 찾은 셈이다.

지도와 임자도를 잇는 다리가 놓인 후 섬사람들의 육지 나들이가 편해졌다
지도와 임자도를 잇는 다리가 놓인 후 섬사람들의 육지 나들이가 편해졌다

섬사랑 3호가 임자도 남쪽 해안을 돌아 재원도항에 입도했을 때, 달라진 게 없는 선착장과 마을의 모습에 새삼 놀랐다. ‘관광객이 전혀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섬’이라는 10년 전의 첫인상이 데자뷰되는 듯했다. 느리게 흐르는 ‘섬 시간’이라는 말이 너무도 어울리는 낙도다.

섬은 작고 마을은 하나뿐이지만 100여 명의 주민이 정답게 살아간다
섬은 작고 마을은 하나뿐이지만 100여 명의 주민이 정답게 살아간다

재원도에서는 해방 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민어와 부서(굴비) 파시가 열렸다.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늦도록 이어진 파시였다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덧, 재원도는 임자도의 큰 몸집에 가려 일반인에게는 존재조차 희미해진 섬이 되었다.

재원도는 큰 섬 못지않은 백사장과 들고 남이 또렷한 해안풍경을 가졌다
재원도는 큰 섬 못지않은 백사장과 들고 남이 또렷한 해안풍경을 가졌다

유별나지 않은 여행에도 인심은 있다

마을은 유별나지 않은 여느 섬들을 닮았다. 문이 굳게 닫힌 슈퍼, 평일에는 손님을 받지 않을 것 같은 민박도 예상했던 모습이다. 뭐라 딱 내세울 것 없는 어촌 섬마을의 전형적인 풍경, 스폿이라고는 팽나무 두 그루가 날씬하게 버티고 선 당숲과 본섬과 제방으로 연결된 상월항도가 고작이다. 하지만, 여행이 서먹한 섬에도 설렘은 있다. 어쩌면 내가 재원도의 유일한 이방인일지도 모르니까.

당숲도 본디 나무가 많았지만, 현재는 팽나무 2~3그루만 남은 단촐한 모습이 됐다
당숲도 본디 나무가 많았지만, 현재는 팽나무 2~3그루만 남은 단촐한 모습이 됐다
개메기는 썰물과 밀물을 이용한 가장 게으른 전통 고기잡이 형식이다
개메기는 썰물과 밀물을 이용한 가장 게으른 전통 고기잡이 형식이다

마을 앞 바닷가에는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박아 놓고 그물을 걸어 둔 개막이가 설치돼 있다. 밀물 때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썰물 때 잡아내는 전통 고기잡이 방식이다. 마침 그물을 살피러 다가간 아주머니가 허탕 친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보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거 우리 집 닭이 낳은 계란인디, 삶아 잡술랑가?” 주민 한 분이 냄비 가득, 청란을 내미는 게 아닌가. 마침 슈퍼의 문이 닫혀 난감하던 차에 귀한 식량이 생겼다. 감사하다며 돈을 드리려 했지만 한사코 사양하시더니, 카메라를 슬쩍 보고 말씀하신다. “우리 재원도, 이쁘게 찍어 보드라고.”

재원도는 80년대 말까지 민어와 부서파시가 열렸던 풍요로운 섬이었다
재원도는 80년대 말까지 민어와 부서파시가 열렸던 풍요로운 섬이었다

재원도의 숨겨진 보석, 예미해변

마을에서 오늘의 숙영지 예미해변까지는 약 4km 거리다. 섬 인심에 고무된 터라 배낭의 무게는 반쯤 줄어든 듯 가벼웠다. 섬 허리를 따라 걷는 기분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바다와 숲이 번갈아 나타나는 길, 차량 통행마저 없으니 한적하기 이를 데 없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나무, 꽃투성이지만 민낯의 자연은 힐링 그 자체다. 재원도를 다시 찾은 까닭도 그 느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원도에는 몇 해 전 순환임도가 놓였다. 차량이나 도보로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된 것이다. 약 8km의 섬 둘레길, 아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명품 코스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에 여행 못 할 곳은 없다.
먹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에 여행 못 할 곳은 없다.

드디어 예미해변,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과 대형 데크가 설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예전 그대로다. 본디 섬 주민들만의 로컬 해수욕장이었던 이곳은 썰물이면 400m까지 백사장이 드러나는 중급 해변이다. 작은 풀등,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해넘이의 고즈넉함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가히 재원도의 숨겨진 보석이라 할 만하다. 문득, 10여 년 전 지도를 탐색하다 찾아간 우리 일행을 위해 간이샤워장을 만들어 줬던 마을 분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인심 또한 재원도의 힘이다.

백패킹은 오지섬 탐방을 위한 가장 좋은 아웃도어 모드다
백패킹은 오지섬 탐방을 위한 가장 좋은 아웃도어 모드다

솔로 캠핑의 묘미

예미해변에는 모래언덕이 있다. 밀물 때도 바닷물이 닿지 않아 캠핑하기에 좋은 장소다. 게다가 화장실에 물까지 쓸 수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스틱을 폴대 삼아 미드 텐트를 피칭하고 매트리스와 침낭을 깔았다. 시크한 잠자리의 완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 모래 펄 또는 갯벌에서 서식하는 조개류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 모래 펄 또는 갯벌에서 서식하는 조개류다

푸른 저녁 빛이 내리자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모닥불을 피우고 계란과 임자도 슈퍼에서 사 온 동죽을 삶았다. 그리고 티타늄 플라스크를 꺼냈다. 거기에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귀하게 마셔야 할 소주가 들어 있다. 흰자의 탄력에서 느껴지는 자연란의 신선함이라니. 갯벌에서 잡았다는 동죽도 살이 꽉 찼다. 내일 아침 식사 메뉴도 정해졌다. 동죽 국물에 미나미시마바라 소면을 풀고 남은 계란으로 후라이를 해 먹을 참이다. 술기운이 살짝 오르자, 고독과 편안함의 경계가 무뎌졌다. 솔로 캠핑의 묘미란 이런 것이다.
파도는 그날처럼 다가왔다 멀어졌고, 바람은 밤새워 텐트를 두드렸다.

평안한 바다가 주는 안정감
평안한 바다가 주는 안정감

여객선
지도(점암, 봉리)/ 임자도(진리, 목섬) → 재원도 1일 2회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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