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가득한 공항을 홀로 걷는다. 누구를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외국에 나가야만 마실 수 있는 음료뿐이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음료자판기를 찾는 남자에게 공항직원은 일본여행의 목적을 묻는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조선통신사, 아니 음료신상털이 ‘마시즘’이다.
맛을 채굴하는 지역, 홋카이도
지난 ‘오키나와 음료여행’이 일본 최남단이었다면, 이번에는 최북단인 ‘홋카이도’다. 삿포로나 오타루는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한 여행지이기도 하고, 영화 ‘러브레터’ 무대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겡끼데스까’ 대사 하나만 가지고 가기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자연의 축복을 (너무) 세게 받아서 식재료가 엄청나거든. 어딜 가서 아무거나 먹어도 재료가 신선하니 음식이 맛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홋카이도를 여행할 때 맛집(훌륭하다)과 디저트(더할 나위 없다)는 잘 알아가는데, 왜 마시는 것은 콜라만 마시는 거지? 자고로 음식이란 마시는 즐거움을 모르면 반절을 손해 본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홋카이도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특집>이다.
1. 홋카이도의 자존심이 담긴 맥주
삿포로 클래식
어쩌면 홋카이도 출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삿포로 맥주’가 아닐까 싶다.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 아니 우리 동네 편의점에도 노란색 별모양 삿포로 맥주가 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시는 삿포로 맥주는 홋카이도 사람들은 마시지 않는다. 그들은 이곳에만 파는 ‘삿포로 클래식’을 마신다.
그렇다. 삿포로 클래식은 홋카이도 안에서만 생산되고 판매되는 지역 한정 맥주다. 독특한 재료나 공법을 넣어서 만든 것이 아닌 삿포로 맥주를 처음 만들었던 제조법을 그대로 가진 올몰트 맥주다.
몰트(보리)의 느낌을 단단히 잘 살렸다. 향과 맛이 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밋밋하지 않은 정성이 돋보인다…라고 담담히 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방문자 입장에서는 하루, 하루 이걸 못 마시는 날이 다가온다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버리는 맥주가 아닐까 싶다.
이래서 삿포로 클래식이 그리워서 홋카이도를 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구나. ‘삿포로 클래식’을 가장 마시기 좋은 곳은 홋카이도에 있는 맛집들이다. 특히 ‘징기즈칸(홋카이도 지방의 양고기 요리)’ 같은 육류 음식과 먹을 때 고소하고 시원한 매력이 잘 살아난다. 삿포로에 있는 삿포로 맥주 공장과 삿포로 맥주 박물관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마시는 것도 특별하다. 어쨌거나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성인이라면 1일 1삿포로 맥주를 하지 않으면 잡혀가는 법이 있다(없다).
2. 홋카이도 병우유
야마가와 목장 자연우유
삿포로 맥주가 홋카이도의 밤을 상징하는 마실거리라면, 낮을 상징하는 마실거리는 단연코 ‘우유’다. 일본의 우유 생산량의 55%가 홋카이도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이 말은 즉슨 일본에서 가장 신선하고 맛있는 유제품들이 이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마시즘은 우유가 생산되는 농장까지 볼 수 있는 ‘야마가와 목장 자연우유’라는 곳을 갔다. 한쪽에는 소를 기르는 큰 목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우유로 직접 만든 우유, 치즈, 아이스크림 등이 팔고 있었다. 문제는 우유뿐만 아니라 소고기 요리까지 먹을 수 있어서(심지어 최고의 고기맛집 중 하나였다) 먹고 마시는 내내 감탄과 숙연함을 함께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야마가와 목장에서는 독특하게도 우유를 병에 담아 줬다. 자연에서 생산된 하얀 우유의 맛은 어떨까? 농축우유처럼 진하고 꾸덕한 맛을 낸다기보다는 고소함이 담겨있는 우유였다. 하지만 마실 때는 큰 충격이 아닌데 다음날 자꾸 생각난다는 게 이 동네 음료들의 특징이다. 그 후 호텔조식에서 물보다 우유를 얼마나 많이 찾았는지…
우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좋아할 메뉴가 있다. 바로 홋카이도 원유로 만들어진 아이스크림들이다. 야마가와 목장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들…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우니까 일반적으로 가게 문 앞에 아이스크림 콘 상이 있는 곳에서는 홋카이도 원유로 만들어진 고소하고 달콤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다. 추워서 동상에 걸리지 않은 이상 일단 먹어라.
3. 홋카이도의 코카콜라
과라나(가라나)
홋카이도에서 소울 드링크라고 불리며 코카콜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음료가 있다. 바로 ‘과라나’ 탄산음료다. 과라나는 아마존 지역에서 자라는 열매 이름이고, 실제 브라질에서는 ‘과라나 안타르치카’라는 브라질 국민음료가 있다. 그런데 왜 저 멀리 홋카이도에서는 과라나가 특산물 취급을 받는 것일까?
그것은 1950년대 일본의 속사정이 숨어있다. 당시 ‘코카콜라’는 전 세계로 발을 뻗히며 나라마다 1등 음료가 되었다. 이제는 일본에 본격 출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 내의 음료사업자들이 이에 맞서기 위한 음료를 찾아다닌 것이다. 그런데 브라질에 있는 과라나 음료들이 코카콜라와 경쟁을 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브라질에서 과라나 음료를 배워와서 출시했는데, 일본 사람들이 익숙하기도 전에 코카콜라도 일본 내 출시를 했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과라나 음료는 찾을 수 없게 되고 코카콜라의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코카콜라가 일본에 진출하고 3년이나 늦게 발을 디딘 곳이 있었다. 그게 홋카이도였다.
1960년 일본 내에서 밀려버린 과라나 음료들이 홋카이도에 몰려왔던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곳 주민들은 과라나 음료의 맛과 매력에 빠졌고, 이후 코카콜라가 진출해도 그 사랑은 변하지 않았다. 때문에 홋카이도에서는 가게마다 과라나 음료를 찾을 수 있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홋카이도의 남쪽 하코다테 지역에의 햄버거 프랜차이즈 ‘럭키삐에로’는 햄버거 메뉴에 콜라 대신에 우롱차나 과라나 음료를 함께 마실 정도다. 맛은 어떠하냐고? 음… 에너지 드링크, 아니 탄산이 들어간 박카스와 비타 500의 어딘가의 맛?
4. 과일은 유바리 멜론
주스는 사과주스
홋카이도는 일본 최고의 멜론 원산지다.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멜론을 팔기도 했다. 바로 ‘유바리 멜론’이다. 2016년에 유바리 멜론 2개 1세트에 300만엔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린 적이 있다. 홋카이도에 가면 마트나 시장 등에서 이 멜론을 만날 수 있다.
유바리 멜론은 노란색 과육이 굉장히 부드럽고, 달콤한 향이 강하다. 맛은… 잘 만들어진 메로나 맛 같았다. 메로나가 정말 잘 만들었구나.
과일이 유명한 만큼 환타 멜론, 유바리 멜론 소다 등을 만날 수 있지만 음료에 있어서는 ‘사과주스’를 더욱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인 ‘다케츠루 마사타카’가 홋카이도에 위스키 증류소를 만들었을 때 제일 먼저 만든 음료가 ‘사과주스’였다. 위스키가 증류될 때까지 뭔가는 만들어야 하니까. 사과로 열심히 음료를 만들었다.
사업적으로는 망했다고 들었지만, 이게 제대로 만들다 보니 홋카이도를 상징하는 별미가 되었다. 홋카이도 사과주스를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이제는 세계적인 위스키가 된 닛카 위스키 증류소가 아닐까?
5. 지도가 그려진 모든 편의점 음료
리본 나폴린 외
사실 이렇게 알려주지 않아도 홋카이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료를 찾는 건 간단하다. 캔이나 병의 패키지에 홋카이도 지도와 북해도라는 글씨가 쓰여있는 녀석은 모두 이 동네에서 생산되고 소비되는 리미티드 음료다.
1911년에 이곳에서 만들어진 달콤하면서 상큼한 환타 같은 탄산음료 ‘리본 나폴린’ 이라던지(자매품인 레몬맛 리본 시트론은 일본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홋카이도의 야쿠르트인 ‘카츠겐’도 오랜 시간 홋카이도 주민들의 사랑을 받은 소울드링크다.
지나가다 자판기에서 만나는 캔커피 등에도 홋카이도 지도가 그려진 녀석들이 있는데, 이 또한 홋카이도의 원유를 사용하여 부드러워진 이곳만의 음료다. 가장 자주 마시는 조지아 캔커피가 홋카이도 특별 버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처음 느꼈다. 역시 세상은 넓고, 음료는 많구나.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 떠나는
당신이 마실 음료는?
봄의 벚꽃, 여름의 초록, 가을의 알록달록함과 함께 겨울철 가득한 하얀 눈까지. 홋카이도는 언제 방문해도 아름다울 것 같은 자연을 가진 곳이었다. 물론 이곳을 찾는다면 보이는 풍경만큼이나 이곳에서 맛본 맛있는 것들이 생각이 날 것 같다.
즐거운 여행과 추억에는 언제나 함께하는 음료가 있기 마련이다. 만약 홋카이도에 간다면, 여러분이 맛볼 음료는 무엇일까?
<제공: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