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네바다의 라스베이거스, 워싱턴의 시애틀.
미서부 3개 도시를 에디터의 시선으로 해석했다.
●LOS ANGELES
가시지 않는 갈증
여행은 대체로 그런 것 같다. 한 목적지에서 3~4일 정도 머물면 ‘많이 봤다’라는 개운함이 있다. 그런데 이곳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LA)는 예외다. 지난 5월, LA 다저스 오타니 쇼헤이의 위대한 역사(50-50클럽)의 한 페이지에 동참했고, 예술의 보고인 게티 센터(Getty Center)를 전세 낸 것처럼 즐겼다. LA의 다채로운 커피 문화를 엿봤고, 그 유명한 BCD의 순두부찌개와 갈비도 맛봤다. 그렇지만 여행박람회 참여에 비중이 큰 방문이었던 터라 여행은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10월 말, 올해 두 번째 미국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단순히 LA를 한 번 더 보고픈 욕심으로 미서부 투어(LA·라스베이거스·시애틀)에 발을 담갔다. 많은 유명인이 거주했던 동네를 거닐면서 독특한 건축물(Ennis House, 고대 마야 사원의 문양이 새겨진 2만7,000개의 콘크리트 블록을 쌓은 집)을 봤고, 그리피스 천문대를 향해 산을 올랐다. 또 생애 첫 핼러윈을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보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발자국이 찍힌 핫플(Gjelina)도 다녀왔다.
이번 50시간을 합해 대략 100시간을 LA에서 여행했지만, 여전히 갈증이 난다. 뭔가 빠트린 기분이다. 왜 그럴까 싶어 곰곰이 돌이켰는데 도시의 규모를 얕봤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서울 면적의 2배인 로스앤젤레스를 단 며칠에 끝내려는 게 과욕이었다. 조바심을 버리고 다음 LA를 위한 지도 작업에 나섰다.
크립토닷컴 아레나에서 레이커스의 농구를 보고, 라라랜드 촬영지(엔젤스 플라이트·그랜드 센트럴 마켓·허모사 비치·스모크하우스 레스토랑 등)도 훑고, 로스앤젤레스 뮤지엄에서 예술적 감성도 충전하고 싶다. 이탈리아 사람보다 수제 파스타에 더 진심인 비버리힐스 레스토랑(Funke)과 오리지널 파머스 마켓(The Original Farmers Market)에서의 식사도 빠트릴 수 없겠다.
이토록 활기찬 도시
LA 특유의 스포티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LA 다저스(야구), 레이커스(농구), 차저스(미식축구), 갤럭시(축구) 등 여러 프로 스포츠 구단뿐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생활체육의 현장이 만들어 내는 바이브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괜스레 몸이 근질근질한 기분이 든다. 농구든 패들테니스든 코트로 뛰어들어가 함께 부대끼고 싶어질 정도로.
심지어 투명한 바다가 배경이 돼 준다. 주황빛으로 물든 베니스 비치에서 농구공을 주고받는 연인, 친구에게 한 수 가르치는 패들테니스 플레이어, 핫핑크 의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스케이터도 있다. 부러움의 대상도 봤다. 산타모니카 해변(Santa Monica State Beach)의 오리지널 머슬 비치(Original Muscle Beach)에서 만난 쾌남들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껏 성이 난 근육을 뽐내고, 또 단련한다. 링을 잡고 곡예를 펼치는 청년도 흥미롭게 바라봤다. 이들을 보며 또 다짐한다. 깊이 잠든 내 근육들을 다시 깨워 보기로!
●LAS VEGAS
Neon Bliss
수많은 네온사인이 빛을 발하는 라스베이거스(Las Vegas), 미국식 자본주의가 투영된 관광 도시다. 또 매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를 통해 미래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무대다.
도시는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지만, 해가 지고 어둑해져야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함이 꽃피는 순간이다. 벨라지오 호텔(Bellagio Hotel & Casino)에서 분수 쇼가 펼쳐지고, 파리 호텔(Paris Las Vegas)의 미니 에펠탑과 개선문을 비롯해 수많은 시설이 다채로운 색을 뽐낸다. 평면적으로만 보면 안 되고, 헬리콥터 투어를 통해 상공에서도 감상해야 한다. 7~8분간의 짧은 비행인데도 어찌나 강렬한지 도심의 불빛들이 머릿속에 새겨졌다.
또 미국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스피어(Sphere)에 놀랐다. 호들갑을 떨어 보자면, 스피어는 광활한 미국 땅에서 가장 충격적인 경험으로 각인됐다. 단순히 거대한 구 모양의 엔터테인먼트 시설이 아니라 현실 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압도적인 영상 콘텐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평생 접한 영상 중 가장 신선했고,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다.
55분 길이의 영상
영상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이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이야기다. 인간, 동물, 자연이 어우러진 지구의 역사, 그리고 환경 파괴의 순간까지 담았다.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도 곱씹을 만하나 영상 스케일에 집중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용산 아이맥스 스크린 22개에 달하는 초대형 스크린(높이 약 110m, 270도 화각)과 18K 초고화질 영상은 관람객을 다른 공간, 다른 현실로 인도하기에 충분하다. VR(가상현실)처럼 기기를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른 관람객들이 있는데도 영상에 홀딱 빠져 주변과 철저하게 분리된다. 사실 VR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스피어 콘텐츠의 몰입도가 월등히 높다.
영상에서 그랜드 캐니언이 나오면 헬리콥터를 타는 기분이고, 오페라 극장의 연주가 시작되면 어느새 한 명의 관객이 된다. 어찌나 진짜 같던지 밖에서 하늘을 보고도 스피어에 갇힌 기분이 들 정도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우리의 뇌와 감각을 완전히 속였고, 실제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글과 사진으로 여행을 표현하는 이로서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스피어를 제대로 즐기려면, 좌석은 정중앙인 306구역이 1순위고, 좌우에 있는 305, 307구역도 훌륭하다.
걱정한다고 해서 미래가 달라지지는 않을 일. 라스베이거스의 또 다른 화려함으로 울적함을 달래고, 허기도 채웠다. 팔라조 호텔(The Palazzo at The Venetian Resort) 내에 있는 일식 레스토랑 ‘와쿠다(WAKUDA)’와 윈 호텔(Wynn)의 쇼 ‘어웨이크닝(Awakening)’을 만났다.
와쿠다는 싱가포르에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을 운영 중인 테츠야 와쿠다(Tetsuya Wakuda) 셰프의 레스토랑이다. 도쿄의 화려한 골목길을 콘셉트로 꾸며진 레스토랑은 모던 일식과 다양한 칵테일, 주류를 선보이고 있다. 각종 스시, 잿방어 카르파초, 와규 교자, 로바타야끼(그릴 요리) 등 단품 요리부터 셰프 테이스팅 메뉴, 프라이빗 오마카세 룸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일본 요리를 즐길 수 있다. 게다가 셰프가 양조에 참여한 사케(Wakuda Private Label Sake)도 있다.
하루의 마무리는 라스베이거스의 대표 상품인 쇼다. ‘어웨이크닝’은 2022년에 론칭한 비교적 신상 쇼로, 화려한 퍼포먼스와 의상, 무대 장치가 인상적이다. 주인공이 빛과 어둠의 세력에 맞서 그들을 결합하고, 세상을 구하는 그런 스토리. 결말에 다다르는 80분간 수많은 효과로 지루할 틈이 없다.
●SEATTLE
오늘의 커피
미국은 막연히 멀게 느껴진다. 서부든 동부든 최소 10시간은 비행기에 있어야 닿을 것 같은 목적지다. 그렇지만 워싱턴주의 최대 도시 시애틀(Seattle)은 다르다. 약 9시간 30분이면 미국 본토에 입성할 수 있고, 공항의 규모도 적당한 편이라 입국심사도 수월하다. 명소로는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치훌리 가든 & 글라스(Chihuly Garden and Glass), 시애틀 대관람차(Seattle Great Wheel), 수상비행기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도 가장 눈이 가는 건 도시의 커피 문화다. 시애틀은 1880년대 들어 로스팅 사업이 본격화됐고, 스타벅스(1971년)를 비롯해 앵커헤드 커피(Anchorhead Coffee), 에스프레소 비바체(Espresso Vivace), 카페 비타 커피 로스팅 컴퍼니(Caffé Vita Coffee Roasting Company) 등 미국 커피에 영향을 끼친 카페와 로스터리가 생겨났다. 자연스럽게 개성 있는 작은 카페도 도심 곳곳에 들어섰고, 커피는 음료 이상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실제로 미국의 커피 수도를 논할 때, 시애틀은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와 함께 가장 먼저 거론되는 곳이다.
어쩌다 시애틀은 커피에 진심인 곳이 됐을까? 미국관광청 홈페이지를 보니, 흐리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10월 말~4월 초까지 우기), 높은 독서율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커피 한 잔, 책을 보며 마시는 라테,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외부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결국 맛있는 커피가 핵심인 것 같고, 매력적인 공간을 내어주는 카페들의 역할도 크다. 흥미로웠던 곳은 큰 빌딩 1층에 자리한 올림피아 커피 로스팅(Olympia Coffee Roasting, U.S. Bank Centre 지점)과 앵커헤드 커피(1600 Seventh 지점)다. 매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빌딩 로비 전체를 카페처럼 쓸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확대된 셈인데, 빌딩 1층이 5성급 호텔 라운지나 근사한 도서관처럼 꾸며져 있다. 시애틀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보편적이라지만, 여행자에게는 꽤 특별하게 다가온다.
또 관광객이라면 스타벅스 1호점과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1호점도 빠트릴 수 없다. 해당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텀블러, 원두(파이크 플레이스 스페셜 리저브 원두 등)가 기념품으로 아주 만족스럽다. 특히, 오크통에서 숙성한 원두(Whiskey Barrel-Aged Guatemala)로 내린 콜드브루는 시애틀 리저브 로스터리에서만 즐길 수 있다. 위스키 향을 머금은 매혹적인 커피다. 위스키처럼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게 돼 저녁 9시 이후에 즐기면 딱 좋겠다. 이 밖에도 현지인들의 커피 공간으로는 모노레일 에스프레소(Monorail Espresso), 아날로그 커피(Analog Coffee), 고스트 노트 커피(Ghost Note Coffee) 등이 있다.
이성균 기자의 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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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델타항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