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2월 바다는 한겨울이다. 수온이 낮아 연중 어획물이 가장 적은 시기로 꼽힌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과 섬 주민들은 오히려 더욱 특별한 먹거리로 여행객을 반긴다. 이 계절, 섬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맛의 신세계로 지금 떠나 보자.

초보자도 부담 없는
백령도 냉면
백령도에 메밀 농사가 시작된 것은 해방 이후부터다. 그 후로 자연 메밀로 만든 음식들이 하나둘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냉면도 그중 하나다. 백령도가 본디 황해도 땅이었으니 향토 음식이라 해도 무방하다. 백령도 냉면은 평양 냉면과 같이 메밀 면을 재료로 하지만, 돼지 뼈를 우려 육수를 내고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하는 것이 다르다. 맛도 결코 슴슴하지 않다. 그래서 초보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섬 내에는 이름난 냉면집이 많은데 그중 관광객들에게는 ‘사곶냉면’이, 현지 주민들에게는 간판 없는 ‘그린파크식당’이 유명하다.

담백함의 극치
소청도 토종 홍합
소청도 분바위는 2019년 백령대청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다. 골딱지 암석으로 불리는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백색의 결정질 석회암 분바위는 국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해안 지형의 특별판이다. 더욱이 분바위 해안은 토종 홍합의 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개체 수가 많아 걸음을 옮기기가 미안할 정도다. 소청도 홍합은 유난히 크고 맛있다. 특히 살 오른 이른 봄에 꼭 먹어 봐야 할 별미로 통한다. 물에 넣어 끓이면 사골 국물처럼 뽀얗게 우러나며 쫀득한 식감이 품은 담백함의 극치를 맛볼 수 있다.

화끈한 속풀이
장봉도 백합 칼국수
장봉도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해역에 있다. 섬이 가진 청정 갯벌 덕에 ‘상합’으로도 불리는 백합이 많이 난다. 백합 칼국수는 섬 내 식당들이 자신 있게 내놓는 메뉴다. 갯벌에서 직접 채취한 백합은 하루 정도 해감 후 재료로 쓴다. 게다가 투입되는 양도 많으니 당연히 진국이다.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음에도 얼큰하고 칼칼하다. 해장하러 왔다가 다시 술이 고파지는 맛이다. 전통 방식의 지주식 양식 김과 낙지, 굴 등도 계절별로 먹어 봐야 할 장봉도의 특별한 먹거리다. 그 때문에 식당들은 갯벌 해물을 베이스로 한 음식들에 특화돼 있다.

해풍을 견뎌 낸
비금도 섬초
비금도는 전국 최대의 노지 시금치 생산지다. 섬초는 비금도 시금치의 상표다. 9월에 파종한 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한다. 한겨울 강한 해풍을 견디기 위해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자라는데, 몸집이 작은 대신 잎이 두껍고 맛이 달아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섬초는 별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살짝 데쳐 소금 간만 하면 끝이다. 비금도는 예나 지금이나 인심이 후한 섬이다. 여행 중이라면 주민들이 던져 주는 몇 뿌리의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선원들의 허기를 달래 준
가거도 장어국수
가거도 주변 해역에는 돌이 많다. 섬사람들은 그곳에서 잡히는 까무잡잡한 장어를 돌장어라 부른다. 통발만 담그면 쉽게 잡을 수 있는 어종이라 예전에는 참으로 흔했다. 본디 장어국수는 새참으로 먹던 음식이다. 장어를 토막 썰어 푹 끓여 낸 다음 국수만 풀어 넣으면 완성이니 조리법도 간단했다. 그렇게 만든 장어국수는 멸치 배에서 밤새 고생했을 선원들의 허기를 달래 줬고 아이들의 간식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요즘은 운때가 맞아야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 됐다. 민박이나 식당을 겸한 숙소에서 가끔 별미로 제공하니, 주인장에게 슬쩍 부탁해 봐도 좋겠다.

환상의 섬 밥상
초도 어민회관
대동마을의 어민회관은 초도의 유일한 식당이다. 점심때가 되면 웨이팅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손님 대부분이 주민들이다. 진심 로컬식당인 셈이다. 주인장은 이곳 출신으로 마을에서 건물을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식재료는 섬에서 나는 것들을 직접 채취하거나 받아서 사용한다. 거북손, 홍합, 고동, 볼락, 건새우, 참게, 멸치, 파래 등 가짓수도 많고 양도 늘 푸짐하다. 게다가 솜씨까지 좋아 주민들의 칭송이 자자하다. 이 밖에도 마을에는 근사한 먹거리가 하나 더 있다. 대를 이어 만들어 온 전설적인 집 막걸리다. 초도에 가면 섬 백반에 막걸리까지, 환상의 한 끼를 경험할 수 있다.

식감이 오독오독
관매도 톳 짜장면
관매도에 짜장면집이 생긴 것은 10년쯤 된 듯하다. 처음에는 장사가 될까 싶었지만, 여전히 영업 중이다. 소문은 여행자들의 입을 타고 알음알음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먹었고 이제는 맛있어서 찾는다. 주메뉴는 톳 짜장면이다. 관매도 특산품이니만큼 재료 하나는 확실하다. 톳은 짜장을 특별하게 변화시킨다. 양념의 짠맛을 잡아 주고 고소함을 돋군다. 그리고 면발에 섞여 식감에 오독임을 더해 준다. 섬 짜장면집이라 해도 있을 건 다 있다. 해물이 듬뿍 들어간 짬뽕과 탕수육도 수준급이다. 반건조 생선도 눈여겨봐야 한다. 야영장이나 숙소에서 쪄 먹으면 그야말로 최고의 안주가 될 테니까.

현지에서 먹는 신선한 맛
욕지도 고등어회
욕지도는 1920년대 이후부터 70년대까지 대대적인 고등어잡이가 이어졌던 섬이다. 심지어 그 유명한 안동 고등어마저 섬 내 간독에서 염장돼 넘어갈 정도였다. 그러나 남획의 결과는 어족의 고갈로 나타났고 한동안 볼 수 없었던 고등어는 2000년대에 들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가두리 양식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욕지항 주변에는 고등어회를 먹을 수 있는 횟집들이 많다. 양어장에서 바로 공급되니 신선하기가 이를 데 없다. 고등어회는 양념간장을 찍은 후 재래 김에 싸 먹는다. 반 접시쯤 비우고 나머지는 초밥으로 즐길 수도 있다. 그리고 거제도에서 건너왔다는 바위굴도 입맛을 돋우는 2월의 먹거리다.

낚시꾼을 유혹하는
횡간도 고사리 조기조림
횡간도는 추자도에 딸린 작은 섬이다. 주민 8명이 고작인 이 섬에 민박이 있는 것은 오로지 낚시꾼들 때문이다. 그런데 숙박객에게 제공되는 민박집 밥상의 클래스가 보통이 아니다. 섬에서 나는 자연산 방풍나물, 고사리는 물론이고 귀하다는 군소까지 서슴없이 상 위에 오른다. 제주 고사리를 냄비 바닥에 깔고 살이 두툼한 추자 조기를 얹어 양념으로 조려 낸 ‘고사리 조기조림’은 단연 압권이다. 안주인의 손맛이 워낙 좋아 삼면 바다를 누비며 좋은 것은 다 먹어 봤다는 낚시꾼들마저 엄지척이다. 저녁이 되면 특히 만찬이 벌어지곤 한다. 낚시꾼들이 저마다의 수확물을 들고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해녀가 건네 준
추자도 뿔소라
추자도는 해산물이 풍부한 섬이다. 그런 추자도에서 뿔소라는 꼭 먹어 봐야 할 한 가지로 꼽힌다. 파도가 거친 추자 해역의 뿔소라는 육질이 단단한 데다 맛 또한 독보적이다. 뿔소라는 어촌계에 위판되기 전에 해녀에게 직접 살 수 있는데, 하추자 묵리항 등에서 거래된다.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kg에 5~6만원 수준으로 매우 저렴하다. 바다에서 갓 잡아 온 생물은 상온에서 2~3일 동안 보관이 가능하다. 통째로 삶아 알맹이를 내어 먹어도 좋고 망치나 돌로 껍질을 부숴 떼어 낸 다음, 날로 먹어도 그만이다. 이때, 중간 부분의 내장과 몸통에 붙은 막을 꼭 제거해야 한다. 쓴맛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민수 작가의 섬여행기는 대한민국 100개 섬을 여행하는 여정입니다. 그의 여행기는 육지와 섬 사이에 그 어떤 다리보다 튼튼하고 자유로운 길을 놓아 줍니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