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모로코 마라케시. 모자이크 타일에 비친 태양의 움직임과 가죽 시장 염색공의 물든 점퍼. 골목 사이, 비밀의 정원에선 덩치 크고 내성적인 선인장이 고요히 누군갈 기다리고. 이국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은 풍경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감탄과 찬탄이 번갈아 터지는 ‘오!’의 순간들. 카메라를 들어 느낌표 한 장, 진하게 찍었다.

●시장 속에 숨겨진 비밀 정원
시크릿 가든
마라케시에서 이만큼 이름값 하는 공간이 또 있을까. 시크릿 가든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메디나(구시가지) 시장 골목에 비밀처럼 숨겨진 ‘리아드(Riad)’다.

리아드는 모로코 전통 가옥을 일컫는다. 건물 사이 정원과 연못, 분수, 식물들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분위기를 지닌 게 특징. 19세기에 마라케시 메디나에서 가장 큰 리아드 중 하나였던 곳이 바로 여기, 시크릿 가든이다. 당대엔 고위 관리나 왕족들이 거주하는 사적인 공간이었다고.


내부는 4분할 디자인, 중앙 분수, 녹음이 우거진 공간까지 전형적인 이슬람 정원의 모습을 갖췄다. 나머지 여백은 무화과, 대추, 석류, 올리브나무 등 세계 각국에서 물 건너온 식물들이 말없이 채운다. 정원 내 아늑한 루프톱 카페는 나만 알고 싶은, 또 다른 비밀이다.
●앤티크한 우아함
다 리즐란
이베르나지(Hivernage) 지역, 가로수가 늘어선 고요한 거리. 100년 된 유칼립투스 나무와 묵직한 철문 뒤로 신비한 건물이 숨겨져 있다. 전통적인 모로코 궁전 스타일의 5성급 호텔, 다 리즐란이다.

들어서면 수초, 수련, 파피루스가 심어진 정원과 연못이 나타난다. 야자수가 드리워진 아담한 수영장도 있다. 어쩐지 옛 마라케시 왕족의 별장에 몰래 들어 온 기분이랄까. 강렬한 붉은색 벽지로 장식된 리셉션에서조차 오랜 시간 축적된, 앤티크한 우아함이 느껴진다.
●14세기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사 벤 유세프
14세기 마리니드 왕조(Marinid Dynasty) 때 설립된 이슬람 신학교. 수세기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 종교는 물론, 과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했던 곳이다. 전성기에는 약 800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했었던, 모로코 최대의 교육 허브였다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이는데 기대 이상으로 내부가 화려하다. 모로코 전통 모자이크 기법인 젤리지(Zellige)로 장식된 건물 벽면과 바닥이 특히 그렇다. 작은 도기 타일을 수작업으로 깎아 화려한 기하학적인 패턴을 만들어 냈는데, 뭔가에 홀린 듯 멍하니 쳐다보게 된다. 과거 학생들이 거주하던 방에 들어가면 건너편 방과 안뜰의 풍경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천장 없는 안뜰에 햇빛이 비처럼 찬란히 내리면, 빛과 그림자가 빗금으로 그림을 그려 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인들에겐 아직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곳 중 하나.
●염색공들의 작업소
수크 에스 사바기네
마라케시에서 ‘모험’을 해 보고 싶다면 메디나의 전통 시장 속으로 과감히 뛰어들어 볼 것. 그중 수크 에스 사바기네는 여행자들이 마음껏 헤집고 다녀 볼 가치가 있는 장소다. 아랍어로 ‘사바기네(Sabbaghine)’는 염색공, ‘수크(Souk)’는 시장. 염색된 실크나 면직물, 전통 의상, 수공예 가방 등을 판매하는 염색 시장이다.

이른 아침이면 골목마다 염색가들의 작업 소리가 요란히 울려 퍼진다. 뜨거운 염료가 든 가마솥에 천과 실을 휘젓고, 물기를 빼고, 면직물 뭉치를 말리고…. 시장 특유의 달뜬 분위기에 총천연색 색감까지 더해져 ‘살아 있다’는 느낌에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주의할 점이라면 근처 여러 수크들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데다, 좁고 복잡한 골목길이 많다는 건데. 다행히 길을 잃고 헤맬수록 재미는 배가된다.


UNDER THE OCHRE SUN, SCATTERED MEMORIES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모로코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