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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에서 백제를 빚는 도예가

2025.03.10. 10: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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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성 작가를 만났다. 그는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30년 넘게 전통 도자공예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작가다. 국가무형유산 사기장인 백산 김정옥 선생의 제자로, 부여에서 백자와 분청사기 등을 빚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도예 인생을 물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의 고향, 부여에서 ‘대산요’를 운영하는 도예가 이재성입니다.


-언제, 어떻게 도예에 입문하셨나요?

제가 서른다섯일 때였어요. 퇴근 후, 여느 때처럼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죠. KBS의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무심코 보고 있는데, 도자기를 빚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가마에 도자기를 넣고, 엄청난 불꽃으로 소성 작업하는 장면이었어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사라지지 않았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도자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에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도자기를 배워 보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에 나왔던 바로 그 도요에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자신보다 동생이 더 실력자이니 그곳에 찾아가 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찾아뵙게 된 분이 제 스승이신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유산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의 도요에 처음 도착했을 때, TV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가마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었어요.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롱했죠. 그 자리에서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기서 도자기를 배우고 싶은데 가능하시겠느냐고.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여기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다녀갔어요. 잘 생각해야 합니다. 돌아가서 한 달만 더 생각해 보고, 그때도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그때 다시 오십시오”라고.

-큰 결정을 내리고 찾아갔던 것인데, 조금은 허무하다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네요.
한 달은 너무 길었어요. 열흘 뒤에 다시 문경에 내려갔습니다. 선생님이 계시지 않더라고요. 일본에 전시가 있어 출장을 가셨다는 겁니다. 헛걸음이었습니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죠. 그렇게 열흘을 더 보낸 뒤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한 달을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왜 벌써 왔느냐고 다그치기도 하셨어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자기를 배우고 싶다고 말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김정옥 선생님의 문하생이 되셨던 것이로군요.

맞습니다. 선생님의 허락을 구한 뒤, 다시 부여로 돌아와 짐을 싸서 내려갔습니다. 제대로 배울 때까지는 돌아올 생각이 없었어요. 선생님께서는 작은 집을 하나 마련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허드렛일만 했어요. 재료를 나르고, 장작을 만드는 등등. 쉽지 않았습니다. 상당히 힘들었어요.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인지, 진짜 도자기를 배울 수 있는지 등등’ 하루종일 이런 고민만 할 때도 있었을 정도였죠.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이곳에서 도자기를 배운 뒤, 고향인 부여에서 도예가로서의 꿈을 펼치겠다는 소망이 있었거든요.

-그 꿈을 이루기까지 어느 정도의 세월이 걸렸나요?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녁을 사 주시면서 3년을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국가무형문화재(지금은 국가무형유산) 전수교육을 수료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선생님이 도자기를 빚는 모든 과정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손동작, 유약 배합하는 비율, 흙 배합 등등 모든 과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겼어요. 그렇게 선생님 문하에서 4년 정도 있다가, 부여로 들어와 ‘대산요’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도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죠.


-대산요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드라마로 각색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느껴지네요. 부여로 돌아오신 이유가 있나요?

부여는 백제의 도읍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지역에는 백제 문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특히 도자기 문화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제가 태어난 부여에 도자기 문화를 심어 보자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이곳에 대산요를 만들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문경을 떠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도자기는 소성할 때 나무 장작을 잘 써야 가마의 온도가 충분히 올라갑니다. 처음에 저는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불 온도를 맞추지 못했어요.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여쭤보기도 했습니다.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조금씩 한 단계씩 성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강의한 적도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대산요를 짓고 난 직후에는 두문불출하며 도자기를 빚었어요. 그러나 부여에 도자기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고, 곳곳에서 국가무형유산 이수자로서의 활동 요청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국립무형유산원 등등 다양한 기관에서 도자기를 소개할 기회를 받았죠. 그렇게 부여 사람들도 조금씩 도자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부여 곳곳에 공방을 운영하며 도자기 문화를 알리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도자기를 빚으실 때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온 정신을 도자기에 집중하려고 노력합니다. 흙 배합 과정은 물론이고,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문양을 새기는 것, 가마의 온도를 정확하게 맞추고 소성하는 과정 등등 도자기를 빚는 모든 과정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에요.

-전통적인 방식, 특히 장작 가마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정말 어렵습니다. 불꽃이 어느 방향으로, 언제 어떻게 튀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모든 도자기가 완성 단계까지 갈 수 없어요. 지금도 백자는 30% 정도, 분청사기는 60% 정도만 모든 과정을 버티고 견디어 완성됩니다. 처음에는 더 힘들었어요. 소성한 도자기를 폐기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어요. 어설펐죠. 수십년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처럼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어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많습니다. 여전히 다양한 방식과 기법을 연구하고, 고민하죠.

-작가님의 도자기에는 어떤 특징이 담겨 있나요.

최근 들어서는 분청사기에 백제의 문양을 넣고 있습니다.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에서 도자기를 만들면서, 지역적 특색을 담아내고자 했던 고민의 결과물이에요. 백제의 기록이나 유물, 유적 등을 들여다보면 흥미롭습니다. 상당히 다양한 문양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요.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도자기에 입혀서 세상에 내놓는 모든 과정이 재미있어요. 전시를 관람할 때 이 부분을 고려해서 감상해 주시면 좋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오랫동안 건강하게 도자기 작업을 하는 게 꿈입니다. 한 가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부여가 문화예술 쪽으로 더 많이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젊은 사람들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주고, 먹고 살 수 있도록 일감을 제공하면 다양한 인재가 모여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처럼 도자기 작업을 하다 보면 이 역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글·사진 김정흠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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