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꺼졌고, 무대 중앙에 위치한 스크린이 깨어나자 사회자가 말했다. “2025년 마이크로닉스는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으로 탄생한 다양한 신제품을 여러분께 선보일 준비를 마쳤습니다.”
평소라면 무심히 넘길 이 말이, 이 날만큼은 예고처럼 들렸다. 무언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2025년 마이크로닉스 신제품 발표회. ‘케이스와 파워를 만드는 회사’라는 익숙한 이미지로 시작한 자리에, ‘다르게 만든다’는 전제 하나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 감성으로 진화한 케이스
최근 조립 PC를 맞추며 특별함이 사라졌다고 말하던 주변 지인의 고백처럼, 케이스 시장은 평준화의 늪에 빠져 있다. 하지만 마이크로닉스는 거기서부터 달랐다. 첫 제품 ‘모노크롬’은 산업디자인의 거장 디터 람스의 철학을 오마주한 미니멀리즘 케이스였다. 정제된 전면, 절제된 메시 베젤, 흑백의 무채색 비례감.
모노크롬은 마치 “이건 케이스가 아니다”라는 듯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미술의 언어를, 다른 손에는 사용자의 일상을 쥔 채. 일반형과 미니형 모두 같은 철학 아래 설계됐지만, 단순한 사이즈 차이가 아닌 ‘대화 방식’이 달랐다. 미니형의 상단 데코에 배치된 포인트 컬러 하나는 세대별 취향까지 설계 대상임을 보여주는 디테일이었다.
이어 등장한 위즈맥스 칠 세븐팬(CHILL SEVENFAN)은 숫자부터 노골적으로 도발적이었다. 7개의 ARGB 팬을 기본 탑재한 케이스, 과할 법도 했지만, 세리에이션 형태의 정렬된 공기 흐름은 논리로 설득했다. 팬 하나하나의 배치가 디자인이자 기능이 되었고, 발열이 곧 형태가 되는 유려한 구조 속에서, 마이크로닉스는 쿨링을 조각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단순한 냉각이 아닌, ‘심미적 기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진짜 반전은 그 다음이었다. 리얼 월넛 원목이 샤시에 입혀진 ‘우드리안’ 시리즈는 보는 이의 감각을 완전히 전환시켰다. 케이스에 나무라니, 불가능해 보였던 조합은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호흡으로 실현됐다. 단지 감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프로는 미니타워 규격에서 3열 수랭쿨러를 수용하고, 맥스는 9개의 PCI 슬롯으로 확장성과 대형 GPU 대응을, 울트라는 258mm의 폭으로 12V 2x6 케이블 간섭까지 잡아낸다. 모든 설계는 실용에서 출발했고, 그 위에 감성을 덧입혔다. 우드리안은 케이스가 아닌 인테리어였고, 인테리어가 아닌 기술이었다.
전면, 측면, 상단까지 글라스로 감싼 루프탑은 시야를 열었고, 오랜 스테디셀러 우퍼는 듀얼팬 구조로 냉각 효율을 증대하며, 디자인과 성능의 균형점을 다시 잡았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이크로닉스의 대표 키보드 ‘칼럭스’는 텐키리스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IFA 디자인 어워드 수상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인상적인 건, 메탈 프레임과 컬러 구성이 전하는 세심한 무드였다. 로얄 블론, 포레스트 쉐도우, 트와일라잇 블레이즈. 이름에서부터 다르다. 손끝이 닿기 전부터, 감각은 먼저 반응했다. 여기에 팜레스트와 더스트커버를 하나로 합친 하이브리드 악세사리는, 사용하지 않는 순간까지 디자인이 작동하게 만들었다.
2. 역시나 다시금 업그레이드, 파워
디자인이 감성을 조율했다면, 파워는 기술로 긴장을 조였다. 임동현 연구원의 설명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 “전력은 강해졌고, 케이블 문제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단언처럼 시작된 이야기 속에서 GPU 프로텍터가 소개됐다. 체결이 불완전하면 LED가 꺼지고 전력이 차단된다.
문제를 미리 감지하고, 자동으로 시스템을 보호하는 구조. 여기에 그래픽카드 자체의 이상 신호를 파워가 감지해 전원을 차단하는 이중 안전망까지 구축되었다.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지 않았다. 기술이 사용자 실수까지 끌어안는 설계. 기술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서비스라는 걸, 마이크로닉스는 알고 있었다.
클라이맥스는 ‘위즈맥스 P 2500W’였다. 국내 최초, 2500와트. 수치로도 놀라운데, 조립 편의성까지 생각한 ‘스윙’ 설계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AC 인렛이 90도로 회전하며, 조립 시 케이블이 꺾이지 않는다. 케이블은 부드럽게 흐르고, 커넥터는 대칭으로 배치된다. 하나하나가 “조립자도 사용자다”라는 선언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도 클래식 시리즈는 소비자 친화적 라인업을 세분화하며 선택의 폭을 넓혔고, 풀맥스 시리즈는 ATX 3.1을 품으며 차세대 시스템 대응을 끝마쳤다. 숫자와 사양은 발표장 전체를 타고 흘렀지만, 그 안에 깃든 철학이야말로 가장 선명했다.
3. 손끝의 무게, 감성의 정점 '칼럭스'
'작년에 그 키보드? 바로 칼럭스였다' 하지만 작아졌다.
마이크로닉스가 처음으로 선보인 풀 알루미늄 키보드, 칼럭스. 디자인만으로도 존재감을 증명했고,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까지 연거푸 수상하며 성과로 증명해냈다. 하지만 오늘 공개된 텐키리스 버전은 그 연장선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다.
사이즈는 줄었지만, 밀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로얄 블론의 은은한 메탈 톤은 정제된 고급스러움을, 포레스트 쉐도우는 묵직한 안정감을, 트와일라잇 블레이즈는 어둠 속 한 줄기 광채처럼 세련된 긴장감을 전했다. 모든 컬러는 과하지 않았고, 정확히 필요한 만큼의 개성을 담았다. 절제된 디자인이 주는 고요한 존재감. 칼럭스는 키보드라는 범주 안에서 스스로를 브랜드화한 셈이었다.
텐키리스 구조는 공간 효율성과 휴대성을 고려한 선택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감과 텍스처는 결코 축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컴팩트한 사이즈 안에 더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 듯했다.특히 팜레스트와 더스트 커버가 하나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악세사리는 단순한 부속품을 넘어 ‘사용하지 않을 때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철학이 묻어났다. 마치 키보드를 닫는 순간까지도 디자인이 작동하는 것처럼.
그건 곧 마이크로닉스가 말하는 감성의 방식이다. 타건의 손맛이 전하는 촉감, 키캡 사이로 번지는 절제된 컬러톤, 책상 위 여백을 무너뜨리지 않는 실루엣. 마이크로닉스는 키보드를 도구가 아닌 오브제로 다뤘고, 사용자와의 관계를 디자인으로 맺으려 했다. 기술의 완성은 감성이고, 감성의 완성은 디테일이라는 측면에서 칼럭스는 너무도 조용하게, 그러나 깊게 증명했다.
발표가 끝나고 조명이 다시 켜졌을 때,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는 달라져 있었다. ‘기대’가 ‘신뢰’로 바뀌는 데는 50분이면 충분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하지만 다행히, 마이크로닉스였으니까.
By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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