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MD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의 제품은 애즈락 라데온 RX 9070 스틸레전드 & RX 9070 XT 타이치
PC 시장에서 라데온(Radeon) 그래픽카드는 ‘만년 2인자’다. 뛰어난 기본기를 갖췄음에도 경쟁사와 상대비교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특유의 매력을 느껴 라데온 그래픽카드를 쓰는 소비자도 많다. 하지만, 성능 향상을 위해 인공지능을 적극 활용하는 경쟁사와 달리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한 템포 늦게 대응하는 인상을 줬다. AMD 또한 FSR(FidelityFX Super Resolution) 기술을 중심으로 여러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변화 중인 게이밍 그래픽카드 시장 흐름 속에서 AMD는 큰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RDNA 4 아키텍처를 적용한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가 그 주인공이다. 시장의 관심은 단순히 새 그래픽카드가 출시되면서 나오는 기대감은 아니다. 그렇다면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의 무슨 변화 때문일까? 본 글은 여기에서 출발했다.
성능은 뒤로 하더라도 새로운 시도는 늘 있었다
라데온 혁신과 반격의 역사
현재 AMD 이름을 달고 있지만, 라데온은 ATI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86년, ‘원더(Wonder)ㆍ마하(Mach)’ 등 그래픽 출력 장치를 생산했고 1996년에는 3D 그래픽 가속기 ‘ATI 3D 레이지(Rage)’를 선보인 바 있다. 당시 ATI는 엔비디아 NV1, 3Dfx의 부두(Voodoo), 매트록스 G 시리즈 등 다양한 3D 그래픽 가속기와 경쟁을 시작했다.
▲ 라데온 DDR(R100) 이후 ATI도 3D 그래픽 가속기 경쟁에 가세했다. (출처 : 512bit.net)
라데온(Radeon) 브랜드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다. 당시 선보인 코드명 R100, 라데온 DDR은 처음 다이렉트X 7.0을 지원하며 주목받았다. 이때 ATI는 엔비디아 지포스 2 시리즈와 경쟁 중이었다. 성능은 다소 아쉬웠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대로 승부하며 시장을 유지했다.
엔비디아가 지포스 3 시리즈를 출시한 이후, ATI 역시 라데온 8000 시리즈(코드명 R200)를 출시하며 반격에 나섰다. 다이렉트X 8과 오픈GL 1.4 등 당시 최신 그래픽 API에 대응하면서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지포스 FX 4000~FX 5000 시리즈는 라데온 9000 시리즈(코드명 R300)가 대응했다. 다이렉트X 9와 오픈GL 2.0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당시 지포스 대비 좋은 가성비를 가진 제품을 포진하며 소비자의 지지를 받았다. 라데온 9500 계열 및 라데온 9600 등이 인기를 얻었다.
▲ 라데온 HD 4000 시리즈는 뛰어난 가성비로 시장의 호평을 받았다. (출처 : purepc)
라데온 X1000 시리즈와 HD 2000 시리즈는 라데온의 암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양 대비 성능은 경쟁사를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가성비를 시장에 다시 제안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영상 재생 능력은 뛰어났기 때문에 이 부분에 중점을 둔 소비자는 라데온을 선택하기도 했다.
혁신은 HD 4000 시리즈 이후부터 이뤄졌다. 특히 라데온 HD 5000 시리즈부터 HD 7000 시리즈 라인업은 황금기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제품에 따라 호불호는 갈렸지만, 대부분 동급 경쟁사 제품과 성능 경쟁이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 라데온 R9 퓨리와 RX 베가는 생소한 HBM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라데온은 하드웨어의 혁신을 앞당기기도 했다. 특히 라데온 R9 퓨리는 처음으로 GPU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적용한 칩셋이다. 성능적인 면에서 아쉬움은 있었지만,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한 그래픽카드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AMD는 이후 RX 베가(Vega)와 라데온 7에서 HBM을 다시 채택했다. 여전히 메모리의 압도적인 성능을 GPU가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을 줬지만, 결과적으로 AMD가 칩렛(Chiplet) 구조와 패키징 방식 변화에 영향을 준 그래픽카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 RDNA 아키텍처를 적용한 라데온 RX 5000 시리즈 이후부터 성능이 꾸준히 개선됐다
현재 라데온 시리즈의 뼈대가 된 그래픽카드는 라데온 RX 5000 시리즈부터다. 이 때부터 라데온DNA(RDNA) 아키텍처를 적용해 성능을 크게 높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경쟁사 그래픽카드와 호각을 다툴 수준까지 성장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아키텍처 효율 개선+합리적인 가격으로 상품성을 높이다
부활의 신호탄 쏜 라데온 9070의 비법은?
라데온 RX 9070 시리즈가 시장의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개선된 상품성 영향이 컸다. 이전에 선보인 라데온 RX 7000 시리즈 그래픽카드 같은 경우, 뛰어난 기본기를 제공했어도 최신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AMD는 라데온 RX 9070에 개선된 RDNA 4 아키텍처를 도입하며 성능적으로 아쉬운 부분을 해소하고, 나아가 가격적인 메리트까지 제공하면서 시장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 RDNA 4 아키텍처는 이전 아키텍처의 부족한 요소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뒀다
먼저 RDNA 4 아키텍처의 특징을 살펴보자. RDNA 4 아키텍처는 RDNA 3의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 과정에서 컴퓨트 유닛(CU)의 설계도 새로 구성했다. 무엇보다 광선추적(RT - 레이 트레이싱)과 머신러닝(ML)의 성능 개선에 집중했다. 빠르게 발전 중인 인공지능 기반 연산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기본 3D 렌더링 처리 능력도 중요하지만, ▲프레임 보간 ▲화질 개선 ▲지연 시간 축소 등 최신 게이머들이 요구하는 부분도 충실히 제공할 필요가 있다.
RDNA 4는 RDNA 3 대비 40% 성능이 개선됐다는 게 AMD 측 설명이다. ▲3세대 레이 트레이싱 가속기 ▲2세대 인공지능 가속기를 탑재한 부분이 주효했다.
▲ 광선추적 성능을 이전 대비 2배 이상 높였다
먼저 3세대 레이 트레이싱 가속기는 부족했던 게이밍 성능 향상에 큰 도움을 준다. 광선 추적(레이 트레이싱) 기술은 광원을 실시간 처리하는 방식 때문에 GPU에 큰 부하를 준다. 어떻게 효율적인 형태로 광원을 처리하는지 여부가 성능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RDNA 4 아키텍처는 박스당 8 광원, 삼각형 유닛당 2 광원 연산을 지원한다. RDNA 3 대비 2배 향상된 수치다. 변환 작업도 셰이더가 아닌 레이 트레이싱 가속기에서 직접 수행하므로 효율 또한 개선됐다.
▲ 인공지능 처리 능력도 크게 개선하면서 게이밍 경험 향상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2세대 인공지능 가속기와 3세대 매트릭스 가속기도 성능 향상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인공지능 데이터 처리에 특화된 유닛을 탑재함으로써 RDNA 3 대비 최대 8배 많은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다. 이를 활용해 ▲업스케일링 ▲프레임 보간 ▲지연시간 개선 등 전반적인 게이밍 경험 향상에 투자할 수 있다.
▲ 구조 개선이 이뤄진 컴퓨트 유닛은 그래픽카드 기본기 향상에 도움을 준다
컴퓨트 유닛에는 ▲향상된 메모리 서브 시스템 ▲개선된 스칼라 유닛 ▲동적 레지스터 할당 ▲향상된 유닛 효율 및 작동 속도 등이 적용되며 기본기를 다졌다. 기본적인 뿌리는 RDNA 3에 있지만, 특정 처리 유닛의 효율을 개선하고 캐시 메모리 확대 등으로 전반적인 성능 개선이 가능하다.
▲ 실리를 선택한 AMD, 상품에 열광하는 이가 많은 분위기를 봐서 이번에는 성공 가능성이 높다.
제품 전략도 새로 꾸렸다. 기존에는 그래픽카드 라인업 구성 자체에 초점을 뒀다면,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는 실리를 챙기고자 했다. 합리적인 가격에 고성능 게이밍 경험을 요하는 시장을 겨냥한 것이다. AMD는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라데온 RX 7900 XTX ▲RX 7900 XT와 RX 7900 GRE 사이에 두었다. 4K(2160p)와 QHD(1440p)를 모두 섭렵하려는 의미다.
▲ AMD 라데온 RX 9070 시리즈가 그래픽카드 시장의 판도 변화를 예고한 상황. 사진의 제품은 애즈락 라데온 RX 9070 스틸레전드 & RX 9070 XT 타이치 그래픽카드.
가격도 매력적이다. 뛰어난 성능을 갖췄음에도 라데온 RX 7900 GRE 수준의 가격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AMD는 라데온 RX 9070 XT를 599 달러, 라데온 RX 9070을 549 달러에 책정했다. 실제 국내 유통가는 다르겠지만, 경쟁 제품이 될 지포스 RTX 5070 급 그래픽카드 대비 저렴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공급 물량이 제한적인 지포스 대비 라데온 RX 9070 시리즈 그래픽카드가 시장에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분위기 반전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다.
과연 AMD는 혼란한 그래픽카드 시장의 틈새를 뚫고 우뚝 설 수 있을까?
이쯤되면 만년 2인자 타이틀 내려놓고, 1위로 등극해도 되겠다.
By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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