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이 품은 속초의 작은 마을, 상도문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울창한 소나무에 둘러싸인 학무정과 유학자 오윤환의 생가는 옛 모습 그대로다.

돌담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
상도문돌담마을
속초 설악산 아랫마을에 위치한 ‘상도문’은 500년 전통의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곳이다. 상도문 마을의 ‘도문(道門)’이란 지명은 신라시대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설악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마을 이름에 도문을 넣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현재에도 설악산에서 동해 바다까지 이어진 설악산로에는 상도문, 중도문, 하도문의 지명이 남아 있다.

상도문돌담마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기와지붕과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빗물을 머금은 설악산은 푸르고 선명하며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가 아늑하다. 마을 구석구석에 걷기 좋은 돌담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천천히 둘러보란 의미로 돌담에 ‘쉬엄쉬엄’이란 이름을 붙였다. 성인 어깨 높이의 돌담에는 무궁화, 나팔꽃을 비롯한 화사한 꽃들이 활짝 피었다.

돌담 너머에는 머리에 기와를 인 한옥이 보인다.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대부분 마당에 대문도 없이 활짝 열려 있다. 돌담 위에는 아기자기한 돌멩이 미술품들이 반갑게 방문객을 맞이한다. 돌담에 새겨진 시를 읽기 위해서 종종 발걸음이 멈춘다. 한두 시간이면 고즈넉한 돌담마을을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다. 방앗간 떡 체험, 천연 염색 체험, 막걸리 체험, 현지 민박 체험, 도문농요 전수관 인형극, 오윤환 생가, 학무정 등. 상도문돌담마을에는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특히, 강원도 무형문화재 20호로 등록된 ‘속초도문농요’는 상도문돌담마을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낭굿, 김매는 소리, 논 삶는 소리, 모심는 소리, 벼 베는 소리, 매생이 소리 등. 대부분의 농요가 조상들의 농사 문화에서 전통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강원지역 소리의 구성음 체계인 ‘메나리토리(한반도 동부지역에서 전승된 민요, 무가, 기악에서 나타나는 선율)’로 이루어져 정적이며 구성진 가락이 특징이다. 속초도문농요는 농사의 전 과정을 전통공연으로 관람할 수 있어서 잊혀 가는 농사 문화를 현명하게 보존하는 수단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조선후기 유학자
오윤환 생가
상도문돌담마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조선시대 유학자, 매곡 ‘오윤환’ 선생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생가가 나온다.

1872년, 조선 고종 9년에 태어난 오윤환 선생은 율곡 이이의 사상을 이어 효행을 실천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평생을 힘썼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학문에 정진했던 청렴한 유학자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삭발령과 창씨개명에 적극적으로 대항했으며 제자들과 함께 3·1운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민족의 정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후학과 인재 양성을 위해 힘썼던 오윤환 선생의 일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1946년, 74세로 사망할 때까지 55년간 기록한 그의 일기는 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에도 큰 증거가 됐다.


오윤환의 생가는 2007년 가옥을 재건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유지 중이다. 정면에서 보면 ‘ㄱ’자 모양의 지붕이 인상적인데, 함경도식 겹집이기 때문에 그렇다.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옥이 구성되어 있고 안채 뒤쪽으로 방이 한 줄로 이어져 있다. 본채 지붕에 이어진 측면 지붕은 전체적으로 높이가 낮은 것이 특징이다. 한옥이지만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소나무에 둘러싸인 정자
학무정
속초 8경 중 한 곳인 학무정은 오윤환 선생이 1934년 건립한 정자이다. 상도문돌담마을 남쪽, 두 물줄기가 흐르는 쌍천 사이에 위치한다. 정자 주위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마치 신선과 학이 깃든 듯해서 학무정(鶴舞亭)이라 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 사이에 있으면 잠시 더위가 물러난 것처럼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오윤환 선생은 학무정에서 글을 짓고 시를 읊었다고 한다. 제자를 양성하는 교육의 장이 되기도 했다.

육각형 모양의 학무정은 짙은 주황색 기둥, 꽃무늬 단청이 들어간 초록색 처마, 검은색 기와가 켜켜이 쌓인 지붕 등. 전형적인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띈다. 내부에는 11개의 시가 적힌 판과 학무정의 역사를 기록한 학무정기가 걸려 있다. 천장에는 ‘용’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는 게 흥미롭다.
잠시 쉬어 가는 곳
문화공간돌담
상도문돌담마을 중앙에는 작은 카페를 겸하고 있는 문화공간돌담이 자리한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돌담길을 걷다가 잠시 들르기 좋다. 오랫동안 마을의 쌀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었지만 2021년에 속초시의 문화특화지역 조성사업을 통해 전체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여행자센터로 재탄생했다.


건물 앞은 이곳을 다녀간 마을 주민과 예술가들의 추억이 쌓여 돌탑이 만들어졌다. 건물 측면에는 재활용 고철로 만든 인형들이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문화공간돌담을 천천히 둘러본 후에는 맞은편 위치한 셀프사진관, ‘육모정상점’에서 흑백사진을 한 장 찍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모든 좋은 일이 다 온다
한옥카페 다온
상도문돌담마을을 둘러본 뒤 커피 한 잔이 생각난다면, 한옥카페 다온이 제격이다. 마을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한옥카페 다온은 2층 규모의 크기로, 너른 잔디밭과 주차장을 겸하고 있다.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와 미소 짓고 있는 항아리 조형물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무엇보다 화이트톤의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가 마음에 쏙 든다. 더욱이 2층에서 통창 너머로 보이는 설악산과 상도문 마을의 전경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외부 테라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인기 메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파인애플 스무디, 딸기크림라떼 등이다. 베이커리 종류는 소금빵, 초코칩, 스콘을 추천한다. 반려견과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글·사진 김민형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