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진다. 둔탁한 빗줄기가 덮친 우붓의 실루엣은 가히 몽환적이다. 그 색은 채 밝지 않은 새벽의 어스름을 닮았고, 그 시간이 꿈의 여운처럼 아득하다. 검게 물드는 우붓의 숲은 이윽고 사람의 존재까지 망각하게 만든다. 소리 없는 비가 내린다. 점차 희미해지는 감각 속에서 애써 벗어나 보려 애쓰다가, 그 노력이 우붓에서의 모든 여정을 부정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우붓(Ubud)’이란 지명은 발리어로 ‘약(Medicine)’을 의미하는 ‘우밧(Ubad)’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우붓의 깊은 숲속에는 갖은 약초뿐만이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정확히는 존재할 것이다. 정의할 순 없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심지어 누군가는 느낄 수조차 없는 기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무슬림(Muslim, 이슬람교도)이 가장 많은 국가지만, 발리는 다르다. 발리의 무슬림 비율은 15%가량, 대다수는 힌두교를 믿는다. 발리의 힌두교를 ‘아가마 티르타(Agama Tirta)’라고 하는데, 일종의 성수 신앙이다. 물에 강력한 치유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물의 종교’라고도 불린다. ‘힌두(Hindu)’라는 단어 자체가 산스크리트어로 ‘거대한 물’을 뜻하는 ‘신두(Sindhu)’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거대한 물’은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강’ 유역을 뜻한다. 발리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물은 ‘푸라 티르타 엠풀’에 있다. ‘티르타 엠풀’을 발리어로 직역하면 ‘땅에서 솟아나는 샘’, ‘푸라’는 사원을 뜻한다. 사원 정중앙에는 자연적으로 솟는 샘이 하나 있는데, 발리 힌두교도들은 이 샘을 ‘암리타(Amritha)’라고 여긴다. 암리타는 힌두교에서 ‘불멸의 생명수’를 의미한다. 그래서 푸라 티르타 엠풀이 ‘아가마 티르타’의 상징성을 지닌 성지인 것이다.
매표소를 지나 사원에 들어서려면 허리춤에 기다란 스카프 형태의 ‘사롱(Sarong)’을 둘러야 한다. 머리는 신이 사는 신성한 세계, 가슴은 사람이 사는 세계, 다리는 귀신이 사는 세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발리에서는 머리를 만지는 일은 되도록 삼가고, 사원에 들어설 때 다리를 드러내는 옷차림은 피한다.
사원의 정중앙 안뜰로 들어서면 ‘자바 텡가(Jaba Tengah)’가 나온다. 거대한 대욕탕 한편에 분수구가 일렬횡대로 나열되어 있고, 이 구멍에서 물줄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온다. 그 물줄기가 바로 성수다. 이곳을 두고 대욕탕이라고 표현한 것은, 실제로 불순물을 씻어 내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발리 사람들은 자연, 영혼, 선과 악, 그 모든 굴레가 얽힌 카르마를 믿는다. 그래서 ‘멜루캇(Melukat)’이라는 정화 의식을 통해 불운을 씻어 낸다. 두 손을 모아 원하는 것을 기도하고, 분수의 물을 한 모금씩 3번 끊어 마신 뒤 얼굴을 씻는다. 마지막으로 성수 아래 머리를 가져다 놓으면 흐르는 물이 불운을 정화시켜 주는 방식이다. 물줄기마다 의미가 각기 다르고, 그중에는 사자(死者)를 씻어 내는 곳도 있으니 현장 안내자의 지시에 반드시 따라야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애써 젖으려는 이들 중, 정화에 대한 확신으로 ‘자바 텡가’에 머리를 들이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바라는 것을 되새기고, 방법을 찾아 그것을 행하고, 그래도 믿어 보려는 이들의 마음이 발리의 신비로움을 만든다. 그렇다고 믿는다면, 과연 그렇구나 싶은 것. 우붓의 어느 사원에서, 사람들은 기꺼이 마음을 적신다.
Mandapa, a Ritz-Carlton Reserve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
발리에는 힌두교 사원만 2만개가 넘는다. 발리 인구가 약 440만명으로 집계되니, 대략 200명당 사원 1곳씩은 배정할 수 있는 넉넉한 수치다. 깊은 믿음이 서린 신들의 섬. 발리에서는 발리의 것과 아닌 것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믿음을 기반으로 다져진 지역색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것은 겉돌 수밖에 없다. 그 목적에 영적인 순수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리에 들어서는 럭셔리 리조트는 브랜드 자체의 개성을 한껏 덜어내고 철저히 발리의 규율에 따른다. 힌두교 교리의 단어를 리조트 이름으로 부여하거나, 사원을 들여 신을 맞이하거나, 지역민 위주로 직원을 고용하며 문화적인 요소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문화적 간극을 줄인다.

우붓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 2015년 9월에 오픈했는데, 오픈 이래로 매해 버킷리스트로 벼르고 있었던 리조트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이 ‘리츠칼튼 리저브’이기 때문이다. ‘리츠칼튼’과 ‘리츠칼튼 리저브’는 지향점이 다르다. ‘리츠칼튼 리저브’는 ‘전원에서 즐기는 초호화 휴양’을 추구하는 스몰 럭셔리 부티크다. 그야말로 위치가 관건이라, 매우 희소하게 브랜드를 확장 중이다. 리츠칼튼 리저브는 현재 전 세계에 단 8곳뿐이다. 그중 만다파는 3번째 리츠칼튼 리저브이며 우붓의 정글 한가운데 둥지를 틀었다.

‘만다파’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을 뜻한다. 내면의 평온을 위한 안식처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이름이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는 ‘아융(Ayung)강’ 줄기를 품고 있다. 아융강은 발리에서 가장 긴 강이다. 호텔이 위치한 ‘끄데와탄(Kedewatan)’ 지역 주민이 신성하게 여기는 대상이기도 하다. 발리의 힌두교는 성수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을 뿐더러, 발리 농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강이기 때문이다.

성수가 흐르는 만다파의 여정은 로비로부터 시작된다. 로비는 호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공간이다. 만다파는 호텔부지가 계곡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가장 높은 지대에 로비를 배치했다.
체크인을 거치며 시선은 자연스레 만다파를 담은 우붓으로 향한다. 금방이라도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열대우림이 가득이고, 계곡 끝 지점에는 아융강이 거침없이 흐른다. 리조트의 자본력이 아니라, 우붓의 압도적인 자연이 자아내는 경외심. 이것이 ‘만다파’가 투숙객에게 제시하는 그 비싼 가격의 첫 번째 당위다. 전 세계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자연.
두 번째 당위는 그토록 드넓은 자연에 마련한 단 60개의 객실이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객실은 오직 35개의 스위트룸과 25개의 풀빌라로 구성했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서비스를 위함이다. 체크인과 동시에 객실마다 ‘페이스(Paith)’라고 불리는 개인 버틀러가 지정되는데, 24시간 내내 투숙객의 요구에 즉각 대응한다. 외딴곳에서 누리는 초호화 휴양. 자연의 일부가 되었지만 도심의 편리함은 배가 됐다. 상상으로만 넘겼던 세상의 모든 호사가, 이곳에서 가능하다.

내가 머물렀던 객실은 1 베드룸 리버프론트 풀빌라, 아융강과 가장 가까운 룸 타입이다. 거실과 침실이 별채 형태로 분리되어 있다. 이는 발리 전통 주택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한 것이다. 풀빌라 가운데는 대형 풀이 자리한다. 한참을 수영 쳐 그 끝에 닿으면 거세게 흐르는 아융강의 소리가 어느새 코앞이다. 이따금 래프팅이라는 이름을 두고 떠내려가듯 흘러가는 이들의 소리도 종종 스친다. 룸은 자연을 포용하기 위한 공간이다. 벽면은 중후한 고동색의 나무 질감으로 꾸몄다. 덕분에 창밖의 초록 정글이 부각된다. 인테리어는 대부분 천연 소재를 활용했다. 디자인윌키스(DESIGNWILKES)를 이끄는 ‘제프리 윌키스(Jeffrey Wilkes)’가 디자인했으며, 그 지역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Editor’s Pick
Restaurant in Ubud

Kubu
쿠부
쿠부는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쿠부(Kubu)’라는 단어는 발리의 농부들이 쌀농사를 지은 뒤 한 해 동안 수확한 쌀을 보관하는 작은 오두막을 뜻한다.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재료는 이곳에서 100km 이내에서 조달한 재료만을 사용하고, 제로 웨이스트 다이닝을 지향한다. 테이블이 총 52개가 있는데, 그중 9개의 코쿤(Cocoon) 좌석이 있다. 좌석 옆쪽으로 아융강이 흘러 식사 내내 어떠한 음악도 필요가 없다. 셰프 에카(Chef Eka)의 콩 요리는 반드시 먹어 봐야 할 이곳의 하이라이트.

Amber
암바르
암바르는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 로비 옆쪽에 자리한 재패니스 레스토랑 겸 바. 절벽 위에 자리해 늦은 저녁 우붓의 황금빛 일몰을 감상하기 제격이다. 매일 라이브로 연주하는 재즈를 감상하며 일본 퓨전 요리에 수제 칵테일까지 페어링하면 금상첨화. ‘암바르(Amber)’는 산스크리트어로 하늘을 뜻한다. 추천 칵테일은 우붓의 계단식 논을 모티브로 만든 와일드 필드(Wild Field). 판단 잎의 그윽한 향이 특징이다. 라멘, 로브스터와 장어롤, 해초 샐러드와 특히 궁합이 좋다.

Sawa Terrace
사와 테라스
사와 테라스는 우붓 특유의 계단식 논과 열대우림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인도네시안 레스토랑이다. 발리 전통 요리를 내며 ‘팜 투 테이블’ 콘셉트. 우붓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가장 신선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인도네시아 전통식 생선구이인 이칸 바카르(Ikan Bakar)나 른당(Rendang), 나시고렝(Nasi Goreng)을 추천한다. 매주 일요일 12시30분부터 15시30분까지 진행하는 선데이 브런치도 놓쳐서는 안 된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